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집 (잠 24:3-4)
믿음의 집 (잠 24:3-4)
3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로 말미암아 견고하게 되며 4 또 방들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각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채우게 되느니라
이 시간에 “믿음의 집”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믿음은 어떤 집일까요? 벧후 1장에 보면 베드로는 7층짜리의 멋진 믿음의 집을 말씀합니다. 벧후1:5-7에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믿음 위에 지어진 신의 성품의 집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닮고 예수님을 닮은 위대하고 멋진 믿음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믿음의 아름다운 집은 어떻게 지어지는 것일까요?
1.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집니다.
3절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여기 집은 일반 건축물을 의미하지 않고 잘 세워나가야 할 모든 것들을 말합니다. 가령 각 사람이 이루고 있는 가정, 각인의 인생, 혹은 교회 정권 국가 등 사람이 경영하고 있는 어떤 단체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삼하3:1에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 했는데 이 말씀은 다윗의 가정을 넘어 그의 정권까지 말한 것입니다.
한문으로 수신재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 있죠? 자기를 다스릴 줄 알아야 가정도 나라도 천하도 다스릴 수 있다는 의미인데 이것도 넓은 의미에서 집을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어야 할 집은 신령한 집입니다. 우리 믿음의 집입니다. 우리 믿음의 집을 어떻게 지어야 합니까?
본문에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된다고 했습니다. 여기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가지려면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롬10:17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러므로 읽고 또 읽고 보고 또 보고 듣고 또 들으면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믿음을 주십니다. 그리고 무럭무럭 자랍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의 믿음을 위해 3년 반이나 말씀과 이적으로 수없이 증거하자 어느 날 제자들이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마16:16)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벧전2:1-3에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했습니다.
어떤 부인은 글을 읽을 수 없어서 하루 품삯을 주며 성경을 읽어 줄 사람을 고용했는데 읽어 주던 그 사람이 은혜를 받고 예수님을 믿어서 그 부인보다 더 신실한 믿음을 갖는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다윗의 위대한 믿음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했기 때문입니다.
2. 진리를 알고 행하므로 견고하게 지어집니다.
“명철로 말미암아 견고하게 되며” 우리가 말씀으로 믿음의 집을 짓되 더 견고히 짓기 위해서는 진리를 더 확실히 알아 바른 진리에 서야 하고 알고 설 뿐 아니라 행해야 합니다.
먼저 주님과 자기와의 관계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심판 날에 주여 주여 한다고 다 통과되는 건 아닙니다. 진정 주여라 불렀다면 주님을 나의 주인으로 삼는 그 관계가 분명해야 하고 예수님이 주인이시므로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래 위에 지은 집이나 같습니다.
그래서 마7:21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하셨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 했는데 왜 주의 이름이 통하지 않을까요? 말로만 주의 이름이었지 주의 뜻대로 하지 않는, 내가 주인이지 예수님이 주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심부름꾼이 되어야지 예수님만 이용해 먹는다면 주님과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22-23절).
그러시면서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24-27절). 우리가 말씀을 행하는데 그냥 행하는 것과 주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행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냥 행하는 것은 자기 의로움이나 율법적일 수 있지만 순종하는 마음으로 행하는 것에는 신앙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잘 알되 예수를 마음에서 확실히 만나야 미혹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예수를 못 만나서 미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예수를 알고 그 사랑을 체험한 사람은 잠시 미혹되었더라도 뭔가 아니다 뭔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돌아옵니다. 예수 터전이 아니라면 크게 불탈 날이 옵니다.
그것을 바울은 고전3:11-15에서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여기 불이 무엇입니까? 멀리는 지옥불이지만 가깝게는 시험입니다. 예수 말고 가짜 예수 가짜 성령 가짜 하나님으로 시험을 이겨나갈 수 있겠느냐 말입니다. 가짜 예수로 지옥의 권세를 이길 수 있겠습니까? 가짜 구원론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천주교와 직제와 교리를 일치시키려는 예수 말고도 구원의 길이 있다는 다원주의 구원론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배울 때 잘 배워야 합니다.
교리는 진짜일지라도 믿음생활에 문제가 있어도 역시 시험에 넘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테스트 시험은 우리 믿음을 점검하는 일종의 은사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진리에 있어서도 바르고 그 진리를 순종함에도 바르시기 바랍니다.
전12:11에 “지혜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가 주신 바이니라” 쉽게 풀이하면 부흥사도 하나님이 내셨고 목회자도 하나님이 내셨다는 말씀입니다.
지금은 부흥회인지 목회하는 건지 구분이 안 되고 부흥회도 목회처럼 하는 것이 신실한 것인 양 자랑하는데 자랑할 것 없습니다. 이건 부흥사 같은 부흥사가 없다는 말과 같기 때문입니다. 신실한 부흥사도 있어야 하고 신실한 목회자도 있어야 하고 신실한 학자도 있어야 합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성도들을 견고한 믿음의 반석 위에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3. 주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보배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4절 “또 방들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각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채우게 되느니라” 집만 잘 지으면 되나요? 방에 좋은 물건이 많아야지요. 방에 각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들로 채워야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에는 보물이 많았습니다. 성전도 금으로 지었으니 성전부터 시작하여 성전이 모든 물건이 다 보물입니다. 그리고 지성소 법궤 위에도 값진 금은보석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좌우 3층의 제사장 방에도 금나팔 은나팔 온갖 보물들이 가득했습니다.
우리 마음의 성전에도 보배로 가득해야 합니다. 그 보물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보물이십니다. 욥22:24-28에 “네 보화를 티끌로 여기고 오빌의 금을 계곡의 돌로 여기라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화가 되시며 네게 고귀한 은이 되시리니”,
사33:6에도“네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여호와를 경외함이 네 보배니라”, 학개도 말했습니다. 학2:7에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여기 모든 나라의 보배는 성전에 임재하실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럼 각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채우게 하는 지식은 무엇일까요? 잠1:7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그러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입니다. 이 지식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여호와를 경외하고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으로 행위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늘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면 우리 마음에 보물이 가득 찹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충만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 채우시기 바랍니다. 그 마음이 보물이요, 그 보물 같은 마음을 가질 때 진짜 보물이신 하나님이 임하십니다.
그런데 호4:6에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경외함을 잊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잊으니 하나님께서도 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을 보배 삼으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보배 삼으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호세아는 외쳤습니다. 호6:3에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하나님을 경외할 때 보배로운 성령을 부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믿음의 집을 아름답게 지으십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기초로 삼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건축하고 진리를 앎으로 더욱 견고하게 건축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함으로 그 안에 가득히 채우십시다. 그래서 우리 모두 보배 되신 하나님이 기뻐 거하시며 영광 받으시고 우리들을 보배와 같이 여겨주시는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