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48장: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1-11절, 내가 나를 위하여
[1-5절] 야곱 집이여,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으며 유다의 근원에서 나왔으며 거룩한 성 백성이라 칭하며 그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성실치 아니하고 의로움이 없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부르는 너희는 . . . .
이사야 선지자는 말한다. “야곱 집이여,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으며 유다의 근원에서 나왔으며 거룩한 성 백성이라 칭하며 그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성실치 아니하고 의로움이 없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부르는 너희는 이를 들을지어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로부터 특권 있는 은혜를 받았었다. 그들은 거룩한 성의 백성이라고 칭함을 받았다. 그들은 만군의 여호와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의지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성실함이 없이 또 의로움이 없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불렀다. 다시 말해, 그들의 신앙고백은 거짓되었고 그들의 신앙생활은 형식적이며 외식적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진실한 예배와 진실한 신앙고백과 진실한 기도를 원하셨지만, 그들은 그렇지 못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그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옛적에 장래사를 고하였고 내 입에서 내어 보였고 내가 홀연히 그 일을 행하여 이루었느니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구원 섭리의 방식은 미리 장래일을 고하신 후에 홀연히 그 일을 행하시고 이루시는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단독사역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대해, “내가 알거니와 너는 완악하며 네 목의 힘줄은 무쇠요 네 이마는 놋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은 완악하고 완고하며, 자기 주관과 고집이 세었다. 물론 그것은 성경적 확신과는 달랐다. 또 그들은 목의 힘줄이 무쇠와 같이 단단하였다. 그들에게는 겸손함이 없었고 순종심도 없었다. 또 그들의 이마는 놋이었다. 그들에게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함까지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옛적부터 네게 고하였고 성사하기 전에 그것을 네게 보였느니라. 그렇지 않았더면 네 말이 내 신의 행한 바요 내 새긴 신상과 부어만든 신상의 명한 바라 하였으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주밀하게 보이지 않으셨다면, 사람들은 자기들의 신(神)의 행한 바라고 말했을 것이다.
[6-8절] 네가 이미 들었으니 이것을 다 보라. 너희가 선전치 아니하겠느뇨? 이제부터 내가 새 일 곧 네가 알지 못하던 은비(隱秘)한 일을 네게 보이노니 이 일들은 이제 창조된 것이요 옛적 것이 아니라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네가 이미 들었으니 이것을 다 보라. 너희가 선전치 아니하겠느뇨? 이제부터 내가 새 일 곧 네가 알지 못하던 은비(隱秘)한 일을 네게 보이노니 이 일들은 이제 창조된 것이요 옛적 것이 아니라. 오늘 이전에는 네가 듣지 못하였느니라. 그렇지 않았더면 네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알았노라 하였으리라. 네가 과연 듣지도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였으며 네 귀가 옛적부터 열리지 못하였었나니라.” ‘새 일’은 고레스를 통한 이스라엘의 회복의 일이었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하나님의 단독사역이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미리 계획하셨고 또 오래 전에 미리 예고하셨고 또 그가 주권적으로 행하시고 이루시는 일이다! 파사 왕 고레스를 통한 이스라엘 백성의 바벨론 포로 생활로부터의 구원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우리의 죄와 지옥 형벌로부터의 구원도 그러하다!
하나님께서는 8절에 “이는 네가 궤휼하고 궤휼하여 모태에서부터 패역한 자라 칭함을 입은 줄을 내가 알았음이라”고 말씀하셨다. ‘궤휼하고 궤휼하다’는 원문(바고드 티브고드)은 ‘심히 배신적이게 행하다, 심히 거짓되다’는 뜻이다. ‘패역한 자’라는 원어(포쉐아)는 ‘범죄자, 반역자’라는 뜻이다. ‘모태에서부터 범죄자’라는 말씀은 인간의 원죄를 증거한다. 사람은 모태에서부터, 즉 나기 전부터, 죄성을 가진 죄인이며 하나님께 반역하는 존재이다. 거짓, 외식, 완고함, 고집, 교만, 뻔뻔스러움, 배신, 반역--이것이 모든 인생의 모습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은 우리 모든 인생의 죄악된 모습이다.
[9-11절]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할 것이며 내 영예를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며 내가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 . . .
하나님께서는 계속 말씀하셨다.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할 것이며 내 영예를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며 내가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인간은 심히 죄악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웠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과 정반대이었고 인간의 그 죄악성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근심하시고 노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심판할 수밖에 없으셨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로 택한 자들에게만 주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그의 영예를 위하여 노하기를 더디하실 것이며 인생들을 오래 참고 다 멸절치 않으실 것이다. 그것이 택자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나 완전히 불태워 녹여버리듯이 하지 않으시고 적당하게 징계하셨다. 하나님의 구원 섭리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해서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택하시고 그의 이름을 두신 이스라엘 백성을, 그리고 오늘날 신약교회를 결코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우선, 우리는 우리 속에 있는 죄성을 알자. 이스라엘 백성은 성실함과 진실함이 없고 의로움이 없는 형식적, 외식적 예배와 신앙고백과 기도를 잘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마음이 완악하고 목의 힘줄이 무쇠이며 이마가 놋같이 뻔뻔스런 자들이었다. 또 그들은 궤휼하고 거짓되며 배신적이고 패역하고 반역적인 자들이었다. 이 모든 모습은 인간의 죄성의 본질이다. 이것은 우리 속에도 남아 있는 죄성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죄악되었었고 또 지금도 여전히 우리 속에는 이런 연약한 죄성이 남아 있음을 인식하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하나님을 알 수도, 믿을 수도, 섬길 수도 없는 심히 부패되고 무능력한 존재임을 깨닫자.
또,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기 영광을 위해 우리를 구원하셨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자. 하나님께서는 심히 악하고 부패한 이스라엘 백성을 오래 참으시고 아끼시고 구원하시되, 자기 영광을 위하여, 그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구원하시는 주권적 하나님이시다.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다. 우리의 우리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일 뿐이다. 우리의 행위의 의는 심히 보잘것없다. 우리의 의는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그 의 안에서 의의 길을 걷고 그 거룩 안에서 거룩한 삶을 구하자.
우리는 이제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만 섬기는 자가 되고 항상 하나님께 찬송하는 자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하고 의롭고 진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 히브리서 13:15는,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말하며, 에베소서 5:8-9는,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고 말한다.
12-22절, 하나님의 구원 계획
[12절] 야곱아, 나의 부른 이스라엘아, 나를 들으라. . . .
하나님께서는 “야곱아, 나의 부른 이스라엘아, 나를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들으라”고 말씀하셨다. 본문 14절과 16절에서도 그는 “들으라”고 말씀하셨다. 믿음은 듣는 데서 시작된다. 로마서 10:17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들을 귀가 필요하고 듣는 귀가 복되다. 마태복음 13:9, 16,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니”라는 말씀은 “나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며, “처음이요 또 마지막이라”는 말씀은 ‘영원한 하나님’이라는 뜻이며 또 창조주, 섭리자, 심판자 하나님이라는 뜻을 내포한다고 본다. 우리는 세상의 시작도, 마지막도 모르고 현재만 안다. 우리는 내일도, 죽는 때도, 세상의 종말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
[13절] 과연 내 손이 땅의 기초를 정하였고 내 오른손이 하늘에 . . . .
하나님께서는 또, “과연 내 손이 땅의 기초를 정하였고 내 오른손이 하늘에 폈나니 내가 부르면 천지가 일제히 서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손’은 능력을 상징한다. 하나님의 손은 능력의 손이다. 그는 그 손으로 땅의 기초를 정하셨고 그 손으로 하늘을 펴셨고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셨다. “내가 부르면”이라는 말씀은 그가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음을 증거한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음을 열한 번이나 증거하였다.
[14절] 너희는 다 모여 들으라. 나 여호와의 사랑하는 자가 . . . .
하나님께서는 다시, “너희는 다 모여 들으라. 나 여호와의 사랑하는 자가 나의 뜻을 바벨론에 행하리니 그의 팔이 갈대아인에게 임할 것이라. 그들 중에 누가 이 일을 예언하였느뇨?”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너희는 다 모여 들으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하는 자를 세우실 것이며 그가 하나님의 뜻을 바벨론에 행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는 파사왕 고레스를 가리킨다. 그가 하나님의 뜻을 바벨론에 행할 것이다. 이사야 44:28,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이사야 45:1,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받은 고레스의 오른손을 잡고 열국으로 그 앞에 항복하게 하며 열왕의 허리를 풀며 성문을 그 앞에 열어서 닫지 못하게 하리라.”
인류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 과정이다. 개인의 삶의 과정도 그러하지만, 국가와 세계의 역사 과정도 그러하다. 이사야 46:10,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다니엘 4:17, “이는 순찰자들의 명령대로요 거룩한 자들의 말대로니 곧 인생으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로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전에도 앞으로 행하실 일을 미리 예언하셨다. 그는 그것을 미리 알리시고 미리 선포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다른 이가 없음을 증거하신 것이다.
[15절] 나 곧 내가 말하였고 또 내가 그를 부르며 . . . .
하나님께서는 또, “나 곧 내가 말하였고 또 내가 그를 부르며 그를 인도하였나니 그 길이 형통하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힘이 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누가복음 1: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예언하신 대로 고레스를 부르며 확실히 그를 인도하실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다. 그 섭리는 주권적인 행위이다. 또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진행하시는 일은 형통할 것이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방해하거나 저항할 자는 세상에 아무도 없다.
[16절] 너희는 내게 가까이 나아와 이 말을 들으라. . . .
하나님께서는 또, “너희는 내게 가까이 나아와 이 말을 들으라. 내가 처음부터 그것을 비밀히 말하지 아니하였나니 그 말이 있을 때부터 내가 거기 있었노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해방될 것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드러나게 예언하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 되심을 증거하시고 또 자신이 주권적 섭리자 되심을 증거하신 것이었다.
“이제는 주 여호와께서 나와 그 신을 보내셨느니라”는 말씀은 옛날 영어성경(KJV)처럼 “주 하나님과 그의 영께서 나를 보내셨느니라”고 번역할 수 있을 것이며, 그 뜻이 나아 보인다. 그러나 결국에는 두 개의 뜻이 다 비슷하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 곧 성령으로 선지자들을 감동하셔서 자기의 뜻을 선포하며 예언하게 하셨다.
[17절] 너희의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이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 . . .
선지자는 또 말한다. “너희의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이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구속자(救贖者) 곧 구주이시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곧 이스라엘을 거룩케 하시는 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주신 율법의 정신이 두 가지 요점이라고 말씀하신다. 첫째는 하나님의 백성의 유익을 위한 것이고, 둘째는 그들이 마땅히 행할 바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생의 정로일 뿐 아니라, 결국 인생의 유익을 위한 교훈이다.
신명기 10:12-13은,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또 신명기 28장은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킬 때 자녀의 복, 건강, 물질적 유여를 포함하여 복과 평강, 형통과 영생을 약속한다.
[18-19절]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 . .
하나님께서는 계속 말씀하시기를,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들었더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네 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 네 자손이 모래 같았겠고 네 몸의 소생이 모래 알갱이 같아서 그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겠고 없어지지 아니하였으리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이 인생의 유익을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명령과 율례를 듣지 않았다. 사람이 율법을 순종하면 평강이 넘칠 것이며 그의 의가 그의 앞에서 빛날 것이다. 또 그의 자손들도 번창하며 복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불순종하면 근심과 슬픔, 고난과 불행이 그에게 올 것이다.
[20절] 너희는 바벨론에서 나와서 갈대아인을 피하고 . . . .
선지자는 또 외친다. “너희는 바벨론에서 나와서 갈대아인을 피하고 즐거운 소리로 이를 선파하여 들리며 땅 끝까지 반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 종 야곱을 구속하셨다 하라.”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이 바벨론의 갈대아 사람들에게서 해방되며 구속받는 일을 즐거운 소리로 외치며 땅 끝까지 반포해야 한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귀환을 가리킬 것이지만, 장차 있을 세계복음화를 예표하였다고 보인다.
[21절]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막으로 통과하게 하시던 때에 . . . .
선지자는 또,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막으로 통과하게 하시던 때에 그들로 목마르지 않게 하시되 그들을 위하여 바위에서 물이 흘러나게 하시며 바위를 쪼개사 물로 솟아나게 하셨느니라”고 말한다. 이것은 출애굽 때에도 그러하였고, 또 바벨론 포로귀환 때에도 그러할 것이다. ‘사막’은 영적으로 메마른 세상을 상징할 수 있을 것이다. 이사야의 앞부분에서도 비슷한 말씀을 본다. 이사야 35:6, “그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이사야 43: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이사야 44:3,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신[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
[22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본문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첫사람들에게 불행을 선포하셨다. 창세기 3:16-17, 19,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로마서 3:16-17,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오직 수고로움만 있다. 그는 심리적으로 우울하고 슬프고 불안하다. 그는 양심적으로 죄책에 눌러 고통을 받는다. 그는 육신적으로도 질병과 늙음과 죽음을 경험한다. 그는 경제적으로도 고통을 당한다. 악인에게는 마음의 안정과 평안, 몸의 건강, 또 환경적 평안이 없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자이시며 섭리자이심을 알자.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마지막이라.” “나 곧 내가 말하였고 또 내가 그를 부르며 그를 인도하였나니 그 길이 형통하리라.” 영원하신 하나님, 처음과 나중이 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 안에 인생의 모든 문제의 해답이 있다. 하나님 안에 인간의 구원과 거룩과 평안이 있고, 또 영생이 있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의 정신을 깨닫자. 첫째, 하나님의 율법은 인생의 마땅한 길이다. 그 내용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고 섬기며, 또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율법은 인생의 유익을 위한 길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면 생명과 평강과 행복을 누릴 것이나, 그것을 불순종하며 슬픔과 고난, 불행과 죽음을 체험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힘써 순종하자. 그것이 인생의 마땅한 길이며 또 평강과 형통과 영생의 길이다.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음을 알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하며 만방에 선포하자. 인간은 죄악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구원 계획을 이루신다. 그는 이스라엘을 구속하셨다(17, 20절).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뻐하시는 뜻을 다 이루셨다. 우리는 그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자들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구원을 감사하며 만방에 이 구원의 소식을 선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