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과 처음 사랑을 회복하자 삼상10:17-27, 계2:1-7
초심과 처음 사랑을 회복하자 삼상10:17-27, 계2:1-7
초심이란 무슨 일을 시작할 때 처음 품는 마음입니다. 초심이란 처음에 다짐한 마음입니다. 초심이란 첫사랑의 마음입니다. 겸손한 마음입니다. 순수한 마음입니다. 초심이란 배우는 마음입니다. 견습생이 품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초심이란 동심입니다. 초심이란 단순히 ‘그땐 그랬지’하며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행복한 부부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처음 연애할 때 마음으로 권태기를 잘 극복해야 하는 것처럼 좋은 신앙인이 되고, 훌륭한 인물이 되고, 중요한 과업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초심만 잃지 않을 수 있다면 슬럼프가 오거나 어려운 난관이 찾아오더라도 그것을 잘 극복할 수 있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다보면 저절로 좋은 결과도 얻게 됩니다.
성도들이 신앙생활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순수한 초심을 잃고, 처음 사랑을 잃기 쉬운데, 두 본문을 상고하면서 “초심과 처음 사랑을 회복하자”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초심을 잃은 사울 왕은 초심을 회복하지 못하여 심판을 받았습니다.
구약 본문 삼상10:21-22에 “베냐민 지파를 그 가족대로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마드리의 가족이 뽑혔고 그 중에서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으나 그를 찾아도 만나지 못한지라/ 그러므로 그들이 또 여호와께 묻되 그 사람이 여기 왔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그가 행구 사이에 숨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본문의 배경을 보면 사무엘 선지자의 통치 아래에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의 눈을 하나님께 두지 아니하고 이방인들의 생활에 두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스라엘에도 이방과 같은 왕을 세울 것을 사무엘에게 요구하였습니다.
이에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을 비스바로 불러 모아놓고 제비뽑기를 하여 사울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선출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왕으로 선출될 당시 사울의 모습에서 그의 초심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성령의 은혜와 은사를 입은 자였습니다. 삼상10:6에 “네게는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했습니다.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기 전까지 사울은 이스라엘 지파로 부터 주목 받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신이 임하자 평범한 베냐민지파의 한 청년에 불과했던 사울이 새롭게 변화되어 예언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쓰임 받는 왕으로 선택되었습니다. 우리도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게 되면 새 사람이 되고, 은사를 얻게 되어 하나님의 큰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지 않고서는 새 사람의 모습을 갖추고 살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만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며 새로운 사람으로 변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은 그는 겸손하였습니다. 제비를 뽑아 자신이 왕으로 지명 된 것을 안 그는 행구 사이에 숨었습니다. 그를 찾아 백성 앞에 세웠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오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21절) 여기서 우리는 사울의 겸손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모습이 성령의 은혜를 받은 사울의 초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겸손한 사람을 들어 쓰십니다.
겸손은 주님의 영성입니다. 이는 성령의 감동으로 오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혜로 하나님 앞에 자신의 모습을 보면 겸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겸손한 자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쓰실 수 없습니다. 겸손한 자가 순종하는 자가 됩니다.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기에 겸손은 성도들에게 그 어떤 실력이나 재능이나 부요함이나 지식보다 중요한 것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갖추어야 할 자세입니다.
*또한 성령의 은혜를 받은 그는 온유하였습니다.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에 백성들은 그를 기뻐하며 환영하였지만 개중 소수의 사람들은 사울을 멸시하고 조롱하였습니다. 본문 27절에 보면 “어떤 비류는 가로되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하고 멸시하며 예물을 드리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그는 잠잠하였더라."했습니다.사울은 그들에게 분노하지 않고 잠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사울에게 성령의 은혜로 새 마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온유한 사람은 악을 악으로 갚지 아니하며 악한 자에 대하여 오래 참습니다.
이처럼 사울이 성령의 은혜를 받고 초대 왕이 되었을 때 초심은 은혜와 은사를 받고, 온유 겸손한 마음이었으나 그가 계속 성령 충만을 받지 못하고 물욕과 권세욕에 사로잡히면서 초심을 잃게 되었을 때 성령 대신 악신이 임하여 교만하고, 불순종하고, 완악한 마음이 되어 결국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성령 충만을 사모하여 초심을 잃지 않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잃은 것에 대한 책망을 받았습니다.
신약 본문 계2:4-5에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했습니다. 처음 사랑이란 처음 하나님께 대해 가지는 사랑을 말합니다. 처음 은혜를 받고 가졌던 순수한 신앙의 열정을 말합니다. 에베소교회는 바울이 예수의 복음을 전해 줄 때 곧 믿었고 바울의 안수를 받고 성령의 임재로 방언과 예언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던 교회이고, 주의 말씀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므로 회개와 변화의 경험을 많이 한 교회였습니다. (행19:1-7, 19:17-20)
그러한 에베소교회가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은 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니골라 당 같은 이단의 교훈을 받아 미혹되어 서로 의심하고, 정죄하고,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는 물론 공동체의 사랑까지 잃게 되었습니다. 결국 신앙적 순수함과 처음 믿을 때 뜨거웠던 열정을 잃어버렸습니다.
또한 세상을 사랑해서입니다. 당시 에베소는 당시 정치, 경제, 문화, 문명, 무역에 있어서 중심이 될 만한 항구도시였습니다. '고대 세계의 허영의 도시'라고 불릴 만큼 자유롭고 방탕한 도시였습니다. 에베소 교인들은 그런 도시에서 살면서 세속 문화와 문명을 자연스레 사랑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성도가 세상을 사랑하면 처음 사랑을 잃게 됩니다. 로마의 황제가 그리스도인이 자꾸 늘어나는 것에 위협을 느끼고 신하들을 불러 그리스도인들을 없앨 방법을 논의했습니다. 황제가 먼저 “로마의 법을 강화시켜 그리스도인들을 무조건 죽이는 법을 만들자”고 제의했습니다. 그랬더니 한 신하가 황제의 의견에 반대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믿는 자들을 죽여 순교자로 만들면 그리스도인들이 더욱 순교자들을 추앙하기 때문에 역효과가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신하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찾아내어 죽이지 말고 잔인하게 고문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대안을 내놓았습니다.
그러자 다른 신하가 “예수쟁이들은 고문을 받기만 하면 십자가 고난에 동참한다고 좋아합니다. 또 고난을 받으면 받을수록 하늘의 상급이 더 많아진다고 기뻐하며 오히려 고문의 흔적을 자랑하고 다닙니다. 그 방법으로는 그리스도인들을 없앨 수 없습니다.”라며 반대했습니다.
그때 구석에 있던 한 신하가 조용히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편안하게 즐기고 놀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놓으면 간단합니다. 그들은 그런 환경 속에서 죄를 지을 것이고 그러면 기독교는 있어도 아무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을 없애는 가장 무서운 요인은 외부의 박해가 아니라 내부의 타락과 부패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대상이 생기면 사랑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 대상이 물질이 될 수 있고 명예, 권세, 세상 쾌락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하나님과의 사랑을 멀어지게 하는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에 대한 처음 사랑이 식어지고 점점 둔해지기 시작합니다. 나태하게 되고 결국 하나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이처럼 성도들이 이단의 영향을 받거나 다른 것을 주님보다 더 사랑하게 될 때, 그리고 신앙의 연륜이 오래될수록 처음의 감격과 감동이 사라지고 마음이 점점 냉랭해져서 예배도, 기도도, 찬송도, 말씀도, 봉사도 타성에 젖어 버리고 맙니다. 형식적인 신앙만 남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신앙생활은 주님에 대한 사랑이 동기가 되어야 하는데, 신앙생활을 자기만족을 위해서나 습관적으로 하게 되면 기쁨보다 짜증이 나게 되고, 사랑이 없는 예배는 지루할 뿐이요, 사랑이 없는 봉사는 지겨울 뿐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원망과 피곤과 짜증과 불평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모든 행위의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이 책망 받은 에베소 교회처럼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는 말씀에 해당되는 모습은 아닌지 돌아보고 처음 사랑을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3.초심과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것이 사는 길이요, 복을 받는 길입니다.
5절에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처음 사랑을 잊어버린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사건인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유력한 교회요, 모범적인 교회요, 그 능력이 대단한 교회입니다. 그런데 이 에베소 교회에 치명적인 결점이 있습니다. '처음 사랑'을 잊어 버렸습니다. '처음 사랑'을 잊어버린 것이 뭐 대단한 것이냐? 만약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못하면 '촛대'를 옮겨 버리겠다고 했습니다.
'에베소 교회'에서 '촛대'를 옮겨 버리면 더 이상 에베소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아닙니다. 하나의 종교집단입니다. 교회 건물도 그대로 있습니다. 교인들도 그대로 있습니다. 목사도 그대로 설교하고 있습니다. 장로들도 그대로 있습니다. 교인들도 열심히 기도하고 순교자적인 정신으로 로마의 황제를 숭배하지 아니하고 잘 믿음을 지켜 나아가는데 그 교회는 껍질 교회요 죽은 교회입니다. 그러니 처음 사랑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디서 무엇 때문에 처음 사랑을 잃게 되었는지 *생각하고, *회개하고,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신앙이 떨어지기 시작한 기점에 있었던 사건을 생각해 보면 그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알 수 있습니다. 그 원인을 생각해 보면 자기 속의 근본적인 문제가 보입니다. 그 원인이 욕심일 수도, 허영일 수도,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일 수도, 미워하는 마음일 수도, 의심하는 마음일 수도, 자존심일 수도, 분노일 수도, 교만일 수도, 고집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붙들고 회개하여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프리셉트 성경연구원 창설자 케이 아더(Kay Arthur)의 간증입니다. 그녀에게는 결혼의 아픈 상처가 있었습니다. 남편의 폭력에 견디다 못하다 별거생활에 들어갔습니다. 시간이 흘러 남편은 합치기를 원했고, 요청을 들어 주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협박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전의 고통으로 돌아가지 않을까하는 두려운 마음에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자살을 하였고, 그녀는 남편의 죽음으로 인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그것을 잊고자 방탕한 길로 들어섭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영혼의 고통은 깊어만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상처를 싸매주시는 하나님을 만나 치유되고 회복되었습니다. 그녀는 고백합니다. “남편의 자살로 인한 상처, 남편과의 별거로 인하여 두 아들에게 준 상처, 그리고 그 후 계속 정결치 못한 삶으로 인해 아이들에게 준 더 큰 상처, 그 수많은 죄와 상처는 하나님을 만남으로 모두 치유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상처를 싸매주시고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녀는 그 후 말씀 사역자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와 회복되도록 돕는 사역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녀 역시 모든 상처, 아픔, 문제들을 하나님께 돌아감으로 해결하고 회복을 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초심과 처음 사랑의 회복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만일 회복하지 못하면 사울 왕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고, 유명무실한 형식적인 종교인으로 전락하게 되어 살아 있지만 영적 실상은 죽은 자가 되고 맙니다. 우리 모두 초심과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복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
두 본문을 상고하면서 “초심과 처음 사랑을 회복하자”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초심을 잃은 사울 왕은 초심을 회복하지 못하여 심판을 받았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잃은 것에 대한 책망을 받았습니다.
◎.초심과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것이 사는 길이요, 복을 받는 길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