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스런 변화 막9:2-13
영광스런 변화 막9:2-13 출34:29-35,
괴테라는 위대한 문호가 쓴 작품 중에 하나가 「파우스트」라는 작품입니다. 이 파우스트라는 작품의 줄거리는 대충 이렇습니다. 주인공인 파우스트 박사가 사탄과 흥정을 합니다. 흥정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사탄은 앞으로 24년 동안 파우스트에게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고, 24년이 지난 이후에는 사탄은 파우스트의 생명을 거두어 가는 것입니다. 이게 계약의 내용입니다. 파우스트 박사는 이 작품에서 24년 동안 온갖 명예와 부와 권력과 존경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그렇게 짧을 수가 없었습니다. 24년이 쏜살같이 지나갔습니다. 24년이 되던 밤 12시에서 1시 사이에 사탄의 명령이 떨어집니다. 약속대로 파우스트의 생명을 가져오라! 사탄이 파송한 부하가 있습니다. 그 이름이 메피스토펠레스입니다. 메피스토펠레스가 와서 파우스트 박사에게 말합니다. 12시에서 1시 사이에 나는 그대 생명을 거두어 가겠다. 이 작품의 대부분은 12시에서 1시 사이의 긴장과 갈등과 회한에 관한 것입니다. 동네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파우스트 박사 집에서 뭔가가 일어난 것을 알게 됩니다. 이제 마지막 인생이 결판나는 순간입니다. 그 집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데, 동네사람들이 들어보니 마치 세상에 있는 모든 뱀들이 몽땅 모여서 또아리를 틀면서 서로 얽히고 부딪히고 울부짖는 소리 같습니다. 지금 파우스트 박사를 데리고 가는 그 마지막 장면을 연출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한참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는데 이 소리가 1시가 가까워오면서 거의 절정에 이르다가 1시가 다 되자 소리가 점점 약해지면서 그 속에서 파우스트 박사의 비명이 울립니다. "사람 살려 주시오." 괴테는 인간의 기막힌 고뇌를 이 작품 속에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사는 동안 사단과의 사귐을 가지고 사단의 종노릇 하며 죄와 세상과 짝하여 사는 삶은 제약도 구속도 없는 넓은 문, 넓은 길로 행하는 자유롭고, 달콤하고, 행복하고, 성공적이고, 멋있어 보이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 길의 끝인 죽음 앞에 섰을 때 절망하고, 후회스럽고, 고통 속에 절규할 수밖에 없는 무서운 심판이 따르는 참혹하고 암담한 형벌 앞에 서게 된다는 교훈이 담긴 작품입니다.
그러나 주님과 사귐을 가지고 주님의 십자가 발자취를 따르는 삶에는 고난의 길인 것 같지만 영광이 따르게 되고, 어리석은 길 같지만 생명의 길이고, 죽음 이후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하나님 나라 영광에 들어가는 복을 받게 됩니다.
오늘은 산상 변모 주일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영광스런 변화”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주님과 사귐을 가질수록 용모가 영광스럽게 변화됩니다.
구약 본문 출34:29-30에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했습니다.
모세가 애급 바로왕 공주의 아들로 있을 때는 혈기방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의 나이 80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급에서 이끌고 나와 가나안을 향해 가는 도중 시내산에 올라가 40일을 하나님과 대면하고 십계명을 기록한 두 돌 판을 가지고 내려올 때 얼굴에 광체가 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가까이 가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신약 본문 막9:2-3에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했습니다. 예수님이 세 제자들을 데리고 기도하시려고 산에 올라가셨다가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화되신 것을 제자들이 목격한 내용입니다.
사람의 신체 중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특히 얼굴은 바로 그 사람의 내면의 마음 상태를 비추는 거울과 같습니다. 사람의 얼굴에는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요긴한 오감의 작용이 바로 얼굴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시각과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 모두 얼굴에서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바로 얼굴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창조하셨습니다. 참으로 정교하고, 다양하고, 풍부한 인격을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의 수많은 생물 중에 하등 동물에는 얼굴이 없습니다. 여러 짐승에게 얼굴이 있다고 하지만, 생존을 위한 기능 외에 다른 가치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아름답고 균형미가 있고, 성숙한 모습의 얼굴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얼굴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엄청난 은혜를 받고 있음을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얼굴은 그 사람의 마음의 상태를 보여주는 창문이 된다는 점에서 얼굴은 그 사람의 전부요, 그 사람 자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 된 우리 인간이 가진 인격과 성품은 반드시 그 얼굴에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 세계 인간을 하나의 기계로 찍어내듯 해서 똑같이 만드시지 않고 모두가 다른 성품과 인격으로 창조하시고 얼굴의 모양도 모두 다르게 만드셨습니다. 얼굴은 우리 하나님이 만드셨지만 얼굴 속에 나타나는 인상, 얼굴 속에 비치는 인격은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격이 성숙해지면 인상이 바꾸어지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흐리게 되면 얼굴이 흐리게 되고 마음이 즐거우면 표정도 밝아질 수가 있습니다. 인생을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에게는 그 얼굴에 성실한 향기가 풍겨납니다. 그러나 추한 생각과 더러운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얼굴에서는 자연히 비열한 인상이 풍겨지게 마련입니다. 이것은 속이려야 속일 수가 없는 것이다.
성도들이 주님과 깊은 사귐의 관계를 가지게 되면
*빛나고 밝은 얼굴이 됩니다.
사람이 죄악에 사로잡히고 양심에 가책을 받으면 그 얼굴은 어두워지고 부끄러운 얼굴이 됩니다. 성도가 죄를 회개하고 버려 성결한 삶을 살 때 마음에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감격과 감사와 평안이 넘쳐 밝은 얼굴로 변화됩니다.
*소망이 넘치는 얼굴이 됩니다.
주님은 믿는 자들에게 은혜를 주시어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시고 하늘 기업의 소망을 가지게 하십니다. 말씀 중심으로 살면서 우리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사람은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은 요셉처럼 억울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거나 원망하지 않습니다. 욥처럼 불 시험을 당해도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바울처럼 사방으로 우겨 싸임을 당하고 수많은 시련 중에서도 하늘 소망이 넘치게 됩니다.
*영광스런 얼굴이 됩니다.
성도가 영광스런 주님과 교제 하다 보면 은혜의 영광이 몸에 배어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해 주는 얼굴이 됩니다. 마음에 온유 겸손이 배이게 되고, 마음에 긍휼과 사랑이 묻어나게 됩니다. 그 모습이 얼굴에 나타나게 됩니다.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하여 복음을 전하다가 사람들의 돌 세례를 받고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그의 얼굴은 천사처럼 빛나는 얼굴, 영광스런 얼굴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그 속에 천사 같은 마음, 그리스도의 충만한 사랑을 가졌기 때문에 천사의 얼굴처럼 빛이 난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과의 깊은 사귐을 가지고 빛나고 밝은 얼굴, 소망이 넘치는 얼굴, 영광스런 얼굴을 만들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주님과 사귐이 깊어질수록 마음과 삶이 영광스럽게 변화됩니다.
신약 본문 막9:2에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12제자가 있었는데, 그 중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제자는 주님을 더 가까이 하며 따랐습니다. 그래서 남다른 은혜를 체험하기도 했고, 주님으로부터 남다른 관심과 배려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변화산의 체험 외에도 죽은 회당장의 딸을 살릴 때에도 그 방에 베드로, 요한, 야고보와 부모 외에 들어오심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눅8:51)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 들어가 기도하실 때에도 다른 제자들은 입구에 않자 있게 하고 세 제자를 데리고 깊이 들어가시면서 고민을 말씀하시며 나와 함께 깨어 있어 기도할 것을 당부를 하셨습니다.(마26:36-46) 남다른 은혜를 체험한 그들은 한 때 주님이 잡혀가실 때 혼자 살겠다고 도망치기도 하고, 베드로는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는 자리에 떨어지기도 했지만 바른 신앙고백으로 주님의 칭찬을 듣기도 하고, 오순절 성령 강림 후 그들은 교회의 훌륭한 지도자로 기둥처럼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죽기까지 충성하면서 온갖 박해를 견디며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일을 통해 신앙의 위대한 족적을 남기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구약 본문에 나오는 모세 옆에는 제사장 아론이 있었으며, 아말렉과 전쟁할 때 함께 산에 올라가 아론과 함께 그의 손을 붙잡아 준 훌도 있었고, 미리암 선지자도 있었고, 시내산에 올라갈 때 모세를 수종 들었 던 여호수아도 있었지만 산 정상에서 하나님과 교통한 사람은 모세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모세 얼굴에 나는 광체를 보고 사람들이 그의 곁에 오는 것을 두려워한 것입니다. 그런 모세가 하나님의 칭찬을 받았고, 그 죽은 후에도 후손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어떤 환경이나 어떤 계기가 되든 그로인해 주님과의 사귐이 깊어진다면 그로인해 삶이 더욱 아름다워지고, 성결해지며, 복이 되고, 영광이 됩니다.
어느 장로님이 몸이 이상해서 병원에 입원하여 종합검사를 받게 되었답니다. 검사 결과 암으로 판명이 되었고 6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는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가족들은 이것을 본인에게 알리나 마나 하다가 결국은 본인에게 알렸습니다. 장로님은 믿음이 아주 좋은 분이었기에 자신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드렸습니다. 장로님은 그 때부터 자신의 삶을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직분을 맡아서 헌신한다고는 했는데, 그래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한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마지막으로 충성을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전도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열심히 전도하였습니다. 기도하지 못한 것을 깨닫고 열심히 기도하였습니다. 그 동안 헌금을 한다고는 했는데, 십일조 빼먹은 것, 감사할 때 감사하지 않은 것, 모든 것을 생각하면서 밀린 헌금을 한꺼번에 하였습니다.
이웃과의 문제도 정리를 하였습니다. 마음 상하게 하거나 상처를 준 사람이나 서운하게 한 사람에게 찾아가서 "내가 그 때는 잘못했었다. 미안하다."하면서 용서를 빌었습니다. 재산도 정리하였습니다. 재산의 얼마는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어주었고, 얼마는 자녀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먹고 사는 일로 바쁘고 분주해서 가족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함을 미안하게 생각하여 남은 기간 동안 가족을 위하여 봉사하였습니다. 심지어는 가족들에게 예수 잘 믿으라고 유언까지 써 놓았습니다. 그렇게 하다보니까 6개월이 지나갔답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 갈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 몸에 큰 이상이 없더라는 겁니다. 의사의 말대로 라면 이제 하나님께 가야 하는데, 6개월이 지나갔는데 아무런 이상증세가 나타나지 않아서 그 병원에 가서 다시 진단을 받았는데, 오진으로 판명이 되었습니다. 암 진단을 받고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살려주신 것이 아니라, 의사가 실수를 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교인들에게 알려지면서 야단이 났습니다. 멀쩡한 사람을 오진해서 이렇게 되었으니, 이게 큰 일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소식을 듣고 장로님을 위로하려고 심방을 갔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목사님이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장로님, 오진으로 인해서 평생 모아 놓은 재산을 다 써 버렸으니 어떻게 하지요?" 그랬더니 장로님이 이런 고백을 합니다. "목사님, 제가 이제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지난 6개월처럼 보람되게 살았던 적은 없습니다. 이전에도 평안한 삶을 살며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며 살았는데, 이번처럼 평안하고 기쁘고 성령 충만한 적은 없었습니다. 6개월간의 생활은 정말로 천국의 삶이었습니다. 이제 죽어도 좋습니다. 재산이 없어도 좋습니다." 하더라는 것입니다.
장로님은 오진으로 6개 월 시한부의 삶을 살면서 더욱 주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며 주님 앞에 충성된 모습으로 사는 동안 더욱 큰 은혜를 체험하면서 그의 마음도, 삶도 더욱 거룩하고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화가 된 것입니다.
세상과 짝하여 주님과 멀어지는 것은 사망으로 달려가는 미련한 길이지만 세상에서 돌이켜 주님을 가까이 하면 할수록 복이 되고, 영광이 되는 것을 믿고 남은 생은 더욱 주님을 가까이하며 살기를 힘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주님과 사귐의 결과는 영광스런 하나님 나라로 이어집니다.
서두에서 괴테의 파우스트에 관해 말씀드린 것처럼 사단과 짝하여 사귐을 가지고 죄의 종노릇 하며, 세상 풍조를 따라 살면 세상 사는데 거칠 것이 없이 자유분방하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을 꾀하고 죄를 행하면서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부와 명성을 가지고 살수도 있겠지만 죽음 앞에서는 끝없는 절망과 영원한 심판의 형벌을 피할 길도, 피할 장사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사귐의 길을 가는 자들은 세상 풍조를 버리고, 죄를 회개하고 버리며 말씀에 순종하여 의의 길을 가는 자들이 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 주님 가신 십자가의 길을 가지만 그 가운데 기쁨과 감사와 하늘 소망이 넘칩니다. 믿음으로 주님과 함께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사랑과 은혜로 보듬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으로 격려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위로해 주시고, 새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 길은 고난의 길이요,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무 낙이 없는 어리석은 자들의 길 같지만 세상 사람들이 알 수도, 받을 수도 없는 기쁨이 있고, 평강이 있고, 소망이 있고, 감사가 넘치는 은총의 길입니다.
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가진 모세는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까지 인도하는 사명을 감당하면서 때로는 백성들의 불신앙으로 인해 속이 터질 때도 있었고, 백성들의 원망을 많이 사기도 했고, 반역하는 자들로부터 생명의 위기를 만난 일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하나님의 간섭과 도우시는 은혜로 주어진 사명을 끝까지 감당 하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남다른 은혜를 체험한 베드로, 요한, 야고보는 후에 성령 충만을 받아 주님의 분부대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면서 수많은 박해를 받고, 위협을 받고, 고난을 당했지만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사명 감당하다가 영광스런 순교자가 되었고,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되어 거룩한 삶을 살다가 부름 받은 산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도 주님을 외면하고 산 자들은 다 세상에 속한자요, 사단에게 속한 죄인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악한 죄인이라도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 사귐을 갖게 되면 믿음 안에서 죄 사함을 받아 의인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광스럽게 변화되어 하늘 기업의 후사가 되는 복을 받습니다.
일본에 석정섭태랑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소년시절부터 어떤 부부가 경영하는 큰 상점의 점원으로 종사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 그 상점에서 일을 보고 있었는데 그 상점 주인이 불행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후 미망인이 계속하여 상점을 경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청년이 과부가 자는 방에 들어가 부정한 관계를 맺고 살 것을 요구하였더니 미망인이 거부하자 청년은 그만 여자를 겁탈하고 발설될까봐 두려워 여자를 죽이고 옆집에서 석유 한 초롱을 사다 상점에 뿌리고 불을 질렀습니다. 그 청년은 하루 밤에 강간, 살인, 방화의 무서운 죄를 범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도주하여 피신해 전전하던 중 경찰 수사에 걸려 진범으로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재판을 받아 사형언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형편에 있는 청년을 한 목사님이 찾아왔습니다. 처음에는 목사님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지만 한 번, 두 번, 상대하고 여러 번 찾아가 대화를 하게 되니 청년 마음속에 성령의 감동으로 회개하고 예수 믿게 되어 그의 마음은 변하여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흉악범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변화되니 감옥에서는 사형수로 되었으나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모범수로 변화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형수가 감형되어 무기징역으로 되고, 그의 옥중 생활은 감사와 속죄의 생활로 가장 어렵고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여 10년을 복역하니 특사로 석방 령을 내렸으나 그는 출옥하지 않고 20년을 더 봉사하다가 마침내 성자라는 칭호를 받기까지 하고 옥중에서 죽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 변화를 받고 주님과의 사귐은 이처럼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되어 영광스런 하늘 후사가 됩니다. 정리
오늘은 산상 변모 주일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영광스런 변화”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주님과 사귐을 가질수록 용모가 영광스럽게 변화됩니다.
◑.주님과 사귐이 깊어질수록 마음과 삶이 영광스럽게 변화됩니다.
◑.주님과 사귐의 결과는 영광스런 하나님 나라로 이어집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