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이후 보좌의 영광 계5:1-14
십자가 이후 보좌의 영광 계5:1-14 눅22:24-34
계시록 본문은 사도 요한이 환상 중에 그의 영이 이 땅을 벗어나 하늘로 옮겨져 천상의 세계를 본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본 최고로 가슴 벅찬 모습은 하늘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순간입니다.(6-7절), 요한이 본 첫 번째 모습은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들의 한 가운데에 서 계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요한은 천국에서 높임을 받으시고, 영광 받으시는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을 맞이한 것입니다. 그 모습은 인간역사상 그 어떤 광경보다도 멋진, 가슴 벅찬 광경이었습니다. 요한은 지상에서 예수님의 제자로 있을 때 베드로와 야고보와 함께 변화산에서 기도하던 중 예수님께서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았지만 이제 천국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천국의 중심에 계신다는 사실,*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사실,*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주의 전능하신 분이라는 사실,*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주의 최고 지혜자라는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의 주권자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실 때는 비천한 종의 모습으로, 가난한 동네, 가난한 가정에 오셨고,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셨고, 겸손히 섬기는 자로 오셨고, 죄인과 강도 취급을 받으며 온갖 멸시, 천대, 수치를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비참하게 돌아가신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천상의 세계에서는 전혀 다른 영광스런 모습을 요한이 본 것입니다. 이제 예수께서 취하신 영광은 주님의 십자가 발자취를 따르는 성도들이 장차 주님과 함께 받게 될 영광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십자가 이후 보좌의 영광”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모든 피조물의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요한이 본 천상에서의 모습은 경배와 찬양을 예수님께 드리는 모습입니다.
먼저 천사들이 찬송을 드렸습니다.
본문 계5:11-12에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하였습니다. 성도들을 수종드는 천사들이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다음에 피조물들이 찬송을 드렸습니다.
본문 계5:13에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그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하였습니다. 이는 문학적인 표현입니다. 만물의 존재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일로 그들 나름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골짜기의 졸졸 흐르는 물소리도, 저 넓은 바다의 우렁찬 파도 소리도, 산에서 솔솔 부는 바람소리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로 나타나야 지음을 받은 목적을 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만물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는 것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구속받은 성도들이 경배 드렸습니다.
본문 계5:14에 "네 생물이 가로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하였습니다. 장로들은 구속받은 성도들의 대표라고 하였습니다. 구속받은 성도들은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구속하여 주신 은혜를 찬송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그들로 인하여 찬송과 영광을 받으시는데 있습니다(사 43:7,21).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속하여 주신 목적도 창조 때와 꼭 같은 것입니다(엡 1:6-14). 시편 저자는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시 146:1-2)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습니다(시 147:1).
우리가 천국에 간다면 거기서 무엇을 할까요? 거기는 더 이상 기도가 필요 없는 곳이요, 주님과 교제하는 곳이니 설교가 필요 없는 곳이요, 구원 받은 성도들이 있는 곳이니 전도가 필요 없는 곳이요, 천사들이 수종들게 되니 봉사도 필요 없는 곳입니다. 단 한 가지의 일이 있는데, 그것을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프린스턴 신학교의 존 메이어 교수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 교수님의 모습에 이상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길을 걸어갈 때나 책상에 앉아 있을 때 무엇인가 계속해서 입으로 흥얼흥얼대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도 이상한 모습에 학생들이 대표를 몇 명 뽑아서 한번 그 사연을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교수님은 학생들의 방문한 목적을 듣고 빙그레 웃으면서 이러한 사연을 말해 주었습니다.
얼마 전에 자신이 꿈을 꾸었다고 했습니다. 하늘나라의 새 예루살렘성에 들어가기 위해서 자신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쭉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천사들이 줄을 선 사람들의 자격을 심사하고 있었습니다. 그 교수님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차례가 와서 천사가 질문을 했습니다. “찬송가에 이러이러한 것 있지? 어디 그것 한번 불러 봐요!” 그러나 늘 책과 씨름만 했지 언제 찬송가를 제대로 불러 보았겠는가? 우물우물 몇 소절하다가는 끝내지도 못하고 중단하고 말았답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천사가 호통을 쳤습니다. “이 사람 정말 형편없는 신자구만! 찬송도 못 부르면서 어떻게 천국에 오려고 그래?” 천사가 호통을 치는 소리에 깜짝 놀라 꿈에서 깨어났다는 것입니다. 꿈속에서 너무나 혼이 난 이 교수는 그 이후부터 시간이 있는 대로 계속해서 찬송을 부르며 자신의 마음에 찬송이 충만하도록 애를 쓰 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찬송으로 영광 돌리는 성도들이 됩시다.
2.인봉한 두루마리 책을 펴기에 합당한 분으로 인정받으신 분을 보았습니다.
요한이 본 또 다른 모습은 인봉한 두루마리 책에 관한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운명의 책을 오른손에 들고 계십니다. 이 책을 펴기에 합당한 자를 찾으려는 시도가 전 우주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일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이 책을 펼치고 마지막 때의 절정에 이를 사건들을 감독할 사람이 발견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상황은 가망 없는 듯이 보입니다. 요한은 안타까워 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천국의 장로 중 한 사람이 앞으로 걸어 나와 이 운명의 책을 펴기에 합당한 자를 찾았다고 선언합니다. 계5:5에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그분은 바로 "유다지파의 사자"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메시야에 대한 칭호입니다. 사자가 상징하는 것은 그분이 이스라엘 족속 중 가장 강하고 권세 있는 분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분은 "다윗의 뿌리"라고 말합니다. 메시야는 다윗의 가계에서 이새의 뿌리와 씨에서 그의 족보에서, 그의 혈통을 따라, 그의 줄기에서 나오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야이신 그리스도에 대해 사11:1에서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라고 예언한바 있습니다. 이 책을 펴기에 합당한 자는 바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세상의 메시야요, 왕이신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분은 죄를 이기셨습니다. 그분은 사망을 이기셨습니다. 그분은 악한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그분은 사단과 다른 모든 악의 세력들을 이기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을 이기셨습니다. 그분은 율법의 저주를 이기셨습니다. 그분은 지옥을 이기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이기신 어린양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손에서 운명의 책을 취하실 수 있습니다. 오직 그분만이 마지막 때의 사건들을 실행하시기에 합당하신 분임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요, 다스리는 분이요, 유일하게 죄를 대속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신 분이요, 천하 인간에 구원 얻을 유일한 이름이요, 세상에 다시 오셔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권세를 가지신 분입니다. 그러면서도 한없는 사랑으로 친구처럼 대해주시는 인자하신 분이십니다. 이분을 사랑하고 가까이 함이 승리의 비결이요, 가장 큰 복입니다.
한 마을이 극심한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시냇물은 모두 말랐고 논바닥은 쩍쩍 균열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높은 산꼭대기에 있는 나무들은 여전히 잎이 푸르고 싱싱하지만 시냇가에 있는 나무들은 모두 말라죽은 것입니다.
학자들은 산과 시냇가의 나무들을 연구한 결과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산꼭대기의 나무들은 평소 수분이 부족했기 때문에 수분을 얻기 위해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혹독한 가뭄에도 왕성한 생명력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수분이 충분한 시냇가의 나무들은 땅의 겉 표면에 뿌리를 박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뭄을 견디지 못하고 말라죽은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생명의 근원이 되시고,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 안에 깊이 뿌리를 박고 교제를 나눈다면 아무리 극심한 가뭄을 만나도, 시련을 만나도 무너지지 않고 견고히 설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를 위해 생명 주신 예수님을 세상에 무엇보다 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장차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얻을 자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서 본문 눅22:30에서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누가 크냐는 서열 다툼을 할 때 제자들을 향하여 이방인의 임금들처럼 사람들을 주관하며 높임을 받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나무라셨습니다. “너희 중에 큰 자는 적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 찌라”(26절)고 하셨습니다.
장차 주님과 함께 영광을 얻을 자들은 주님을 본받아 겸손히 사랑으로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모든 시험 중에 주님과 함께 한 자들(28절)이 되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고난을 받으면 주님과 함께 영광이 약속된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놀라운 약속이요, 소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라고 하셨습니다.(마5:11)
사도 바울은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롬8:18) 우리는 주님을 위하여 받는 고난에 낙심할 것도, 슬퍼할 것도 아니요 앞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상급을 생각함으로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주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에서의 상급은
*내 나라에서 내 상에서 먹고 마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나라에서 온 피조물의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는 주님과 함께 한 상에서 먹고 마시는 복은 너무나 파격적이고, 황공스럽고 놀라운 상급입니다.
*다음에 그들이 주님의 보좌에 앉아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에서의 왕권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은 다 똑같지만 그곳에서 누릴 영광은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섬김이 크고, 주님과 몸 된 교회를 위한 고난이 크면 그만큼 영광도 큽니다.
동양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밤에 말을 타고 사막을 여행하고 있던 3명이 한 나그네 만났습니다. 그 나그네는 사막을 여행하는 여행자 3명에게 얼마 가지 않아 마른 시내 하나를 건너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그곳에 도착하면 말에서 내려 자갈들을 주워 자루와 호주머니에 가득 채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해가 뜰 때 주운 자갈들을 살펴보라 말하며 한편으론 기뻐하고 한편으로는 애석해 할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 사람의 말처럼, 세 사람은 마른 시내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이상한 나그네가 말한 대로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자갈 들 중에 몇 개를 골라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다음날 해가 뜰 무렵 그들은 주워온 자갈들을 살펴보다 깜짝 놀랐습니다. 그 자갈들은 다이아몬드, 루비, 에메랄드 등 다양한 보석들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막에서 만났던 나그네의 말을 떠올린 그들은 그제야 그 나그네의 말을 이해했습니다. 그들은 주워온 자갈들이 보석들로 변해 있어 기뻤지만 더 많이 주워오지 않은 것이 애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도 이와 비슷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믿고 주님의 십자가 발자취 따르는 길이 사막 길을 가는 것처럼 힘들고 어렵지만 하늘나라 영광을 누리게 될 때는 왜 좀 더 헌신하고 충성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정리합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십자가 이후 보좌의 영광”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모든 피조물의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인봉한 두루마리 책을 펴기에 합당한 분으로 인정받으신 분을 보았습니다.
◉.장차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얻을 자들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십자가 발자취 따르다가 주님과 함께 영광에 이르기를 소망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