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공경하는 효행 룻 1:11-18, 엡6:1-3
부모를 공경하는 효행 룻 1:11-18, 엡6:1-3
한 어머니가 세 아들을 훌륭하게 잘 키웠습니다. 어느 덧 세월은 흘러 어머니는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늙어버렸습니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성장한 세 아들은 한 자리에 모여서 '누가 가장 효자인지 증명해 보이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큰아들은 방이 열다섯 개나 되는 큰집을 어머님께 사 드렸습니다. 둘째 아들은 1억 원 가까운 우리나라 최고급 승용차를 선물로 드리면서 운전수까지 딸려 보냈습니다. 막내아들은 15년 동안이나 잘 훈련시킨 끝에 성경책을 달달 외우는 신기한 앵무새를 눈이 어두워 성경을 볼 수 없는 어머님께 선물로 드렸습니다. 그 앵무새는 ‘창세기 1장’하면 1장을, ‘시편 1편’ 그러면 시편 1편을, ‘요한복음 1장’하면 줄 줄 줄 외웠습니다. 그 신기한 앵무새를 어머님께 선물로 드린 것입니다.
마침내 세 아들이 모였고, 어머님께서 누구의 선물이 제일 좋은지 결정을 내리는 날이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큰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큰아들아, 네 선물은 고맙다마는, 나는 네 선물을 받을 수 없구나. 이 늙은이에게 그 큰집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나는 그저 방 한 칸이면 족하단다." 그러면서 큰아들의 선물을 거절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둘째 아들에게도 말했습니다. "둘째야, 나는 네 선물도 받을 수 없구나. 눈이 어두워 앞도 못 보는 내가 그 차를 타고 어디를 다니겠느냐?" 그러면서 둘째 아들의 비싼 승용차 선물도 거절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셋째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막내야, 나는 네 선물이 제일 좋았단다. 네가 보내 준 닭은 정말 맛있었다." ㅎㅎ^^ 효도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효도하는 일에 게을러서는 안 됩니다. 어버이 주일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부모를 공경하는 효행”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효행은,
1.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행위입니다.
신약 본문 엡6:1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했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반드시 해야 합니다. ‘이것이 옳으니라.’하신 말씀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은 '인륜의 도리'라고 말합니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는 말입니다. 성경에서는 부모 공경이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이 마땅히 행해야 할 일을 십계명을 통해서 명령하고 계십니다. 십계명은 두 돌 판에 새겨져 있습니다. 첫 번째 돌 판에는 1계명부터 4계명까지 하나님을 향한 계명입니다. 사람은 반드시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아갈 때 내 영혼이 살고, 범사가 잘 되고, 장차 하늘 기업의 후사가 되어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 돌 판에는 5계명부터 10계명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간관계를 위한 계명입니다. 그 두 번째 돌 판에 가장 먼저 쓰여 진 말씀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인간관계를 맺는 첫 번째 단계이기 때문에 가장 먼저 기록해주신 것입니다.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 어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공경 하고, 스승이나 노인들을 공경하거나, 이웃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요즘 우리 사회에는 노인들을 공경하는 모습이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옛날 어린이날을 제정하던 그 시대에는 어린이를 너무 천대하고 멸시했기 때문에 어린이날을 제정해서 어린이를 보호하자 이런 운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린이를 너무 과도히 사랑하고 반대로 그 부모가 천대를 받고 멸시를 당하고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요즘은 나이 드신 어르신들에게 여쭈어 보면 자녀들과 같이 살고 싶지 않다는 대답을 많이 하십니다. 대체적으로 그 이유는 자녀들과 함께 살면 불편하다는 것입니다. 나도 불편하고 얘들도 불편하고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 세대가 이와 같이 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도 주요 원인으로,
*먼저 인성 교육의 결여에서 오는 미성숙한 인격에서 오고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 시키는 교육에는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고, 사람으로서 해야 할 도리가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보람 있게, 가치 있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인성 교육은 없어지고, 어렸을 때부터 아이를 무거운 가방을 메고 이 학원, 저 학원에 보내 남 보다 뒤지지 않게 지식 위주의 기계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으로 자란 아이가 어찌 부모를 공경 할 수 있겠습니까?
*다음에 편의주의의 결과입니다.
자녀를 키우면서 너무 편하게만 키우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부모들은 자녀를 사랑한다는 생각으로 자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해 주려고 합니다. 어떻게든 불편함이 없는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참 사랑은 거절할 것은 거절하여 세상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만 되지 않는 것이 있음을 가르쳐야 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인내 하는 법을 어려서부터 가르쳐야 자라면서 어려움에 대처 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편의주의에 익숙해지면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도, 고난이 올 때 인내하는 마음도 없게 되어 결국 쉽게 좌절하고 실패하는 자가 되기 쉽고, 보살핌과 희생이 따르게 되는 부모나 노인 공경하는 마음을 가질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갈수록 악해져 가는 사회적 현상 때문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종말의 때가 가까워 올수록 더욱 혼란해지고, 사람들의 마음이 악해져 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딤후3:1-4에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했습니다. 마10:21에 보면 ‘말세가 되면 즉 그날이 가까워 가면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한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더욱 경성하여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여 부모를 공경하는 효를 행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하나님과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위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명심 하고 순종하여 살 때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불순종하고 거역할 때 슬퍼하시고, 한탄 하시고, 노하시며 심판하십니다. 사무엘은 불순종하는 사울 왕에게 순종은 제사 보다 더 낮다고 했습니다. 예배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지만 순종이 따르지 않는 예배는 기쁨이 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바른 신앙의 사람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에 응답하는 삶을 삽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 것이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그 사랑에 바르게 응답하면 효자가 됩니다. 친구의 사랑을 받고 그 사랑에 바르게 응답하면 의리 있고 진실한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이 느끼는 여러 가지 절망감 중에서 사랑에 대한 배신으로 인해 느끼는 절망감이 가장 크다고 합니다. 그것도 이성간의 배신이나 친구간의 배신보다는 부모님의 사랑을 배신하는 것은 더 나쁜 일입니다.
홀로 된 어머니가 아들 하나를 키우면서 정성을 다해서 키웠습니다. 힘든 일을 해가면서 돈을 벌어서 아들을 뒷바라지 하는데, 어머니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는지 아들이 공부를 나름대로 잘하여서 서울로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시골에서 손이 부서져라 일을 해서 학비를 보내줍니다. 아들은 방학이 되면 시골엘 내려옵니다. 그런데 학년이 올라가더니 취직시험 준비한다고 방학이 되어도 내려오질 않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편지도 쓸 줄 모르고 요즘처럼 전화도 안 됩니다. 그저 아들이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어서 어머니가 보따리를 싸가지고 새벽차를 타고 아들을 보러 서울로 왔습니다. 그런데 어디 사는 줄 알아야죠? 그래서 택시 기사에게 아들이 다니는 학교 이름을 대고 학교엘 찾아 왔습니다. 어머니는 사랑하는 아들이 다니는 학교 교문에 서서 하루 종일 아들을 눈이 빠지게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그토록 기다리던 아들이 웬 여학생하고 같이 손을 잡고 나오는 것입니다.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어머니는 아들에게 달려가며 “OO야!” 하고 불렀습니다. 그 때 아들 옆에 있던 여학생이 아들에게 “저 여자 누구야?” 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이 아들이 하는 말이 “어, 저 여자, 우리 집에 전에 있었던 식모아주머니야!” 하더랍니다. 이 말을 듣고 어머니는 그대로 돌아서서 눈물을 흘리며 집으로 내려오고 말았다고 합니다.
부모님의 사랑에 배신하면 안 됩니다. 애인은 헤어지면 또 만날 수 있고, 친구도 헤어지면 또 사귈 수 있지만, 부모님의 마음에 못을 박고 훌쩍 떠나시면 다시 돌이킬 수 없습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부모를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기쁘시게 해 드릴 수가 있습니다.
옛날 부산 동래에 효도를 잘하는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그 어머니가 병이 나서 의원에게 찾아가 의논했더니, 큰 잉어를 구해서 고아 드리면 병이 낫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때는 마침 엄동설한이라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어서 못에 가서도 잉어를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여러 곳의 못을 가보았지만 어떻게나 날씨가 추운지 연못마다 모두 얼어붙어서 도저히 잉어를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낙심하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잉어를 구하러 다니다가 몸은 추워서 얼어붙었고 잉어는 구할 수가 없어서 어떤 논 곁에서 어머니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은데 난데없이 그가 울고 있는 바로 옆에 있는 논에서 큰 잉어 한 마리가 튀어나왔습니다. 얼른 잡아서 어머니께 고아드렸더니 어머니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그곳이 바로 지금 동래온천 자리입니다. 온천수가 논으로 흘러내려 거기에 잉어가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 부모님을 공경하는 효행을 통해 하늘 아버지와 육신의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는 자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자신과 가정을 복되게 하는 행위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성도에게는 약속된 축복이 있습니다. 본문말씀에는 부모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하십니다. 약속 있는 첫 계명인데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약속된 축복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잘 된다는 약속입니다. 두 번째 약속이 바로 장수하리라는 것입니다. 출 20:12에 “네 생명이 길리라”고 하십니다.
잘 되는 역사가 구약 본문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룻기의 내용을 보면 엘리멜렉과 나오미가 결혼하여 아들만 둘 낳았는데 큰 아들은 말룐이었고 둘째 아들은 기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기업인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어서 부득이 그 땅을 떠나지 않으면 굶어 죽게 될 지경에 노이게 되었습니다.
네 식구는 흉년을 피하여 모압 땅으로 이주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 비극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혼자 남은 나오미는 피나는 노력으로 두 아들을 키워 결혼시켜 두 자부를 맞이하였습니다. 10년가량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청천 벽력같은 사건이 또 생겼습니다. 두 아들이 말룐과 기룐이 죽고 말았습니다.
말룐이라는 뜻은 약골이라는 뜻입니다. 태어나서부터 약했던 것 같습니다. 기룐은 낭비라는 뜻입니다. 두 아들마저 잃게 되었습니다. 자식이 아무리 못나도 부모 보다 앞서 죽게 되면 본의 아니게 부모의 가슴을 멍들게 하고 아프게 합니다. 때로 아무리 부모를 실망시켜도 살아있는 것이, 건강하게 잘 사는 그 자체가 효도입니다.
졸지에 이 가정에는 세 과부만 남았습니다. 그 때 나오미는 고향의 풍년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두 자부에게 본문 룻1:8-9에서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와 나를 선대한 것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너희로 각각 남편의 집에서 평안함을 얻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인하여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둘째 자부 오르바는 한참 울다가 시모에게 입을 맞추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룻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본문 룻1:16-17을 보면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하며 끝까지 어머니를 따라 갔습니다.
룻은 시모를 따라가면 아무런 소망이 보이지 않는대도 시모를 끝까지 따라갔습니다. 친정어머니도 아니고 시어머니인대도, 고국을 떠나 타국에까지 따라가서, 더욱이 가정 형편이 빈궁하니 이삭을 주워 지극 정성으로 시어머니를 봉양했습니다.
미국의 노인들은 개를 많이 키운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가족은 다 떠났지만 개는 늘 내 곁에 있고 변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죽으면서 개에게 40만 달러를 상속하였다고 합니다. 능력이 있고 돈이 있으면 부모를 좋아하고, 돈이 없으면 싫어한다면 얼마나 삭막한 세상일까요? 요즘 아이들이 부모의 값을 계산한다고 합니다. 재산을 얼마를 가지고 있는가? 죽으면 얼마나 보상을 받을 수 있는가? 그것을 따지는 무서운 세대라는 말입니다.
이처럼 효성스런 룻은 후에 너무나 큰 복을 받았습니다. 나오미의 중제로 보아스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보아스는 ‘유력자’라는 뜻입니다. 물질이나 명예나 모든 면에서 유력자였습니다. 솔로몬 성전에는 양 쪽에 두 기둥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보아스요, 다른 하나는 야긴입니다(왕상7:21) 보아스라는 이름이 기둥이 된 것을 보면 보아스는 보통 사람이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놀라운 가문으로 재혼하는 복을 받았습니다.
룻은 보아스와 결혼하여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솔로몬을 낳았습니다. 그 후 그 후손에서 많은 왕이 나왔습니다.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모압이라는 이방 여인 룻의 이름이 기록되는 최고의 영예를 안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예수님 안에는 영원한 생명이 있고, 영생이 보장 되어 있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장수한다 해도 잠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 영생을 얻는 자는 영영한 장수가 보장되어 있는 샘입니다. 롯은 부모를 공경하는 효행을 통해 잘되는 복을 받았고, 그야말로 땅에서만이 아닌 영영한 장수하는 복을 받은 것입니다.
갈수록 각박해지고, 삭박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지만 룻처럼 부모를 공경하고 효를 행함으로 잘 되는 복을 받고, 영영한 장수의 복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어버이 주일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부모를 공경하는 효행”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효행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과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위입니다.
◐.자신과 가정을 복되게 하는 행위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