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맡길 것인가 (벧전 5장7-9)
무엇을 맡길 것인가 (벧전 5장7-9)
이 시간에 “무엇을 맡길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미국 켈리포니아주 하비스트 크리스쳔 펠로우십교회의 목사로 유명한 그렉 로리가 쓴 ‘최고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사소한 일에도 늘 걱정을 하며 사는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선가 그는 세상에 걱정거리가 하나도 없는 평화로운 얼굴을 하고 있어서 그의 절친한 친구가 놀라서 물었습니다.
“자네 웬일인가? 조금도 불안해 보이지 않아서 말일세. ”그러자 그는 웃으며 “오늘만이 아니라 요즘 한 달 내내 걱정하지 않고 살고 있다네.” “무슨 방법이라도 있는가?” “있지, 정말 이대로 살아서는 안 되겠다 싶어 나를 위해서 대신 걱정해줄 사람을 고용했다네.” “정말인가? 그런 사람을 어디서 찾았는가?” “신문에 광고를 냈지. 이렇게,,, ‘와서 내 대신 걱정을 해주면 하루에 백만 원씩 주겠음’”
“하루에 백만 원? 자네는 그만한 돈을 벌지 못하지 않는가? 무슨 수로 그 사람에게 월급을 줄 건가?” “거 참 아직도 모르겠는가? 그건 이제 그 사람이 걱정할 문제라네. 그 사람은 내 걱정을 위해 고용된 사람 아닌가” 하나의 유머틱한 이야기지만 우리에게 아주 귀한 교훈을 전해줍니다. 그것은 우리 모든 짐을 대신져 주시고 대신 걱정해 주겠다고 스스로 고용을 자처하신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십니다. 이건 복음 중에 복음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짐을 기도로서 온전히 주님께 맡기고 마음에서 떨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어에서 ‘맡긴다.’는 말은 굴린다는 뜻입니다. 높은 산에서 돌을 굴리듯 이는 나에게서 문제를 온전히 떠나보내는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 전쟁을 할 때 진쳤던 곳이 길갈인데 그 길갈도 "굴러가다."라는 뜻입니다. 가나안은 하나님 나라의 예표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셨어요. 그러므로 굴러 보내야 할 것을 굴러 보내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 예수님은 우리의 문제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달리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문제를 다 책임져 주시마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럼 무엇을 맡겨야 할까?
1. 너의 염려를 맡기라고 말씀하십니다.
벧전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세상에 염려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빈센트 필 박사는 이 세상에 근심 없는 곳은 공동묘지 밖에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없이 죽는다면 더 큰 근심의 시작입니다.
어느 우화에 죽음의 사자가 세상에 만 명을 죽이러 왔는데 7만 명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사자에게 따졌습니다. 그러자 그 사자가 대답하기를 “나는 만 명을 죽였는데 나머지는 두려움과 공포와 염려 때문에 스스로 죽었다.”고 하더랍니다. 염려와 불안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를 주는가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실재로 자식을 전쟁터에 보내놓고 전사한 사람보다 염려하다가 죽은 가족들이 더 많다고 합니다. 우리가 진짜 염려해야 할 문제는 10%도 되지 않다고 하지만 그 10%만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주님은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여기 돌보신다는 말을 개역성경에서는 "권고하심이라" 했습니다. 권고(眷顧)란 돌아볼 권, 돌아볼 고 즉 사랑으로 돌보시고 또 돌아보십니다. 무엇 때문에 염려하십니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절대 버림 받지 않아요. 그래서 마6:30-32에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하셨습니다.
그 대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마귀가 역사하고, 우리에게 회개하지 않는 삶이 있는 한 형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로 할 일은 늘 말씀으로 변화되고 성령 충만 받는 일입니다. 그리고 강하고 담대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어야 합니다.
2.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라고 하십니다.
롬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중국 영화에는 복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원한을 삭히지 못해 한평생 복수만을 위해 살다가 일생을 마친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더 문제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의롭다 함을 보이기 위해 우리는 원수도 없다고 말하는데 그건 철부지한 소리입니다. 왜 원수가 없습니까? 우리를 해치려는 마귀부터가 우리의 원수입니다. 그래서 마13:39에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라고 하셨습니다. 벧전5:8에도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했습니다.
혹은 나라를 적화시키려는 악의 세력이 원수입니다. 또 하나님의 백성을 이단으로 끌고 가려는 자가 영혼의 원수입니다. 원수를 원수로 보지 않는 것은 자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원수에게 우리 안방과 생명을 다 내주겠다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슬람을 경계하고 실상을 알리는 것은 잘하는 것입니다.
어느 중동 사람들에게 선교하는 선교사가 세계 사람들이 이슬람을 혐오하니까 그들도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아 선교하기 힘들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에 대해 침묵한다면 우리 교인들 모두를 그들에게 다 바치는 격이 됩니다. 선교사는 선교하더라도 목회자는 양떼를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그 영혼들을 사랑하지만 그들의 종교까지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의 원수사랑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것입니다. 우리 개인에게 범죄했을 때 우리는 그를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 때문에 시험 들면 안 됩니다. 그래서 롬12:20-12에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하셨습니다. 그 원수의 짐을 지고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3. 기도의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막11:23-2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이 얼마나 감사한 복음입니까? 믿고 기도하면 그대로 된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기도는 내가 예수 이름으로 하는 것이지만 응답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할 일은 성실하게 기도할 것뿐이고 응답은 가장 적당한 때 가장 적당한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하여 주실 것을 믿고 맡겨야 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기도와 믿는 것입니다. 기도하고도 염려한다면 제대로 기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나는 기도한 다음에 맡겼기에 얼굴에 수색이 없었습니다. 이런 기도의 확신은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신다는 확신 속에서 할 때 옵니다. 우리가 한 마디를 하더라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의식하며 드리는 인격적인 기도가 확신을 위해서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요일5:14-15에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어 드리는 것이 공경이고 충성이고 기쁘심입니다. 기도하고 좋은 길로 응답하실 것을 믿어 드리세요.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시고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십니다.
4. 우리를 새롭게 창조해 주시도록 맡겨야 합니다.
벧전4:18-19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한 사람이 구원을 받아 천국 백성의 모습을 갖추는데 쉽지 않다는 말입니다.
너무나들 믿음의 초보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 땅에서 성령으로 임한 하나님 나라를 누리며 사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구원의 서정으로 본다면 구원의 즐거움에 이른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새롭게 창조해 주시도록 맡겨야 합니다. 내가 스스로 의로워지려고 하지 말고 날마다 시간 나는 대로 성령으로 변화시켜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욥23:10에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했던 것처럼 그 상상할 수 없는 고난 중에도 자신을 맡겼던 것처럼 온전히 창조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던 그 하나님은 우리의 공허하고 혼탁한 우리 마음을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창조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맡아주시기 위해서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고단한 인생길 가는 우리에게 성경은 너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다 맡기라고 말씀합니다. 무관심하고 잊어버리는 것이 맡기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맡기고 기도로 맡기시기 바랍니다. 성령으로 완전히 떨어내고 온전히 굴려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 안에서 온전한 자유와 형통과 기쁨 가운데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