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마태복음

사람 중심 신앙의 위험성 마6:1-8, 행5:1-11

nam씨 2018. 7. 7. 10:05


사람 중심 신앙의 위험성 6:1-8, 5:1-11

한 마을에 어떤 40대 남자가 이사를 왔습니다. 그는 집집이 찾아다니며 인사를 했습니다. 마을 노인들을 초대하여 경로잔치를 했습니다. 마을 부녀회원들을 초대하여 관광을 시켜주었습니다. 마을에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했습니다.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사업을 한다고 자랑을 했습니다. 6개월이 지났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40대 남자를 멋지고 예의바르고 후덕한 신사로 생각을 했습니다. 40대 남자는 마을의 공동사업을 위하여 찬조금도 냈습니다.

어느 날 40대 남자는 어떤 부인에게 사업에 투자를 하면 매월 1할 이자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마을의 한 부인이 몇 백만 원을 투자했습니다. 40대 남자는 1할 이자를 정확하게 지불했습니다. 소문이 마을에 퍼졌습니다. 마을 여인들은 너도나도 40대 남자에게 돈을 맡겼습니다. 40대 남자는 몇 달 동안 이자를 정확하게 지불했습니다. 수 십 억 원을 손에 쥔 40대 남자는 어느 날 말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40대 남자는 계획적으로 남의 돈을 뺏는 사기꾼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기꾼은 겉과 속이 다른 위선적인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겉에 나타난 모습만 보고 속지만 마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속일 수가 없습니다. 오늘 두 본문은 외식하는 신앙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경계 하는 말씀입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사람 중심 신앙의 위험성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외식하는 위선적인 신앙인이 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서신서 본문 행5:1-2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고 했습니다. ‘아나니아라는 뜻은 여호와의 은총이 깊다는 말이요, ‘삽비라라는 뜻은 보석같이 아름답다라는 뜻입니다. 이 두 사람의 이름은 아름다웠지만 사단의 역사로 그들의 마음은 추하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성도라는 귀한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 가운데 사단을 마음에 용납하고 사단의 지배를 받게 되면 이름과는 다른 추한 모습을 드러내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는 초대교회 창립멤버였고, 부자였고, 헌신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사단은 그 마음속에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시기심이 생기고, 질투심이 생기고, 비교의식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의 발단은 바나바 때문이었습니다. 4:36-37에 보면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고 했습니다. 은혜 받고 믿음생활 잘하던 아나니아가 어느 날 바나바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됩니다. 바나바가 성령이 충만하여 자기가 가진 재산을 팔아 가난한자들을 도우라고 사도들에게 갖다 드리는 모습을 보고 순간 사탄이 그 마음속에 들어가 비교의식을 갖게 했고, 나도 재산을 드려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외식하는 위선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의 신앙이 겉과 속이 일치하는 진실한 신앙을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십니다. 10:17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 가운데 신이시며 주 가운데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했습니다. 삼상 16:7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하셨습니다. 22:16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 하심이니이다.”했습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거듭난 믿음의 성도는 늘 거짓 없는 진실한 신앙의 사람이 되기를 힘씁니다.

 

그런데 사단은 거짓과 속임으로 사람들을 미혹하여 넘어지게 합니다. 성도가 사단에 미혹되면 가롯 유다처럼 함께 거짓된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게 됩니다. 사단이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접근하여 시기심을 유발했고, 밭을 팔게 만들었고, 밭을 팔면서 아까운 마음을 가지게 하여 일부를 숨겨두고 바치게 했습니다. 성령 충만한 베드로는 그 것을 알고 그 부분에 대해 책망을 합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3).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4절중) 말하며 책망합니다.

이 일로 인해 아나니아와 같이 공모한 그의 아내 삽비라가 함께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들의 죽음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이 일이 경종이 되어 위선적인 신앙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잘 못된 것인지를 깨닫게 했습니다. 5:11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더 크게 두려워 하니라했습니다. 두려워했다는 말은 아나니아 삽비라 사건이 교훈이 됐고, 은혜가 됐다는 말입니다. 교훈도 안 되고 은혜가 되지 않는 사람은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우리 모두 외식을 버리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는 진실한 신앙의 사람으로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사람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신앙의 사람은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사람이요,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하거나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거나 상처 받는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아나니아 삽비라 신앙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는 인간적인 열망이 있었습니다. 그의 신앙의 깊은 곳에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닌 모든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박수 받고 싶은 인간적인 동기가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 자를 마귀는 너무나 잘 알기에 그들을 이용했던 것입니다.

 

복음서 본문 마6:5"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했습니다. 기도는 연설도 아니고 웅변도 아니며 시를 낭독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할 필요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금 대접에 받쳐 올려드리는 일종의 제물입니다(5:8).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드린다면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빙자하여 자기를 선전하고 자기의 의를 나타내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가 기도하고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제물임을 알고 하나님께서만 받으시고 기뻐하시는 기도를 드리도록 해야 합니다(18:9-14).

 

성도는 기도나 구제나 헌금이나 봉사하는 모든 신앙 행위가 믿음과 성령의 인도받는 것이 될 때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이 될 수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불행은 그러지 못한데서 발생한 것입니다. 서신서 본문 3절에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고 했습니다. 아나니아는 땅값일부만을 사도들에게 갖다 바쳤습니다. 그것이 땅값 전부인 것처럼 가장했고 사도들은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결국 보이지 않는 성령을 망각한 채 보이는 사람들만 의식하여 방자히 행한 아나니아는 성령을 속인 죄 곧 결코 사함을 받지 못할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이는 주님과 사도들과 교회를 우롱한 처사입니다. 그리고 아나니아의 행위는 하나님보다는 인간의 존경과 인정을 받으려고 가장(假裝)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사람과의 관계를 더 우선시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뛰어난 믿음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사람 보다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노아는 불신앙으로 대세를 이룬 시대 풍조를 따르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살다가 그와 그 가족을 홍수 심판에서 구원했습니다.

*유혹을 이긴 요셉 역시 신전 의식 신앙(하나님 앞에 산다는 의식)을 소유한 사람이요,

*사자 굴에 들어갈 지언정 기도를 쉬지 않았던 다니엘이나 풀무불 속에 들어갈 지언정 우상 숭배를 거절한 그의 세 친구의 신앙이 그러한 신앙이었습니다.

*애급 왕자의 영광 보다 동족과 함께 고난 받는 길을 선택했던 모세가 그런 신앙을 소유했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전하지 못하도록 위협하는 무리들 앞에서 박해를 각오하며 우리가 사람 말 듣는 것이 옳은가 하나님 말씀 듣는 것이 옳은가 판단하라 말하며 담대히 복음을 전하다 박해를 받고 순교한 사도들과 성도들 모두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소중히 여기며 살았던 자랑스러운 믿음의 선배들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런 선배들의 믿음의 자취를 따라 살기를 소망합니다.

 

3.신앙생활 중에 은밀히 행하여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복음서 본문 마63-4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했습니다. 6절에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했습니다. 여기 구제와 기도를 은밀하게 하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외식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하심입니다. ‘외식이라는 헬라어 단어의 어원은 휘포크리테스에서 나왔습니다. ‘휘포크리테스연극배우라는 말이지만, 상징적인 의미로 위선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휘포크리테스라는 말을 마태복음 23장에서만 일곱 번이나 사용하셨는데, 성경에서 이 단어는 모두 다 바깥을 치장하다라는 의미의 외식(外飾) 이라는 말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외식의 또 다른 표현은 겉으로만 착한 체를 하거나 거짓으로 선한 척 꾸미는 행위를 말하는 위선(僞善)입니다. 그래서 위선이라는 말을 영어로는 히포크러시’(hypocrisy)라고 합니다. 플라톤의 지적에 따르면 진리 그 자체를 행하는 것이 아니요, 진리인 척 쇼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리새인들과 아나니아와 삽비라 역시 사람들 앞에 좋은 신자인척 위선을 행하고 서두에서 말씀드린 40 대 남자처럼 좋은 사람인척 연극배우처럼 쇼를 행한 거짓 된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성도가 위선적인 신앙을 가지지 않으려면 거짓 없는 진실한 신앙으로 신앙의 동기가 바르고 순수해야 합니다. 그런 자들은 기도 할 때에도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합니다. 헌금을 할 때에도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해서 마음에서 울러 나와 기쁨으로 드립니다. 기도할 때나 선을 행할 때 은밀하게 행합니다.

 

어떤 마을에 아주 왕소금보다도 더 짠 구두쇠 할머니가 살고 있었습니다. 가진 것은 풍족하여 부족함이 없는데 도무지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법을 몰랐습니다. 그 구두쇠 할머니의 옆집에는 반찬장사를 하는 가난한 할머니가 살고 있었습니다. 반찬이 맛이 없어 손님도 별로 없는데 할머니 집에 갔다가 그냥 빈손으로 돌아간 사람은 아무도 없을 정도로 다른 사람을 돕는 데는 열심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구두쇠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구두쇠 할머니를 공동묘지 한 구석 눈에 띄지도 않는 곳에 묻었고 할머니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도 할머니의 무덤을 찾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마을 사람들은 이상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이제 더 이상 반찬가게 할머니가 다른 사람들을 돕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을교회의 목사님이 반찬가게 할머니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할머니, 잘 지내셨어요? 요즘 어려운 사람 돕기를 중단하셨다면서요?” “실은 오래 전에 구두쇠 할멈이 찾아와 돈을 주면서 자기 대신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고 하는 것이었어. 난 처음에는 싫다고 했지만 그 할멈이 하도 간곡하게 부탁을 하는 바람에 그러마 했지. 그 뒤로도 계속 돈을 주어서 나는 덕분에 내 돈 한 푼도 안 쓰고 인심 좋은 할미가 되었지.

그런데 말이야 참 이상한 것은 아니 왜 사람들은 나한테 그 많은 돈이 어디서 났는지 물어보지 않았을까? 생각해 봐. 반찬도 잘 안 팔리는 가난한 사람이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내놓을 수 있겠어? 그 할미는 자기가 죽을 때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지

목사님은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반찬가게 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할머니는 사람들이 뒤에서 구두쇠라고 흉보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예수님 말씀대로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실천하시다가 돌아가신 것입니다.” 동네 사람들은 모두 구두쇠 할머니 무덤으로 몰려갔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이렇게 중얼거렸다. “분명히 할머니는 지금 천국에서 예수님 가장 가까이에 계실 것입니다. 내가 죽거든 나를 구두쇠 할머니 무덤 가까이에 묻어주세요.”

 

하나님은 위선을 싫어하십니다. 은밀하게 행한 기도나 선행은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이 갚으십니다. 정리^^ 두 본문을 중심으로 사람 중심 신앙의 위험성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외식하는 위선적인 신앙인이 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사람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신앙생활 중에 은밀히 행하여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외식을 버리고 거짓 없고 진실하며 순수한 신앙의 동기를 가지고 믿음 생활 잘 하다가 다시 오실 주님 맞이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