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는 자는 출34:23-24, 요6:4-13
감사하는 자는 출34:23-24, 요6:4-13
유치원에 다니는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가 잠자리에 들기 전이면 언제나 예쁘게 무릎을 꿇고 또 두 손을 깍지 끼고 경건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늘 사랑으로 함께 하시는 참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밤에 우리 가족 모두를 지켜 주셔서 잠 잘 자게 해 주세요. 우리 아빠 하시는 사업도 잘 되게 해 주시고, 우리 가족들의 건강도 지켜 주세요.”
그런 다음에는 꼭 그 날 유치원에서 배운 율동과 노래를 멋있게 한 번 하고는 잠자리에 들곤 했습니다. 하루는 어머니가 아이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겨 그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너는 기도가 다 끝났으면 잠자리에 들어야지, 왜 자기 전에 꼭 그렇게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르느냐?”
아이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기도하는 동안에는 하나님께 내 부탁만 드려서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어요. 그래서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와 율동으로 하나님을 잠시라도 기쁘게 해 드리고 싶어서요.” 우리는 가끔 하나님께 “이것도 해 주시고 저것도 해 주시고”라며 무척이나 졸라대면서 많은 요구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막상 생각해보면 우리가 받은 것들이 너무 많은데 감사할 줄도 모르고 감사에 인색한 모습으로 살 때가 많습니다. 이 어린이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 것처럼 감사하는 자로 살아야겠습니다.
맥추감사절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감사하는 자는”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감사하는 자는,
1.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 사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러 가지 절기를 지키라고 명령 하셨습니다. 그 절기는 안식일, 유월절, 무교절, 오순절, 나팔절, 속제일, 장막절 등 7대절기입니다. 그 중 이스라엘 남자들이 1년에 한 번씩 반드시 지켜야 할 3대 절기가 있는데 그것은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입니다. 이 절기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데, 성도라면 그 의미를 바로 깨닫고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유월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 공로입니다.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통한 속죄의 피 공로를 믿는 성도들의 마음속에 각인 시켜 주는 절기가 바로 유월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월절 절기를 통해 죄에서 해방이 되고, 사망을 넘어 참 생명 얻는 길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절기이기에 성도라면 유월절의 의미를 마음에 새겨 믿고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 때문에 내가 죄 사함을 받고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을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다음은 오순절인데 칠칠절이라고도 하고 맥추절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오순절은 구약에서 보리의 첫 곡식을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입니다. 이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시므로 신약시대에 와서 성령강림절로 불리어졌습니다. 성도가 성령 충만 하면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좋은 열매를 맺는 자가 되고, 주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 사는 자, 감사하는 자로 살게 됩니다.
다음은 장막절인데 이 절기는 한 해 동안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잘 지내고 농사를 지어 결실을 맺어 가을에 추수한 것을 저장하고 지키는 절기라 하여 수장절이라고도 합니다. 구약 성도들은 7일 동안 초막에 거하며 조상들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광야에서 장막 생활한 것을 기념하면서 이 절기를 지켰습니다. 광야에서 농사 짖지 않았어도 양식을 공급하신 하나님 은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약속하고 그 땅에 들어가게 하신 은혜, 가나안에서 많은 곡식을 거두어들이게 하신 은혜 등을 기억하며 감사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성도는 광야 같은 세상에서 도우시는 은혜, 장차 들어갈 영원한 나라의 소망을 주신 은혜,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는 은혜를 감사하면서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장차 들어갈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절기를 통해 우리에게 베푸신 핵심적인 은혜를 바로 깨닫고 감사하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모세를 통해 절기를 지키라 명하신 것입니다. 살전 5:18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습니다. 감사하는 일은 하나님의 뜻이요,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유형을 3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형은 은혜를 알고도 은혜를 잊어버리는 사람들입니다. 둘째형은 은혜를 알고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셋째형은 은혜를 받고 감사할 줄 알고 그 은혜에 보답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행복한 사람은 돈이나, 명예나 권력을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감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영국의 성서학자인 메튜 헨리는 감사는 더하기와 같아서 모든 감사하는 것을 날마다 더해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원망과 불평은 마이너스와 같아서 있는 것까지 빼앗깁니다. 맥추감사절을 지키는 우리 모두 감사를 넘치게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자입니다.
우리의 삶을 광야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조금 전에 초막절을 지킬 때 7일 간 초막에 거하면서 과거 선조들의 광야생활을 몸소 체험하는 기간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생활 하면서 수많은 은혜 체험을 했습니다. 신약 본문에 예수께서 행하신 오병이어의 기적 역시 빈들 곧 광야에서 행하신 일입니다.
광야는 사람이 지내기에 좋은 환경이 절대로 아닙니다. 길은 불편하고, 뜨거운 햇빛이 있고, 밤에는 추위가 있고, 모래 바람이 있고, 뱀과 독충과 맹수가 있는 곳입니다. 먹을 것, 마실 것이 마땅치가 않습니다. 잠잘 곳이 마땅치가 않습니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들이 거의 공급되지 않는 곳이 광야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삶의 여유가 생기고 과학이 발전하여 편리한 생활을 한다 해도 생각지 못하는 어려움을 만나는 일이 흔하게 일어납니다. 수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 곳이요, 질병이 있고, 유혹이 있고, 실패가 있고, 인간관계에서 오는 많은 갈등이 있는 곳입니다. 광야가 위험한 곳이듯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위험한 것 천지입니다. 외형으로 볼 땐 21세기 과학의 시대이지만 내면으로 들어가면 여러 가지 중독의 위험, 고독의 위험, 갈등의 위험, 우울증과 자살 충동의 위험, 파산의 위험, 질병의 위험 등 위험천만한 광야 그대로인 세상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감사하고 살기보다 근심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며 살기가 더 쉬운 곳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자들입니다. 불평, 원망은 불신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신앙인 중에도 내면에 불신앙이 자리를 잡고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쉽게 잊는 자가 되고, 어려움이 닥치면 쉽게 원망하고 불평하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에게 노하시고 징벌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경외하는 믿음에 깊이 뿌리를 내린 자들은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해도 그 어려움을 감당 할 수 있게 하시고, 어려움을 이길 힘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가 됩니다. 어려움을 통해 연단하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심을 믿고 감사하는 자가 됩니다. 찰스 코우만 여사는 애벌레가 나방이 되는 것을 1년 동안 관찰한 뒤 다음과 같은 얘기를 했습니다. "맨 처음 번데기에서 나방이 나오는 것을 관찰하게 되었을 때, 저는 작은 구멍으로 안간힘을 쓰면서 나오려고 하는 나방이 너무나 불쌍해서 가위로 구멍을 넓혀 주었습니다. 그러나 큰 구멍으로 쉽게 빠져 나온 나방은 방구석을 기어 다닐 뿐 가엾게도 날지를 못했습니다. 너무 일찍, 그리고 너무 쉽게 번데기에서 나온 탓이었습니다.”
번데기에게 있어서 고난은 나방이 되기 위한 과정이었는데 그걸 건너뛰게 했더니 오히려 날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을 당하고 만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고난이 이와 같습니다. 고난은 분명 힘든 것이고 벗어나고 싶은 것이고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것이지만 그 고난이 하나님 앞에서 더욱 성숙하게 하고, 온전함을 이루어 주님 앞에 합당한 자로 세우는 역할을 하게 함을 믿기에 고난 중에도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에 뿌리를 내려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풍성한 은혜를 입는 자가 됩니다.
신약 본문에 보면 굶주려 있는 무리들을 주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한 소년이 가져온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많은 무리를 배불리 먹이고도 남은 조각이 12 바구니에 차게 되는 기적이 일어나게 된 사건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이 내용을 보면,
*작은 것이지만 감사할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왜 감사하지 못하는가? 현실 속에 없는 것 보면서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감사보다 불평을 하게 됩니다. 빌립은 이곳에서 이 무리들을 먹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하며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빌립은 이미 기적을 본 사람입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무수히 많은 각종 병자들이 낫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빌립은 예수님을 잘 몰랐습니다. 빌립은 계산력이 빨라 200 데나리온의 떡으로도 부족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는 아직 신앙이 성숙되지 않았습니다.
*작은 것이지만 주님께 드릴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안드레는 한 소년이 가져온 오병이어를 내어 놓으며 이 작은 것으로 이 많은 무리들을 어떻게 먹일 수 있겠느냐는 투로 말합니다. 불신앙의 사람이나 믿음이 부족한 사람은 작은 것을 보면서 안 될 것, 실패할 것을 내다보며, 큰 것과 비교하며 상대적으로 나의 작은 것을 보고 감사하지 못하고 낙심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래 이 작은 것으로는 이 많은 무리를 먹인 다는 게 어립도 없겠지’ 하시며 맞장구치지 않으시고, 이 작은 것을 놓고 감사할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작은 것이지만 나눌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 무리들을 줄을 지어 앉게 한 다음 그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도록 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고, 남은 조각이 처음 것보다 훨씬 더 많은 12 바구니에 차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나누지 못하는 것은 내게 가진 것이 없거나 적다는 생각 때문이요,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욕심 때문이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구약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절기를 지키라 명령하시고 지키는 자에게 약속을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 약속은,
*승리하는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출34:24에 “내가 열방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열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그 땅에 정착하여 살고 큰 힘을 가지고 살고 있던 네피림의 후손, 아낙 자손의 후손과 같은 키가 크고 거대한 힘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원주님들과 싸워 승리해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으며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힘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번성하고 번영하는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본문 출34:24에 “네 지경을 넓히리니” 감사의 절기를 잘 지키는 자에게 감사하며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의 지경을 넓혀주시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지경은 바로 우리 성도들이 하고 있는 손길을 의미합니다. 학문을 하든, 사업을 하든, 정치를 하든, 교육을 하든, 기업을 운영하든, 어떤 일을 하든, 우리가 하는 손길이 번성하고 번영하도록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보호와 안전의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출34:24에 “네가 매년 세 번씩 여호와 너의 하나님께 보이러 올 때에 아무 사람도 네 땅을 탐내어 엿보지 못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 년에 세 번씩 각처에서 하나님께 감사의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왔습니다. 그들이 집을 비어 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시고 하나님께서 안전하도록 지켜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광야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이 보호하시면 가장 안전한 피난처가 되십니다. 우리 모두 감사하는 자로 살면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시는 풍성한 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맥추감사절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감사하는 자는”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감사하는 자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 사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풍성한 은혜를 입는 자가 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