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고린도후서

새 시대의 새 믿음 (고후 3:1-18)

nam씨 2018. 1. 6. 14:02


새 시대의 새 믿음 (고후 3:1-18)


2018년 희망찬 새해 첫주일을 맞아 “새 시대의 새 믿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 인생을 영적으로 분류하면 크게 두 종류로 분류됩니다. 사도신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산자는 믿는 자이고 죽은 자는 불신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도 구약적성도와 신약적성도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구약은 오실 메시아를 믿었고, 신약은 오신 메시아를 믿기에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신약시대를 살면서도 아직도 구약적 신앙으로 살아가고 있는 유아적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신약의 새 시대를 주셨지만 아직도 옛 것에 머물고 있다면 새해에는 새 믿음으로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구약과 신약은 여러 면에서 차이점이 있습니다. 다 언급할 수 없지만 중요한 하나는 구약은 예표요 신약은 실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골2:16-17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에서는 몸 즉 그림자의 실체가 나타났으므로 그림자의 내용인 그리스도는 그대로 믿지만 예표적인 것은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히8:13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신약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아직도 여러 면에서 구약적 신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신약시대에 주신 더 크고 영원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은혜와 사명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새 시대의 새 믿음은 어떤 것입니까?


1. 새 시대의 믿음은 돌비의 삶이 아니요 심비의 삶입니다.


고후3: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구약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 돌비에 썼지만 신약은 다릅니다.


여기 육의 마음판이라 했는데 개역성경에는 한문으로 심비라고 했습니다. 구약에는 돌비고 신약에는 심비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두 돌비에 십계명의 말씀을 새겨주셨습니다. 한 개의 돌비도 되는데 왜 두 돌비였을까요? 이 역시 어떤 비유와 상징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십계명은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으로 크게 두 계명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마22:37-40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하셨습니다.


신약도 구약과 그 중심사상이 같습니다. 십계명도 지켜져야 합니다. 그러나 신약의 성도는 그 이상이어야 합니다. 신약에는 다른 신 섬기지 않는 것으로 다 된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까지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까지 나가야 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사람의 완고함을 아시고 최소한 다른 신만 섬기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주셨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성품과 목숨을 다해 사랑할 뿐 아니라,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뿐 아니라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계명에 없는 목숨을 추가하셨고, 원수사랑을 추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십계명을 지킴으로 신앙생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부족한 것입니다. “나는 다른 신을 배척하고 하나님만 섬기며 우상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지 않으며 주일을 지키고 살인과 간음도 도적질도 욕심도 거짓말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잘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이 십계명 정도의 수준은 우리가 지킬 최소한의 계명일 뿐입니다. 이 정도도 지키지 못하면 신자가 아닙니다. 신약에서는 이 법이 우리 마음 중심에서 나옵니다. 8:1-2에 나오는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성령 받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지는 놀라운 법입니다. 범죄 하지 않기 위해서 힘들게 참는 그런 믿음이 아니라 우리의 중심에서 흘러넘치는 생명적인 선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5:38-44) 하셨는데 이것이 가능합니다.


구약에는 살인만 하지 않으면 됐습니다. 그러나 신약에는 마음으로 미워함도 살인이고 음욕도 간음이요 욕심도 도적질입니다. 그만큼 신약 성도에게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죄가 꿈틀거린다면 아직 심비가 아닌 돌비에 머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성령의 새 법이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2. 성경이 해석되면서 체험하며 사는 시대입니다.


고후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이 말씀은 구약의 말씀이 바로 해석되어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믿어진다면 주의 형상으로 변화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성경도 성경입니다. 그러나 율법이나 예표나 상징이나 역사나 여러 교훈을 통해서 힌트하신 것이지 그 자체로 복음이 되지 못한 부분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구약은 모든 말씀이 신약의 말씀으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바른 해석을 통해 구약과 신약이 만나면 그 말씀이 우리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 되면서 엄청난 파워를 일으킵니다.


메시지 자체도 파워일 뿐 아니라, 신약에 크게 부어지는 성령 그 자체도 큰 파워입니다. 구약에도 하나님께서 예배에 임하셔서 그 영광을 받으시고 은혜와 평강을 베푸신 것은 사실이지만 신약시대와 같이 그렇게 풍성한 시대는 아니었습니다. 소수의 선지자들에게 성령의 은사가 임해 성경 기록을 위한 말씀 외에도 예언했지만 신약시대처럼 모든 성도에게 임하신 그런 보편적이고 풍성한 은사는 아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그 낡고 느슨한 제도나 전통이나 관습이나 열심으로는 은혜의 그 충만함을 담아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한 하나님이고 성령도 하나시지만 믿음에 따라 그 은혜의 충만은 다릅니다. 신약시대를 산다지만 율법이나 교회의 전통에 따라 적당히 지키는 믿음으로는 주신 은혜와 은사도 감당하지 못하고 그 불을 모두 꺼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눅5:36-38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에도 부흥의 역사가 있었지만 많지 않았습니다. 지금 역시 신부의 마음으로 섬기는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없다면 시대는 신약을 사나 구약적인 자일뿐입니다. 구약은 많은 부분은 제사장이 대신하고 백성들은 그냥 아멘만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천주교는 구약 냄새가 퀴퀴하게 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구약신앙을 초보적 유아신앙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지만 아직도 복음을 알지 못해 율법 아래 있고, 신랑 예수에 대한 사랑과 열심 없이 하나님을 섬긴다면 그는 구약적인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신약의 특징은 고대하던 메시아가 오셨고 또 지금도 성령 안에서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모시고 생명 안에서 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일1:1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했습니다.


신약시대도 듣기도 합니다. 성경을 통해서 듣습니다. 열심히 들어야 합니다. 이 최소한의 은혜를 소홀히 하면 그는 불신앙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듣는 데서 그치지 말고 직접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영접하고 기도함으로 체험하고 사랑함으로 더욱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주님과 하나 되어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3. 새 시대의 믿음은 성령의 감동 속에서 더 온전하고 충만하게 살아가는 믿음입니다.


고후3:9-11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이처럼 더욱 영광스럽고 충만한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2장에 놀라운 모습을 봅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2:44-47) 꼭 천국의 한 모퉁이를 보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신약입니다.


구약에는 물질생활이래야 십일조와 헌물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십일조는 최소한의 드려야 할 의무이고 그 이상으로 사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눅11:42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지니라하셨습니다.


이것도 행하라는 것은 십일조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저것도 버리지말라는 것은 공의 즉 나누는 일과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십분의 일은 물론 성령의 감동 속에서 나의 것을 내 것이라 하지 않고 때로는 성령께서 강권하신다면 나의 것 전부라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몸도 최소한 정한 날과 정한 예배에는 반드시 드리지만 성령이 감동하시면 일생을 나실인처럼 하나님의 사역에 헌신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항상 희생과 무거운 짐만 강요하시지는 않습니다. 감동 따라 자원하게 하시고, 쉬게 하시면 쉬고, 감동 주시지 않으면 지나쳐도 됩니다. 구약에는 하루만 안식일이지만 신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 안에서 매일 평안을 갖는 참 안식입니다.


구약의 제비뽑기 제도 역시 신약에는 사라져야 할 제도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시대는 신약이지만 당사자들은 신약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약보다 더 부정부패하고 지역이나 돈 봉투에 움직이는 죄로 가득 찬 영적상태에서 투표하겠다고 하니까 문제입니다. 정말 성령의 사람들이라면 제비는 사라지고 투표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행 1장과 같이 추천한 후 제비를 뽑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신약의 밝고 맑고 역동적이며 거룩하고 풍성하고 온전한 시대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은 현재 신약적입니까? 구약적입니까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 없이 신약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에 성령의 새 술을 담을 새 믿음이 있는지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예수 믿고 신부의 사랑으로 하나님을 섬겨서 성령으로 충만하여 더욱 온전하고 풍성하고 복된 신약의 성도들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