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가 지닌 참 가치의 근원 눅4장24-30
성도가 지닌 참 가치의 근원 눅4장24-30, 골2:1-7
어떤 사람이 미국의 어느 산에서 사람의 해골 한 구를 발견했습니다. 그 해골의 손뼈 옆에 크고 노란 돌이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황금처럼 태양빛 아래에서 찬란한 광채를 냈습니다. 그 돌의 빛깔은 황금과 비슷하지만 사실은 가치가 전혀 없는 특이한 돌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돌은 우인금 이라고 불립니다.
광물학 지식이 있는 사람은 보자마자 즉시 그것이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여행으로 이 산에 왔다가 그 돌덩이를 보고 큰 황금이라고 여겨 긴 여정 동안 너무 힘이 들었지만 그것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는 속으로 자기가 큰 황금을 얻었으니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걸어가다 점점 지쳐서 나중에는 더 가기가 힘들었지만 그 돌은 버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그 돌을 안고 걸었지만 결국 길가에 쓰러져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는 끝까지 우인금을 꼭 안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에는 아무 가치도 없는 우인금을 소중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여 그것을 소유하려고 애를 쓰다 인생을 낭비하다 죽음에 이르는 어리석은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성도가 지닌 참 가치의 근원”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절대 가치가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모두 상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들입니다. 사람도, 명예도, 권세도, 연락도, 물질도 모두 상대적인 가치를 지닌 것들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물질에 절대적인 가치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거기에 치심 하여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급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할 때 안식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같이 만나를 주셨습니다. 그들 중에 욕심을 내어 저장해 두고 먹으려고 하면 영락없이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나서 못 먹게 만드셨습니다.
만약 그들이 일주일분을 가져다가 먹을 수 있도록 하셨다면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 감사를 드리는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만나의 귀중함을 알겠습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감사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다윗은 시편 23:1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 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남는다는 말은 없습니다. 주님의 은혜도 때를 따라 적당히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한 달 두 달 교회에 안 나와도 넉넉하게 살 수 있도록 은혜를 한꺼번에 주시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게 되고, 멀리 하게 되고, 은혜가 식어지기 시작해서 결국 주님을 떠나게 되어 영적 생명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사모하며 날마다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난할 때보다 풍성할 때에 더 많이 범죄 합니다. 여유가 있는 것 때문에 잘못되는 일이 많습니다. 지방에 있는 어느 여 집사님 한 분이 남편과 함께 교편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해 전에 남편이 전교조 활동을 하다가 실직을 당해서 조그마한 사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려웠는데 사업이 잘되어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런데 돈을 벌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남편에게 여자가 생긴 것입니다. 그 가정에 어두운 그림자가 덮여 가정불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이 집에도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나중에는 거의 1년 동안 오지 않아서 가정은 지옥이 되고 아이들은 방황하고 부인 마음도 다 찢어졌습니다. 이제는 타락한 남편이 보기도 싫어졌습니다. 이 가정이 왜 이렇게 불행하게 되었습니까? 매월 월급 타서 살아가던 이들에게 하루아침에 돈이 많아지니까 이것이 그 가정의 불행이 된 것입니다. 물질도 내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만큼 ,내 이웃을 위해서 쓸 만큼, 내 가정을 위해서 쓸 만큼 주심이 복입니다.
세상 것과는 달리 예수님에게는 절대 가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질 그릇에 비유를 했고, 자신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보화로 비유했습니다.(고후4:7) 서신서 본문 골2:3에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계시로 이 비밀을 알았기 때문에 그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제일로 여겼으며, 빌 3장에서 말하기를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였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모든 것을 해로 여긴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어떤 보화가 감추어져 있을까요?
먼저 그분 안에는 진리의 보화가 한없이 충만히 있습니다.
요1: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요, 진리 자체가 되신 분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가르침은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달리 권위가 있고, 권세가 있었습니다.
다음에 그분 안에는 영생의 보화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참 생명, 영원한 생명이 숨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생명 자체가 되시고 믿는 자들에게 이 생명을 주실 수 있기 때문에 요14:6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으며, 요11:25-26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하셨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 안에는 영생의 보화가 숨겨져 있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비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그의 백성이 아니면 이 비밀을 깨달아 알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 안에는 천국의 보화가 숨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13:44에서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보화가 곧 그리스도이시며, 주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천국이 예비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14:2-3에서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잠시 있다가 썩어지고, 변하고, 없어지는 세상 것들에 소망 두지 말고, 절대 가치를 지닌 예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예수님 안에서 참 가치를 지닌 성도에게는 상대적인 가치가 있습니다.
성도가 하나님 앞에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생명 되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보시고 인정하십니다. 그 믿음이 적어 바로 살지 못할 때는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며 책망하시기도 하시고, 안타까워하시기도 하시고, 징계의 매를 드시기도 하시며, 슬퍼하시고, 염려하시기도 하십니다. 믿음이 큰 자들을 보실 때, 또 성숙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성도들을 보실 때 “네 믿음이 크도다.”하시며 칭찬하시고, 기뻐하시며, 흐뭇해 하시십니다. 그런 성도들을 위해 더욱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며, 상급과 면류관을 예비하여 주시고, 존귀케 해 주십니다. 그래서 성도의 가치는 상대적인 가치입니다. 어떤 이들은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겨우 살아남은 자처럼 부끄러운 구원을 얻을 자도 있고, 어떤 이들은 높은 점수로 대학에 들어가는 것처럼 여유 있고, 넉넉하게 구원의 대열에 참여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선지자들처럼, 사도들처럼, 순교자들처럼, 성령 충만하여 충성스런 성도들처럼 칭찬과 자랑스럽고 영광스런 면류관과 상급이 따르는 구원도 있습니다.
믿음생활 하는 성도들이 은혜를 충만히 받고 큰 믿음으로 나아가게 되면 주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더욱 존귀한 자로 쓰임을 받는 자들이 됩니다.
일찍 남편을 잃고 떡 행상을 하면서 두 아이를 키우던 과부가 있었습니다. 어느 주중에 다니던 교회에서 특별집회가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그가 집회에 참석하기를 바랐지만 밤늦게까지 떡을 팔아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기에 집회에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목사님께서 그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떡값을 주겠으니 대신 집회에 참석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집회에 참석하였고 집회를 통해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어느 날 집회 도중에 그가 갑자기 쓰러졌고 집회가 끝나는 날까지 그 자리에 쓰러진 채로 있었습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사람들이 그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피곤한 삶에 찌들어서 어두웠던 얼굴이 눈이 부시도록 환하게 빛이 났기 때문입니다. 받은 은혜가 너무나도 커서 그가 주님을 찬양했는데 찬양이 기가 막히도록 은혜로웠습니다.
그 후 목사님께서 집회를 인도하러 타 교회에 가실 때마다 그를 데려가셨고 그의 찬양과 간증을 통해서 많은 성도들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에게 혼담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두 자식이 딸린 과부이긴 했지만 그의 영혼과 삶이 무척이나 은혜롭게 변화되었기에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떡 행상을 하면서 힘들게 두 아이를 키우던 과부는 어느 대기업 사장의 며느리가 되어서 잘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구하면 주시고, 찾으면 찾게 되고, 두드리면 열린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나의 욕심이나 고집이나 세상 것으로 차 있으면 결코 좋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의 옛 사람이 죽고, 내 안에 예수님으로 충만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고,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면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고, 주님의 편지가 되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참으로 가치 있는 존귀한 성도가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문 골2:7 말씀대로 예수님 안에 뿌리를 내리고, 세움을 받고, 믿음에 굳게 서서 흔들림 없이 감사함을 넘치게 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주님이 기뻐하시고 자랑스럽게 여기시는 성도로 살다가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자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3.하나님께서 보시는 불신앙인의 가치는 어떠할까요?
사람이 어느 면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게 되면 몸값이 많이 올라가게 됩니다. 우리나라 축구선수인 손흥민은 2015년 토트넘으로 이적할 때 390억 이적료와 연봉 65억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야구 선수 중에도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 많이 있습니다. 회사에서도 최고 경영자인 CEO들은 많은 연봉을 받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사람의 가치를 그가 받고 있는 몸값에 두기도 합니다. 세상은 사람이 가진 것, 즉 소유(所有)로 사람을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가 가진 재물, 학위, 재능, 외모 등으로 평가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또 사람들은 그가 한 것, 즉 행위(行爲)로 사람의 가치를 매깁니다. 명예, 권세, 업적, 학력, 성취 등을 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런 가치 기준을 가지고 사람들의 가치를 평가하실까요? 물론 많은 몸값을 받는 자들 가운데도 하나님의 인정과 사랑을 받는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도 그들의 재능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주님을 믿는 믿음을 보시고, 그들 안에 거하는 보배이신 예수님 때문에 가치를 인정받고,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몸값이 아무리 많아도, 선행이 아무리 많아도 어떤 이유로든지 절대 가치를 지닌 주님을 떠나 있는 불신앙인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 피로 값 주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이 사랑을 외면한 자들은 죄 사함을 받을 수 없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믿음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없습니다. 오늘 복음서 본문 내용은 예수님의 초기 사역 중의 하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설교를 하시고 돌아가실 뻔 했습니다. 불쾌한 감정을 가지게 된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을 밖으로 끌고 가 산 낭떠러지로 떨어뜨려서 죽여 버리려 시도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본문 눅4:24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는 말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시절부터 30년 동안을 나사렛에서 성장하셨습니다. 나사렛은 당시 두메산골 빈민촌으로 좋은 곳이라고는 아무 것도 찾아볼 수 없는 보잘 것 없는 한적한 산골 마을이었습니다. 아버지 요셉의 직업을 따라 목수 일을 배우면서 그 동네에서 30년이나 살았으니까 동네 사람들이 예수를 가난하고 목수 직업을 가진 평범한 소시민의 하나로 봤습니다. 예수가 고작 하는 일은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노동자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노동자의 품삯을 받으며 생계나 겨우겨우 유지하고 살았습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나는 선지자라고, 메시야라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엉뚱한 소리를 한다고, 정신 이상자 취급을 했습니다. 막 3:21에 “예수의 친속들이 듣고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그 친속들이란 모친과 동생들과 누이들이라고 성경에 밝혀져 있습니다. 30년 전에 천사의 소리를 들으면서 처녀의 몸으로 잉태하고, 출산한 어머니요, 엘리사벳의 방문을 통해 성령의 은혜도 체험했으며, 동방박사들의 경배를 보고, 목자들의 증언을 듣고, 시므온과 안나의 예언을 듣고, 12세 때 성전에서 지도자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목격한 어머니마저도 아들 예수가 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아무 것도 모르는 동네 사람들이 예수를 믿지 않았던 것은 무리가 안일 것입니다. 외형적으로 보면 믿을 만한 근거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본문 2절에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계시와 조명이 없이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라고 믿고 고백하는 일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불신하고, 하나님을 떠나 살면서 세상 풍조를 따라 자행자지하며 삽니다. 사단의 종노릇하며, 죄의 종이 되어 주님을 대적하며 삽니다. 하나님 대신 우상을 섬기며 삽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 앞에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고사하고 한탄의 대상이 되고, 진노와 저주와 형벌의 대상이 된다고 성경 곳곳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복음서 본문의 말씀처럼 아합 왕과 그의 아내 이세벨이 불신앙으로 선지자들과 믿음의 사람들을 심하게 박해했던 당시에도 아합 왕의 미움을 받고 지명 수배의 대상이 된 엘리야 선지자를 대접한 믿음의 사람 사렙다 과부는 기적적인 은혜를 체험하게 하셨고, 아람의 나아만이 믿음으로 엘리사를 찾아왔을 때 문둥병을 고침 받는 치유의 은총을 받게도 하셨습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나오는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믿고 회개하는 자는 주홍 같이 붉은 죄도 흰 눈같이 성결해 질 수 있습니다. 믿음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믿음 없이는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불신앙은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가장 큰 죄입니다.
우리 모두 불신앙과 불순종의 사람은 결코 하나님 앞에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알고 오직 우리의 보배이신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순종하며, 사랑하며, 주님만을 높이고 살다가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인정과 칭찬과 예비하신 상급을 받는 복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성도가 지닌 참 가치의 근원”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절대 가치가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참 가치를 지닌 성도에게는 상대적인 가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불신앙인의 가치는 어떠할까요? 불신앙은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가장 큰 죄로 결코 그런 자들은 죄 사함을 받을 수도 없고, 하나님 앞에 설 수도, 인정받을 수도 없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