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사랑의 그늘 시 91:1-7, 롬 8:31-39
하나님 사랑의 그늘 시 91:1-7, 롬 8:31-39
극진하게 아내를 위해주는 남편이 있다면, 그 아내는 남편 때문에 행복한 마음을 가지고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극진하게 남편을 위해주는 아내가 있다면, 그 남편은 아내로부터 정성스런 사랑의 서비스를 받으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극진하게 자식을 위해주는 부모가 있다면, 그 자식은 부모의 희생적인 사랑을 받고 두려움 없이 평안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극진하게 부모를 위해주는 자식이 있다면, 그 자식 때문에 부모는 마음껏 효도를 받고, 자식을 둔 보람을 가지고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사람이 아니고, 만유를 창조 하시고, 다스리시고, 심판 하시는 지존하시고 전능 하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 하시고, 나의 배경이 되어 나를 위해 주신다면 어떻게 될까요? 제임스 스튜어트(James Stewart)의 이야기입니다. 배우 활동을 하던 중 2차 대전이 일어나자 공군으로 참전하였습니다. 어느 날 공군기지에서 멀리 동쪽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새벽이면 B-24 폭격 대대를 이끌고 독일로 폭격을 떠납니다. 피해가 예상되고 과연 살아 돌아올지 알 수 없는 작전이었습니다. 스튜어트는 아버지의 편지를 주머니에서 꺼냈습니다. 거기에는 시편 91편이 적혀 있었습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그는 아버지가 적어주신 시편 91편을 폭격기 조종간에 붙였습니다. 그리고 출격할 때마다 그 말씀을 읽은 후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공중전에서 많은 공을 세워 일병에서 준장으로 승진하기까지 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배우 활동을 하면서 제임스 스튜어트는 자기의 인생을 바꾸어준 시편 91편을 고백하면서 주위 사람들에도 전해 주었습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하나님 사랑의 그늘”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 사랑의 그늘 아래 있는 자는,
1,가장 안전한 피난처에서 사는 자가 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전쟁과 지진, 테러, 천재지변 등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이 많고, 올무와 질병과 고난과 슬픔이 떠나지 않는 곳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세상은 사단의 역사로 죄악이 충만한 곳이요, 불의와 불법이 난무하는 재앙의 장소요, 죽음이 지배하는 곳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살려면 안전한 피난처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보험도 들고, 거짓과 기만과 사기와 폭력을 일삼는 자가 되기도 하고, 처세술을 배워갑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병법에 관한 내용을 담은 책 가운데 "손자의 병법"이란 책이 있습니다. 내용을 보면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가 속임수, 공갈, 협박, 술수입니다. 그것은 전쟁의 교범이 될 수는 있을지는 몰라도 진정한 삶의 철학이나 윤리가 되고,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쳐 줄 수는 없습니다.
경관이 좋은 곳에서 크고 멋있는 아름다운 집에 산다고 해서 그 곳이 안전한 피난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껏 입주해 놓고 부부싸움 하고 방 따로 쓰면서, 도둑이 들어올까 봐 맹견을 기르고, 여기 저기 감시 카메라 달아 놓고도 불안하게 살고 있다면 무슨 낙이 있겠습니까? 요즈음 집들은 살기에 편리 합니다. 인터넷 고속 통신망은 기본이고, 온 집안을 스위치 하나로 움직이는 시스템 형의 주택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스위치만 누르면 밥이 되고, TV가 작동 되고, 냉난방 기기가 작동 되고, 문이 잠기고, 보일러가 작동합니다. 그런데 이런 좋은 집은 늘어나는데 마음에 참 평안이 없다면 평안이 있는 움막집보다 못합니다.
본문에서 시편 기자는 시91:1에서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시편 기자는 자신의 피난처를 ‘지존자의 은밀한 곳’, ‘그늘’이라고 표현 했습니다. 하나님의 품은 육안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 것 같습니다.
이 하나님의 품에는 절대적인 보호가 있습니다. 3-10절에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오직 너는 목도하리니 악인의 보응이 네게 보이리로다.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3-10)했습니다. 하나님의 품은 사람들의 악의적인 음모(陰謀)에서 우리를 보호해 줍니다. 하나님의 품은 어떤 질병도 막아 주십니다. 어떤 전쟁에서도 안전합니다. 어떤 고난이나 재앙에서도 지켜 주십니다. 정말로 내 곁에서 천인이 넘어지고 만인이 엎드러져도 하나님의 품은 안전합니다.
본문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을 날개와 깃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새는 날개로 새끼를 보호합니다. 어미의 날개는 맹수에게서 지켜 주고, 추위에서 보호합니다. 또 하나님의 손길을 방패와 손 방패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방패는 전신(全身)을 막아주고, 손 방패는 얼굴과 상체를 막아줍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은 육체적인 공격을 막아 줄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력으로부터도 막아줍니다. 날개나 깃, 혹은 방패나 손 방패는 어디까지나 비유입니다. 실제적으로는 지존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품 보다 안전한 곳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습니까?
신약 본문 롬8:31에서도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 하리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서 전능하신 하나님 품 안에 거하면 아무도 대적할 자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하나님 품 안에서 참 평안을 누리며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는 강하고 담대한 자가 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능력으로 천지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지으신 세계를 섭리하시며 움직이고 계십니다. 인간을 지으셨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 하시고, 심판하시고, 또한 구원하십니다.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한 누구도 범할 수 없습니다. 본문 시91:11-13에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使者)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네가 사자(獅子)와 독사(毒蛇)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천사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내 인생 길 전체를 천사를 통해서 지켜 주십니다. 천사들이 지금 우리의 발걸음을 붙들어 돌에 걸려 넘어지지 않게 하고 있습니다. 만일 내 발걸음이 가는 대로 내 버려둔다면 어디로 갈까요? 갈 곳 안 갈 곳 막 돌아다닐 겁니다. 거기에서 올무에 걸리고, 넘어지고, 얻어터지고, 수치를 당하고, 엉망이 될 겁니다. 천사들이 지금 내 인생 길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자와 독사 같은 세상의 악한 세력을 발로 밟고 이기면서 사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내가 잘 나서 세상에서 이기고 선하게 사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들로 내 발걸음을 붙들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신약 본문 롬8:31에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라고 했습니다. 성도의 싸움은 영적인 싸움이요, 우리를 대적하는 원수 마귀와의 싸움입니다. 이 싸움에서 승리 하려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사단은 그리스도인을 송사 합니다. 그러나 본문 33절에 “누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송사한다.’는 말은 ‘고소한다.’는 뜻입니다. 때로 양심이 우리를 고소합니다. 또 때론 율법이 우리를 송사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의 바라는 자 모세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모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을 전수 받은 자로 곧 율법을 뜻합니다. 율법의 기능 가운데 하나는, 죄를 드러내어 범죄 한 인간을 고소하고 정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귀가 우리를 고소합니다. 마귀를 가리켜 ‘디아볼로스’(διαβολο?)라고 하는데, 그 뜻은 곧 ‘고소 자’ 또는 ‘참소 자’라는 뜻입니다. 마귀가 너무 사악하고 간교하여 성도를 미혹하여 죄를 짓게 하고, 그 후 인간의 범행을 낱낱이 하나님께 고소하는 것입니다. 흉악범이라도 대개는 공범을 감싸주는 의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그렇지 않습니다. 계 12:10에 보면 마귀를 가리켜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라고 했습니다. 욥기 서에 사탄이 의로운 욥을 참소하여 고난을 받게 하는 것과 같은 행동을 합니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대언 자가 계시기에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요일 2:1에 보면, 우리 예수님을 가리켜 ‘대언 자’라고 했습니다. 여기 대언자란 ‘παρακλητο?’라고 하는데, ‘변호사’를 뜻합니다. 마귀를 가리켜 ‘참소 자’ ‘고소 자’ 라고 했는데, 마귀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님을 가리켜 ‘대언 자’ ‘변호사’ 라고 했습니다. 심판 주가 되시는 주님이 우리의 대언 자가 되시니 누가 우리를 송사하고 정죄할 수 있겠느냐고 말합니다. 본문 33절에 “의롭다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사법제도는 3심제입니다. 지방법원, 고등법원, 그리고 대법원이 있습니다. 그래서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나면, 그 판결을 번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과거 우리의 법관들은 잘못한 것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정부의 시녀, 권력을 잡은 자들의 꼭두각시가 되어 죄인을 죄가 없다 하고, 죄가 없는 자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수많은 양심적인 인사들을 구속하고, 고문하고, 투옥하고, 심지어 사형언도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법관들은 치우친 판결로 억울하게 하지만, 우주의 대 심판 장이되시는 하나님은 누구도 위협 할 수도, 매수할 수도, 번복할 수도 없이 공평무사하게 판결하시는 분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정죄를 한다 해도 하나님의 판결을 뒤집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런 전능자가 함께 하시어 나를 위하시면, 의롭다 인정 하시면 아무 것도 두려울 것 없음을 믿고 강하고 담대한 믿음의 성도로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모든 경우에서 넉넉히 이기는 자가 됩니다.
신약 본문 롬8:37에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승리가 보장된 이유를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 둡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주관하시고 다스리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에 하나님에게서 우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 있는 성도,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구원 안에 있는 성도는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로 이길 수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무인비행기로 영국에 무차별 폭격을 가했습니다. 때문에 영국 국민들은 일을 할 수가 없었고, 밤에 잠도 잘 수 없었습니다. 수 백 년 동안 보존해 온 많은 문화재들이 파괴되기도 하였습니다. 영국의 언론은 계속해서 정부와 지도자들을 비판합니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되도록 수상과 각료들은 무엇을 하였는가? 이제 우리 영국은 망했다." 라는 기사를 읽는 국민들의 마음 역시 착잡했으며 깊은 절망감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기자들의 모임에서 한 기자가 제안을 합니다. "여러분, 우리 언론은 예리한 비판을 가하기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비상시국입니다. 누구를 탓해 보았자 소용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잠시 동안만 비판을 삼가 합시다.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기사를 쓰기로 합시다." 기자들은 모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때부터 언론은 밝은 기사를 싣기 시작했습니다. 국민들이 손을 모으고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장면이 신문의 일면에 실렸습니다. 가족들이 함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장면이 신문을 장식합니다. 기사의 내용도 밝아졌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기에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인이 되십니다. 하나님이 붙들고 계시기에 우리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국민들은 신문기사를 보면서 잃었던 믿음과 소망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 하나님이 계시는데, 누가 우리를 어찌 할 수 있는가? 우리는 반드시 이길 수 있으리라." 그들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소망으로 말미암아 독일에게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들을 사랑 하시기에 넉넉히 이기게 됩니다. 본문 37절에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느니라." 최고의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죄짓게 한 후 죄를 지었으니 하나님께서 너를 버리셨으며 사랑하지 않는다고 속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못하게 하여 하나님을 멀리 하게 만들고, 떠나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면 사랑하리라 말씀하지도 않으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니 회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 하면서 때로는 어려운 여건과 환경 때문에 절망감이 몰려올 때가 있습니다.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으며 모두가 나를 버렸다고 생각하며 절망감과 외로움에 빠져 슬퍼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 하지 않으며, 나의 기도를 외면하시고 듣지 않으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나에게는 이제 소망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때 무릎을 꿇고 주님이 나를 위해 달리신 십자가를 바라보며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 하시되 끝까지 한결 같은 사랑으로 사랑 하신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본문을 기록한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일 때문에 매도 여러 차례 맞았습니다. 옥에도 갇혔습니다. 추위와 배고픔과 돌 세례를 받기도 했지만 불평 하거나 원망하며 그 일로 하나님을 의심 하거나, 신앙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어떤 경우를 만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얼마든지 부요할 수 있습니다.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영국의 설교가인 찰스 스펄젼 (Charles H. Spurgeon) 목사가 한번은 시골의 농가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마당 한쪽 편에 풍향계가 있었습니다. 풍향계 끝에는 바람의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촉이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고 있습니다.
스펄젼 목사는 유심히 바라보다 화살촉 밑에 적힌 글자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God is Love)' 라는 단어입니다. 의아스럽게 생각한 스펄전 목사는 농부에게 물었습니다. "설마 하나님의 사랑이 바람 부는 대로 바뀐다는 뜻은 아니겠지요?" 농부는 웃으며 대답합니다. "물론입니다. 정반대이지요. 바람이 어떠한 방향으로 불던지 간에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는 뜻으로 적어놓은 것입니다." 우리의 과거를 돌이켜보면 형통이나 곤고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때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형통할 때도 함께 계셨고, 곤고함에 처했을 때도 사랑으로 함께 하신 것입니다. 그 사랑이 있었기에 승리가 가능했었습니다. 오늘도 변함없는 한결 같은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는 승리자가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정리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하나님 사랑의 그늘”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 사랑의 그늘 아래 있는 자는,
◆,가장 안전한 피난처에서 사는 자가 됩니다.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는 강하고 담대한 자가 됩니다.
◆.모든 경우에서 넉넉히 이기는 자가 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