복되게 하는 세 마디 간구 시119:33-40
복되게 하는 세 마디 간구 시119:33-40, 계3:7-13
인도의 교육학자 케일리 여사는 "현대인에게는 세 가지의 정신적 죄악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첫째는 모르면서 배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많은 것을 아는 것처럼 자처 하지만, 정말로 배워야 할 것은 배우려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알면서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귀한 진리가 있을 때에는 이것을 남에게 가르쳐야 하는데, 더 많은 사람이 알도록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할 수 있으면서 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는 것도 많지 않지만 그 아는 것마저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상의 세 가지가 현대인의 정신적 죄악이라고 했습니다. 슬기로운 성도는 모든 기회가 지나가기 전 진리의 말씀을 배워 바로 알고, 그 진리의 말씀위에 자신을 견고히 세워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갈 때 믿음의 승리자로 살아갑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복되게 하는 세 마디 간구”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진리의 말씀을 가르쳐 깨닫게 하소서.
구약 본문 시119:33에 ‘여호와여, 주의 율례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라고 했습니다. 율례의 도란 하나님 말씀 안에 있는 하나님의 명령을 말하는데, 이것을 가르쳐 주십사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지난날의 자신의 죄와 허물, 실패가 하나님의 말씀을 몰랐기 때문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내가 알지 못하고 하는 말 한마디, 한 사건이 얼마나 상대에게 상처와 고통을 주고, 또 그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몰라서 짓는 죄와 허물이 많이 있습니다. 아마도 지옥에 가 있는 사람들도 꼭 같은 말을 할 것입니다. 그 때에 그 일이 얼마나 죄가 된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서 하신 말씀도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몰라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고, 몰라서 비웃고 조롱하고, 몰라서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라고 정죄하고, 몰라서 주님께 채찍질 한 것입니다.
주님은 영생은 하나님을 알고, 주님을 아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제사장들, 바리새인 서기관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안다고 했지만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를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로 매도하여 십자가에 못 박고 말았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예수님을 이단의 괴수로 잘 못 알고 믿는 자들을 박해하는 일에 앞장서 주님을 대적하는 일을 하다가 다메섹에서 극적으로 주님을 만나 주님을 바로 알아보고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 하며 복음의 증인으로 충성하며 살다가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좋은 성도는 진리의 말씀을 바로 깨달아 아는 자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바로 아는 자가 되려면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로 진리를 깨달아 알게 하시어 진리 가운데로 우리를 인도 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 영혼을 살립니다. 본문 25절에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했습니다. 여기의 ‘살아나게 하소서’는 원어로 ‘하이예니’인데 ‘생명을 주어 살게 하다, 회복시키다’라는 의미입니다. 시인은 죽음을 방불케 하는 절망의 자리에서도 말씀의 가르침대로 순종하여 살아나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말씀의 가르침을 받아 말씀 안에서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말씀은 우리 영혼을 살리고, 새 힘을 주고, 주를 경외하게 하고, 위로를 주며, 지혜를 주고, 유혹을 이겨 악에서 떠나게 하고, 고난을 이기게 하고, 강하고 담대하게 만듭니다. 19세기 유명한 시인 롱펠로(W. Longfellow)는 불행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첫째 아내는 병을 앓다가 숨졌습니다. 재혼한 둘째 아내는 화재가 발생하여 화상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랑했던 두 여인을 잃은 롱펠로지만 그의 창작활동은 멈출 줄 몰랐습니다. 그의 아름다운 시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임종을 앞둔 롱펠로에게 기자가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험한 인생 고개를 수없이 넘으면서도 어찌 그리 아름다운 시들을 남길 수 있었습니까?” 그러자 롱펠로는 정원의 사과나무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 사과나무가 내 인생의 스승입니다. 저 나무에는 해마다 새로운 가지가 생겨납니다. 그곳에서 꽃이 피고 단맛이 나는 열매가 열리지요. 나는 나 자신을 항상 새로운 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고목나무에는 꽃이 필 수 없고 열매도 열리지 않습니다.
새로운 가지로 살아가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물었을 때 ‘진리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 가르침에 순종해야 합니다. 가르침대로 살아갈 때 새로운 가지로 살아날 수 있습니다. 또한 꽃이 피고 열매도 맺을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진리의 말씀은 내 영혼 살리는 영의 양식이 될 뿐만 아니라 인생을 가치 있고, 숭고하게 만듭니다. 우리 모두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 깨닫는 은혜를 달라고 간구하며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진리의 말씀에 나를 견고히 세우소서.
구약 본문 시119:38에 “주를 경외하게 하는 주의 말씀을 주의 종에게 세우소서.”했습니다. 28에도 “나의 영혼이 눌림으로 말미암아 녹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했습니다. 여기의 ‘세우소서.’는 원어로 ‘카이예메니’인데 ‘견고하다,’ ‘확실히 서다’라는 의미입니다. 시편 기자는 악한 자들, 비방하는 자들로 인해 자신의 미약함과 연약함을 고백하며 ‘주의 말씀에 주의 종을 세워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주의 진리의 말씀은 나를 견고케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말씀위에 나를 세우게 되면, 즉 말씀을 굳게 믿고 의지하여 사는 자가 되면 *요셉처럼 배신을 당하고, 모함을 받아도 흔들림이 없게 되고, 유혹을 이기게 되고, 형통해도 교만하지 않게 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장대한 가나안 족속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담대히 말할 수 있는 자가 됩니다. *욥처럼 불시험이 와도 믿음으로 시험을 견디고 이기는 자가 됩니다. *바울처럼 어떠한 박해를 받고, 위기를 만나게 되어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정죄 하리요, 누가 우리를 대적 하리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 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느니라는 견고한 믿음의 사람으로 살게 됩니다.
주의 진리의 말씀은 나의 삶을 바르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거짓과 불의와 악한 길에서 떠나게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박해 중에서도 진리의 말씀을 지키며 사는 자가 됩니다.
신약 본문의 내용은 소아시아(지금의 터키) 7 교회중의 한 교회입니다. 고원도시, 포도 생산지, 농업과 상업이 발달하여 경제적으로 부유한 지역, 지진이 잦아 피해가 많았던 지역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설립 된지 오래 되지 않았고, 성도들은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초신 자들 이었고, 교인들은 많지 않았고, 교인들의 사회적 신분, 사회적 지위, 외적인 조건 등이 그리 좋지 않았고, 가난했고, 능력도 적었지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고, 사단의 훼방이 있었지만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 말씀을 지켰고, 사단의 공격을 물리쳐 교회를 지켜서 주님에게 칭찬을 들었습니다.
진리의 말씀에 나를 세우면 반석위에 집을 짓는 자와 같아서 비바람 불고 창수가 나도 무너지지 않는 집이 됩니다.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진리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그 집을 견고히 짓는 자와 같습니다. 딱따구리는 작은 새입니다. 그 부리는 대단히 작습니다. 그러나 딱따구리는 나무 중에 제일 강하다는 참나무에 구멍을 파고 거기에 둥지를 틀고 삽니다.
보통 나무는 불을 붙이면 모두 타 재가 되어 버리지만, 참나무는 불을 붙여도 재가 되지 않고 숯이 되어 나중에 불을 붙이면 강한 화력을 내는 특별한 나무입니다. 딱따구리는 이 나무에 구멍을 뚫어 집을 짓고 삽니다. 작은 새 연약한 새 딱따구리가 그렇게 작은 부리로 딱딱한 참나무에 매달려 구멍을 팝니다. 따따따따....구멍을 팝니다. 구멍을 팔 때 딱따구리는 부리가 상하고, 무디어지고, 쪼개지기까지 하고, 부리 옆이 상하고, 자기가 쪼아대는 날카로운 참나무 조각이 자기 눈에 튀어서 눈에서 피가 나도 딱따구리는 계속 딱딱한 참 나무에 구멍을 팝니다. 견고한 나무에 사랑의 보금자리를 틀고 알을 낳아 안전하게 자손을 번식시키기 위해서 입니다.우리 모두 진리의 말씀에 나를 견고히 세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진리의 말씀을 행하여 지키게 하옵소서.
구약 본문 시119:33에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했습니다. 34절에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여 주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했습니다. 이 기도가 중요한 것은 실천 없는 깨달음은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깊은 진리를 깨달았다 할지라도 그 진리대로 살지 않을 것 같으면 그는 그 진리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야고보서의 말씀대로 깨달은 말씀, 터득한 진리를 따라 자기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면 결국 그 믿음은 헛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많이 드리고, 열심히 성경공부를 하여 진리의 말씀을 배워 안다 해도 행함도 삶의 변화도 없다면 유익이 없습니다. 성경번역 선교회 (Global Bible Translators)의 책자에 보면 남미 서부 밀림에 사는 인디언 추장 모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모란은 아내가 잘못한 일이 있으면 “여보, 하나님의 말씀은 이러 이렇게 말씀하고 있소”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아내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가요?”라고 묻고 그 성경을 읽은 다음에 정말 그렇다면, 그다음에는 그 일을 반복하지 않습니다. 만약 추장 모란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할 때면, 아내가 남편에게 부드럽게 말합니다. “여보,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잖아요?” 그러면 이번에는 모란이 그 말씀을 읽고, “정말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면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아야지요.”라고 대답하고 다시는 그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모란 부부처럼 말씀의 가르침대로 순종한다면, 거룩한 삶이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신약 본문에 나오는 빌라델비아 교회는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살 때 주님의 칭찬이 따르게 된 것을 보게 됩니다. ‘내 말을 지켰다.’고, ‘내 이름을 배반치 않았다.’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들은 온갖 시련과 유혹과 핍박, 회유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지켰고 주님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빌라델비아 지역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메시야 되심을 부정하였고, 예수를 믿지 못하게 하려고 믿는 자들을 핍박까지 하였습니다. 빌라델비아 교인들은 핍박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에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현대어 성경에서는 이 부분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는 너를 잘 알고 있다. 너는 결코 강하지는 못하나 내게 순종하려고 노력했으며 내 이름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굉장한 능력을 가지고 무언가 대단한 일을 행할 때 우리를 칭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믿음의 연조도 짧았고, 성경을 아는 지식도 만치 안았고, 강하지도 안았고, 자랑할 만한 큰 공을 세운 것도 없었습니다.
주님은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있는 그대로 최선을 다할 때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시기도 하시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시고 칭찬 하시는 분이십니다. 모세가 가지고 있는 지팡이는 보잘 것 없는 것이었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니 지팡이를 든 손을 내미니 홍해가 갈라지고, 그 지팡이로 반석을 치니 반석에서 물이 솟아 나왔고, 그 지팡이를 든 손을 들고 기도할 때 아말렉의 군대를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 다윗의 손에 있는 막대기와 물멧돌 다섯은 방패와 칼을 든 구척 장군 골리앗 앞에 어린이 장난감 같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골리앗은 소년 다윗이 던진 돌맹이를 맞고 맥없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과부의 두 렙돈 헌금 하는 모습을 보시고 칭찬 하셨습니다. 죄 많은 여인이라도 주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주님 발 앞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머리털로 주님 발을 씻는 모습을 보시고 ‘여인아 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수만의 사람들이 굶주려 있을 때 한 소년이 가져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 놓았을 때 이 적은 것으로 무엇을 하겠느냐 하시며 나무라시는 것이 아니라, 축사 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라 하실 때 무리들이 먹고도 12 광주리나 남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주님은 이처럼 주님의 말씀을 지킨 빌라델비아 성도들에게 몇 가지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열린 문의 축복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계3: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원수들 앞에 나타내 보여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계3:9에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하셨습니다. *재난과 시련의 때에 보호해 주시겠다고 약속해주셨습니다. 계3:10에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했습니다. *믿음으로 마지막까지 승리하는 자에게 하나님성전에 기둥이 되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계3:12상에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하셨습니다. *새 이름에 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계3:12에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진리의 말씀을 지키어 행함으로 주님께서 약속하시는 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복되게 하는 세 마디 간구”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 깨닫게 하소서.
◈.진리의 말씀에 나를 견고히 세우소서.
◈.진리의 말씀을 행하여 지키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