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이사야

이사야53장: 메시아의 고난과 대속사역

nam씨 2017. 4. 8. 10:16



이사야53장: 메시아의 고난과 대속사역

[1절]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 . . .

선지자는,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라고 말한다. 메시아의 속죄 사역은 모든 전도자들이 전하는 내용, 전해야 하는 내용이다. 메시아의 속죄는 복음의 중심내용이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 말했다(고전 1:22-24).

[2절]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 . . .

선지자는 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라고 말한다. 그는 메시아의 외모를 예언하며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의 외모를 상상케 만든다. 메시아는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으시며 고운 모양도 풍채도 없으시고 외적으로 사람들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고 묘사되었다.

[3절]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 . . .

선지자는 또,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艱苦)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疾苦)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라고 말한다. ‘간고를 많이 겪었다’는 원어(이쉬 마크오보스)는 ‘고난의 사람’(a man of sorrows)(KJV, NASB, NIV)이라는 뜻이다. ‘질고’라는 원어(콜리 ylij?)는 ‘병, 병으로 인한 고통’이라는 뜻이다. 메시아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버림을 받으며 많은 고난을 받고 고통을 당할 것이다.

[4-5절]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 . . .

선지자는 또 말한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질병과 고통]를 지고 우리의 슬픔[간고, 고난]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선지자는 메시아의 고난이 우리를 위한 고난, 곧 대속의 고난임을 증거한다. 그는 자신의 잘못 때문에 고난을 당하신 것이 아니었다. 그는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에 고난을 당하셨다. 그는 우리의 죄의 형벌을 담당하신 것이다. 그의 속죄의 고난 때문에 우리는 죄사함과 평안을 얻었다.

[6절]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 . . .

선지자는 또,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다 길 잃은 양같이 우리 자신의 뜻대로 그릇된 길로 갔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메시아에게 담당시키셨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말했고(요 1:29), 예수께서는 자신에 대해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고 말씀하셨다(요 6:51). 히브리서 10:12는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고 말했다.

본문은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우리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자. 사람은 피부가 곱고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조화가 있을 때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러나 마음이 곱고 사리분별력과 판단력이 있고 경건과 도덕성과 인격성이 있지 않다면 외적 아름다움의 가치는 그렇게 크지 않다. 잠언 31:30은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다”고 말했다. 우리는 사람의 외적인 조건, 즉 그의 외모, 학력, 재산, 사회적 신분 등으로 그의 가치를 다 판단치 말자. 우리는 그런 것들보다 그의 경건성, 그의 도덕성, 그의 인격성이 더 가치 있는 요소임을 깨닫자.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를 감사하며 그 은혜 안에 항상 거하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추하고 더러운 죄들 때문에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셨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우리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의 피밖에 없다. 우리는 그 피 공로를 믿고 감사하며 오직 그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양으로 순종하며 충성하며 살자.

셋째로, 우리는 신앙의 길에 있는 고난을 두려워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셨으니 우리도 그를 본받자. 베드로전서 4:12-13은, 우리에게 닥친 불시험을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여겨 즐거워하라고 교훈했고, 히브리서 13:13은, 우리가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고 말했다.

7-12절, 메시아의 대속의 죽음

[7절]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 . . .

선지자는 말하기를,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한다.

선지자는 메시아의 핍박과 고난에 대해 에언한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라는 말은 “그가 핍박을 받고 고난을 당했으나”라는 뜻이다(KJV, NASB, NIV). 메시아는 핍박을 받고 고난을 당하나 그 입을 열지 아니할 것이다. 그는 마치 도수장 곧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암양(라켈)같이 그 입을 열지 않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공회 앞에서 거짓 증인들의 거짓 증거들을 들으셨으나 잠잠하셨다(마 26:63).

[8절]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 . . .

선지자는 또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라고 말한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다”는 말은 “그가 핍박과 심문을 받아 처치되었다”(NASB) 즉 죽임을 당했다는 뜻이다. 선지자는 핍박과 심문을 당하고 처형되실 메시아가 마침내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메시아는 공적으로 정죄받고 죽을 것이다.

선지자는 그 메시아의 죽음이 속죄의 죽음이라고 말한다. 그는 말하기를,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라고 한다. 메시아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 때문에 대신 벌을 받으실 것이다. 또 그는 온 세상에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죽으실 것이다.

[9절]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 . . .

선지자는 또,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라고 말한다. 예수께서는 강포를 행치 않으셨고 그의 입에는 거짓이 없으셨다. 그러나 그는 본문의 예언대로 악인과 같이 무덤에 묻히시되 부자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묻히셨다(마 27:57).

[10절]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 . . .

선지자는 또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고 말한다.

메시아의 고난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바이었다. 여호와께서는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셨고 육체적 고통을 당케 하실 것이다. 어린양은 자기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실 것이다.22) 메시아의 죽음은 속건제물이다. 속건제물(아솸)은 속죄제물(캇타스)과 비슷하나, 단지 죄값의 보상이라는 뜻이 강조된 것 같다.

메시아의 죽음은 하나님의 구원사역의 성취이다. 그가 자기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이 길 것이다. “그 씨를 본다”는 말은 구원받은 자녀들을 본다는 뜻이며, 그 날이 길 것이라는 말은 메시아의 나라가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뜻이다. 메시아의 나라는 영원할 것이다.

또 메시아는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여호와의 기쁘신 뜻이 형통하리로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은 택자들의 구원이다. 요한복음 6:39-40에 보면, 주께서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고 말씀하셨다. 갈라디아서 1:4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라고 말했다.

[11절]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 . . .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메시아를 ‘나의 의로운 종’이라고 부르신다. 메시아가 죄가 있다면 그는 남을 위해 대속의 제물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메시아는 의로운 종이시다. 그는 죄가 없는 의인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위한 대속의 제물이 될 수 있으셨다.

의로우신 메시아는 자기의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실 것이다. ‘자기의 지식으로’라는 원어(베다토)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그의 지식으로’라는 뜻이든지, 혹은 ‘[택자들의] 그에 대한 지식으로’라는 뜻일 것이다. ‘의롭게 한다’는 원어(야츠디이크)는 ‘의롭다고 여긴다’는 뜻이다.

또 메시아는 많은 사람들의 죄를 친히 담당할 것이다. ‘담당한다’는 원어(사발)는 ‘짊어진다, 담당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12절에서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진다”는 말에서 ‘진다’는 원어(나사)와 뜻이 비슷하다. 메시아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는 대속의 죽음일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그러하였다. 요한복음 1:29, [세례 요한]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마태복음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로마서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히브리서 10: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2절]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 . . .

선지자는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메시아는 자기의 영혼을 버려 범죄자 중 하나처럼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고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심으로 또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중재하심으로23) 많은 사람들을 구원할 것이다. 그들 중에는 세상에서 존귀한 자들과 강한 자들도 있을 것이다. 메시아의 중보사역은 지금도 계속되신다. 히브리서 7:25,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히브리서 9: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깨닫고 감사하자. 예수께서는 자기 백성, 곧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위해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다. 그것은 그가 택자들의 죄와 형벌을 담당하신 것이었다. 그는 이런 대속사역을 통해 믿는 자들에게 의롭다 하심의 은혜를 주셨다. 죄인들이 그를 통하여 의인들이 된다. 로마서 3:24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말한다. 또 그는 지금도 항상 살아서 그들을 위해 간구하시며 그들을 위해 하나님 앞에 나타나신다(히 7:25; 9:24).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깨닫고 감사하자.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그를 위해 살자. 메시아는 우리를 위해 핍박과 고난을 당하셨고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다. 우리는 그를 통하여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큰 은혜를 받았다. 그의 대속의 죽음으로 산 우리가 그를 사랑하며 그를 위해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고린도전서 16:22는,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고 말한다. 고린도후서 5:14-15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위해 살자.

셋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교회를 위해 죽도록, 죽기까지 충성하자. 주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6:24-25). 사도 바울도,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라고 말했다(롬 14:7-8).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복음을 위해, 교회를 위해 죽도록 충성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