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귀한 신앙인의 모습 고후4장7-15 시52:1-9,
존귀한 신앙인의 모습 고후4장7-15 시52:1-9,
중국의 유명한 부흥사요 저술가인 “워치만 리” 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의 책이 우리나라에도 많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는 20대에 중한 병을 얻어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가 죽음을 앞에 놓고 간절한 마음으로 며칠 동안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다음과 같은 환상을 보았다고 합니다. 환상 중에 배를 타고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난데없이 큰 바위에 부딪혔습니다. 아무리 노를 저어도 배는 앞으로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어 답답해하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바위를 치워 주랴, 물이 불어나서 물 위로 배가 지나가게 하랴' 물으셨습니다. “워치만 리”는 바위는 그대로 두고 물이 불어나 그 위로 지나가게 해 달라고 원해서 그렇게 지나가는 환상을 보았는데, 이 환상을 본 다음에 질병도 치유 되고, 그는 특별히 충만한 은혜를 받아서 평생토록 귀한 일을 하는 주의 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성령 충만한 은혜를 받고 성숙하고 장성한 신앙을 소유하게 되면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존귀한 신앙인의 모습을 가지고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존귀한 신앙인의 모습”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보배를 담은 질그릇의 모습입니다.
신약 본문 고후4:7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했습니다. 이 보배가 무엇입니까? 내 안에 거하시는 예수님이요, 성령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놀라운 보배를 질그릇 같은 연약한 몸에 지닌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질그릇 속에 이 보배를 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 질그릇이 깨어질까 보아 늘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질그릇 같은 삶을 지키는 것을 최종적인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에 고난과 죽음이 두려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깨어지는 날 모든 것이 끝난다고 믿기 때문에 그것이 깨어지지 않게 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다가오는 고난과 문제 때문에 그 질그릇은 계속 깨어질 위험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오직 소망이 있다면 건강하게 살면서 자식들 잘 키우고 행복하게 일생을 살다가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소원은 우리 앞에 일어나는 수많은 역경 앞에서 바람 앞에 등불처럼 아슬아슬하게 살아갑니다. 우리의 삶은 때로 전쟁으로 상처받고 깨어지며, 때로 독재자의 발길 밑에서 신음하기도 하며, 그 총칼 앞에서 목숨을 수없이 잃기도 하고, 또 때로는 느닷없이 닥쳐온 경제적 위기, 질병의 위기, 재난의 위기 앞에서 당황하고 크게 낙담하고, 두려워하며, 절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견디다 못해 자살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신 안에 보배를 간직하고 사는 자는 그런 모습으로 살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속에 간직한 놀라운 보배 때문에 그의 육체의 질그릇이 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의 죽임 당하심을 몸에 짊어지고 다닌다고 하였습니다. 그 뜻은 예수님께서 당하신 십자가의 죽음처럼 죽음과 맞선다는 뜻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예수의 생명이 그 몸에 나타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죽음과 맞설 때 이미 사망의 권세, 죄의 권세, 사단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님을 통해 진정한 부활의 생명이 우리 속에 들어오게 됨을 뜻합니다.
보배를 담은 그릇으로 사는 성도는 그릇이 약할수록 하나님의 능력은 더욱 강하며, 보물 자체가 더욱 빛을 발합니다. 이 보배로 인해 하늘 소망이 넘치는 가운데 주님이 주시는 참 기쁨과 평안을 가지고 살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위해 삽니다. 우리 모두 보배를 담은 질그릇의 모습으로 바울처럼 강하고 담대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푸른 감람나무의 모습입니다.
구약 본문 시52:8에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했습니다. 감람나무에 대한 성경적 배경과 그 용도를 살펴보면 창8:11에 처음으로 언급되어 있는데 비둘기가 노아에게 입으로 감람나무 잎사귀를 물어다 주었는데 그래서인지 몰라도 UN의 깃발에 이 잎을 배경으로 넣고 있습니다.
올리브라고도 불리는 감람나무는 번식력이 강해서 물이 없는 자갈밭이나 바위 틈새에서도 잘 자라는 나무입니다. 재배 또한 간단하여 심고 흙만 뿌려주고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아도, 대부분은 제 스스로 잘 자라면서, 그것도 수백 년을 생존해 갑니다. 이와 같은 강인한 생명력과 번식력을 가진 나무가 바로 사철나무 과에 속한 늘 푸르름을 지닌 감람나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집에 심겨 있으니 정원사들에 의해 얼마나 잘 돌봄을 받고 자라겠습니까? 감람나무는 그늘로, 열매로, 기름을 내어 식용으로, 등잔용으로도 또는 약용으로도 쓰는데 한 나무에 보통 20 겔론의 기름을 낼 수 있고, 그 재질이 단단해서 성전의 문짝이나 문설주 그리고 그룹들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나무였습니다. 때문에 이 나무는 축복의 상징으로 선민인 유대인을 상징했고(렘11:16),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상징했습니다(롬11:17,18).
푸른 감람나무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의 모습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교훈의 시입니다. 이 시의 배경을 살펴보면 삼상21:1-22:19에 있는 배경으로 기록된 시입니다. 다윗이 사울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놉 땅에 왔을 때에 제사장 아히멜렉은 다윗에게 도움을 주었는데, 이 사실을 사울왕의 목자 장이었던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에게 고발함으로 아히멜랙 제사장이 다윗과 한 편이 되어 자신을 대적한다고 생각하여 사울 왕이 신하들을 시켜 85명의 제사장들을 죽이도록 했으나 죄 없는 제사장을 죽이는 것을 두려워하여 아무도 죽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두려움도 없는 이방인 도엑으로 하여금 살육하도록 했던 잔인한 사건입니다. 제사장들을 죽인 도액은 하나님을 모르는 악인으로 호시탐탐 출세할 기회를 노리는 인물이었습니다. 본문 시 52:1-5에 나오는 말씀처럼 포악한 자, 스스로 자랑하는 자, 거짓말 하는 자, 간사한 혀로 남을 해치는 자였습니다. 5절에 그런 자들을 하나님은 영원히 멸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푸른 감람나무로 비유된 성도는 조금 전에 말씀드린 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여러모로 유익을 주는 삶을 사는 의로운 자들입니다. 감람나무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 자신을 다 주는 나무입니다. 이 모습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성도의 모습이요, 진실로 주님을 경외하는 신앙인들의 공동체인 교회의 모습입니다.
이현주 씨의 우화집 <모퉁이 돌>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평화로운 토끼 나라에 커다란 뱀이 나타났습니다. 토끼 나라의 평화가 깨졌습니다. 뱀은 매일 매일 토끼를 잡아먹었습니다. 토끼들은 너무나 무서웠기 때문에 집 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문을 닫아걸고 공포 속에 살았습니다. 그 때 이미 뱀에게 그 사랑하는 짝을 잃고, 그 자신의 왼 쪽 발 하나도 뜯긴 절름발이 토끼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이 토끼는 곰곰이 생각하였습니다. 이 건 도무지 사는 것이라 할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예전의 평화로운 토끼나라를 회복 할 수 있을까? 절름발이 토끼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토끼나라의 평화를 되찾으려면 저 흉악한 뱀을 없애는 길 밖에 없다. 결국, 토끼도 이솝우화의 저 쥐들처럼 어떻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하는 문제에 도달하였습니다. 절름발이 토끼는 오래 고뇌하였습니다. 그리고 오직 한 길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토끼는 문을 열고 집밖으로 나갔습니다. 토끼는 울긋불긋한 독버섯이 많이 피어 있는 숲으로 갔습니다. 토끼는 그 아름다운 버섯을 마구, 마구 뜯어먹었습니다. 머리가 어찔어찔하였습니다. 토끼는 절름거리며 뱀 굴로 갔습니다. 토끼는 뱀 굴 앞에 서서 “이 못된 뱀아, 나와 봐라, 이 나쁜 놈아!” 하고 소리쳤습니다. 뱀이 슬- 슬- 슬- 기어 나와 절름거리는 토끼 모양새를 보고는 아니 이놈이 미쳤나! 생각했습니다. 마침 배도 출출한 판인데 어쨌든 잘 됐다 하고 덥석 한 입에 절름발이 토끼를 삼키고, 제 굴로 도로 들어가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뱀은 그 굴에서 영원히 나오지 못하였습니다. 토끼 나라에는 다시 활기찬 자유와 넘치는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모퉁이 돌’이라는 글에서 절름발이 토끼는 성도의 사명을, 교회의 존재 목적을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감람 열매가 다른 생명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교회는 교회만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병든 세상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과 사랑의 희생으로 푸른 감람나무 같은 신앙의 사람으로 살면서 세상을 살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고난 중에서도 영광을 바라보는 자의 모습입니다.
감람나무가 척박한 환경과 땅에서 자라면서도 늘 푸르름을 지닌 것처럼 존귀한 신앙의 사람은 고난 중에서도 두려움이 없이 소망 가운데 즐거워하며 평강의 사람, 남을 살리고 기쁨을 주는 사명의 사람으로 삽니다.
신약 본문에 보면 고난과 핍박의 위기 속에서도 낙심하거나 절망하거나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아니하고, 위기를 극복한 바울은 본문 고후 4:8-9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한다는 사실과 진리의 일꾼으로 살 때 더 큰 환난을 당하기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도 친히 제자들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도 세상에서 환난을 당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능력으로 위기 속에서도 위로와 평안을 누리게 되고 넉넉히 이기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항상 강하고 담대한 자로 삽니다.
보통 인생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합니다. 고통과 역경, 비난과 모함을 당할 때 여기에 대응하는 태도를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독수리 형과 황소 형과 풍선 형입니다.
독수리 형은 위기를 당할 때 오히려 한 단계 더 높이 날아오르는 형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목적을 분명하게 하고 독수리처럼 높이 날아오릅니다. 고통과 역경, 비난과 모함을 오히려 더 좋은 신앙 연단의 기회로 삼아 더욱 높은 차원의 신앙을 가지는 기회로 삼습니다.
황소 형은 뿔을 들이대며 싸움을 벌이는 형입니다.
모함에는 모함, 욕에는 욕으로 맞섭니다. 이런 사람은 결코 승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더 큰 상처를 입게 되고,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풍선 형은 더욱 비참합니다.
승천할 힘도 싸울 투지도 없습니다. 중심을 잃고 빙글빙글 돌다가 그냥 터집니다. 우리는 독수리형의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존귀한 신앙인의 모습을 지니게 됩니다. 우리 모두 보배를 담은 질그릇의 모습으로, 푸른 감람나무의 모습으로, 고난 중에서도 영광을 바라보는 자의 모습을 지닌 존귀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