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에스겔

(겔11장1-12절)분별력 있는 믿음과 삶을 살자

nam씨 2018. 10. 6. 16:50



(겔11장1-12절)분별력 있는 믿음과 삶(에스겔 강해)



이스라엘의 유다나라가 멸망하기 전 활동했던 대표적인 선지자들로서는 에스겔 선지자와 예레미야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유대나라는 한 번의 전쟁으로 멸망 당한 것이 아니라 총 세 번의 걸친 전쟁과 수도 함락으로 인해서 멸망을 당했습니다. 첫 번째 수도 함락 때 포로로 잡혀간 무리 중에 에스겔 선지자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에스겔은 머나먼 이방 땅에 포로로 잡혀간 유대 민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선지자의 사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반면 예레미야 선자자는 고향 땅에 그대로 남아 있었던 선지자였습니다. 고향에 남아서 수도 예루살렘성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던 선지자가 바로 예레미야 선지자였던 것입니다.



1차 2차로 바벨론 나라가 쳐들어와서 예루살렘 성을 함락하고 수많은 포로들을 끌고 갔습니다. 유대나라는 항복을 하고 바벨론에게 조공을 바치기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다시 유대나라 안에서는 바벨론에서 벗어나야 한다라는 주장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주장의 일완으로 애굽을 의지해야 한다라는 주장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예레미야 선지자가 유대나라 왕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왕이시여, 지금 바벨론의 압제와 어려움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범죄하여 지음 죄 값입니다. 회개하는 마음으로 이 형벌을 받고, 죄에서 돌이키고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애굽이라는 세상을 의지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지금 애굽을 의지하고 바벨론에게 대적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레미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뜻을 전달했지만 유대나라 왕과 사람들은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때 거짓선지자가 나타나 왕과 사람들 앞에 나와서 거짓 예언을 하기 시작합니다. '왕이시여, 하나님이 바벨론의 압제에서 왕과 나라를 구원해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유대나라와 민족에게 축복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지금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서 28장에 보면 이 거짓 선지자의 이름을 '앗술의 아들 선지자 하나냐'라고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절에도 보면 누가 등장합니까?



본문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때에 주의 영이 나를 들어올려서 여호와의 전 동문 곧 동향한 문에 이르시기로 보니 그 문에 사람이 스물다섯 명이 있는데 내가 그 중에서 앗술의 아들 야아사냐와 브나야의 아들 블라댜를 보았으니 그들은 백성의 고관이라" 오늘 본문의 시작인 1절에서는 나라의 지도자들인 스물다섯명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스물다섯명 중에 앗술의 아들 야아사냐가 등장합니다. 아까 예레미야 선지자와 정반대로 거짓 예언을 했던 앗술의 아들 하나냐와 야아사냐는 아버지가 같은 형제사이였던 것입니다. 예레미야서 28장을 읽어 보면 예레미야 선지자가 눈물을 흘리면서 회개를 외치며,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그때 하나냐가 등장해서 회개가 아닌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거짓 말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냐가 거짓선지야 였던 것처럼, 그의 형제 앗술의 아들 야아사냐 역시 거짓으로 물든 사람임을 우리는 이어지는 2절을 통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본문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사람들은 불의를 품고 이 성 중에서 악한 꾀를 꾸미는 자니라" 그러니까 오늘 1절에 등장하는 스물 다섯명의 고관들을 비롯하여 앗술의 아들 야아사냐는 거짓으로 물든 타락한 존재들을 대표하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1절과 2절을 통해서 볼 때, 유대 나라의 타락과 범죄는 높은 고관들과 귀족들에 의해서 더욱 심해졌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거짓 선지자 하나냐가 했던 것과 똑같이 잘못된 사실을 전하는 일을 했다라는 것입니다. 3절보면 이들이 '집이 건축할 때가 가깝지 않고, 성읍이 가마가 되고 우리는 고기가 된다.'라고 말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 에스겔 11장의 말씀은 예레미야서와 연관되어서 나오는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구절도 마찬가지로 예레미야서의 내용과 배경을 조금 아셔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바벨론의 1차2차 침략으로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갔지 않습니까? 머나먼 이국땅으로 끌려간 사람들의 마음속에 가장 절실히 가지고 있는 소망이 무엇입니까?

하루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너희는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니깐 너네가 포로로 잡혀간 이방땅에서 오랫동안 각오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보다 구체적으로 명령하시기를 '포로로 잡혀간 땅에서 집을 짓고 거기서 농사지으며 살라고 하십니다. 집을 짓고 농사지으며 살라는 것은 오랜 시간동안 그곳에 머물러 있어야 할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거짓선지자 하나냐가 나와서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이 몇 년 안에 유대나라를 회복시켜주신다라고 거짓 예언을 하게 됩니다. 결국 이 하나냐 선지자는 하나님 앞에 벌을 받아 죽어버리고 맙니다.

이런 일이 있었는데 오늘 3절 앞부분에 보니깐 거짓선지자의 형제가 속해있는 스물다섯명의 고관들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들의 말이 집 건축할 때가 가깝지 않았다.'라고 말합니다. 포로로 잡혀간 땅에서 집을 건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참된 선지자를 통해서 전달되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오히려 왜곡하고, 오히려 거짓말을 하고 사탕발림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3절 마지막부분에 보면 "성읍이 가마가 되고, 우리는 고기가 된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가마속에 있는 고기가 어디로 사라지거나, 어디로 없어질 일이 없지 않습니까? 이는 고기가 가마속에 있는 것처럼 안전하다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스물다섯명의 고관들은 지금 사람들이 듣기 좋은 소리만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나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에게 불순종하여 멸망해 가고 있는 민족의 최후를 안타깝고 비장한 마음으로 예언하고 있는데 이것을 무시하고, 오히려 거짓된 평화와 거짓된 안전을 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말씀들을 통해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우리에게 믿음의 분별력이 필요하다라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것들이 우리들을 미혹케 하는지 모릅니다. 우리들을 미혹케 하는 것은 크게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들이 있습니다. 육적인 것은 세상이 주는 것들로서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들이 있습니다. 누리고 즐기는 것, 기쁨과 쾌락이 긍정적인 것들이고, 걱정과 근심, 각종 문제와 아픔들이 부정적인 것들입니다. 세상을 너무 즐기거나 반대로 세상의 문제들 때문에 너무 근심 걱정을 하다 보면 우리는 분별력이 흐리게 할 수도 있습니다. 영적인 것들도 마찬가지로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들이 있습니다. 너무 축복과 자유만 강조하다 보면 오늘 본문에 나온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증거자들이 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해서 전달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반대로 너무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와 같이 무서운 하나님만 강조하다가 보면 율법주의나 신비주의에 빠지거나 세상과 동떨어진 종말주의에 빠지리 수도 있습니다. 진정한 믿음의 분별력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고 균형있는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건전한 믿음, 건강한 신앙은 한쪽으로 너무 치우치지 않고 중도를 잘 지키는 믿음과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는 축복도 있고, 심판도 있습니다. 사랑도 있고 저주도 있습니다.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습니다. 즐거움과 있고 눈물도 있습니다. 절제도 있고 자유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되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조심해야할 것입니다.



또한 내가 듣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만 들으려고 하는 자세도 고쳐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유대 백성들의 타락의 원인은 그들이 참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하지 못하고 거짓된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는데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럴 수가 있습니다. 내 상황과 환경에 따라서, 내 감정과 기분에 따라서, 내 마음과 생각에 따라서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내가 따르고 싶은 것만 골라서 듣는 그러한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성령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참된 하나님의 메시지를 외면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삶의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너희가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하며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 사방에 있는 이방인의 규례대로 행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라" 12절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전혀 모범된 삶을 살지 않았음을 질책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역시도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이 세상 안에서 살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 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은 우리의 몸은 이 세상에서 살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 속하여 이 세상에 영향을 받으며, 이 세상과 똑같이 사는 존재들이 아니라 이 세상을 변화시키도록 부름 받았다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롬 12:2)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으로 거하되 이 세상에 동화되지 아니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방인의 규례대로 행하고 그들 주위에 있는 불신자들의 삶과 똑같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어떤 측면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야 할 면들이 있습니다. 의식주의 문제에서는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 자녀를 키우는 문제, 일상적인 삶의 정황들은 세상 사람들과 같을 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불신자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다른 모습으로 삶을 살아야 한다라고 우리에게 계속적으로 도전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불신자의 삶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면, 그리스도인의 존재 이유를 이미 상실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 중에 어떤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만약 우리의 삶이 우리를 에워싸고 살고 있는 불신자들의 모습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면 우리는 이미 맛을 잃어버린 소금과도 같은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이 우리의 매력입니다. 우리가 그들과 다르기 때문에, 우리 주변에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보고 생활에 자극과 도전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가장 진노하시며 무너져 가는 유다 왕국을 책망하신 일 가운데 하나가 그들의 삶이 이방인의 삶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너희들은 이방인의 삶의 모습과 그들의 가치관을 동일하게 따라가고 있구나나. 너희는 불신자들과 똑같은 삶을 살고 있구나 ’ 우리에게는 세상과 다른 것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분명히 달라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난 사람답게 삶에 대한 가치관도 달라져야 합니다. 본문에서 이방인의 규례를 쫓고 있었던 이십오 인을 하나님께서 결국 어떻게 다루십니까? 본문 1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에 내가 예언할 때에 브나야의 아들 블라댜가 죽기로 내가 엎드려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오호라 주 여호와여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다 멸절하고자 하시나이까 하니라"

아직 에스겔이 예언할 때는 유다 왕국은 완전한 최후를 맞이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아직 유다 나라에 완전한 멸망이 오지는 않았습니다. 1절에 나온 스물다섯명중 대표자인 한명의 목숨을 하나님께서 거두어 가심으로 주의 말씀을 반역하고 불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최후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예시하고 있습니다. 즉 블라댜의 죽음은 다가오고 있는 유다 왕국의 최후를 구체적으로 경고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 역시도 믿음의 분별력과 삶의 분별력이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날은 참으로 어지러운 세상입니다. 세상에서는 먹고 사는 문제로 우리를 바쁘게 만들어서 믿음과 신앙에 대해서 신경 쓰지 못하게 만듭니다. 믿는 신앙의 공동체 안에서도 사람마다 듣기 좋은 소리를 하면서 참된 복음의 진리를 선포하지 못하는 곳이 많이 있습니다.



또 어떤 곳은 반대로 종말과 심판의 잘못된 교리로 사람들을 잘못되게 유혹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어지러운 세상 가운데, 우리는 믿음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분별력 있는 모습을 사셔야 합니다. 분별력 있고 건전한 믿음을 가지고 , 분별력 있고 건강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에게 믿음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백성된 자의 삶이 무엇인지를 증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거짓된 말씀에 미혹되고, 세상과 구별됨 없이 살았던 하나님의 백성들 앞에 하나님이 던지셨던 경고의 메시지를 기억하면서,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분별력 있고 건전한 믿음과 삶을 가지실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무엇보다 이 세상 가운데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미혹과 불신들 가운데서도 분별력있는 믿음과 삶, 건강한 믿음과 삶을 가짐으로 우리의 주님이신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는 모습으로 설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