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2) 눅2:25-39, 롬13:11-13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2) 눅2:25-39, 롬13:11-13
철학자 키엘케고올은 종말을 이렇게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초만원 극장 밖에서 불이 났습니다. ‘불이야!’ 소리를 지르면 많은 사람이 넘어져 발에 밟혀 죽게 될 아비규환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한 배우가 공연을 멈추고 사람들 앞에 나서서 차분하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 지금 밖에서 불이 났습니다. 여러분이 한꺼번에 뛰어나가면 모두 죽습니다. 출입구는 뒤와 좌우에 하나씩 있습니다. 출입구 가까이에 있는 분부터 차례로 나가시면 좋겠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관객은 그의 말이 연극의 일부인 줄 알고 박수를 치며 웃고 떠드는 것이었습니다. 실제 상황이라고 아무리 소리를 쳐도 믿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연기가 스며들어 오고 불길이 순식간에 극장 안을 뒤덮었습니다. 이미 때는 늦고 말았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겨 깨어 있는 신앙으로 무장하지 아니하면 이와 같이 될 수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롯의 사위들은 심판의 메시지를 농담으로 여기다가 망했습니다. 종말의 징조가 가까 왔다는 말을 농담으로 흘려보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대림절 두 번째 주일을 맞아 지난주에 이어 두 본문을 중심으로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1.늘 깨어 의롭고 경건한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복음서 본문 눅 2:25에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나라는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을 때이므로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못하고 경제적으로도 혼란기였습니다. 도덕과 윤리도 땅에 떨어졌습니다. 이와 같은 시대에 의롭고 경건하였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거룩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의인을 통하여 역사 하십니다. 노아의 시대에 인간의 죄악이 관영하고 패역할 때에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하시고 그의 일가족을 살리셔서 그들을 통하여 인류를 번성케 하신 것입니다. 또 창세기 18장에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려고 하실 때에도 그 성에 의인 열 명이 없어서 결국 유황불로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안나 선지자에 대해 본문 37절에 “과부 된지 팔십 사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했습니다. 안나 선지자는 *성전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은혜를 사모하며 살았습니다. *주야로 금식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안나는 자신과의 싸움, 외로움과의 싸움, 유혹과의 싸움, 가난과의 싸움, 인간현실과의 싸움, 그리고 악한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하여 그녀는 금식을 하면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았습니다. *기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녀는 물질로는 봉사할 수가 없었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기도로 봉사하며 살았습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메시야를 기다리면서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이들은 메시야를 기다렸지만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는데 그녀는 예수님을 만났고 그 예수님에 대해서 예언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음으로써 인생에 실패한 유명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영국의 화학자로서 안전등을 발명한 ‘데이비’(Davy, Sir Humphry 1778-1829)인데, 너무나도 연구에만 열중하던 나머지, 자기의 결혼식일자를 그만 잊은 것입니다. 신부가 화났을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는 그날도 변함없이 연구실에서 실험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사람이 찾아와 "저, 무엇 잊은 것 없으세요?"하고 물었습니다. "아뇨, 아무것도......" "결혼식은 어떻게 되었어요?" 이 말에 그는 비로소 화들짝 정신이 들어 "앗! 이 일을 어떻게 해!"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부될 사람은 "결혼식을 잊어먹는 사람이면 필요 없다"고 거절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일생을 독신으로 보내게 되었다는 것인데, 이것은 너무나도 실험에 몰두 하다가 생긴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신령한 일에 있어서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신랑 되신 예수께서 공중에서 우리를 맞아 혼인을 베푸시려고, 우리에게 준비하고 있으라 하셨지만, 우리는 세상일에 빠져 있다가 주님의 재림 시 실패하기 쉬운 것입니다. 정신이 든 때는, 문은 이미 닫혔고 주께서 알지 못한다고 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언제나 의롭고 경건한 신앙으로 무장하여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늘 깨어 의롭고 경건한 신앙으로 무장하여 살면서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성도로 살아야 합니다.
복음서 본문 눅2:25-27 에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성령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9)
여기 성령이 시므온 위에 계시더라는 말씀은 일상적인 임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임재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시므온은 성령의 특별한 임재 속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26절을 보면 성령의 지시를 받습니다. 그 지시는 ‘그가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지금도 성령께서는 믿는 자들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시므온은 성령의 감동으로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 모습을 보고 아기 예수를 메시야로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감동으로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다’(30절)고 말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수님에 대해 본문 31절 이하에서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라고 하였고,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라고 증거를 했습니다.
늘 성전을 가까이 하면서 금식하며 기도했던 안나 역시 성령의 감화를 받아 예수님을 알아보고 사람들에게 아이에 대해 증거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도는 성전과 가까워야 합니다. 성전과 멀어지면 자연히 하나님과도 멀어집니다. 한두 번 빠지게 되면 교회와 멀어지고, 교회와 멀어지면 교회에 대하여 관심이 없어지고, 교회에 대하여 관심이 없어지면 믿음이 식어지게 되고, 믿음이 식어지면 은혜가 떠나 불평과 원망이 생깁니다. 불평과 원망이 생기게 되면 반드시 사탄이 틈을 타게 됩니다. 그러면 시험이 빠지게 됩니다. 예수님까지도 시험한 사단은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으며 시험하여 믿음에서 떠나게 하려고 때로 위협하면서, 때로 달콤한 것으로 미혹하려고 힘씁니다. 쇠누스 왕의 딸 애틀랜타는 아름다운 아카디안 소녀였으므로 구혼자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워낙 빨리 달리므로 구혼하러 오는 사람마다 자기와 달리기 시합을 하자고 했습니다. 그녀는 투창을 들고 달리고 구혼하러 온 사람은 빈손으로 달리는데, 남자가 지면 그 창으로 찔러 죽이는 생사를 건 시합이었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이기는 사람에게는 결혼을 승낙 하는 조건이었습니다.
히포메네스라는 청년이 구혼을 하러 와서 달리게 되었는데 그는 황금 사과 세 개를 준비해 들고 달렸습니다. 히포메네스가 사력을 다하여 달리다가 애틀랜타가 가까이 오면 반짝이는 황금 사과를 하나씩 떨어뜨리곤 하였습니다. 그녀는 황금 사과가 발밑으로 떨어질 때마다 허리를 굽혀 그것을 줍다가 그만 히포메네스에게 지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인생 여정에서 신앙의 경주를 할 때 우리를 정복하려는 유혹자는 우리를 유혹하는 황금 사과를 던질 때가 있습니다. 권력과 지위와 돈과 명예와 쾌락의 황금 사과가 던져질 때 무엇으로 그 유혹을 뿌리칠 것인가? 안나처럼 성전을 가까이 하며 기도에 힘쓰면서 땅을 보지 말고 하늘을 보며, 세상 것을 보지 말고 십자가만 바라보며, 세상의 소망이 아닌 하늘 소망을 바라보며 경건한 믿음으로 살 때 이 모든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시므온과 안나처럼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성도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살아야 합니다.
서신서 본문 롬13:12-14에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천 여 년 전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한 자들은 늘 깨어 있는 신앙으로 무장 하여 천국을 대망하는 성도로 살아가야 마땅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 '도모한다.'는 말은 '미리'와 '생각함'의 합성어입니다. 이것은 곧 정욕적인 삶을 추구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이것만을 생각하는 것을 뜻합니다. 성경은 육신의 일 자체를 금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정욕을 추구하기 위해 몸을 내던지는 것은 금하고 있습니다. 술 취함과 방탕함, 음란과 호색을 버릴 것을 말합니다. 음란은 무법한 성행위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호색은 성에 대한 불결한 언어와 행위 즉 음란한 표정, 음란한 말, 음란한 서적, 음란한 노래, 음란한 몸짓 등을 좋아 함을 말합니다.
물론 성욕 자체는 죄악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결혼 생활은 우리에게 마땅히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문화는 성적 충동을 부추기면서 그것이 곧 문학이요, 예술이라고 하면서 성적 광란의 행위를 미화시키고, 인권이라 미명으로 동성애를 합법화 하려고 합니다. 예수님도 재림의 날의 현상을 노아의 때와 롯의 때와 같다고 하였습니다(눅17:26-30).
12절에 빛의 갑옷을 입자고 했습니다. 여기 '빛의 갑옷을 입는 것'은 14절의 말씀처럼 주 참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빛의 갑옷이라는 말을 쓸 때 그 당시 로마 군인들이 적과 싸우기 위해 완전 무장한 모습을 회상하며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성도들이 어떤 틈도 사단에게 주지 않는 영적 무장을 취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1절은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입는다.'는 것은 신비적인 결합 즉 일체가 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상태요, 그리스도와 같이 행동하고, 그리스도와 같은 목적을 가지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있어 하나가 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또한 그리스도로 더불어 옷 입는다는 말은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참여한 것을 의미합니다(롬6:1-10).
고대신학자 어거스틴(Aurelius Augustinus 354~430)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기독교 2천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학자 중 한 분입니다. 방탕한 사람이었지만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어린 기도로 변화된 것으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가 결정적으로 변화된 회심의 간증이 있습니다. 386년 밀라노의 정원 벤치에 친구와 함께 앉아 있는데, 어린아이들의 떠들며 노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소리를 통해 성령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책을 펴서 읽어라! 책을 펴서 읽어라!” 성경책을 펼쳐 보니 롬13:13~14 말씀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이었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가 32세였습니다. 그 후 그는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였고 위대한 신앙의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영적 각성이 그의 삶을 완전히 바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있는 만큼 우리 인생이 바뀝니다. 영적으로 깨어나야 합니다. 다시 11절을 보면, 바울이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습니다. 11절.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 ” 벌써 됐다는 말은 종말이 코앞에 닥쳐왔음을 느끼라는 겁니다.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성도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대림절 두 번째 주일을 맞아 지난주에 이어 두 본문을 중심으로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늘 깨어 의롭고 경건한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성도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살아야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