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경주 /히12장1-13
신앙의 경주 /히12장1-13/ 한경직 목사
이미 읽은 말씀 가운데서 히브리서 12장 1절과 2절을 다시 봉독합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여기에 신앙생활을 경주에 비하여 가르칩니다. 주의하여 들으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은 한 산책이 아닙니다. 산보가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경주입니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달음질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주일에 교회에 나오는 것도 산보 가는 기분으로 오는 분이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날도 좋고 맑으니 예배당에나 한번 가 보자.” 혹은 “오늘은 날이 흐리고 비가 오니 그만두자.”
여러분, 성경은 신앙생활에 대하여 그렇게 가르치지 아니합니다. 신앙생활은 경주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편지할 때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너희가 달음질을 전에는 잘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치 않게 하더냐” 여기에서 ‘달음질’이란 말은 신앙의 경주를 의미합니다.
또한 빌립보서 3장 12절 이하에는 자기 자신의 신앙생활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여기에서 ‘좇아간다’는 말은 ‘달음질한다’는 뜻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오래지 않아서 세상을 떠날 기약이 가까워지는 것을 예감하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달려갈 길을 마치고” 하는 말은 신앙의 경주를 마친다는 말입니다. 오늘 신앙의 경주에 대해서 잠깐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하나하나에게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하였습니다. 우리가 먼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 앞에서 경주를 합니다.
이들은 보통 구경꾼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11장을 여러분 자세히 읽어 보세요. 역대의 신앙의 용사들을 의미합니다. 이 히브리서가 기록된 지 근 2,00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는 이 증인들의 수가 얼마나 더 많아졌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수많은 과거 기독교 신앙의 용사들이 오늘 우리들의 신앙의 경주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왜? 신앙의 경주는 문자 그대로 릴레이 경주입니다. 그들은 이미 달음질을 마치고 지금은 말하자면 그 배턴을 우리에게 넘겨준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경주가 천국의 최후 승리에 큰 관계를 가진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경주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이들도 천사들은 아니었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인간들이었습니다. 약한 점들도 있는 것입니다. 허물과 죄가 없던 것이 아닙니다. 우리처럼 약할 때도, 두려워할 때도, 혹은 쓰러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신앙의 경주를 잘하여 최후 승리를 얻은 분들입니다. 또한 이들도 평안한 시대에만 산 것도 아닙니다. 태평성대에만 산 것도 아닙니다. 이들도 역시 역경, 환난, 고통, 슬픔, 유혹, 핍박, 그 가운데는 순교의 피를 흘린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이 모든 것들을 이기며 신앙의 경주를 마친 것입니다.
이들을 증인이라고 하였는데 이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증거합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은 미쁘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약속을 지키신다고 간증합니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때에도 우리와 같이 하시고 우리에게 힘을 주신다고 간증합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고, 쓰러지지 말고, 용감히 달음질을 계속하라고 우리들에게 격려합니다. 그리하면 최후 승리는 반드시 오리라고 증거합니다. 때로는 눈물을 흘릴 때도 있지만, 이런 눈물도 최후에는 우리의 받을 의의 면류관에 달릴 빛나는 금강석이 된다고 우리에게 격려합니다.
이러한 증인들 앞에서 경주하는 우리는 실로 경주를 잘하여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경주를 잘할 수 있는 비결이 어디에 있는가? 오늘 읽은 본문을 계속해 읽어 보면 거기에 자세히 가르쳐 줍니다. 세 가지 비결을 우리에게 말씀하여 줍니다.
첫째는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라. 둘째는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라. 셋째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라. 이제 간단 간단히 하나씩 생각하십시다.
경주를 잘하려면 벗어버릴 것은 벗어버려야 합니다.
경주자는 몸을 가볍게 하여야 합니다. 여기에 먼저 “무거운 것을 벗어버리라”고 하였습니다. 몸에 무거운 것을 지니고 경주하는 이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 뜻은 죄는 꼭 아니지만 신앙의 경주에 방해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가령 우리 인간에게는 때때로 오락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오락도 도에 지나치게 되면 경주에 방해되는 수가 있습니다. 가령 낚시질을 하는 것이나 등산을 하는 것이나 골프 같은 그런 오락은 매우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오락에 대해서도 우리가 그만 도에 지나쳐서 주일을 당하여도 교회에 나오지 아니하고 낚시터에만 가게 되고, 교회에 나오지 아니하고 늘 산에만 가게 되고, 골프장에만 늘 가게 되면, 정녕 신앙의 경주에는 방해가 됩니다.
또 오늘 한국 교회에서 종종 거론되는 주초(酒草) 문제 같은 것도 역시 그러합니다. 술이나 담배 자체를 죄라고 가르치지는 아니합니다. 그러나 술은 많은 죄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담배 자체도 그러합니다. 많은 의학자들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전이 되는 우리 육체에 해를 주는 것만도 확실합니다. 더욱이 한국과 같은 상황 속에서, 애써서 산에 나무를 기르려고 하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등산객들의 담뱃불로 말미암아 한 주일에 24곳에 산불이 난다고 하니 이렇게 되고 보면, 실로 이런 문제도 가볍게 생각할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범사에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될 책임이 있는 것을 기억할 때에 경솔히 이런 것들을 다룰 문제는 아닙니다. 죄는 꼭 아니지만 신앙의 경주에 방해되는 오락, 방해되는 습관, 방해되는 음악, 방해되는 문학, 방해되는 장소, 심지어 방해되는 우정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우리 신앙의 경주는 방해하는 곳에서 떠날 줄을 알아야 합니다.
또 여기에 보면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법을 범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죄는 믿는 사람들의 신앙의 경주를 방해합니다. 아니 얽맵니다. 작은 죄도 죄인 줄 알면 꼭 벗어버려야 합니다. 두 발을 줄로 매어놓고 붙잡아 매고 경주할 수는 도저히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죄는 작으나 크나 우리로 하여금 신앙의 경주를 못하게 합니다. 쓰러지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죄는 크나 작으나 반드시 회개하고 곧 벗어버리고 달음질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중심으로 회개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미쁘고 의로우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깨끗한 심령을 만들어 주십니다.
그리고 둘째는,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라”고 권면합니다.
신앙의 경주장에는 장애물이 많습니다. 사실 신앙의 경주는 장애물 경주입니다. 이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전진하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신앙의 경주장에는 때로는 재난, 사고, 핍박, 유혹, 온갖 악마의 궤계가 있습니다. 이것들을 극복하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욥의 인내가 필요합니다. 주님의 인내가 필요합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모욕과 고난까지도 참고 견디셨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인내로써 너희 영혼을 보존하리라. 그러므로 인내로써 우리의 당한 경주를 경주하라고 권합니다. 인내, 참고 견딜 줄 알아야 신앙의 경주를 마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경주는 계속적인 전진을 물론 의미합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자리에 서서 발만 움직이는 답보는 그 경주가 아닙니다. 기계 위에 앉아서 운동하는 사람처럼 다리만 놀리는 것은 그건 경주가 아닙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어제보다 오늘, 작년보다 금년은 좀더 주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전진해야 합니다. 향상해야 합니다. 장성해야 합니다.
또 여러분, 이러한 경주는 거저 되는 거 아닙니다. 노력을 의미합니다. 힘쓰지 않고 달릴 수 없습니다. 힘을 써야 합니다. 천국은 힘쓰는 자가 얻으리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기도도 노력이 필요합니다. 성경공부도 노력이 필요합니다. 성일을 옳게 지키는 것도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물며 전도, 교육, 봉사, 사회 참여, 온갖 주를 위해서 일하려고 할 때에 노력이 없이 아무것도 이룰 수는 없습니다.
경주는 노력을 의미합니다. 어떤 아이들은 자기 손으로는 밥을 먹지 않고 꼭 어머니더러 밥을 먹여 달라고 해서 그저 먹여 주는 밥만 받아먹는 아이들이 더러 있지요? 여러분, 혹 생각해 보셨는지요? 혼자서는 성경을 별로 보지 않고, 그저 주일날 와서 가르치는 성경 말씀이나 듣는 이들은 그저 제 손으로 밥 안 떠먹고 그저 먹여 주는, 그저 밥술만 받아먹는 것과 비슷합니다. 큰 백화점 같은 데 가보면, 에스컬레이터라고 하는 움직이는 사다리가 있지요? 그래서 다리 아프면 계단으로 올라갈 것 없이, 거기에 서기만 하면 저절로 2층에 올라갑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를 그저 천국에 가는 에스컬레이터로 혹 생각하는 이가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교회에 등록만 한 번 해 놓으면 저절로 천국에 갈 거다.’ 혹 이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꼭 그런 거 아닙니다. 노력을 의미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위에 미칩니다. 그러나 내가 할 책임이 있습니다. 내가 걸어야 합니다. 내가 힘을 써야 합니다. 내가 뛰어야 합니다. 내가 달음질을 해야 합니다. 내 자신이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권면합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최후 승리의 비결이기도 합니다. 목표를 분명히 바라보고 그 목표를 향하여 달음질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방향을 잃고 뛰어서는 아니됩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바라보고 잘못 뛰면 아니됩니다. 소위 사이비 종파, 혹은 사교, 이런 것들을 보고 맹목적으로 따라가다가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은 한국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미국에도 많고 세계 도처에 많습니다.
여러분 아마 기억할 겁니다. 몇 달 전에 미국에 어떤 그런 종파를 따라가다가 마지막에 900여 명이 한꺼번에 집단 자살을 했다고. 무서운 세상이올시다. 여러분, 이 세상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목표로 그만 바라보면서 그를 향하여 달음질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인격,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성품, 그리고 그분의 삶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의 인내를 바라보십시다. 십자가의 부끄러움과 고통도 참고 견디셨습니다. 그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바라보십시다. 모든 죄인과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과 눌린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고, 꺼지는 등불도 끄지 아니하시는 그의 성품을 바라보십시다. 그리고 그의 삶이 얼마나 거룩하고 진실하고 성결한지 좀 바라보십시다.
그리고 예수님의 용서의 정신도 항상 바라보십시다. 그는 원수의 죄도 사하여 주셨습니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이들의 죄도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용기도 바라보십시다. 주님께서는 앞에 십자가가 있는 것을 아시면서도 앞장서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셨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진리를 그대로 담대히 선포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의 얼굴을 항상 바라보면서 그를 향하여 우리도 경주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어느 때 주님의 모습을 바라보지 아니하리오마는 이러한 사순절에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라” 우리가 그리스도를 앙망할 때에 새 힘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약할 때에도 주님을 앙망해야 합니다. 슬플 때에도 주님을 앙망해야 합니다. 역경에 처하였을 때에도 주님을 앙망해야 됩니다. 쓰러져서도 주님을 앙망해야 합니다. 그러면 새 힘을 얻습니다.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다시 경주를 계속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신앙생활은 경주입니다. 우리 모두 신앙의 달음박질 마당에서 달리는 사람들입니다. 나의 신앙의 경주가 어떠한가? 이 사순절을 당해서 특별히 각자 나의 신앙의 경주를 점검하는 이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지금 어떻게 경주를 하고 있는가? 무거운 것을 끌며 경주를 하지는 않는가? 얽매이는 죄에 매여서 경주를 하노라고 하는 것은 아닌가? 나아가는 것은 없이 답보만 하는 것은 아닌가? 목표를 잃고 방황하지는 않는가? 경주장에서 아주 쓰러지지는 아니하는가?
여러분, 우리는 허다한 증인들 앞에서 경주합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너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라고 격려합니다. 예수를 바라보면서 주를 향하여 달음질하라고 격려합니다. 각각 사정이 다를 겁니다. 경주를 잘하는 이들이 대부분인 줄 압니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한 분이라도 내 마음에 꼭 벗어버릴 것이 있으면 이 시간 벗어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피곤해서 쓰러진 분 있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를 앙망하세요. 새 힘이 여러분에게 미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경주를 하는 이에게 약속된 의의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하나가 이 승리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는 큰 은혜가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십시다.
아버지시여, 이 사순절을 당해서 주님의 얼굴을 앙망합니다. 신앙의 경주장에서 달리는 저희들이 피곤할 때도 있습니다. 약하여질 때도 있습니다. 쓰러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주님을 앙망합니다. 약속하신 대로 위로부터 새 힘을 우리 각 사람들에게 허락하여 주셔서 내가 현재 언제 어떠한 자리에 있든지 벗어놓을 것이 있으면 이 시간 벗어놓을 수 있게 해 주시고 방향이 잘못된 이가 있으면 이 시간 방향을 바로잡을 수 있게 해 주시고 쓰러진 이가 있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게 용감하게 꾸준히 예수만 바라보고 그를 향해서 전진하는 아버지의 자녀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말씀을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어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