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령(말씀)대로 행하였더라 (출애굽기 7장 1-7절)
명령(말씀)대로 행하였더라 (출애굽기 7장 1-7절)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을 구체적으로 나타내 보여주시고, 그 말씀을 듣고 따르는 사람에게 풍성한 복(평안, 건강, 재물....)을 내려주시고, 복 받은 자들이 믿음으로, 구원으로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도록, 말씀 하시고, 또 말씀 하시기를 계속 하십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보고, 듣고 살아가는 무수한 말씀들이 구약에서는 “명령”이라는 단어로 자주 들려집니다. 조금 딱딱하게 보여도 말씀을 명령으로 듣고, 따를 수 있어야 신앙생활 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올바르게, 진실 되게, 그리고 곧게 나아가게 하는 잣대와도 같습니다.
신앙인이든, 비 신앙인이든 하나님의 말씀(명령)에 전부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명령들에 대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혀 무반응을 보이거나, 듣고도 따르지 않는 불순종의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를 살펴보니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가 예외 없이 이 세 가지 이유 안에 다 포함 되어 있습니다. 나는 어떤 이유에 속하나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1. 첫째, 명령을 내리시는 분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을 무신론자(Atheist)라고 합니다. 시편에서는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시 14:1;53:1)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무신론자들은 스스로 똑똑 한 것 같아도 참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 라는 책으로 유명한 옥스퍼드대 리처드 도킨스 교수는 이 시대의 대표적인 무신론자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부정되기 때문에, 명령이라는 것은 그저 비웃음거리밖에 안 됩니다. 무신론자들은 “하나님을 보여 줘라 그러면 믿겠다”라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은 만물 안에 계시고, 그렇게 말하는 무신론자의 주변에 항상 계시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니 참으로 불쌍한 인생입니다. 존재가 인정 되지 않으면 선이 끊어진 전화기를 붙들고 애타게 119를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무신론자라고 외치는 사람만 무신론자가 아니라,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전부 무신론자로 볼 수 있습니다.
2. 둘째, 명령을 내리시는 분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과 관계, 그리고 대화가 한 번도 이루어지지 못했음을 말합니다. 이른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생활 주변을 맴돌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들어 본적도 없고, 들으려고 애쓰지도 않습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길가에 뿌려진 말씀처럼, 말씀이 선포 되어도 금방 마귀에게 빼앗겨 버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활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이사야 1장 12절에, “너희가 나의 앞에 보이러 오지만, 누가 너희에게 그것(구약의 희생제물-소,양,염소 등)을 요구하였느냐?나의 뜰(마당)만 밟을 뿐이다!”(사 1:12, 표준새번역)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예배에 참석하는 것으로 신앙생활의 임무를 완수 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힘 임어 담대히 보좌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을 뵙고, 만나고, 듣고, 들린 명령대로 순종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이 사이클(cycle)이 반복 순환되지 않으면, 우리 곁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게 느껴지고, 명령도 들릴 턱이 없습니다. 인식하지 못하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하였거나, 성령을 소멸한 상태로 세상에 속하기를 즐겨하는 사람입니다.
3. 셋째, 명령을 내리시는 분의 음성을 외면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배시간 뿐만 아니라, 말씀을 읽고 묵상 하고나 기도 할 때, 찬양 할 때 등과 같은 경건의 시간은 물론이고, 우리가 미처 느끼지 못하는 삶의 모든 일상(일, 대화, 사건, 세상 풍경 등)속에서, 그리고 우리의 참 양심을 통해 끊임없이 말씀 하고 계십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못 들었다, 안 들었다, 몰랐다”라는 핑계를 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당장 지금 예배 시간에도 명령이 선포되고 있고, 각자의 심령에 면을 깊숙하게 꽃아 주고 계십니다. 똑 같이 다 들었는데도 어떤 사람은 듣고 행하고, 어떤 사람은 꿈쩍도 안 합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주여 주여만 하면서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자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 하시면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 7:23) 무서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야고보서에서도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 1:22) 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다 하나님의 명령이 이미 들렸고, 지금도 꾸준히 들리고 있고, 죽는 날까지 계속 들릴 것입니다. 알지만, 들리지만, 하기 싫어서, 기분 나빠서, 다른 일에 바빠서, 나중에 하려고....이런 불순종의 장벽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음성을 외면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회개하기를 중단 한 채, 나는 아주 잘하고 있다 라고 자기 자신에게 속임 당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명령에 순종하지 못하는 3가지 이유 세 가지, ① 존재를 알지 못한다(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 ② 인식하지 못한다(성령 없거나 성령 소멸) ③ 음성을 듣고 따르지 않는다(회개하지 않는 외식적인 신앙인) 를 말씀 드렸습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나는 어떤 상황 인지를 잘 아실 것입니다.
세 번째가 가장 위험합니다. 말씀이 들리는데도 외면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배반하는 무서운 불순종입니다. 회개하고 순종으로 돌이키는 것,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입니다. 00교회의 모든 자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데 최선을 다하셔서, 이 땅에서는 반석 위에 집을 짓고, 평안과 번영을 누리며 사시다가, 하나님의 나라의 문에는 거뜬히 들어 갈 수 있는 복된 영광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 라는 말들을 합니다. 맞습니다. 사람은 정말 쉽게 변하기 어려운 고집불통, 자기 의와 자아로 꽉 차 있습니다. 습관, 인성, 언행이 한 번 고착화 되면 새롭게 되기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것처럼, “나는 괜찮은데 네가 문제야”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대단한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 모두가 고침 받고 새롭게 받아야하는 아픈 환자 일 뿐입니다. 사람 스스로는 변화되어 가기 어렵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새롭게 다듬어 가십니다. 말씀과 복음은 우리를 변화 시킬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6, 7절을 읽어 드립니다. “6.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더라 7.그들이 바로에게 말할 때에 모세는 팔십 세였고 아론은 팔십삼 세였더라” 아멘.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다고 합니다. 최고의 지도자들인데 명령하신 대로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당연할 것 같은 이 당연함이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전~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하나님을 본격적으로 만나는 장면은 3장부터입니다.
3장에서 여호와의 산이라고 불리는 호렙(히, 호레브, 다른 이름으로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첫 번째로 모세에게 명령하시기를,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 3:10)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자 모세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겠습니까?” (출 3:10, 표준새번역) 모세는 지금 감히 만나보지 못할 하나님을 직접 만나고 있으면서도, “감히 바로에게”라고 말하면서, 하나님 보다 오히려 바로를 더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이래서는 도저히 명령대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4장에서는, 모세가 명령대로 즉각 행동하지 못하자, 하나님은 모세가 가져온 지팡이가 뱀이 되게 하고, 손에 문둥병이 나타났다 사라지게 하는 기적을 보여 주시면서, 가서 그들에게 이 기적을 보여주면 그들이 믿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러자 모세가 이렇게 답변합니다.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아멘. (출 4:10) 기적을 보고도 핑계를 대면서 명령대로 행하기를 주저 합니다. 믿음이 생성되지 않아서 아직까지 전혀 움직일 마음이 없습니다.
5장에서는, 어찌어찌 해서 모세와 아론이 바로를 찾아가서 만나긴 했는데, 바로는 그들의 말을 일언지하에 거절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볏짚도 안 주고 노역을 더 강하게 시킵니다. 그러자 모세가 하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출 5: 22) 모세는 명령대로 아주 조금 움직이기는 했지만, 한 번의 걸림돌을 만나자 곧바로 하나님을 대놓고 원망하면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합니다.
6장에서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이런 저런 말씀으로 확신을 심어 주시면서, “들어가서 애굽 왕 바로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내게 하라”(출 6:11)라고 다시 명령 하십니다. 그러자 모세의 답변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도 내 말을 듣지 아니하였거든 바로가 어찌 들으리이까 나는 입이 둔한 자니이다” (출 6: 12) “보십시오, 저는 입이 둔하여 말을 할 줄 모릅니다. 바로가 어찌 저의 말을 듣겠습니까?”(출 6:30) 참 이 정도면 일반 사람 같으면, “알았다, 관두러 관둬” 라고 포기해 버렸을 겁니다.
6장 까지만 보면, 모세는 명령대로 움직이는 것은 고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조건반사적으로 튕겨내는 듯한 무례한 말들을 마구 쏟아냅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라고는 전혀 없습니다. 이러한 장면이 오늘 본문 시작되기 전, 6장의 마지막 절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이런 모습들이 모세의 아주 인간적인 모습입니다. 위대한 지도자인 모세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명령을 따르는 것을 주저하고, 핑계대고, 불신하고, 분노하고, 원망하고, 한탄을 서슴없이 합니다. 그것도 대놓고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모세 뿐 만이 아닙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의 일반적인 완악함이고, 숨겨진 죄 성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7장에 와서“모세와 아론이 명령대로 행하였더라”라는 반전이 일어납니다. 계기가 무엇이겠습니까? 그 반전을 이룬 계기가 되는 말씀이 본문 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 같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아멘. 이 말씀 속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잘 따르는 순종의 사람으로 변화 될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하신 첫 마디가 “볼지어다”라는 동사입니다. 이 단어(히, 라아)는 구약에서 1208번이나 사용 되었는데, 가장 먼서 사용된 것은 세상을 창조 하시면서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4) 라고 하실 때, “보시기에”라는 단어가 바로 이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시선이 담겨 있는 단어라는 것이 특별합니다. 이 외에도 많은 뜻이 있지만, “주의를 기울이다, 주목하다, 분별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 단어를 사용하신 이유는, 지금 모세가, 하나님을 향하여 똑바로 시선을 고정시키지 않으면서, 몇 번씩이나 말씀 하시는데도 집중해서 듣지 않고, 제대로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중‧고등학생 시절에 선생님들이 정신봉으로 교탁을 탁탁 치시면서 “주목, 주목”하면서 선생님을 바라보게 만들죠. 부모님들이 아이들 훈계 할 때도 “고개 똑바로 들고 엄마 눈 제대로 봐!”라고 말하죠. 하나님도 모세를 이와 같이 다루신 것입니다. 모세와 같이 하나님의 명령에 즉각 순종하지 못하고,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불순종의 말을 계속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시선이 딴 곳으로 가 있습니다. 관심사가 하나님이 아니고 다른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 볼 겨를이 없으니 내 갈길 바쁘게 사는 겁니다.
여름에 선풍기를 틀었는데 회전 기능이 고장 나면 강제로 선풍기를 내 쪽으로 얼른 틀어 버립니다. 바람이 엉뚱한 곳으로 나가도록 내버려 두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선풍기는 잘 돌아가는데, 바람이 나에게 오지 않는다면, 더위 때문에 짜증만 더할 뿐입니다. 하나님과도 시선을 마주보고 들으려는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세상은 온통 짜증거리, 화날 거리만 가득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들으시려면, 여러분이 지금 현재 제~일 관심을 가지고 하시는 일, 그 일을 뒤로 미뤄 놓고 그 관심을 두고 있는 일 앞에 하나님의 얼굴, 하나님의 시선을 맞추십시오. 이것이 명령을 따르는 처음 단계입니다.
너무 오래 다른 곳만 바라보면, 하나님께서 “볼지어다!”라고 크게 말씀 하시면서 강제로 우리 얼굴을 돌리 실 수 있습니다. 강제로 돌리실 때는 많이 아픕니다. 스스로 빨리 돌리십시오. 거기에 기쁨이 있습니다. 한 번 따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 시선을 돌리겠습니다! 하나님께 시선을 맞추겠습니다!” 아멘.
그 다음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 하시기를 “내가 너를 모세에게 신 같이 되게 하겠다” 라고 하셨습니다. “신”이라고 번역한 단어는 히브리어로 엘로힘, 곧 하나님 같이 되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세를 진짜 신으로 만들겠다는 뜻이 아니라, 가짜 신 바로를 이기고도 남을 전능하시고, 유일 하신 참 신이신 하나님이 직접 모세와 동행하시겠다는 약속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못하는 주된 이유가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데도, 동행하시는 하나님, 능력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814만 분의 1이라는 로또 복권은 매 주 열심히 구입하면서, 100% 당첨 확률이 있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다면, 어느 쪽이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97%가 손실을 본다는 불안함을 가지고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주식 공부에 열을 올리면서, 단 0.1%의 손실도 없이 평안의 마음으로 충만하게 하시는 말씀공부에는 그렇게도 무관심 하다면, 어느 쪽이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돈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하는데도 돈, 돈 하면서 대박 부동산을 꿈꾸며 좋은 정보가 있다는 곳은 발이 부르트도록 쫓아다니면서도, 하나님이 천국 잔치를 여실 정도로 가장 기뻐하신다는 복음 전도와 구원 사역에는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누가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우리는 전능 하신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말을 하면서도, 실상은 전능 하신 하나님을 뒤로 재껴 놓고 살아갑니다. 말 그대로 전지, 다 아시는 분, 전능, 다 하실 수 있는 분에 투자하세요. 하나님이 이루시고, 채우시고, 부족함이 없게 하시고, 상급까지 주신 다는데, 왜 엉뚱한 것에 힘을 낭비하고 계십니까? 여러분 옆에는 전능하신 하나님, 전능 하신 신이신 우리 아버지가 항상 나와 동행하심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나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세상에 발휘 되어 역사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동행하신다는 사실이 믿어질 때, 우리에게 주어진 명령을 담대하게 이룰 수 있습니다. 또 따라 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다 이루어 주십니다!” 아멘.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일을 이루어 갈 때 모든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십니다. 사람이 필요하면 사람을 붙여 주시고, 돈이 필요하면 재정을 넉넉하게 주시고, 환경이 필요하면 상황을 바꾸어 주십니다. 많은 간증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셨는지 들어 보였을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정을 뻔히 알고 있습니다. 뭐가 필요한지 우리보다 더 세밀하게 점검하고 계십니다. “나는 입이 둔합니다. 뻣뻣합니다.” 모세가 입 만 열면 하나님 앞에 말합니다. 핑계성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모세가 말이 둔하기는 했나 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가장 약점을 형의 입을 통해 보완해 주셨습니다. 더 이상 핑계를 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다 약점이 있고 부족함이 있습니다. 배움도 부족할 수 있고, 재정도 궁핍 할 수도 있고, 만나는 사람의 인력 풀(人力pool)도 미미 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실제적인 고민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것보다는,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 상황 보다 크신 하나님, 사람보다, 돈보다 크신 하나님이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믿는 자에게 우리에게 꼭 맞는 아론과 같은 대언자를 보내 주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따라하겠습니다. “우리의 필요를 다 채워 주십니다! 우리를 강하고 담대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아멘.
모세와 아론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① 하나님께로 시선을 돌렸더니, ② 전능자 하나님을 동행하여 주셨더니, ③ 문제와 상황보다 더 크신 하나님이 필요를 긍급하여 주셨더니, “명령대로 행하였더라”라는 믿음의 사람으로, 위대한 성경 역사의 지도자로 새롭게 변화 되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새롭게 되었다면 우리도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명령대로 행하는 순종의 사람으로 바꾸어 가실 것입니다.
우리 00교회 모든 성도는, 앞으로 남은 인생이 불순종과 거부, 거절의 시간이 아니라, 온전한 순종과 감사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명령대로 행하였더라”, 내 자신이 “명령대로 행하였더라”, 우리 가족이 “명령대로 행하였더라”,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이루어 드리며, 천국 가는 그 길이 기쁘고 행복한 순종의 길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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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은 말씀 하시는 분이시고, 저희들은 듣고, 순종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오니, 주님 말씀하시면 나아가고, 말씀 하시면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믿음과 순종의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죽기 까지 순종으로 모범을 보여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