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신명기

끝이 아름다운 사람 (신34:1-12)

nam씨 2019. 12. 27. 17:47



191229송년주일 낮                                     

 

<1)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 산에 올라가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2)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과 3)네겝과 종려나무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보이시고 4)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5)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6)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7)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8)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모세를 위하여 애곡하는 기간이 끝나도록 모세를 위하여 삼십 일을 애곡하니라 9)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 10)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11)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12)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이더라>아멘

 

 

  오늘은 한 해의 마지막인 주일 송년주일입니다. 자기 나이가 자기 인생을 달리는 속도라고 하던데요...연말이 되면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세월이 정말 빠릅니다. 2019년이란 숫자를 낯설어하면서 한 해를 시작하던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올해도 52주가 다 흘러 오늘 마지막 52번째 주일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친숙해진 2019년이란 연도를 사용할 날도 오늘이 지나면 이틀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세월이 빨리 흘러가다 보면 한 해가 끝나듯이 우리 인생도 언젠가는 끝나는 날이 오겠지 하는 생각에 저절로 마음의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의 이생에서의 마지막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명기는 모세가 기록한 모세오경 중의 한권입니다. 그렇다면 모세가 어떻게 자기가 죽는 장면을 기록할 수 있을까요? 의문이 들지요? 33장까지는 모세가 직접 기록하고, 34장 마지막장은 모세의 임종사건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나 다른 사람이 기록하여 덧붙였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본문을 읽어보면 떠나가는 모세의 끝은 정말로 아름답습니다. 서정적입니다. 마치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지는 해처럼, 혹은 장엄한 교향악의 피날레처럼 아름다운 대미를 장식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의 나이 120, 출애굽 이후 40년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을 바로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지막 고별 설교를 마친 후 느보산() 최정상인 비스가봉에 올라가 있습니다. 거기서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바라본 후 임종합니다. 40년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며 광야 40년간 온갖 고생을 다했는데,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목전에 두고 불러 가시니 인간적으로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했을텐데... 하나님이 오라 하시니까 미련 없이 이 생의 모든 삶을 정리합니다. 지도자의 자리도 내려놓고, 여호수아에게 이양해주고, 백성들을 모아 놓고 고별설교를 하며 지나온 이야기부터 가나안에 들어가면 하나님 잘 섬기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자손대대로 복을 누리며 살수 있다는 당부까지 하고, 조용히 혼자서 가나안 땅이 잘 보이는 느보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가나안 평지를 바라보고 임종합니다. 모압 땅 어느 골짜기에서 임종했으나 아무도 모세의 무덤을 아는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모세는 참으로 끝이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끝을 정말로 멋지게 마무리한 사람이었습니다.

 

  인간은 머물렀던 자리가 아름다워야 합니다. 함께 지내다가 떠난 후에 들려오는 소리가 아름다운 말들이 들려야 합니다. 목회하다보니 그러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임종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만남 후 헤어질 때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헤어져야 합니다. 우리 속담에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듯이 우리는 살아 있으면 언젠가 또 어디에서 만나게 될지 모릅니다. 그래서 헤어질 때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염두 해 두고 헤어짐도 아름답게 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을 보내면서 모세를 통해서 어떻게 하면 끝이 아름다운 인생이 되도록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일출은 장엄하지만, 저녁노을은 아름답습니다. 여러분들의 끝이 저녁노을과 같기를 축원합니다. 어땋게 해야 끝이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1. 끝까지 신앙의 아름다운 모습을 잃치 말아야 합니다.

  모세는 마지막 순간까지 신앙의 아름다운 모습을 잃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 이 세상을 떠나는 임종의 순간은 하나님을 뵙는 날입니다. 바울은 뭐라고 말합니까? 고전13:12 <12)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우리가 이 땅에 살 동안 믿음생활하면서 하나님을 거울로 보는 것 같과 같이 희미하게 보나 임종 후 하나님 앞에 설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보는 것과 같이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마지막 신앙의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서는 것입니다. 지난 과거에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 순간의 모습,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신앙의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마지막 모습이 아름다워야 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아름다운 믿음의 모습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과거에 아름다웠던 모습, 과거에 잘 믿었고, 충성스러웠던 모습이 아니라 마지막 하나님이 부르실 때의 모습으로 뵙는 것입니다. 그러니 끝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언제 부르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의 끝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항상 나의 끝이 언제이든지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도록 믿음생활 해야 합니다. 항상 아름다운 모습을 잃치 말아야 합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기름도 준비하지 않고 살다가는 정작 주님이 부르실 때, 미련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가까이 뵙는 그 순간을 위해 준비해야 됩니다. 마치 시집 갈 날을 잡아 놓은 신부처럼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아름답게 가꾸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하면 즉시 천국 갈 수 있지만, 시간을 두고 성화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마치 안경알을 닦듯이 우리의 영혼을 맑고 투명하게 갈고 닦으며 수련을 해야 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부르실 때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는 것이 우리 성도들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모세는 임종시에 나이가 120세이면서 그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도 쇠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건강한 모습인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육신의 모습도 건강한데 이 건강보다 더 아름다운 보습이 그의 인격과 영혼의 모습입니다.

 

  10절에 보면,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의 영혼이 얼마나 투명하고 맑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모세는 깊은 기도 생활을 통해 그의 영혼은 하나님을 깊이 만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민12:3절에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라고 했습니다. 민수기를 모세가 썼지만 이것은 모세 자신의 자화자찬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인정하는 온유한 인격의 소유자였습니다. 모세의 성격은 본래는 다혈질이었습니다. 그는 40세 때 이스라엘 사람을 괴롭히는 애굽 사람을 때려죽이기도 했습니다. 이를 보면 그는 성격이 급하고 과격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계속 낮아지고 낮아져서 겸손하고 온유한 인격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들도 세월이 흐를수록 주님의 거룩한 형상을 닮아가야 합니다. 바울은 고후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라고 했습니다. 매일 매일, 한 해 한 해 지나면서 우리 영혼의 모습이 더욱 더 주님의 형상으로 성화되고 아름답게 가꿔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모세처럼 신앙의 아름다움을 끝까지 잃치 않기를 축원합니다.

 

  어떤 주인이 섣달 그믐날에 머슴들에게 상을 주려고 짚단을 주며 새끼를 꼬라고 했습니다. 게으른 머슴은 한 해의 마지막 날까지 일을 시킨다고 투덜대면서 새끼를 굵게 꼬면 빨리 끝낼 수 있어서 그냥 대충대충 빨리 꼬아서 일을 끝냈습니다.

  그러나 충성된 머슴은 새끼를 어디에 많이 쓰시려고 하는가 싶어서 정성껏 가늘고 길게 잘 꼬았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한 자루에다가 엽전을 담아서 내 놓으며 하는 말이 너희들이 우리 집에 와서 수년 동안 수고했으니, 어제 꼰 새끼에다 이 엽전을 끼어서 가져가라라고 했습니다.

  가늘고 길게 새끼를 꼰 충성된 머슴은 한 짐씩 걸머지고 가서 집도 사고 논도 사서 부자가 되었는데, 대충대충 굵게 새끼를 꼰 게으른 머슴은 돈이 들어가지 않아 별로 못가져 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끝까지 충성하는 모습, 끝가지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 변치 않기를 축원합니다.

 

 

2. 인생은 나그네임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모세에게 있어서는 상당한 아쉬움이 있어 보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고생고생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가나안 땅 목전까지 왔는데 들어가지 못하니까 그런 생각을 할 만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전혀 섭섭해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이유는 그는 인생이 나그네임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본문5절 읽겠습니다.

<5)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이 말은 모세가 하나님이 미리 예언하신 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었다는 뜻도 되지만,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죽었다는 뜻도 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변명하지 않았고 반항하거나 발버둥치지 않고 순종함으로 이 세상을 떠났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이 맡겨주신 만큼 충성하다가 하나님님께서 부르시면 주님 만날 즐거움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떠나야 할 인생의 나그네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잠시 맡겨 주신 일을 감당하다가 이 세상을 떠나는 청지기입니다.

 

  이 세상에서 다 누리려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모세가 40년간 고생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끌고 가나안 입구까지 왔는데... 조금이라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살아보고 죽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를 가나안만 바라보게 하고 데려 가십니다. 모세 또한 자기가 그 고생한 것들 내세우며 아쉬워하거나 하나님께 가나안의 축복을 누리게 해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세상은 나그네 길입니다. 여기서 다 누릴 것처럼 살면 안 됩니다. 모세처럼, 언제든지 하나님이 부르시면 훌훌 털고 가야합니다.

  모세는 무덤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모세처럼 훌륭한 사람이 무덤을 남겼다면, 이스라엘백성들이 그 무덤을 우상처럼 꾸며놓고 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무덤을 아무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모세는 죽음 이후 자기의 무덤조차도 나그네처럼 살다 갔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본문 10절을 읽겠습니다.

<10)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 끝까지 잘 감당하고, 끝까지 신앙의 아름다운 모습을 잃치 않고 살다가 나그네처럼 무덤도 남기지 않고 갔지만, 하나님은 모세에게 큰 영광과 상을 주셨습니다. 이 구절은 모세의 생애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예수님도 마17장에서 변화산에서 변화된 모습으로 율법의 대표와 선지자의 대표로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국에서 모세가 얼마나 영광과 상이 컸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세상은 나그네임을 알고 천국에서 빛나는 상급을 생각하며 끝이 아름다운 삶이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마지막은 감사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님의 크신 은혜라고 고백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끝날 때는 항상 감사로 끝이 나야 합니다.

 

  136편을 학자들은 할렐루야 대 찬양이라고 부릅니다. 바벨론 포로후기 이스라엘 순례객들이 예루살렘의 수룹바벨의 성전에 모여서 예배할 때 부르던 찬양시 입니다. 이 찬양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역사속에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우리가 한해를 마무리함에서나 인생의 끝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 감사 찬양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나와 함께 하였던 모든 이들에게도 감사해야 합니다. 인생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들이 있었기에 내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러니 우리는 한해의 마지막 송년주일에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 가족들에게 감사, 부모에게 감사, 교우들에게 감사, 자녀들에게 감사.... 마지막은 감사뿐이어야 합니다. 내 입술에서 그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은혜로 이 세상 살다 가니 감사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끝의 모습이 되어야합니다. 금년을 감사함으로 마무리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더 큰 감사거리를 내년에 선물로 주실 것을 믿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니라”(136:1)

 

  오늘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송년주일입니다. 이 귀한 시간 하나님 앞에서 함께 예배드리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올 한해도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우리의 능력보다 더 훨씬 많은 것을 부어 주셨고,

우리의 노력보다 더 훨씬 많은 것으로 채워 주셨습니다.

우리의 인내보다 성령의 역사로 더 참아나며 견디게 해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모든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언더우드 선교사가 기도 낙서 장에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라는 고백을 남겼습니다.

걸을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설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들을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볼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살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놀랍게도 누군가가 간절히 기다리는 기적이 내게는 날마다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니 1. 감사 2. 또 감사 3. 한 번 더 감사 4. 언제나 감사 5. 무조건 감사 6. 넘치는 감사 7. 평생 감사해야 합니다.

 

  송년주일을 보내면서 2019년에 살아온 모든 것에 감사하면서, 다가올 2020년을 기대하며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할 것을 믿고 믿음으로 달려가는 한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끝까지 신앙의 아름다움을 잃치 마시고, 인생은 나그네임을 알고, 마지막은 항상 감사만 하셔서 <끝이 아름다운 사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