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마태복음

영생의 좁은 문, 좁은 길 마7장13-14

nam씨 2015. 3. 6. 22:29

영생의 좁은 문, 좁은 길 마713-14, 2:12-18

 

마태복음 5, 6, 7장을 일컬어서 산상 수훈이라고 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오르셔서 보화와 같은 말씀으로 가르치셨다고 해서 산상 보훈이라고도 부릅니다. 주옥같은 말씀이 산상수훈에 기록이 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8복은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말씀입니다. 아무튼 예수님의 많은 가르침 중에서도 이 산상보훈이 핵심이 되는 말씀입니다.

 

톨스토이는 이 말씀이 너무 좋아서 미치다시피 탐독을 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이 말씀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소중하게 읽히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소중한 것처럼 성도들은 이 말씀을 바로 이해하고 이 말씀처럼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 할 경우가 많습니다.

 

철학자 키엘케골은 현대 기독교인들을 다음과 같이 빗대어 말했습니다. “요즘 기독교인들은 너무 염치가 없다. 그들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 자신들만 잘 살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참된 정신은 사랑이고, 그 사랑은 자기에게 지워진 십자가를 지는 것, 곧 자기를 희생하고 남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축복을 빌기 전에 자기희생 즉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에 얼마나 힘쓰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오늘 사순절 세 번째 주일을 맞아 영생의 좁은 문, 좁은 길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영생의 문제는 인생의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입니다.

 

어떤 중국인과 미국 청년이 대화하는 중에 중국인이 물었습니다. "당신네 미국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수염 깎고 세수를 합니다." 그러자 중국인은 "그래요? 우리 중국 사람은 제일 먼저 옷을 입는데요." 하면서 서로 웃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실 하루의 생활에도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가 하는 우선순위의 문제가 있습니다. 이 우선순위를 바로 택하는 것은 그날의 성패를 크게 좌우합니다. 더 나아가 인간의 삶에 있어서 일생의 우선순위를 어디다 두어야 하는가 하는 것은 실로 누구에게나 중대한 문제입니다. 어떤 이는 돈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 듯하고, 어떤 이들은 권력을, 어떤 이들은 지식을, 어떤 이들은 명예를 최고의 목표로 삼는 듯합니다. 그러나 이것들 자체가 인간의 삶의 최고 목표가 되겠는가 하는 문제는 깊이 생각할 여지가 있습니다. 돈이나 지식, 지위나 명예 등이 인간의 삶에 도움은 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최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주님은 막8:36에서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그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고 말씀 하셨습니다. 또한 산상 보훈에서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의식문제에 목표를 두지 말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그 모든 것을 더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의 선생이요, 유대인의 지도자인 니고데모는 한 밤 중에 예수님을 찾아와 예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온 선생인줄 안다고 말했을 때 주님은 사람의 가장 중요한 거듭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영생의 문제를 언급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외치고 전하신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주께서 삭게오의 집에 가셔서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19:10)하셨습니다. 주님이 가르친 비유 중에 천국 비유가 많고, 주님의 가르침을 보면 끊임없이 듣는 이의 눈과 마음을 하나님 나라를 향하게 하셨습니다. 18장에서는 불구자가 되더라도 반드시 영생을 얻는 자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만큼 영생의 문제가 중요하고 시급한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에 대해 요20:31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또한 요한일서 5:13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희생 하시면서까지 누구든지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우리 모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 얻는 복 된 자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2.영생에 이르기 위해서는 좁은 문, 좁은 길을 가야 합니다.

 

영생에 이르는 문은 사람들이 쉽게 들어 갈 수 있는 넓은 문이 아니라 좁은 문입니다. 세상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문은 넓은 문입니다. 13절에 보면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라고 하였습니다. 큰 문은 무엇을 가지고도, 다 통과할 수 있는 문입니다. 우리들의 재물도, 학식도, 권세도, 명예도 모두 가져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은 크고, 쉽고, 편안한 것을 좋아합니다. 또한 눈에 보기 좋고, 감각적이며, 화려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넓고 큰 문은 멸망의 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이 심판을 받게 되고, 멸망이라는 쓰디 쓴 종말이 얼마나 참혹한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 넓은 문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좁은 문은 우리에게 유익을 줄 것 같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고, 인기가 있는 것도 아니며,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고, 좀처럼 쉽게 발견될 수 있는 문이 아닙니다. 거기다가 들어가기도 쉽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있어야 들어가는 문입니다. 그래서 찾는 사람이 별로 없는 문입니다. 이것, 저것 욕심스럽게 다 짊어지고 들어 갈 수 없는 좁은 문입니다. 그러기에 물질의 탐심을 가진 부자 청년은 주님을 따르고 싶었으나 많은 재물이 걸림돌이 되어 주님 따르는 영생의 길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유다는 제자로 부름을 받기까지 했어도 영생 보다 세상적인 기대와 물질의 탐욕을 버리지 못해 결국 주님을 배신하고, 주님 따르는 일에, 영생에 참예 하는 일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하다가 주님이 어떠한 분인가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유대인들의 올무에서 풀어주려고 백방으로 힘썼지만 자신이 통독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될까봐 주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판결하고 말았습니다. 세상 권세 때문에 영생의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그 문에 들어가기를 결단 합니다. 14절에 보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좁은 문이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믿는 자만이, 그 문을 들어갈 수 있습니다. 왜 스스로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그 고통스러운 문으로 들어갑니까? 그것은 구원 때문이요, 영생 때문입니다. 주님을 따르기 위해 배와 그물을 버리고,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세관의 자리를 버린 자들은 주님의 제자가 되고, 주와 복음을 위해 목숨까지 버리며 영광스런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집이나 직장에서 쫒겨 나기도 하고, 박해를 당하기도 하고, 심지어 목숨을 잃는 일도 있었지만 믿음으로 영생의 문인 줄 알았기에 기꺼이 감수하고 그 문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이 문을 통과한 그리스도인들은 좁고 협착한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이란 단순히 좁은 문을 통과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좁은 길을 걸어가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길이요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는다는 단순한 사실에, 기독교 구원의 전부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의 삶을 걸어가야 하는 좁은 길에, 구원의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구원의 문이란, 구원의 길과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좁고 협착한 길이라는 뜻입니다. 의로운 길이요, 성결한 삶이 요구 되는 길이요, 사랑으로 섬기는 선한 길이요, 믿음의 발자취를 따르는 길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다른 외롭고 고독한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힘들고, 귀찮고, 어렵지만, 자기를 부인하고 그냥 묵묵히 좁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길이요, 십자가의 길입니다. 고독과 고난이 없는 축복과 영광은 없습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에게 있는 고난이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실패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영광의 시작일 뿐입니다. 그러기에 그 길이 힘들게 여겨지지 않고, 기쁨과 감사와 소망과 평강이 넘치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천국 비유 가운데 밭에 감춰진 보화의 비유, 진주의 비유를 하셨습니다. 그 가치를 알기 때문에 모든 것 팔아 그 밭과 진주를 사서 기뻐합니다. 바로 천국과 영생을 발견한 자의 결단과 기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좁은 문, 좁은 길로 가되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다가 영생에 이르시기를 소망합니다.

 

3.영생에 이르기 위해서는 끝까지 이루어 가야 합니다.

 

서신서 본문 빌2:12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했습니다. 우리는 산상 수훈이나 서신서의 말씀이 누구에게 주신 말씀인지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끔 살다보면 그 사람한데 한 말이 아닌데, 잘못 알아듣고 오해를 하여 다투기도 하고, 관계가 깨어지기도 합니다. 성경말씀도 어떤 것은 모든 사람에게, 어떤 것은 지도자들에게, 어떤 말씀은 장로에게, 어떤 말씀은 남자에게, 여자에게, 어른에게, 아이들에게 하는 말씀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믿는 자에게 하시는 말씀도 있지만, 불신자에게 하시는 말씀도 있습니다.

 

오늘 두 본문은 불신자에게 예수를 믿게 하기 위해 하신 말씀이 아니라, 이미 믿고 있는 그리스도인들, 즉 그리스도의 제자 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 되려고 노력하는 자가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자녀 된 자이고, 영생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자가 아니라 이미 영생의 길로 들어선 자들입니다. 5: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했습니다.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즉 영생을 얻으려고 열심히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얻었습니다.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서서히 옮겨져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망에서 벗어나 생명으로 완전히 옮겨진 자입니다.

 

예수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어 이미 영생의 길, 생명의 길에 들어선 우리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로 가라”, 바울이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하신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한 말씀을 하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어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 되었으므로 이 땅에서 어떻게 사느냐?”하는 삶의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너희는 나를 따르는 자로 편한 길만을 선택하여 가지 말고, 어렵고 힘들고, 남들이 꺼려하고, 가지 않으려는 그 길로 가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생명의 길로 가고 있기에, 멸망의 길로 가는 자와는 그 삶이 달라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그들이 다 넓은 길을 갈 때, 즉 그들이 평안한 길, 쉬운 길을 선택할 때 우리는 어렵고 힘든 길로 나아가서 고통당하는 자들을 섬기는 삶이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도 13절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우리들 속에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14절 이하에도 흠 없는 모습으로 살아 세상의 빛으로 나타내는 자들이 되라고 당부합니다. 즉 영생 얻은 자들은 그의 걸 맞는 삶이 되어야 하고 그 삶을 위해 끊임없이 힘써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 받은 성도는 어떠한 경우에도 구원 받은 성도다운 모습을 가지고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어느 교회 장로님 한 분이 40대 초반에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그 때 그 장로님은 매우 유능한 분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암으로 40대 초반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부산 복음병원에서 담임목사와 가족들이 둘러 서 있는 병상에서 장로님은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담임목사의 손을 꼭 잡고 목사님 저는 준비가 되었습니다.” 이 말을 하고 눈을 감았습니다.

 

본문을 기록한 바울은 그의 말년에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7-8) 하였는데, 그가 달려온 길은 어떤 길입니까? 평안하고, 세상의 영광스런 길이 아니라, 고후11:23-27에서 말씀하였듯이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바로 좁은 문, 좁은 길이었습니다. 그는 좁은 길을 열심히 달려왔기에 이제 인생의 마지막에 주님이 주실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좁은 문, 좁은 길로 가다가 영생의 영광에 들어가는 성도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생의 문제는 인생의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입니다. .영생에 이르기 위해서는 좁은 문, 좁은 길을 가야 합니다. .영생에 이르기 위해서는 끝까지 이루어 가야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