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과 택하심 (베드로후서 1장 1~11절)
부르심과 택하심 (베드로후서 1장 1~11절)
오늘의 설교 제목이“부르심과 택하심”입니다. 두 단어의 의미들을 먼저 알아 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소명(calling)”이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소명(召命)’이라는 한자를 직역하면 ‘부르심의 명령’입니다. 기독교에서 소명이라고 하면, 어떤 사람이 특수한 신분으로, 특정한 일을 하기 위해 신이 부르신 것에 대한 응답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일반적인 해설에는, 왕이 신하에게 명령 하는 것도 소명의 뜻 중의 하나입니다. 이를 종합해 보면, 소명은 거부할 수 없는 권위자의 명령이나 호출입니다. 물리적으로든, 의지적으로든,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기독교인들이하나님께서 부르신다는 의미를 더 강렬하게 느끼는 것이 “소천(召天)”이라는 말입니다. ‘소명’이 살아있을 때 명령 이라면, ‘소천’은 삶에 대한 종료 명령입니다. 소천으로 이해되는 죽음에 대한 부르심에 대한 다양한 표현들이 성경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데려가신다(창 5:24), 도로 찾는다(눅 12:20), 영원한 집으로 돌아간다(전 12:5), 아버지 집으로 돌아간다( 창 28:15), 이런 표현들은 전부 하나님께서 죽음으로 부르신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참고적으로, 기독교인들이 장례시에 사용하는 ‘소천’이라는 말은 잘못 사용되는 기독교 용어중 대표적인 것입니다. 부르심은 전부 능동형이 아닌 수동형입니다. 예를 들면, “나는 소명 했습니다”라고 하지 않고, “나는 소명 받았습니다”라고 하는 것처럼, 소천도, “000이 소천하셨습니다”라는 능동형이 아니라, “소천 받았습니다, 혹은 소천함을 입으셨습니다”라는 수동형으로 써야 맞는 표현입니다. 굳이 이렇게 어렵게 쓸 것이 아니라, 그냥 우리말로 풀어서, “000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라는 말로 쓰면 바르고 적합한 표현이 됩니다.
이렇게 소명이든, 소천이든,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리 인생의 전반에 걸쳐 죽음에 이르기까지 이루어지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명 받은 자들이 그 부르심에 응답해야 완성이 되고 결말이 아름다워 집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믿으십니까? 네, 아멘입니다. 오후예배에 로마서를 배우신 것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부르심을 확신하신다면, 무엇 때문에 부르심을 받으셨습니까? 맞습니다.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것은 복음을 위하여 택정(따로 구별)함을 얻은 것입니다.(롬 1:1) 확실하게 답변하시는 것 보니 학습효과가 제대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택하심(election)”에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로마서 8장 30절에 보면, 하나님은 사람들을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순서적으로 보면 부르시는 것보다 택하시는 것(정하시는 것)이 먼저입니다. 에베소서 1장 4절에서는, “창세전에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세상을 만들기 전부터 있었고, 그 계획 속에 저와 여러분과 그리고 00교회가 있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까?
에베소서 1장을계속 읽어보면, 하나님은 우리를 아들들이 되게 하시려고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셨다고 했습니다. 인간을 최초로 만드실 때도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하시며 기뻐하셨고,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시고 선택하실 때도 기뻐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아멘으로 답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택하심을 받았다는 놀라운 이 사실도 믿으십니까? 네, 이것도 역시 아멘입니다.
우리는, 택하심을 생각할 때 반드시 기억하며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것, 창세전에 예정하신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택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그리스도(구원자)가 되지 않으셨다면, 즉 다시 말해서, 성육신, 죽으심, 부활하심, 심판하심이 없었다면, 우리에게는 택함을 받을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니면, 우리는 택함 받을 수도 없는 무기력하고, 사망가운데, 멸망으로 끌려갈 무방비 상태의 존재였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 하나는, 우리가 택함 받았을 때 모습이 어떠했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추악하고 더러웠습니다. 음탕하고 교만했습니다. 향락을 즐기고 콧대를 높였습니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폭력적이었습니다. 배려심이 없고 내 잘난 맛에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보지 않고 돈과 사람을 보며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하나님은 일관되고 보편적인 사랑하심으로 우릴 택하여 주셨습니다. 그것도, 기쁘시게 택하셨다고 했습니다. 아들을 죽이기로 작정하시고 이 땅에 보내 시면서도 죄악 된 우리를, 나를, 버리지 아니하고, 오히려 택하여 주셨다는 사실도 또한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조석지변으로변하고, 배신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신실하시고, 사랑으로 우리를 안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롬 11:29)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표준새번역으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선물과 부르심은 철회되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심과 택하심에는 후회하심도 없고, 철회 하지도 않는다는 이 사실이 얼마나 기가 막히고, 감사한 말씀입니까? 우리는 이 말씀을 선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르심과 택하심에 합당하게 살지 못해서 미안함 마음이 들어야지, 철회 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악용해서 내 맘대로, 내 의지대로 살아가는 것은, 부르심과 택하심의 사랑과 은혜를 저버리는 심각한 배신행동입니다.
우리는, 부르심과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라는 물음에, 모두 다 “아멘”으로 답하여 하나님께 응답을 드렸습니다. 그리면, 부르심과 택하심을 받은 자답게 살아가려는 의무와 책임감이 뒤따라야 합니다. 우리가 앞으로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베드로 사도가 제시한 세 가지 자세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베드로 사도는1절에서,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편지한다고 쓰고 있습니다. 부르심과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은 누구라도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이 보배로운 믿음은 세상에는 없던 것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로움) 때문에 만들어졌습니다. 이 의(의로움)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만들어진 생명과 영생의 의(의로움)입니다. 이 의(의로움)가 믿음이라는 결정체가 되어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보배로운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마음 판에는 보배로운 믿음이 영원히 지워지지 않도록 깊이 각인 되어 있습니다.
부르심과 택함을받은 자답게 살아가는 첫 번째 자세는, 내 마음 안에 선물로 주어진 보배로운 믿음을 어누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도록 잘 지키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보배로운 믿음을 선물로 주신 예수님의 이름, 예수님의 의로움을 수시로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 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입니까? 누가 물어 보신다면, 대부분, “가족입니다”라고 하실 겁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대답이 바뀌어야 합니다. “제가 제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보배로운 믿음입니다. 그 믿음을 주신 예수님의 이름이 저의 가장 소중한 자랑거리입니다” 라고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보배로운 믿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항상 내세우고, 자랑하고, 간직하며, 부르심과 택하심에 합당한 삶의 자세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베드로 사도는2절에서,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라고 했습니다. 신기한 능력이라고 해서 희한하고 흥미를 유발하는 어떤 특출 난 것이 아닙니다. 이 신기한 능력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같이 나도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생명’은, 4절에서 세상에서 썩어 없어질 것에 대비되는 영원한 생명을 말합니다. 이 생명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와 내가, 온전하게 합일 되었을 때만 발휘되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신기한 능력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경건’은 올바르게 예배한다는 문자적인 뜻이 있습니다. 신기한 능력을 공급 받은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을 향한 올바른 예배의 정신과, 이를 바탕으로 세상에서 도덕적인 올바름을 추구하도록 요구 받게 됩니다.
부르심과 택함을받은 자답게 살아가는 두 번째 자세는, 신기한 능력, 즉 거룩함을 공급 받아, 예수님과 하나가되어 영원한 생명을 소망하며, 삶의 예배자로 경건의 모양을 나타내는 자세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두 번째 자세를 잘하는 사람을 일컬어, 4절 말미에 “신성한 성품에 참여 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며 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항목들을 5~7절까지 나열하고 있는데,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우애, 사랑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 두 번째 자세, 즉 생명과 경건, 다시 풀어서 말씀드리면 예수님과 하나 되지 못하고, 참 된 예배자로 살아가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8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것(믿음의 성장)에 게을러지고, 열매 없는 자가 됩니다. 또한 9절에서 보듯이, 멀리 보지 못하는 맹인과 같이 되고, 깨끗하게 된 것을 잊고 다시 더럽고 냄새나는 옛 죄인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럼 우리도 거룩하여야 그 분과 가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신기한 능력, 즉 예수님과 함께 함으로 얻을 수 있는 생명의 능력과, 예배를 통해 온전하게 되는 경건의 능력을 우리는 매일 같이 공급 받고 있습니다. 이것을 행하여 밖으로 표출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신성한 성품을 드러내는, 부르심과 택하심에 합당하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가 생명 되신 예수님을 꼭 붙드시고, 올바른 예배자로서 경건의 능력으로, 부르심과 택하심을 받은 자답게 하루하루를 승리하며 살아가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부르심과 택함을받은 자답게 살아가는 세 번째 자세는, 실족하지 아니 하도록 신앙생활에 정진하는 것입니다. 다 같이 10, 11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아멘.
부르심과 택하심을받은 사람일지라도 그것을 굳게(더욱 견고하게 하려는 모든 행동 - 예배, 전도, 기도, 봉사, 구제, 헌신, 각양의 삶의 모양 등)하지 않으면 누구라도 실족할 수 있습니다.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는 사도 바울의 권면을 새겨들어야 합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늘에서 내려주는 신령한 음식(만나) 신령한 음료(반석의 물)를 마시고도 실족하여 멸망의 길로 갔음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11절에 “이 같이 하면”이라는 말은 부르심과 택하심에 합당하게 살아가려는 자세와 행동을 하게 된다면 이라는 말합니다. 그렇게 실천 할 수 있다면, 우리가 그토록 꿈꾸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넉넉히 들어감을 허락해 주시겠다고 약속 하십니다. 결국 끝까지 와 봤더니, 영생의 나라에 넉넉히 들어가는 조건이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건하게 하며 살아가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부르심과 택하심을 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아멘으로 응답했습니다. 그 확실한 대답이 영원토록 우리 입술에서 흔들림 없이 고백 되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마음 판에 새겨진 보배로운 믿음을 더욱더 굳게 지켜가야 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세상에 좋은 것이 있다고 하여도 생명 되신 예수님을 떠나는 어리석은 판단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경건의 능력을 매일 같이 공급받는 예배의 자리에서 성공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그날까지 실족하지 아니하고, 부르심과 택하심을 받은 자답게, 강하고 담대하게 신앙의 정진을 해 나가야 합니다.
11월 감사의 달, 12월 대림절과 성탄의 달이 다가옵니다. 그리고 곧 일 년 한 해가 마무리 됩니다. 올 한해 부족하고 아쉬운 것이 있다 하여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오늘 보다 더 나은 내일이 있습니다. 11월 한 달 동안 암송 한 말씀처럼,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는 새 힘주심을 믿고 여기 까지 왔습니다. 여기에 덧 붙여서, 부르심과 택하심을 받은 자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시는 영원한 그 나라에 넉넉히 들어갈 새 능력도 허락해 주셨습니다.
00교회 모든 성도가부르심과 택하심을 받았다는 확실한 고백 위에, 쉬지 않고 천국을 향해 신앙의 정진을 이루어가는 복된 하나님 나라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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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불러 주시고 택하여 주신 크신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우리가 그 부르심과 택하심에 반응하고 응답하여, 영원한 나라에 넉넉히 들어갈 그날까지 믿음의 경주를 완주 할 수 있도록 능력에 능력을 더하여 주옵소서. 날마다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건하게 해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