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받는 바른 자세 삼상3장10-18, 행9장1-11
말씀을 받는 바른 자세 삼상3:10-18, 행9:1-11
유머 가운데 사오정 시리즈가 있습니다. 사오정은 온몸이 쭈글쭈글 주름으로 덮여 있습니다. 특히 귀가 주름으로 덮여 남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합니다. 언제나 동문서답을 하는 것이 그의 특징입니다. 신세대들은 이 시리즈를 통해 기성세대가 가는귀먹은 사오정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 시리즈 가운데 이런 유머들이 있습니다. *사오정이 드디어 보청기를 하나 장만했습니다. 학교에서 수업 중에 맨 뒤에서 자꾸 이상한 소리가 났습니다. 선생님 : 야. 거기 맨 뒤! 필기 안하고 뭐해? 사오정 : 안 보여서요. 선생님 : 그래? 니 눈 몇인데? 사오정 : 제 눈은 둘인데여. 선생님 : 아니, 아니. 그거 말고 니 눈이 얼마냐고? 사오정 : 제 눈은 안 파는데여. 선생님 : 야 ~! 니 눈이 얼마나 나쁘냐고? 사오정 : 선생님 제 눈은 ... 나쁘고 착하고 그런 거 없는데요. *다음은 국민들을 위한다고 하면서 국민과 상관없이 따로 노는 국회를 풍자한 것입니다. 레스토랑에 간 사오정 친구들은 '나는 콜라' '나는 주스'라며 각각 다른 메뉴를 주문하였습니다. 그러나 맨 나중에 주문하는 사오정은 "여기 커피 셋이요"라고 제멋대로 주문하였습니다. *또 이런 유머도 있습니다. 사오정이 오토바이 뒤에 애인을 태우고 신나게 달리자 뒤에 타고 있던 애인이 "나 무서워"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사오정은 더욱 속도를 높였습니다. 다시 애인이 무섭다고 소리를 지르자 사오정이 하는 말. "나도 사랑해" 제가 서두에 사오정 이야기를 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우리 성도들이 가는 귀 먹은 사오정처럼 말씀의 뜻과 의도를 깨닫지 못하고 자기 나름대로 말씀을 오해하거나 말씀과 단절 되어 말씀과 전혀 상관없는 성도로 살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말씀을 받는 바른 자세”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바른 자세는
1.말씀을 경청하여 듣고 수용하는 것입니다.
경청은 집중하여 말씀을 듣는 모습입니다. 말씀을 건성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온 몸과 마음을 기울여 집중하여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취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청취는 말씀에 대한 갈망과 사모함이 없이도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생각을 하면서도 청취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자세로는 하나님의 생각도 마음도 알 수 없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질 수 없습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는 관계없는 삶을 살게 되고, 결국 망하게 되고 좌절하게 됩니다. 호 4:6에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했습니다. 구약 본문의 엘리 제사장도 하나님의 말씀을 경하게 여기다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히 임하는 은총의 모습이 아니라 말씀이 희귀하여 영의 양식과 은혜가 고갈되어 암흑과 같은 상황을 자초하게 된 것입니다. 내 속에 좌와 이기적인 생각과 욕심이 차 있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듣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청취하는 자세로는 바른 지식도, 순종하는 마음도 가질 수 없어 좋은 자세가 안입니다.
◎또한 내 관점에서만 말씀을 듣는 것 역시 좋은 자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관점에서 보게 되면 사오정처럼 됩니다. 잘 못 알아듣고, 잘 못 이해하고, 동문서답 하거나 하나님의 말씀과는 전혀 무관한 신자의 모습으로, 불순종하는 신자의 모습으로 살게 됩니다. 그런 신자는 아담과 하와처럼 사단의 말을 듣고 미혹에 넘어가 시험에 들게 되고, 사울 왕처럼 불순종에 대한 책망을 받을 때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 자가 됩니다. 요나처럼 불순종의 길을 가다가 환란을 자초하게 되거나 발람 선지자처럼 자기와 남을 망하게 하며 사는 자가 됩니다. 신약 본문에 나오는 사울도 자기 관점에만 말씀을 대하다 보니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를 이단의 괴수로 오해 하고 예수 믿는 자들을 박해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성도는 말씀을 잘 경청하여 들어야 합니다.
오늘 구약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어린 사무엘에게 찾아오셔서 그에게 말씀을 주실 때 어린 사무엘은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경험이 없어 엘리 제사장이 자기를 찾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는 엘리 제사장의 권고를 듣고서야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혼 생활에 문제가 생긴 사람이 스승의 충고를 청하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람은 충고를 가슴 깊이 받아들였고, 한 달 후에 와서는 자기 아내가 하는 모든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다시 스승이 미소를 띠우시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집에 가서, 부인이 말하지 않는 모든 말에 귀를 기울이시오. 침묵의 체로 거르지 않은 말은 사실 소음이나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때 진정한 소통의 감동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어디서나 들려옵니다.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추듯 경청할 때 세미한 음성을 듣게 되고, 깨닫게 되어 그 말씀이 나의생각과 말과 행동이 되어 전해질 때 진정한 하나님 말씀의 전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청취하거나 내 관점으로만 듣지 말고 잘 경청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듣고 깨닫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말씀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갖지 못하면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는 결과가 되고 맙니다. 그런 자는
◎주님을 불신하거나 대적하는 자로 살게 됩니다.
신약 본문에 나오는 사울이라는 청년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유대교를 믿는 열심 있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자기 생각에는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는 이단의 괴수고 예수를 믿는 자들 역시 잘 못된 길을 가는 자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도 앞장섰던 사람으로 대제사장으로부터 공문을 받아가지고 그들을 잡아 가두기 위해 혈기가 등등하여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가고 있는 도중에 하늘에서 빛이 내려와 비취면서 '사울아 사울아, 왜 네가 나를 박해하느냐.' 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누구시냐고 묻는 그의 물음에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고 답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말씀을 듣는 귀와 깨닫는 마음을 갖지 못하면 나름대로 아무리 선하게 산다 해도 불신앙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오히려 대적하는 자로 살게 됩니다.
◎주님을 노엽게 하는 자로 살게 됩니다.
사울의 그런 모습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는커녕 얼마나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일이 되었습니까? 그가 열심을 내면 낼수록 죄를 더하여 가고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고통을 안겨주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가 주님을 만나 변하여 새 사람이 되었을 때 늘 그 때 일을 생각하며 나는 죄인 중에도 괴수라고 고백했습니다.
구약 본문에 나오는 엘리 제사장이 확고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신뢰 했다면 자식들이 잘 못된 길로 갈 때 단호한 조치를 취했을 것입니다.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신뢰 했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는 일을 함부로 자행했겠습니까?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따른다는 것을 확실히 믿었다면 어떻게 회막에서 수종드는 여자를 범하는 죄를 지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이 말씀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갖지 못하여 가정이 망하고, 나라가 전쟁으로 고통을 당하고 이방인에게 법궤를 빼앗기고 두 아들은 전쟁에서 죽고, 엘리는 충격의 소식을 듣고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게 되고, 비느하스의 아내는 이 모든 소식을 듣고 배가 아파 아들을 낳고 이가봇(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믿고 신뢰하는 자는 담대한 믿음으로 주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는 자가 됩니다.
사무엘은 비록 나이가 어리지만 엘리 제사장과는 달리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믿는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무엘을 사랑하시고 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나라를 위해 제사장으로, 기도하는 자로, 왕을 세우는 일을 감당하는 자 등으로 귀한 역할을 감당하는 나라의 기둥 같은 일꾼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로 변하여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바로 듣을 수 있는 귀가 열리고, 신령한 은혜의 세계를 보는 눈이 열리고, 마음이 열려 주님이 자신의 구주가 되심을 깨닫고 믿는 자가 되었고, 그의 입이 열려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전하는 자로 살게 되었습니다. 박해자가 복음 때문에 박해를 받는 자가 되었고, 복음의 훼방 자가 복음의 전파자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말씀을 신뢰 하고 믿어 주님의 영광의 도구로 쓰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말씀에 대한 순종의 자세를 가져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들었다 해도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 순종하지 못하거나, 들은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지 못하고 잊거나 말씀과 관계없이 살 때 그 말씀은 우리에게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성도는 말씀을 경청하여 들을 뿐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순종에는 겸손과 진실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실 때 사무엘은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10절)라고 겸손하게 대답했습니다. 사무엘은 자신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고백합니다. 종의 역할은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고 철저하게 주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착하고 진실 된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사무엘이 바로 이러한 종의 자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잠언 3:34은 말씀합니다.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성도는 항상 주님의 도우시는 은혜로 주님 앞에서 겸손한 자가 되는 일에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입니다.(약 4:6). 자신을 낮추면 주님이 도리어 높여주십니다(약 4:10).
홉니와 비느하스는 겸손함도 진실함도 없었습니다. 제사장의 아들로 대를 이어 제사장이 되었지만 교만하고 거짓으로 가득 찬자들이었기에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지 못하고 도리어 진노와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또한 순종에는 내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은 참아 말하기 어려운 엘리 제사장의 가정에 대한 심판의 말씀이었습니다. 듣기 좋은 말은 하기 쉬운데, 상대방이 들어서 불쾌하고, 기분을 상하게 하는 말은 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말씀을 받은 자는 들은 그대로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말씀을 받은 자들의 본분입니다. 어린 사무엘의 말을 들은 엘리야는 그 말씀을 그대로 수용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에도 듣기 싫어도 불신앙의 죄인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전해야 합니다. 암 환자에게 충격이 될까봐 보호자들이 사실을 본인에게 숨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숨기기보다 그 사실을 알려 병을 담대히 대처 하게 해서 병을 이기게 하거나, 잘 수용해서 자신의 삶을 잘 정리하게 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한 일입니다. 신약 본문에 나오는 주님의 제자 아나니아에게 사울에게 안수 하여 보게 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임했을 때 워낙 유명한 박해자였기에 그에 대한 의심이 풀리지 않았으나 자기 생각 버리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이 지시한 곳으로 가서 사울에게 안수하여 사흘 동안 보지 못하던 눈이 다시 열려 보게 되었습니다. 아나니아의 순종으로 사울에게 새로운 인생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순종에는 인내로 고난을 감수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아나니아에게 하신 말씀 가운데 앞으로 사울이 어떤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해 행9:15-16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이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의 사역 가운데 당한 고난의 목록 가운데 고전 4:9-13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그는 그런 고난을 당하면서 인내로 달려갈 길을 다 마쳤습니다. 오늘 우리도 겸손과 진실함이 있는 순종, 내 생각 버리고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인내로 달려갈 길 다 마치고 칭찬과 상급과 면류관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말씀을 받는 바른 자세는
♡.말씀을 경청하여 듣고 수용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취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또한 내 관점에서만 말씀을 듣는 것 역시 좋은 자세가 안입니다. ♡.말씀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가지는 것이라 했습니다. 말씀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없으면 ◎주님을 불신하거나 대적하는 자로 살게 되고, ◎주님을 노엽게 하는 자로 살게 됩니다. ◎그러나 말씀을 믿고 신뢰하는 자는 담대한 믿음으로 주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는 자가 됩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의 자세를 가지자 했습니다. ◎순종에는 겸손과 진실이 있어야 하고, ◎또한 순종에는 내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순종에는 인내로 고난을 감수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