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갈라디아서

더 좋은 믿음으로 갈5:1-6 눅17:5-10,

nam씨 2019. 1. 31. 13:20


더 좋은 믿음으로 17:5-10, 5:1-6

국내에 소개가 되지는 않았지만 인포머라는 할리우드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1980년대에 미국 할리우드에 사는 미국 부자들을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세상에서 사람이 원할만한 것은 다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 건강, 젊음, 미모, 친구, 애정, 좋은 집과 가구 등 가질 수 있는 것은 다 가졌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럼에도 인생이 공허합니다.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 잘 몰라요. 그러다 보니까 그들이 마약, , 쾌락에 탐닉합니다. 젊은이들도 그렇고 그들의 부모들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사랑에 집착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주변에 친구들이 늘 차고 넘칩니다. 남자친구, 여자 친구도 하나만 있는 게 아니고 여러 명이 있고 주변에 같이 파티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넘칩니다.

그런데도 인생이 공허해요. 그 많은 친구와 애정을 받는 것 같은데도 인생이 공허해요.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되는지 몰라요. 그리고 누가 나의 진짜 친구인지도 확신할 수 없어요. 저 사람이 내 돈이 좋은 것인지 내 외모 때문에 저러는 것인지 나를 이용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요. 그리고 부모도 자기 자신의 삶에 너무 연연하다보니까 어떻게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하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부모도 자기가 잘났고 자기의 쾌락과 자기의 행복을 추구하다보니까 자녀에게 어떻게 부모가 되어주는지도 알지 못하고 자녀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되는지도 알지 못하고 자녀를 어떻게 훈육해야 되는지도 몰라요. 자기 자신의 삶도 컨트롤하지 못하는 부모가 어떻게 자녀의 삶을 컨트롤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모든 것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공허하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참된 가치와 만족을 주시는 성부, 성자, 성령 성 삼위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을 떠나서는 모든 것이 무의미하고,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성 삼위 하나님을 믿고 사랑할 때 참 인생의 목적을 알게 되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무엇이지 알고, 영과 육의 참 만족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믿음을 가진 성도라도 더 좋은 믿음을 가지기를 힘써야 합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더 좋은 믿음으로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더 좋은 믿음은,

 

1.참 자유 함을 누리게 하는 믿음입니다.

서신서 본문 갈5:1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자유란 말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죄에서의 자유, 율법에서의 자유, 사단의 세력에서 자유, 죽음의 두려움에서 자유 등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죄 아래 태어나 종의 멍에를 메고 있는 인생들의 멍에를 풀어 자유케 하시려고 보내셨습니다. 4:4-5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 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율법에서 자유케 하셨다는 말은 율법의 속박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하셨다는 말이며, 율법에서 벗어남으로 율법의 정죄에서 해방된 것을 의미합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면 율법의 메임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은총을 주시기 위해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속량하는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속량이란 말은 율법의 종으로 율법에 메인 우리들을 속전을 주시고 사셨다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생명을 주시고, 피로 값을 치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자유는 대단히 값진 것입니다.

주님은 눅 4:18에서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하셨습니다.

성도는 다시 죄의 멍에를 메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멍에는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고 결국 파멸에 이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로스엔젤레스의 한 교포가 도박에 미쳤습니다. 그는 여러 해 동안 많은 돈을 라스베가스에서 잃었습니다. 너무 억울한 나머지 여기, 저기서 돈을 억지로 빌려서 백만 불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단번에 올인 하여 모든 것을 건 도박을 벌렸습니다.

이기면 거금 천만 불을 벌게 됩니다. 꾼 돈을 다 갚고도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원체 거금인지라 모든 사람들의 눈이 집중되었습니다. 지역의 매스컴과 텔레비전이 중계하기 시작합니다. 여러 가지 쇼를 벌리고 드디어 카드를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짧은 시간이 흐른 뒤 결과가 나왔습니다. 결과는 백만 불을 건 사람이 졌습니다.

얼이 빠진 그는 쓰러질듯 비틀거리며 사라졌습니다. 얼마 뒤 그 호텔의 방 한 칸에서 총소리가 났습니다. 돈을 잃은 사람이 자살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것은 단 하나, 탁자에 한글로 갈겨 쓴, 한 줄의 글뿐이었습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그는 자기의 갈 길을 예감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어 죽음의 도박을 벌렸던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무한한 자신들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물욕, 정욕, 명예와 권세욕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결말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매일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무덤에 묻힙니다. 그리고 인생의 중심에는 질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늙음이 있고 여러 가지 실패와 절망이 있습니다. 무언가 벗어낼 수 없는 저주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젊고 예뻐도 자기 삶의 결론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엔가 이끌리어 살아갑니다. 결론을 알면서도 목적 없이 욕망에 빠져서 기력이 다할 때까지 쫓아다닙니다.

우리 성도들은 주께서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시고 이 모든 속박에서 구해 주셨음을 믿고 감사하면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귀중한 자유를 어떻게 간수하라고 했는지 본문 갈5:1에서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여기 굳세게 서란 말은 믿음에 굳게 서란 뜻입니다. 믿음에 서 있을 때만이 율법의 멍에를 메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 안에서 참 자유 함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허접한 믿음을 버리고 보배로운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복음서 본문 눅17:5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했습니다. 믿음이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닙니다. 잘 못된 허접한 믿음은 가지지 않는 것이 더 좋습니다. 더 좋은 믿음을 가지려면 몇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 말씀에 기초한 바른 믿음이 보배로운 믿음입니다.

하나님 말씀인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계약서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계약 내용을 반복해서 듣든지, 보든지, 읽든지, 묵상하든지 할 때 믿음이 더 깊어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10:17)했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우리 성도들이 성경 말씀을 계속해서 보거나 듣거나 묵상 하거나 암송하면 할수록 믿음이 더욱 깊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임하면 더욱 하나님을 신뢰 하게 되고, 담대하게 되고, 믿음이 더욱 깊어집니다. 아브라함이 네 나라의 왕과 전쟁을 하고 난 후에 심히 두려워 할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이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15:1) 아브라함은 이 말씀을 들은 후에 담대해 지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더욱 깊어지게 되고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15:6)

 

다음에 생명 있는 믿음이 보배로운 믿음입니다.

예수께서 믿음을 더하소서.’ 라는 제자들의 말을 듣고 겨자씨 비유를 들어 말씀 하셨습니다. 본문을 보면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뽕나무 뿌리는 아주 굵고 깊어 뽑기에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산 믿음으로는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겨자씨는 아주 작지만 생명이 있기에 역사가 일어납니다.

생명 있는 믿음은 말씀을 실천하는 믿음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감독 야고보는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믿음에는 죽은 믿음이 있는가하면 산 믿음이 있습니다. 산 믿음에는 반드시 행함이 뒤따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된다고 하였습니다. 즉 산 믿음에는 능력이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생명이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생명 충만은 성령 충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면 주님 생명을 얻게 되고, 변화의 역사가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주님의 온유 겸손을 배우게 되고,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게 되고, 화평케 하는 자가 되고, 사랑으로 섬기는 자가 되고, 환란 중에도 인내로 이기는 자가 되고, 항상 성결한 자로 살기를 힘쓰며, 묵묵히 주님의 십자가 발자취 따르는 보배로운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충성하는 믿음이 보배로운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겨자씨 비유를 말씀하신 다음에 충성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종이 들에 나가서 밭을 갈기도 하고 양을 치기도 하면서 하루 종일 주인의 일에 충성하였습니다. 즉 집 밖에서 충성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교회 밖에서도 충성해야 합니다. 그런가하면 종일 밖에서 일하고 돌아온 종은 주인의 먹을 것을 준비하고 주인이 저녁식사를 마칠 때까지 온갖 시중을 다 들었습니다. 즉 집 안에서 충성하였습니다. 종은 밖에서도 충성, 안에서도 충성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교회 안팎에서 한결같이 충성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주님은 너희도 명한 것을 다 행한 후에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더해지려면 이 종과 같은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명하신 대로, 힘들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정말 말씀대로 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사도 바울처럼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서 칭찬을 들을 생각도 하지 말고, 상을 받을 생각도 하지 말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충성 하면서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공을 세우고, 충성을 다 했어도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고백하는 이런 믿음이 보배로운 믿음입니다. 우리 모두 말씀에 기초한 생명 있는 보배로운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입니다.

서신서 본문 갈5:6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했습니다. 예수님도 가장 큰 계명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사도바울도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전13:2)했고,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다(고전13:3) 했으며, ‘믿음 소망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고전13:13)이라 했습니다. 사도 요한도 형제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더욱 가치 있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사랑으로 역사 하는 믿음입니다. 주님에 대한 믿음도 중요 하지만 주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을 알고 주님을 사랑 하는 것이 더욱 중요 합니다.

더 좋은 믿음은 항상 사랑을 산출하게 되고, 믿음과 사랑은 항상 함께 있습니다. 주님을 믿는 믿음 가운데는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십자가 피 사랑을 알고 믿기 때문입니다. 어린 양의 피를 믿는 자는 나를 위해 생명 주신 어린 양이신 주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믿음과 사랑은 소망을 동반하게 됩니다. 성경에 나타난 치유의 역사를 보면 이 셋이 함께 나타납니다.

*가버나움에서 중풍병자가 치유 된 사건을 보면 주님 앞에 나가면 고침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사람들로 인해 도무지 주님 앞에 갈 수 없음을 안 병자를 사랑한 친구들이 지붕으로 올라가 지붕을 뜯고 친구를 주님 앞에 내려놓음으로 그들의 믿음과 소망대로 고침을 받게 된 것을 보게 됩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귀신들린 딸 문제로 고침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예수께 나와 딸을 고쳐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냉정히 거절하시는 언행을 보이셨고, 개 취급을 하는 모욕적인 비유를 듣고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딸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은 그녀의 중심에 있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보시고 일부러 시험을 하신 것입니다.

*중풍 병이 든 하인을 사랑한 백부장이 고침 받으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예수께 나아와 믿음으로 간구하여 치유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치유뿐만이 아니라 구원을 받고 영생에 참여하는 것에도 믿음 소망 사랑이 함께 서로 상호 작용을 합니다. 믿음은 영혼의 눈과 같습니다. 영혼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게 되면 하늘 소망, 영생의 소망이 생기게 됩니다. 이 소망이 모든 것을 참고 견디게 합니다. 이 믿음과 소망은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게 하고, 예수님과 더욱 깊은 교제를 나누게 하며,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하며, 닮게 합니다. 주님의 숭고한 사랑의 높이와 원까지 사랑하는 깊은 사랑, 우주 만상을 어우르는 넓은 사랑, 변함없이 끝까지 사랑하시는 그 사랑의 무한하심을 맛보고, 그 사랑을 입으며 더욱 풍성한 사랑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성도가 지닌 이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은 무엇보다 가치 있고 소중한 자산입니다. 너무 세상일에 분주한 나머지 그 가치를 잊지 않도록 믿음을 더하여 주기를 소망하며 믿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인도의 한 장사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장사꾼은 그가 소유한 집 한 채를 팔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P.R.사원을 고용하여 팔려고 내놓은 집에 대한 광고를 신문에 내도록 했습니다. PR사원은 그 집을 잘 조사하여 그 집의 구조와 시설을 분명하고 정확하게 잘 설명하여 광고를 냈습니다.

다음날 아침 집주인이 손에 P.R기사가 난 신문을 흔들면서 사무실에 급히 뛰어왔다. "집 파는 것 취소!" 매우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내가 그렇게 소중한 집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몰랐단 말이야. 아마 내 일생 중 이렇게 좋은 집을 찾지 못할 거야. 내가 소유하고 있었으면서도 모르고 있었다니..."

 

여러분과 나는 여러 가지 분주한 일을 멈추고 참으로 내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분주하게 달려가고 있는가? 내게 있는 믿음, 소망, 사랑을 더하기 위해 얼마나 힘쓰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더 좋은 믿음으로 나아가며 살다가 우리가 사랑하는 주님과 함께 하나님나라에서 영생하는 복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더 좋은 믿음으로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더 좋은 믿음은,

.참 자유 함을 누리게 하는 믿음입니다.

.허접한 믿음을 버리고 보배로운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