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오가 받은 복 (요 3서 1-3절)
가이오가 받은 복 (요 3서 1-3절)
1. 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바울 곁에는 항상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바나바를 비롯해서 실라, 마가, 디도, 디모데, 의사 누가, 브리스길라, 아굴라 등 이름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바울과 같이 했습니다. 바울이 3차전도 여행까지 한 것도, 그와 같이 한 사람들의 덕택입니다. 로마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한 것도 모두 그들의 도움 없이는 할 수 없었던 일들입니다.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었던 일들도 이들의 도움으로 복음을 빨리 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종교개혁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르틴 루터를 도왔던 선제후 프리드리히는 루터가 위험에 처했을 때 도왔습니다. 루터 혼자하지 못했습니다. 칼빈 혼자서 그 일들을 다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곁에는 항상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도왔기 때문에 종교개혁을 할수 있었습니다. 복음의 전파는 복음을 옮기는 사람들을 돕는 것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복음의 일을 돕는 것은 복 받을 일입니다. 1절과 2절을 보면
1 장로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편지를 보내는 자신을 장로라고 하는 사람이 가이오에게 편지를 보낸 내용입니다. 오늘 첫 번째로
이 편지는 장로가 가이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기쁨(Gavi>o")이라는 뜻을 가진 가이오에게 사도요한이 보내는 편지입니다. 성경 66권 중에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에게 보낸 편지는 요한삼서밖에 없습니다. 요한삼서는 이중적인 목적이 있습니다. 사도요한의 편지를 통해서 가이오에 대한 인물됨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1세기의 교회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이오는 휼륭한 성도였습니다(th'/ ejkklhsiva//9절).
사도요한의 편지체로 보아서 가이오는 사도요한의 사랑을 받고 있었습니다. 가이오는 요한에게 기쁨을 주었습니다. 그 기쁨도 그냥 기쁨이 아닙니다. ‘참 기쁨’입니다(ejn ajlhqeiva/). 시도요한의 편지에 의하면 가이오는 진리를 굳게 붙잡는 사람입니다. 바르게 생활하는 성도였습니다. 얼마나 가이오가 장로의 마음을 시원케 했습니까? 장로는 가이오가 아까워서 부를 수 없을 만큼 표현했습니다. “장로는 사랑하는 가이오…,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 사랑하는 자여…”라고 몇 번이고 말합니다.
가이오는 사도요한의 심중에 항상 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이오는 소아시아에 있는 한 교회의 신실한 성도였습니다. 무엇보다 가이오는 진리 안에서 행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교회에는 순회전도자들이 있었습니다. 순회전도자들이 교회마다 돌아다니면서 교회를 돌보고 있었습니다. 이런 순회자들을 각 교회는 영접하고 잘 돌봤습니다. 이런 순회전도자인 데메드리오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목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가이오는 이들을 극진히 대했습니다. 순회전도자들이 불편이 없도록 배려를 잘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교회 안에 디오드레베(Diotrefhv")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에 대한 장로의 평가는 교만하다고 했습니다.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순회전도자들 및 사도들을 접대하지 않았습니다. 요한의 편지를 교회에서 읽지 못하게 했습니다. 사도요한을 헐뜯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교회를 반대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교회를 위한답시고, 말은 하면서 행동은 반대로 했습니다. 장로요한이 이 편지를 쓰는 목적도 디오드레베를 경계하도록 함이었습니다. 디오드레베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것’(filoprwteuvw)입니다. 교회에서 첫째가 되고자 했습니다. 자질이 있어서 첫째가 되면 좋습니다. 그런데, 자질도 없으면서 첫째가 되려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동기로 인해서 디오드레베는 교회의 모든 일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초대교회에서 형제사랑은 늘 강조했습니다.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손님을 접대하는 것이 기본적인 윤리였습니다. 그런데 디오드레베는 이러한 것들을 교회 안에서 행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럼 가이오가 받은 축복은 무엇일까요?
1. 영혼이 잘 되는 복입니다.
“네 영혼이 잘됨 같이” 이 말씀은 그가 이미 받은 복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이걸 볼 때 그가 얼마나 신앙생활을 잘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기록된 대로는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주의 일군들을 사랑하고 성도들을 사랑했습니다. 충성은 물론 겸손한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믿음이란 행함으로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그가 얼마나 은혜를 받은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약2:17-18에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했습니다.
9절을 보면 그 교회에도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고 거기에 동화되는 걸 경계한 걸 보면 별아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가이오에겐 이런 육신적인 모습이 없었습니다. 완전히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이었습니다. 예수가 그에게 나타난 사람입니다.
우리 인격에도 예수가 나타나야겠습니다. 그렇지 않고 히6:8절 말씀처럼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열매 잘못 맺으면 큰 일납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하신 예수님 말씀처럼 가이오는 본 자는 예수를 보는 것과 같았습니다.
2. 범사에 잘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 내용은 “범사에 잘되고” 범사란 하는 모든 일입니다. 가령 자녀 교육 건강 물질 사업 가정 교회 앞날 등 모든 삶이 형통케 되는 축복입니다. 이것 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복들입니다. 하나님 잘 섬기고 교회와 사회에 봉사 많이 해서 사람들의 축복의 대상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보면 본 받아야 하고 다 자기 신앙으로 한 것이라면서 봉사자에게 감사 한 마디 안 하지 않고 상처를 주는 일은 삼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주님이시지만 섬기는 자 중에 있었던 것처럼 가이오는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죤 번연이 지은 천로역정에 여관 주인 가이오가 나옵니다. '정직'이란 이름을 가진 순례자가 여관 주인 가이오에게 수수께끼를 냅니다. "더 많이 버릴수록 더 가지게 되는 건 누구일까요." 가이오는 대답합니다. "가진 것을 나눠주는 사람입니다. 그는 준만큼, 아니 그 열 배는 더 갖게 될 겁니다." 이것을 가리켜 일명 가이오의 법칙이라고도 하고 오병이어의 법칙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 '가이오의 말이 과연 맞더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미국에서 같은 조건을 가진 가정을 두 부류로 나누어 수입을 비교했더니 연간 100달러를 더 기부한 가정이 375달러를 더 벌게 되더랍니다. 선한 일에 기부하면 할수록 더 많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눅6:38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말씀합니다. 교회 섬기다 망한 사람은 없습니다. 처음에는 어려울지 몰라도 하나님께서 100배로 1000배로 복을 주십니다. 그래서 섬김을 강조하는 기독교 신앙이 복을 받습니다.
1901년에서 1990년까지 90년간 물리, 화학, 의학 등 자연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사람은 404명이라고 합니다. 404명의 종교를 분석하면 기독교 65%, 유태교22%, 천주교 11%, 불교 0.9%, 회교 0.1%입니다. 기독교 천주교 유대교를 합하면 98%가 됩니다.
상을 받은 나라를 꼽아보면 스위스, 스웨덴, 덴마크, 네델란드, 영국, 미국, 독일 순으로 모두가 기독교가 꽃피는 국가입니다. 그리고 유태인으로 상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기독교 국가에 정착해 살면서 연구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비공식 여담이지만 언젠가 게그의 황제 이경규씨가 방송을 진행하면서 느낀 것은 위대한 사람들 대부분이 기독교인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방송이라 종교를 알리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기 때문에 오해를 받고 있는 점이 안타까웠습니다.
겸손해야 하지만 등불이 등경 위에 있어야 하듯 하나님께서 그 선행을 쓰셔서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하실 때는 절대 숨겨서는 안 됩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보여주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의로운 모습과 복 받은 모습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시37:25-26에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가이오와 같이 이런 복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육신이 강건한 복입니다.
마지막 축복이 “네가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한은 가이오에게 건강을 축복합니다. 사람이 아프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므로 범죄하지 않고 늘 건강을 축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아무리 사람이 노력해도 식자우환이 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시각각 우리의 작은 부분이라도 간섭해주시기 바랍니다. 900세를 넘게 산 고대 조상들은 물려받은 의학지식도 없고 모든 것이 새로운 건데 어떻게 그렇게 장수할 수 있었을까요? 자연환경이 좋았겠지만 하나님께서 간섭해 주셔서 그렇게 장수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1분이라도 돕지 않으면 우리는 큰 낭패를 당합니다. 분명히 말씀드리는 것은 하나님께는 다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우리를 도와주신 하나님, 앞으로도 도와주실 줄을 믿습니다. 문제는 우리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에 심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고상하고 좋은 일이라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첫째가 회개입니다. 그래서 약5:15-16에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했습니다. 뭔가 하나님의 마음을 서운케 한 것이 있다면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께서는 늘 축복하시는 삶을 사셨습니다. 축복하는 사람도 아름답고 축복을 받는 사람 아름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을 뿐 아니라 가이오처럼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일군들을 기도로 도와서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