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16:1-19/ 내게 주신 모든 은혜
시116:1-19/ 내게 주신 모든 은혜 펌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시116:12)
아마 여러분 가운데도 이와 같이 느껴본 때가 있을 줄 생각합니다. 시편 116편을 누가 썼는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아서 그 분은 큰 환난과 슬픔을 당한 분이었습니다. 아마 큰 질병 가운데서 많은 고생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어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건강이 회복되고 나서 환난이 없어졌습니다. 그는 너무 감사해서『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이렇게 감탄했습니다. 그는 이런 경험을 통해서 병중에서 나은 것을 감사할뿐더러 다른 모든 은혜도 겸하여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해서 여기『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이 모든 은혜를 생각할 때 그의 가슴은 너무 벅차서 이렇게 탄식을 한 것입니다. 오늘 감사주일 아침에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다 벗은 몸으로 이 세상에 와서 지금까지 먹고 입고 살아오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육신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하루에 죽을죄를 세 번씩 짓는다고 하는 말이 있거니와 오늘까지 우리가 이렇게 살아오는 것이 하나님의 죄 사함의 은총이 함께 하는 까닭입니다. 우선 각각 내게 주신 은혜 가운데 특수한 은혜를 생각하여 보십시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어떤 이에게는 금 닷 냥을 주고, 다른 이에게는 두 냥을 주고, 또 다른 이 에게는 한 냥을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개인적으로 생각해 볼 때에도 그렇습니다.
어떤 면에는 두 냥을 받고, 어떤 방면에는 한 냥을 받았지만 사람마다 어떤 분야에는 닷 냥을 받은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특별히 지식 방면에, 또 어떤 이는 물질 방면에, 기술 방면에 특별히 닷 냥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닷 냥의 재능이 있습니다. 문학, 이학, 음악, 혹은 수학에 닷 냥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건강에 닷 냥의 은혜를 받아서 일생을 살 때에 별로 감기 한 번 걸리지 않고 사는 이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잘 가르치는 은혜, 잘 권면(勸勉)하는 은혜, 지혜의 은혜, 장사를 잘 하는 은혜, 공장을 잘 경영하는 은혜, 건축을 잘 하는 은혜, 각각 받은바 특기가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로부터 내가 받은 이 특수한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감사합시다. 그리고는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각 방면으로 잠깐 생각해 보십시다.
다윗은 그 감사의 시103:2절 이하에 이와 같이 노래했습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恩澤)을 잊지 말지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矜恤)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이렇게 자기 영혼을 스스로 깨우쳐 노래했습니다. 여기 특별히「모든」이라는 말에 주의하여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 모든 은혜를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지어 온 모든 죄악의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모든 질병에서 고침을 받았고 이 천재지변이 많고 전쟁의 공포가 있는 세상에서 지금까지 생이 유지되는 것도 모든 파멸에서 구원을 얻은 까닭입니다. 모든 유혹에서 구원을 받은 까닭으로 우리가 지금까지 신앙생활도 계속합니다. 사실 인자와 긍휼의 관을 우리에게 씌워 주셨습니다.
모든 은혜를 우리가 기억하십시다. 그리고 시야를 넓혀 자연계를 통하여 주시는 은혜도 생각하여 보십시다. 시편104편을 읽으면 특별히 대자연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해와 달과 뭇 별들을 비롯해서 산천초목, 오곡백과, 산해(山海)어류, 맑은 공기, 시원한 물, 말하자면 사람의 육체가 이 땅에서 살 수 있는 모든 기초적인 은혜를 생각해 보세요. 사람이 땅에서 먹고, 입고, 잘 수 있게 만드셨습니다. 이 모든 은혜가 자연계를 통해서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영적 방면으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리스도를 통하여 은혜를 베푸셨는가 잠깐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친히 보혈을 흘리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代贖)하여 주셨습니다. 자기의 생명을 끊어서 우리의 생명을 이어 주셨습니다.
영원한 생명과 소망을 주셨습니다. 하늘의 기업을 우리를 위하여 간직하여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통하여 보내 주셨습니다. 성령의 위로와 화평(和平)과 지혜와 능력의 축복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귀한 생명의 말씀, 성경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생명의 양식이 도고 진리의 푯대가 되는 이 귀한 말씀으로 우리를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워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교회에 나와서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드리며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교통하는 거룩한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통해서 복음을 만방에 전파하시고 교육사업, 모든 문화사업으로 이 민족과 국가를 축복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또 다른 방면으로 자녀는 가지신 분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주시는 특별한 은혜를 잠깐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를 기르시고 입히시고 먹이시는 부모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모든 은혜, 또는 가정을 통하여 주시는 은혜, 남편 된 사람은 아내를 통하여 주시는 은혜, 아내 된 사람은 남편을 통하여 주시는 모든 은혜도 잊지 마십시다.
부모 된 사람들은 자녀를 통하여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기억하십시다. 학생들은 학교를 통하여 주시는 모든 은혜, 선생님들을 통하여 내게 주시는 은혜를 기억하십시다. 친구를 통하여 어려울 때에 내게 주는 모든 은혜를 기억하십시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까닭에 사회를 통하여 내게 주신 그 은혜도 기억해야 합니다. 국가를 통하여 주신 모든 은혜를 기억하십시다.
과거 우리의 조상님과 선배들을 통하여 내게 주신 모든 은혜, 친척을 통하여 이웃을 통하여 내게 주시는 모든 은혜, 현대 문화를 통하여 주시는 모든 은혜, 자유우방 국가를 통하여 내게 주시는 모든 은혜를 기억하십시다.
또는 시간적으로 금년에 내게 주신 모든 은혜도 돌이켜 생각해 보십시다 조금 더 뒤로 물러가서 내가 세상에 나서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회상해 부시기를 바랍니다.
노인들은 특별히 어릴 적에 주신 은혜, 젊은 시절에 주신 은혜, 장년, 중년기에 주신 은혜, 이렇게 연로할 때까지 주신 모든 은혜를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하늘의 별을 우리가 혹 세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 은혜는 우리가 세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시편139:17-18절을 보면『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 지요. 내가 세려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 소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는 그 수가 모래보다 많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생각하려고 하는 것은 내게 주신 은혜가 이렇게 많은데 우리가 어찌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못합니까?
아마도 그 이유 한 가지는 그 은혜가 너무 많고, 크고 넓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얼른 듣기에는 모순되는 말 같기도 하지만 아마도 사실인 것 같아요. 우리 인간생활에 있어서 그 귀한 햇볕의 감사함을 우리가 얼마나 느낍니까? 공기도 마찬가지일줄 압니다.
흙이, 물이, 얼마나 귀합니까? 그래도 우리가 이것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별로 기도 드리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너무 많아서, 너무 흔하니까 그런 것입니다. 우리 사람은 눈이 어두워서 몰론 보지 못하지만 너무 밝은 것도 못 본다고 합니다.「엑스」광선 같은 것은 너무 밝아서 못 봅니다. 우리의 귀는 적은 소리도 못 듣지만 너무 큰 소리도 못 듣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 지구 돌아가는 소리를 못 듣는다고 합니다.
요순시대에 정치를 얼마나 잘하였던지 그 때의 백성들이 국태민안(國泰民安)해서 어려움 없이 농사를 짓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격양가를 부르는데 그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여러분 아십니까?
『내가 밭 갈아 밥을 먹고 내가 우물을 파서 물을 마시는데 임금의 은혜가 내게 무슨 상관인고?』
정치를 너무 잘하니까 그 은혜를 오히려 잃어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부잣집 아들들이 부모의 은혜를 더 모른다는 말이 있어요. 이를테면 우리가 다 부잣집 아들딸입니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은혜를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부잣집 아들이라고 할지라도 효자노릇을 좀 하려고 한다면 부모의 은혜를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이 감사의 날에 우리 아버지의 크신 은혜의 만 분의 일이라도 깨달을 수 있는 날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 한 가지는 하나님의 은혜가 이렇게 크지만, 우리가 그날그날 당하는 환난, 슬픔 가운데서 큰 은혜를 잊어버릴 때가 있어요. 어떤 때는 낙심도 하고 불평도 하고 심지어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십시다. 인간생활에 이따금 밤을 지나갈 수밖에 없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캄캄한 밤하늘에도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듯이 우리 믿는 사람들은 아무리 큰 슬픔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영원한 소망의 별을 보여주지 않습니까?
아무리 환난의 검은 구름 아래라도 하나님의 은총의 아름다운 무지개는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모든 일이 합력(合力)하여 선을 이룬다』는 이 약속이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하나님은 전능하시므로 모든 것을 통치하셔서 우리의 불행과 환난까지도 다 축복해 주시는 전화위복의 하나님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그날그날 당하는 어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가 여름철 장마를 지난 때에는 그저 매일 비가 와서 일년내내 장마만 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일년 통계를 보면 그렇지 않아요. 비오는 날 며칠 없고, 해 나는 날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모든 성도들은 환난 중에도 감사하였습니다. 검은 구름 아래서도 그 위에는 햇빛이 있는 것을 기억하였습니다.
그 환난이 변해서 무지개가 될 수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자기가 사자 굴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왕의 조서에 어인(御印)이 찍혔다는 말을 듣고 여전히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한 문을 열어 놓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바울과 실라 도 감옥에서 많은 매를 맞은 그 날 밤에도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바울이 나이 많아서 로마 감옥에 갇혀 언제 참형을 당할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여러 교인들에게 편지를 할 때에도,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니라.』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이 시편을 읽을 때에 느껴지는 것이 자기가 큰 시련을 당하면서도 그 가운데서 은혜를 받은 다음에 그 은혜를 감사하고 이 은혜를 어떻게 보답할까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환난을 당하기 전에 이런 은혜를 깨달았다고 하면 얼마나 더 고맙겠습니까?
이런 얘기가 있어요. 전에 미국에 어떤 부자 목사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도 아들도 각각 교회 일을 맡아봅니다.
어느 주일 날 아침 아버지는 차를 타고 자기 교회로 가고, 아들은 자기 차를 타고 자기 교회로 갔습니다. 날이 다 저물 때에 아버지가 먼저 돌아오고 조금 후에 아들이 돌아오더니 아버지의 손을 잡고 하는 말이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제가 은혜를 참 많이 받았습니다. 예배를 보고 올 때 어떤 운전수가 차를 몰고 앞으로 달려오기에 그것을 피하려다가 차가 뒤집어졌지만 저는 그저 핸들만 꼭 잡고 있었더니, 별로 다치지 않았고 차도 상 한데가 없이 이렇게 돌아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그 말을 듣고『정말 감사하다』고 하면서 잠시 생각하더니『너만 감사한 것이 아니라 나도 감사하다. 나는 아무런 사고 없이 예배를 보고 돌아왔으니 이거 얼마나 감사하냐!』고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큰 환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으면 몰론 감사한 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환난 없이 평범한 가운데서 받은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 가도 깨닫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어떤 분이 감사일 전날 꿈을 꾸었는데 꿈이 천당에 가보았다고 합니다. 얼마나 화려하고 아름다운지 사방으로 돌아다니며 구경을 합니다. 그런데 한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서서 서로 싸우듯이 큰 소리로 변론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천당에도 싸움하는 사람이 있는가 싶어 곁에 가서 그 얘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두 노인들이 서로 은혜를 더 많이 받았다고 변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 노인이 말하기를,
『나는 어려서부터 성질이 나빠서 부모에게도 순종치 않고 학교에도 잘 가지 않아서 나중에는 깡패가 되고 도둑놈이 되어서 나쁜 짓을 하고 살인 강도죄를 짓고는 교도소에서 종신징역을 받게 되어서 소망이 없었는데
그 교도소에 어떤 분이 들어와서 성경을 전해주어서 그것을 읽는 가운데 예수 님께서 이 세상에 있는 우리 죄인을 구원하려 오셨다는 것을 알고 주님께서 나도 구원하려 오셨다는 깨닫고 회개해서 예수 님을 믿고 천당에 오게 되었다고 하면서 하는 말이 내가 세상에서 갖은 죄를 지었는데 이렇게 죄 사함을 받고 천당에 오게 되었으니 나보다 큰 은혜 받은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이요.』라고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듣고 있던 다른 노인이 말하기를
『그것도 큰 은혜이긴 하지만 내 얘기를 좀 들어보십시오, 나는 어릴 적부터 잘 믿는 가정에 태어나서 유아 세례를 받고 주일학교에도 빠지지 않았고, 열대여섯 살 났을 때 입교문답을 하고, 주일학교도 가르쳤고, 성가대도 하고 그러다가 집사 책임을 밭았습니다.
그렇게 일하다 보니 또 장로 투표에서 장로로 피택(被擇) 되었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작은 죄도 지었지만 남처럼 큰 죄는 짓지 않았고, 교회에 봉사하고, 선교사업을 하고, 봉사사업도 하고, 교육사업도 하면서 일생을 평안히 믿고 편안히 살다가 이 천당까지 왔으니 나보다 더 큰 은혜가 뉘게 있단 말이요?』하고 변론한단 말입니다.
여러분도 어느 분이 더 큰 은혜를 받았는지 스스로 판단해 보십시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 것은 이 두 분이 다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이들은 환난 가운데서 은혜를 받는 것만 큰 은혜인 줄 생각합니다. 혹은 많은 죄를 짓고 회개함으로써 은혜를 받는 줄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어렸을 적부터 평범한 가운데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다고 하는 것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무엇으로 보답할꼬!』
앞으로의 생활은 은혜를 보답하는 생활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기 시편을 기록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 앞에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의 예물을 드리고, 봉사의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해야 되겠습니다.
이 은혜를 깨달은 이후에 우리의 생활은 무엇을 하든지 은혜에 대한 보답의 생활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무엇으로 보답할꼬!』 기도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