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으로 충만할까? (엡 3장14-21)
무엇으로 충만할까? (엡 3장14-21)
이 시간에 “무엇으로 충만할까?”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본래 하나님을 모시고 살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항상 무엇인가로 채우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심리적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재물이나 명예나 권세나 술 취미 오락 쾌락 등을 하나님 삼고 거기에 도취되어 채우려고 하지만 다 채우지 못합니다.
그 중에 자기도취라는 것이 있는데 대단히 위험한 성격장애 중 하나로 심리학에서 자기도취를 ‘나르시즘’(Narcissism)이라고 부릅니다. 나르시즘의 어원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스가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도취되어 그 연못에 빠져 죽었다는 신화에서 그 어원이 생겨났는데, 이런 심리는 자기 이외에는 관심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거기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사이비이단의 교주들에게 이런 나르시즘이 많습니다.
이처럼 마음을 잘못된 것으로 채우면 마치 빈 집에 악한 귀신 일곱이 와서 사는 것처럼 영적으로 심히 심각해집니다. 마음에 선한 것으로 채우지 않으면 다른 무엇으로 그 자리를 채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가 무엇으로 충만해야 할까요?
1.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16절에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여기 충만은 바로 성령의 충만입니다. 성령 충만해야 우리 영혼이 강건해지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혀 신자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이든 무엇이든 성령 충만 받지 않으면 아무리 잘하려 해도 돌아보면 가증한 외식자일 뿐입니다. 그래서 “기도 없는 경건은 양의 옷을 입은 이리와 같고,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일을 하시고 기도하는 자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 교만 중에 가장 무서운 교만은 기도하지 않는 교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엡5:18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했습니다. 술 취하는 사람의 특징은 자주 취하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성령 충만 받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선한 중독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속사람이 살고 강건해지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세상을 이기고 시험을 이깁니다.
2. 믿음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17절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여기 믿음을 구했는데 믿음도 없는 믿음, 작은 믿음, 큰 믿음 등 여러 각층입니다. 하나님과 그 말씀에 담대함이 더해질 때 그것이 큰 믿음이요 넘치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 아니고는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요16:32-33에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셨습니다.
눅8:24-25에 보면 예수님께서 배에서 주무시고 제자들이 노 저어 갈 때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책망하셨습니다. 믿음 충만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왕의 금신상에 절하지 않겠다고 했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보세요. 단3:17-18에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이것이 믿음 충만입니다.
항상 믿음으로 채워져 있지 않으면 사탄이 틈을 탑니다. 에덴동산에서 슬그머니 다가와 미혹하던 뱀처럼 우리 마음에 슬그머니 불신의 생각이나 약한 생각이 들면 말씀과 기도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경을 가까이 하고 다른 생각이 틈타지 못하게 지켜야 합니다.
3. 사랑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17절에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여기 넘치는 사랑이라 했듯이 우리의 사랑도 넘쳐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따라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12:2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했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은사가 풍성했던 요한이 쓴 요한 일서를 열심히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은사를 우리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나 받아야 할 은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엡4:15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이렇게 자라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시체에 향유를 바르러 갔던 여인들처럼 혹 믿음이 부족해도 사랑이 충만하면 예수님께서 만나주십니다. 그래서 고전13:13에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했습니다. 사랑이 제일이란 중요성이나 순서로나 원동력으로 보나 사랑이 제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사랑 때문에 교회 나와 예수 믿은 사람도 있고,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전혀 마음이 없던 부모가 교회 나와 신앙생활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랑 충만하면 믿음도 따라서 있게 되고 믿음 충만하면 성령 충만하고 성령 충만하면 모든 것에 충만하게 됩니다.
4. 하나님께 돌리는 영광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20-21절에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이 말씀처럼 우리가 넘치는 은혜를 받았다면 넘치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 "교회 안에서"라 했듯이 교회 떠나지 말고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 한 것처럼 자기 공로가 아니라 예수 공로로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헤롯이 사람들이 칭찬할 때 그 영광을 받다가 충이 먹어서 죽었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충이든지 건강한 신체를 순식간에 먹어치우는 충입니다.
이처럼 많은 이들이 평생 피나는 눈물로 일어섰다가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자기가 받음으로 순식간에 몰락하는 것을 봅니다. 자기에게 영광을 돌리거나 자기를 위해서 재물 쌓는 것을 보거든 다 끝났구나 불쌍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예의상 감사하더라도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잡아 먹으려는 충들이 얼마나 많은지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바울도 귀신 들린 여종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이라고 날마다 찬사를 돌릴 때 분별의 눈을 가지고 심히 괴로워 했던 것처럼 분별해야지 그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좋아하거나 서운해 한다면 이미 사탄에 빠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충만을 위해서 몸소 무수한 결핍을 당하셨을 뿐 아니라 우리의 온전한 충만을 위해 하늘 높이 승천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 받아 바라는 자들에게 부어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젠 더 이상 세상의 썩어질 것으로 채우지 말고 바울의 기도처럼 성령으로 충만하고, 말씀으로 충만하고, 사랑으로 충만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는 마음으로 충만하시기를 주 예수 이름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