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이사야

지렁이 같을지라도 사 41:장14-16

nam씨 2019. 9. 28. 14:27


지렁이 같을지라도 사 41:14-16, 4:10-13

 

미국에서 청년 하나가 돈을 벌기 위해 보험회사에 취직을 했는데, 계약고를 올리는 만큼, 자기 능력 따라 돌아오는 몫이 있기에 큰 꿈을 안고 보험회사에 들어갔는데, 경제 불황이 닥치면서 어렵게 되자 결국은 회사에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이 청년은 음악에 큰 자질이 있었습니다. 당장 할 일이 없어서 술집에 나가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서 인기를 얻게 되고, 돈을 많이 받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 청년이 본래 믿음 생활을 하던 청년이었는데, 술집에 나가서 노래를 하다 보니, 손님 자리에 가서 술을 마시기도 하고, 여자 손님들과 어울리다 보니 생활이 아주 난잡해졌습니다. 돈은 벌었지만 마음에 갈등이 자꾸 생기게 되었고, 그런 때마다 그 생각을 잊기 위해 또 술을 마시고, 이런 타락한 생활이 계속되던 어느 날 술이 약간 취해서 들어왔는데, 실컷 소리를 지르고 노래라도 부르면 속이 풀릴 것 같아서 피아노 앞에 앉아서 보니, 그 앞에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는데, 거기에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이 세상 명예와 바꿀 수 없네. 이 세상 행복과 바꿀 수 없네. 유혹과 핍박이 몰려 와도 주 섬기는 내 맘 변치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밖에는 없네.” 어머니가 아들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쓴 시였습니다. “네가 돈 좀 번다고 해서 그렇게 살아도 되느냐? 돈 때문에 믿음 저버리고 그래도 좋으냐?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돈 번다고 해서 그것이 성공이고, 승리한 것이냐?”

 

어머니가 아들의 타락을 지켜보며 안타까운 심정으로 적어 놓은 글을 보는 순간, 아들의 가슴이 뜨거워져서, 무릎을 꿇고 엎드려 통회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가사에 곡을 붙였는데, 그 노래가 찬송가 102장입니다. 그 후 그는 술집에 나가던 일을 그만 두었는데, 처음에는 생활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기독교 계통의 많은 집회에서 초청을 받습니다. 주신 재능으로 하나님을 높이는 생활을 했더니 영적 축복은 물론이요, 수입은 오히려 갑절이나 많아졌습니다. 돈 버는 일 때문에, 세상의 명예나, 연락을 사랑하는 것 때문에 믿음의 열정이 식어지고, 믿음을 저 버리게 된다면 주님께서 얼마나 안타까워하시겠습니까?

 

성도가 주님 안에 거하면 지렁이처럼 보잘 것 없는 자라도 주님 안에서 존귀한 자가 되고, 주님의 사랑을 받으며, 주님의 영광스런 도구로 쓰임을 받게 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지렁이 같을지라도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주님 앞에서 지렁이 같은 나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구약 본문 사41:14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자신이 얼마나 무력하고, 연약한 존재인가, 어리석고, 무지한 존재인가, 또 얼마나 죄와 허물이 만은 존재인가를 깨닫고 느끼는 때가 많이 있습니다.

 

아마 어린 시절 풍뎅이를 가지고 놀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풍뎅이를 잡아서 눕혀 놓으면 여섯 개의 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아무리 애를 써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자기를 바로 세우지 못합니다. 그래서 날기는커녕 기어가지도 못하고 그냥 놔두면 그대로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길수도, 날수도 있습니다. 우리도 때로는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풍뎅이처럼 스스로 몸을 추수 릴 수가 없기도 하고, 또 마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릴수록 더 깊이 빠져 들어가는 것처럼 되는 경우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또 자기백성을 '지렁이 같다'라고 하셨습니다. 지렁이는 빈모강에 속하는 환형동물로서 진땅이나 물속에서 사는데 약하고 천하며, 무방비상태여서 공격만 당하고, 멸시받고 짓밟히며, 자기 몸을 길게 늘이고 있다가도 약간의 자극만 받아도 오그라드는 뼈가 없는 무골벌레입니다. 지렁이란 표현 당시에 무력하고 무가치하며,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말들이었습니다.

 

자신이 지렁이처럼 보잘 것 없음을 아는 성도는 교만할 수가 없고, 나 스스로 모든 것을 해쳐 나갈 수 있다고 자만하지도 않습니다. 주님이 아니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님을 고백하며 겸손히 주님을 의지 하는 자가 됩니다. 그 모습이 심령이 가난한 자의 모습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 있는 모습입니다.

 

신약 본문을 기록한 사도 바울은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혈기 등등하고, 교만하기 짝이 없는 자였습니다. 가정 배경이나, 학문 배경이나, 그의 박식한 지식이나, 종교적 열심 등 모든 면에서 전도유망한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주님을 만난 이후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 되었습니다. 주님 안에서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바로 보게 된 것입니다. 나는 만삭되지 못하여 난 모자란 자요,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했습니다. 그가 주와 복음을 위해 많은 박해와 모진 고난을 당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하고, 여러 교회를 세우는 수고를 했지만 그것을 자랑하지 않고,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며 자기를 자랑하지 않고 겸손히 주님만 높이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잘남을 자랑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서슴지 않고 드러내며 자랑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지렁이처럼 보잘 것 없고,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죄인 중 괴수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평생 예수 잘 믿고, 안 넘어지면 좋고, 늘 충만하고 형통하면 좋지요. 그런데 사람은 원치 아니하는 길을 걸어가고,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기도 하고, 실수도하고, 범죄하고, 넘어지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늘 기뻐하고 감사하지 못하고 때로는 불평불만에 빠지기도 하는 것이 우리 연약한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사람은 누구나가 약점이 있습니다. 결심하지만 결심대로 살지 못하고, 서원 하지만 서원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이런 연약함을 바로 알고 주님의 사랑과 은혜, 성령님의 도우심 없이는 믿음의 승리자가 될 수 없음을 알고 오직 주님 바라보고, 의지하며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믿음의 눈으로 전능하신 주님의 능력을 보아야 합니다.

 

구약 본문 14절에서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고 했습니다.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섭리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 하시고, 심은 대로 상 주시고, 심판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내가 아무리 지렁이처럼 연약하고, 무지하고, 비천할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도우시면 세상에 문제될 것도, 염려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습니다.

 

전능하신 주님의 능력을 믿는 자는 어떤 상황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욥은 불 시험을 당하는 상황 가운데서도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23:10)말하며 그의 믿음대로 시험을 이기고 승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제대로 깨닫고 난 뒤에 고백하기를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3:17-18)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는 일마다 안 풀리고, 있어야 될 것이 없고, 가진 것 다 잃어버렸는데, 하나님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겠다는 것입니다. 이해가 안 되는 말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던 것을 보고 나니 생각이 달라지고, 말이 달라지고, 가는 길이 달라지고, 생활의 자세가 달라지더라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6장에 보면 엘리사가 있는 사마리아 성이 아람 군사들에게 포위되어 굶주려 죽게 될 심각한 상황 가운데서 엘리사의 사환은 두려워하면서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물을 때 엘리사는 태연자약하게 이렇게 말하고 그의 눈이 열리도록 기도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왕하6:16-17)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엘리사에게는 사마리아 성을 에워싼 아람 군사들은 전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신약 본문을 기록한 사도 바울은 복음 전하다 억울하게 매 맞고, 옥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도 기쁨이 충만하여 감옥 밖에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기뻐하라고 거듭 말하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주님의 능력을 믿고 알았기 때문에 본문 빌4:12-13에서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산다."고 말을 하면서도 실제로 생활 속에서 주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능력을 믿고 내 마음속에 확신되어지면 눈빛이 달라집니다. 걸음걸이가 달라집니다. 인생의 자세가 달라집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움을 믿고 사모하는 성도가 됩시다. 하나님이 붙잡아주시면 약해도 걱정할 것이 없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자에게 필요하면 지혜도 주시고, 능력도 주시고, 때를 따라 보호해주실 줄로 믿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전능하신 주님 안에 거하여 주님을 나의 힘으로 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나의 삶의 중심축을 우리자신에게서 하나님에게로 옮겨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렁이 같이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나에게서 소망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고 의지하는 주님께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과 믿음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다를까요? 평소에 여건이 좋을 때는 잘 모릅니다. 어려움이 오고, 큰 환난이 닥칠 때 믿음이 있는 사람은 주님 의지하고 고통 중에라도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은 낙심하고 한탄하게 됩니다. 믿음 있는 사람은 주님의 도우심으로 고난 중에도 찬송하게 되고, 주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하게 되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한숨을 쉬고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구약 본문에 하나님께서는 지렁이 같은 이스라엘을 이가 날카로운 타작기계로 삼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로 만들고 작은 산들을 겨 같게 만들어 그것들을 바람으로 흩어버리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산들'이란 이스라엘의 대적을 말하며, 그 대적들을 지렁이 같은 약한 이스라엘을 통하여 여지없이 파괴해 버리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어려움을 만날 때 나 자신의 연약함을 보고 낙심하지 맙시다. 우리는 비록 지렁이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할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면 더 이상 지렁이가 아닙니다. 정복당하던 삶을 정복자로 바꾸어 주십니다. 어려운 시절의 눈물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전능하신 주님이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고 말씀하시는데, 무어가 두려울 것이 있으며, 염려할 것이 있겠습니까?

 

신약 본문에 나오는 사도 바울은 주님을 만난 이후 바울이 당한 거의 모든 일이 '잘된 일"로 판단할 수 있는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도 그는 걸핏하면 욕을 먹었습니다. 자주 체포당하고, 매로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은 어느 것 하나 '은혜'라고 느끼기에는 불가능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런 푸대접이 없고, 그런 고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보통 사람들과는 전혀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믿음으로 생각했을 때, 다시 말해 사람의 기준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을 받아들여 새롭게 생각하기를 시작했을 때 상황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분명히 로마에서 황제의 권세 아래 연금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믿음 안에 거하여 사는 그의 생각에는 감옥 안에 있는 것이 아니었고, 로마 황제의 권세 아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는 '주 안에' 있었습니다(10,13) 그러기에 그가 맞은 상황은 한 시도 편한 날이 없고, 죽음이 시시각각 뒤쫓아 오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바울은 여유가 만만하고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믿음의 생각이 그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감옥 속에 있기 전에 그를 사랑하시고 영생의 축복을 반드시 주실 '주님 안에' 있다는 확신이 가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만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의 생각은 한결 같았습니다.

 

다니엘이 모함하는 자들로 인해 사자 굴에 들어갈 줄 알면서도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창문을 열고 기도했던 일이나 그의 세 친구가 풀무 불 속에 들어갈 줄 알면서도 금 신상 앞에 절하지 않은 것은 모함 하는 자들이나 위세 당당한 바벨론 왕의 권세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왕보다 더 높은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바 되어있다는 그들의 믿음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가진 요셉은 형제들의 시기로 노예로 팔려가고, 팔려간 집 여주인의 모함으로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런 그를 지혜롭게 하셔서 꿈을 해몽하게 하시고, 애급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이 무서워서 그들의 눈을 피해서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던 겁쟁이 기드온은 하나님을 만난 후에 담대한 용사가 되어서 고작 300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바다가의 모래와 같이 많은 미디안 사람들을 물리치는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기드온은 지렁이처럼 연약한 존재였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면서 이가 날카로운 타작기계처럼 변했던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선교사 리빙스턴은 옥스퍼드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게 되었습니다. 학위 수여식이 있기 전에 리빙스턴은 학교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말하였습니다. 그는 더위와 싸워야 하였고 밤마다는 추위와 싸워야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온갖 짐승들과 싸워야 하였습니다. 사실 그의 오른 팔은 사자의 공격으로 불구가 되어 있었습니다. 연설을 마치자 한 학생이 손을 들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으로 하여금 아프리카 생활을 이겨내도록 한 비결이 있었다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리빙스턴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습니다. "그 비결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라는 말씀이 나를 굳세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친히 주님이 나를 굳세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나로 하여금 부족함이 없게 하여 주셨습니다." 험한 세상을 살아간다 하더라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좌절하지 말고 힘과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당당하게 살아가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지렁이 같을지라도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주님 앞에서 지렁이 같은 나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눈으로 전능하신 주님의 능력을 보아야 합니다.

 

..전능하신 주님 안에 거하여 주님을 나의 힘으로 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