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신앙 마28:1-10, 고전15:12-20
부활 신앙 마28:1-10, 고전15:12-20
1815년 6월 영국 해군과 불란서 해군이 워털루에서 대접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아직 무전 시설이 발명되기 전이었으므로, 범선에서 보내는 신호를 보고 육안으로 식별하여 전세를 판가름할 때였습니다. 영국 국민은 해전을 치르고 있는 웰링턴 장군으로부터 보내오는 전쟁의 결과에 대한 소식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바다에서 싸우고 있는 범선으로부터 신호가 왔습니다.
그러나 그 신호의 내용은 ‘웰링턴이 패배했다’는 비보였습니다. 전 영국 국민은 패배감과 절망감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웰링턴이 패배했다’는 비보를 전하고 난 후, 바다는 자욱한 안개로 뒤덮여 버렸습니다. 이 소식은 즉시 전 영국에 퍼졌습니다. 남편이나 자식을 전쟁터에 내보낸 아내나 부모들은 통곡을 했고, 영국 왕실도 비통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얼마가 지난 후 바다의 안개가 걷혔습니다. 그리고 배로부터 다시 신호가 왔습니다. 그 신호의 내용은 ‘웰링턴이 적을 패배시켰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식은 곧 전 영국에 퍼졌습니다. 전 영국 국민이 길거리로 뛰쳐나왔습니다. 기쁨으로 날뛰는 사람들이 거리를 메우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처형되시고 사흘 동안 무덤 속에 계셨던 그 시간은 ‘예수가 패했다’는 슬픈 소식이 입과 입을 통하여 예루살렘과 갈릴리에 퍼졌던 시간이었습니다. 주님을 대적한 자들에게는 결국 우리가 승리했다는 안도감을 갖게 했지만, 주님께 소망을 두었던 사람들에게는 비통함과 절망감과 두려움에 빠져 있는 암울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활 주일 새벽 빈 무덤을 발견한 제자들과 여인들의 입을 통하여 ‘예수가 죽음을 패배시켰다’는 소식이 전파되면서 새로운 생명이 움트는 새 역사의 아침이 밝아지게 되었습니다. 부활은 ‘예수가 패했다’가 아니라 ‘예수가 죽음의 권세를 이기셨다’는 승리의 소식이었던 것입니다. 부활주일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부활 신앙”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부활 신앙은,
1.성도들의 믿음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확신하게 합니다.
서신서 본문 고전15:12에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 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했습니다. 바울이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전 그는 얼마나 악에 받쳐 부활의 소식을 전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습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바로 믿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거짓 신앙을 가진 자들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 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돌변했습니다. 부활의 증인으로 변화 되었습니다.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눈을 열어 주시지 않는다면 인간의 이성만으로는 부활을 믿기 어렵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죽은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 만에 주님을 통해 다시 살게 되는 기적의 기사가 있습니다. 당시 예수께서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리라 할 때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그렇게 믿고 따랐던 마르다와 마리아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누가 믿겠습니까? 여러분이 주님의 부활이 믿어진다면 성령의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믿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바울이 살던 시대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본 바울로서는 답답하기가 그지없었습니다. 자기는 보았는데, 체험했는데 사람들이 믿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는 ‘만일’이라는 말을 거듭 사용합니다. 여기에는 사실인데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한 바울의 안타까움과 간절함이 담겨 있습니다. ‘의심 하지 말고 제발 믿어라 이것은 진리요 사실이다’ 하는 바울의 간절한 심정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13-15절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믿음도 헛것이며/ 또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 하셨으리라.”했습니다. 이 말씀대로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일이 없고 그리스도가 다시 사신 일이 없었다면 우리 믿는 모든 사람들은 정신병자요, 미친 사람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복음서 본문 마28:5-6에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고 했습니다. 안식 후 첫 날 향품을 준비하여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에게 천사가 한 말입니다. 천사가 강조하는 메시지는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께서 다시 사셨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부활이 있기 위해서는 죽음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합니다. 고난과 죽음이 없는 부활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죽음 이후에 부활 하실 것을 여러 차례 예고 하셨습니다. 마16:21에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하셨습니다. 마20:19에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하셨습니다. 막9:31에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 하셨습니다. 또 요11:25-27에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부활 신앙이 없었던 제자들은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후 낙심하여 다시 옛 직업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우리 모두 ‘내가 믿나이다.’라고 고백한 마르다처럼 되시기 바랍니다. 부활 신앙을 믿는 자들은 우리가 믿는 믿음이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가지는 신앙인이 됩니다.
2.두려움을 몰아내고 기쁨과 평안을 줍니다.
부활을 믿지 못했던 제자들은 주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 두려워하면서 문을 안으로 걸어 잠그고 숨어 지냈습니다. 여인들도 두려움을 가지고 주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죽음은 절망입니다. 죽음 앞에서는 모든 소망이 끊어집니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이 죽음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20세기 초 미국의 유명한 마술사 해리 후디니의 주특기는 어떤 자물쇠와 밧줄로 자신을 결박해도 금방 풀고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감옥에 넣고 바깥에서 군인들이 지키고 있어도 얼마 후면 군인들을 비웃고 빠져나왔습니다. 또 심지어는 관속에 넣고 못을 다 박아놓아도 그 관을 열고 나와서 어디론가 도피를 해버렸습니다. 그는 도피의전문가였습니다. 사람들은 후디니를 가리켜서 뱀장어 같은 유연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칭송했습니다.
그런 그가 1926년 10월에 죽음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임종 직전에 후디니는 그의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만약 죽음에서 빠져나오는 길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나는 빠져나올 것이오. 내가 빠져나오면 반드시 당신을 찾을 것이오. 내가 죽은 지 1주년 되는 날에 당신에게 연락하리다.” 그러나 1주년이 되는 날에 연락하겠다고 이야기한 지 80년이 지난 지금도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그 사이에 그의 아내도 죽었습니다. 죽음에서 빠져 나오는 것은 마술이 아닙니다. 재능으로 빠져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죽음에서 빠져 나오는 것은 부활이요,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유명한 흑인 목사 페리(E. W. Perry) 박사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의 부활의 상관성에 대해 이런 예화를 들었습니다. 한 마리의 큰 뱀이 바다 속을 헤엄치면서 많은 산고기를 집어 삼켰습니다. 그러다가 날카로운 지느러미를 가진 큰 물고기를 집어 삼켰습니다. 이 물고기가 뱀의 뱃속을 들어가 보니 너무 캄캄한지라, 여기서 나가리라 하고는 날카로운 지느러미를 사용해서, 그 뱀의 배를 찢고 빠져나와 버렸습니다. 그 뱀을 죽이고 나오니까 다른 작은 고기들도 모두 뒤를 따라 나와 살게 되었습니다. 이 뱀은 죽음이라는 괴물을 가리킵니다. 이 괴물이 오랫동안 인류를 집어 삼켰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까지 삼켰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덤 문을 여시고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는 그를 따라 무덤에서 일어날 것을 확실하게 믿어야 합니다.
본문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는 무덤을 찾았을 때 ‘주께서 다시 살아 나셨다’는 천사의 말을 듣고 마음에 기쁨이 생겼습니다. 본문 마28:7-8에 “또 빨리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새”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는 큰 기쁨으로 무덤을 떠나 부활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달음박질하고 있습니다. 두 여인이 경험한 큰 기쁨은 부활의 기쁨입니다. 사랑하는 주님을 다시 찾은 기쁨입니다. 극진한 사랑을 베푸신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막달라 마리아는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런데 그 사랑하는 주님이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막달라 마리아는 큰 기쁨을 누렸던 것입니다. 상실한 것을 회복했을 때 누리는 기쁨이 참으로 큰 기쁨입니다. 부활의 큰 기쁨은 바로 상실한 것을 되찾은 회복의 기쁨입니다.
이처럼 부활 신앙은 슬픔을 기쁨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두려움을 평안으로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부활 하신 주님이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다시 찾아오셔서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하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을 소유하게 됩니다. 주님이 주시는 이 기쁨과 평안을 세상이 줄 수도, 빼앗을 수도 없습니다. 부활 신앙을 가진 우리 모두에게 이 기쁨과 평안이 넘치기를 소망합니다.
3.하늘 소망으로 넘치게 합니다.
부활은 오늘 우리에게 천국의 소망을 심어줍니다. 본문 고전15:20-23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라고 했습니다. 또 51-52절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했습니다.
부활은 천국 소망의 확실한 증거입니다. 부활 신앙을 가지고 주님 발자취를 따르는 자들은 예수님처럼 부활하여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천국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가신 믿음의 선배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주님은 불안과 근심 속에 사는 인생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1-3) 우리 주님은 먼저 가셔서 우리가 거할 처소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또한 주님은 다시 오셔서 우리를 하나님 품으로 인도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국민일보에 “주님 음성 듣고 희망을 발견했어요.”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노숙자로 지내며 알코올중독에 빠졌던 김영철 씨(50세, 가명)의 간증입니다. 그는 원래 두 아들과 식당일을 하던 아내도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여 안수집사가 되고, 건축위원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아내가 이단 종파에 빠지면서 가정을 돌보지 않아 마음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것을 믿음과 기도로 극복하지 못하고 절망해서 술을 입에 대기 시작하고 술로 인생을 위로하고 달래다가 그만 하루에 소주 6~7병을 마시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습니다. 결국 아내와 별거를 하게 되었고, 아버지의 주벽을 견디다 못한 두 아들도 가출을 하고 말았습니다. IMF가 닥치고 건설업계의 잇단 부도로 직장도 잃게 되자 그는 하루하루 노숙하면서 거지 행세를 하고 동정을 받아 그 돈으로 소주만 마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실직·노숙자 쉼터에서 성경을 보았습니다. 그곳에서 성경을 보자 자신이 하나님을 떠난 것을 깨닫게 되었고, 다시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으며 마음속에 감동을 받고 새로운 용기와 희망이 생겼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읽은 후에 “예수님, 술에 중독 된 노숙자가 되어 이미 죽은 나를 부활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마음속에 소망이 생겼습니다. 새롭게 인생을 출발하겠다는 결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도움을 청했고, 강남의 한 아파트 경비원으로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하나님, 제가 이제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으니 이제 두 아들과 아내와 함께 같이 살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나에게도 희망이 생겼습니다.” 하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요즘 많은 분들이 우한 폐렴으로 한숨을 내쉬며 살고 있습니다. 희망이 없다고들 합니다. 힘든 것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희망을 상실하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부활 신앙을 가진 성도들이 세상에 영향력을 발휘할 때입니다. 부활의 능력을 선포할 때입니다. 지칠 대로 지쳐버린 인생들, 온갖 죄악의 수렁에서 방황하는 인생들, 온갖 중독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불쌍한 인생들에게 이제우리가 다가가야 합니다. 복음의 능력이 선포되어야 합니다. 부활의 소식이 그들에게 들려져야 합니다. 이 민족의 살길은 오직 부활하신 예수님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살길임을 선포하십시오. 그러기 위해 우리 모두 부활신앙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부활의 기쁨과 평안을 매일 삶 속에서 누려야 합니다. 인류역사상 예수님 부활사건처럼 수많은 사람을 변화시킨 일이 없습니다. 겟세마네 기도와 십자가를 통하여 부활을 발견한 그리스도인은 현실적인 부활 능력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볼 때 예수의 부활능력 안에서 보므로 이 세상이 마지막이 아니며 시간적 여유가 있으므로 결코 초조해하지 않습니다. 부활이란 높은 망대 위에서 세상을 보기 때문에 큰 유혹도 "별것 아니다"며 돌아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 우리의 생명도 그를 따라 부활하게 되는 사실이 믿는 자의 소망이며, 신앙의 뿌리입니다. 우리 모두 이 부활 신앙으로 하늘 소망이 넘치기를 소망합니다. 정리합니다.
부활주일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부활 신앙”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부활 신앙은,
◈.성도들의 믿음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확신하게 합니다.
◈.두려움을 몰아내고 기쁨과 평안을 줍니다.
◈.하늘 소망으로 넘치게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