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잠언

13장: 교만, 친구, 자녀 징계

nam씨 2015. 1. 24. 13:09

13: 교만, 친구, 자녀 징계

 

[1]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

 

본문은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듣는다고 말한다. ‘훈계라는 원어(무사르)교훈, 책망, 징계라는 뜻을 가진다. ‘아비의 훈계라는 말은 자녀 교육의 일차적 책임이 아버지들에게 있음을 보인다. 자녀 교육, 즉 신앙 교육뿐 아니라, 도덕 교육, 그 외의 모든 교육의 일차적 책임은 국가에 있지 않고 심지어 교회에 있지도 않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부모에게 있고 특히 아버지에게 있다.

 

지혜로운 아들, 곧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아들은 아버지의 훈계를 듣는다. 사람은 미완성된 인격 같아서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22:6). 특히 경험 많은 경건한 어른들의 교훈은 유익이 많다. 또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들이 얽혀 있고 징계의 매가 이를 멀리 쫓아낸다고 성경은 말한다(22:15).

 

본문은 그러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한다고 말한다. ‘거만한 자라는 원어(레츠)비웃는 자, 조롱하는 자라는 뜻이다. 교만한 자는 남을 비웃고 조롱한다. 그는 자기 아버지의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생각과 판단과 행동을 옳다고 생각하고 아버지의 책망을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는 자녀의 잘못을 이성적으로, 양심적으로, 특히 성경적으로 확증한 후에 책망해야 할 것이다. 잘못된 책망은 유익이 없고 도리어 반발을 가져올 뿐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부모가 자녀들을 노엽게 하거나 격노케 말라고 교훈하였다(6:4; 3:21).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며 그의 훈계를 달게 받는 지혜로운 자가 되자. 또 우리의 자녀들을 지혜로운 자녀로 바르게 양육하자.

 

[2]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리거니와 마음이 궤사한 자는 강포를 당하느니라.

 

본문은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린다고 말한다. 입의 말은 사람의 마음과 생각과 인격의 표현이다. 선한 사람은 선한 말, 경우에 맞는 말, 자기 위치를 지키는 말, 이웃을 배려하는 말을 할 것이다. 이런 선한 말은 선한 결과를 가져온다. 선한 말을 하는 자는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을 것이며 그들의 인도자가 될 것이다.

 

성경은 진실한 증인이 사람의 생명을 구원한다고 말했고(14:25)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고 말했다(15:1). 또 성경은 오래 참으면 관원이 그 말을 용납하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고 말했다(25:15). 예수께서도,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12:36-37). 속담에도,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는 말이 있고,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도 있다. 사람은 입의 열매를 복으로 누린다.

 

본문은 그러나 마음이 궤사한 자는 강포를 당한다고 말한다. ‘마음이 궤사한 자들이라는 원어(네페쉬 보게딤)반역자들, 배신자들의 영혼이라는 뜻이다. 반역자들은 남을 악하게 비방하고 대적하고 불평하며 속이는 말을 잘 할 것이다. 그러나 반역자들의 영혼은 강포를 당할 것이다. 그 강포는 하나님께서 공의로 내리시는 보응을 가리킬 것이다. 악인들은 공의로 보응을 받을 것이다. 반역자들은 또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들의 저항과 반대로 인한 강포도 당할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심은 대로 거둘 것이다. 좋은 것을 심으면 좋은 열매를 거두고 나쁜 것을 심으면 나쁜 열매를 거둘 것이다.

 

우리는 선하고 진실한 말만 하자. 우리는 우리가 말한 대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오직 선하고 진실한 자만 되자.

 

[3] 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본문은 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전한다고 말한다. 사람의 인격은 말로 표현되기 때문에 입을 지키고 말을 조심하는 것은 죄를 안 짓는 길이다. 야고보는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고 말했다(3:2). 사람은 입을 지켜야 악하고 죄악된 말, 거짓된 말을 하지 않고 선한 말, 깨끗한 말, 덕스러운 말, 진실한 말만 할 수 있다.

 

사람이 입을 지키면 그 생명을 보전할 것이다. 사람이 입을 지키면 죄를 안 짓게 되니 그 생명도 보전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므로 잠언 21:23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그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하느니라고 말했다. 혀의 역할이 크고 그 열매가 중하다. 그러므로 잠언 18:21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말했다.

 

본문은 그러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온다고 말한다.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는 말이 헤픈 자, 말이 많은 자, 생각 없이, 조심 없이 말을 하는 자를 가리킬 것이다. 그런 자는 말로 실수하게 되고 범죄하게 되며 그 결과로 멸망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잠언 10:19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고 말했다. 또 잠언 12:13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인해 그물에 걸려도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나느니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을 많이 하려 하지 말고 또 말할 때 조심해야 하겠다. 시편 141:3,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잠언 15:28,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 야고보서 1:19,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라.” 또 우리는 말할 때에는 더러운 말을 버리고 선한 말, 은혜로운 말, 덕스러운 말만 하자(4:29; 5:4).

 

[4]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

 

본문은,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고 말한다. 소원은 모든 사람에게 다 있다. 누구나 좋은 것을 갖고 싶어하고 좀더 나아지기 원하고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원한다. 육신적으로도, 영적으로도 그러하다. 육신적으로, 사람들은 가난하지 않고 경제적 안정과 물질적 여유를 누리기를원하며 몸의 건강과, 자녀들의 평안과 건강과 출세, 또 사회적인 안정을 소원한다. 영적으로도, 우리는 믿음의 성장, 성화, 성령의 충만, 또 좋은 교회를 원한다.

 

그런데 게으른 자는 이 모든 것들 중에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오직 부지런한 자만 얻을 것이다. 물질적 여유도 게으른 자는 얻지 못할 것이다. 잠언 6:9-11,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잠언 10:4,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몸의 건강도 게으르지 말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마음을 써서 부지런히 영양가 있는 음식물을 섭취해야 얻는다. 또 신앙의 성장도 게으른 자에게는 기대하기 어렵다. 매일 기도하고 성경 읽으며 교회의 공예배회에 참석하기를 힘쓰고 교제하며 봉사할 때 영적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디모데전서 4:8,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디모데전서 4:15,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우리는 영적 성장을 위해 힘써야 한다(벧후 1:5-11).

 

우리는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해야 좋은 것을 기대할 수 있고 얻을 수 있다. 물질적 여유도, 몸의 건강도, 신앙의 성장도 이치가 비슷하다.

 

[5] 의인은 거짓말을 미워하나 악인은 행위가 흉악하여 부끄러운 데 이르느니라.

 

본문은 의인이 거짓말을 미워한다고 말한다.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이다. 신약적으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이다. 의인은 거짓말을 미워한다. 왜 그런가? 거짓말은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모든 좋은 관계를 하루아침에 깨뜨리는 참으로 나쁜 악이기 때문이다.

 

첫째,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 진실의 하나님이시다(34:6; 65 :16). 둘째, 마귀는 거짓말쟁이이며 거짓의 아비이다(8:44). 셋째, 하나님은 거짓을 미워하신다(5:4-6; 6:16-19). 넷째, 거짓말은 십계명의 제9계명에 명백히 정죄된 죄악이다. 다섯째, 거짓말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죄악이다(15:2; 21:27; 22:15). 여섯째, 거짓말은 지옥 갈 만한 큰 죄악이다(21:8).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대로 살기를 원하는 의인은 거짓말을 미워할 수밖에 없다.

 

본문은 그러나 악인은 행위가 흉악하다고 말한다. 악인은 하나님을 경외치 않고 그의 계명을 순종치 않는 자이다. ‘행위가 흉악하다는 원어(바아쉬)싫어할 만하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악인을 다 싫어한다. 악인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만하지 못하고 도덕적으로, 인격적으로 불쾌한 냄새를 낸다. 성경은 악인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과 같다고 말한다(3:13). 악인에게서 불쾌한 냄새가 남을 암시한다. 또 본문은 악인은 부끄러운 데 이른다고 말한다. 악인은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서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성경은 수치에 대해 많이 말한다(보쉬 110, 보쉣 29, 켈림마 30, 칼론 17).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아야지 다른 사람들 앞에 부끄러움을 당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 싫어함을 받고 부끄러움을 당하는 악인같이 살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의인답게 살자. 모든 거짓말을 미워하자.

 

[6] 의는 행실이 정직한 자를 보호하고 악은 죄인을 패망케 하느니라.

 

본문은 의는 행실이 정직한 자를 보호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의이다. ‘정직하다는 원어()온전하다, 흠이나 책망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의는 흠이나 책망할 것이 없이 온전한 자를 보호한다. 무엇으로부터 보호하는가? 세상의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 즉 질병이나 경제적 파탄이나 기타 불행한 일들로부터 보호한다는 뜻일 것이다. 의가 보호한다는 말은 결국 하나님의 섭리적 보호를 받는다는 뜻이다. 시편 91:3, 10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라고 말했다.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도 환난과 어려운 일들이 오나 그는 그 환난에서 실패치 않는다. 잠언 10:25, “회리바람이 지나가면 악인은 없어져도 의인은 영원한 기초 같으니라.” 그는 반석 위에 지은 집과 같다. 마태복음 7: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또 그러한 사람은 환난 중에도 결코 낙심하거나 변절하지 않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극심한 고난 중에 고백하기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억눌림]을 당하여도 싸이지[눌리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고 하였다(고후 4:8-9).

 

본문은 그러나 악은 죄인을 패망케 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 그의 계명을 거역하는 것이 악이다. 죄인은 이런 악을 행하는 자들이다. 죄인이 멸망하는 이유는 바로 그가 행하는 악 때문이다. 죄악이 그를 패망케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성경의 교훈대로 믿고 행함으로써 의롭고 정직하고 온전하게만 살자. 그것이 복되고 승리하는 길이다.

 

[7] 스스로 부한 체하여도 아무것도 없는 자가 있고 스스로 가난한 체 하여도 재물이 많은 자가 있느니라.

 

본문은 두 가지 뜻으로 번역된다. 옛날 영어성경은 자신을 부하게 만들어도 아무것도 없는 자가 있고 자신을 가난하게 만들어도 크게 부요한 자가 있느니라라고 번역했다(KJV, BDB, JFB주석). 그러면 이것은 이기적이지 말고 구제에 힘쓰라는 교훈이다. 잠언 11:24-25도 비슷한 말씀이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이기적이게 움켜쥐고 살면 가난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제와 선행을 힘쓰면 물질적 여유를 가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 때문이다. 영적으로도 그러하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외적으로 부요했으나 실상 영적으로 가난했고 서머나 교회는 반대로 외적으로 가난하고 궁핍했으나 영적으로는 부요했다(2-3).

 

본문은 또한 한글개역과 같이 번역되기도 한다(NASB, NIV).6) “스스로 부한 체하여도 아무것도 없는 자가 있고 스스로 가난한 체하여도 재물이 많은 자가 있느니라.” 그러면 이것은 허영과 외식을 경계한 말씀이다. 사람이 아무것도 없으면서 부한 체하는 사람은 허영심, 명예심이 있는 자이다. 그러나 재물이 많이 있으면서도 가난한 체하는 자는 겸손한 자일 것이다. 물론 지나치면 인색한 자가 되겠지만. 성경은 외식과 허영을 경계한다: 구제나 기도할 때 외식하지 말라(6:1-2, 5).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5:26).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라”(2:3).

 

우리는 이기적이게 살지 말고 구제와 선행에 힘쓰자. 또 남에게 보이려고 또 헛된 세상 영광을 위해 외식과 허영으로 살지 말자.

 

[8] 사람의 재물이 그 생명을 속할 수는 있으나 가난한 자는 협박을 받을 일이 없느니라.

 

본문은 사람의 재물이 그 생명을 속할 수는 있다고 말한다. 재물은 유익한 점이 많다. 돈이 있으면 필요한 좋은 것들을 살 수 있다. 또 생명의 위협을 당할 때 재물을 속전(贖錢) 즉 몸값으로 사용할 수 있다. 우리는 해적들에게 납치된 자들이 몸값을 주고 풀려나는 것을 본다. 그러나 재물은 위험성도 있다. 재물이 있으면 사람은 교만하고 방탕하기 쉽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고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말씀하셨다(19:23-24). 또 사도 바울은,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말했다(딤전 6:9-10).

 

본문은 그러나 가난한 자는 협박을 받을 일이 없다고 말한다. 돈의 여유가 없으면 꼭 필요할 때 쓸 수 없어서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먹을 것과 입을 것에도 다 돈이 필요하다. 그러나 가난이 유익한 점도 있다. 사람이 가난하면 교만하거나 방탕에 떨어질 가능성이 적다. 또 가난하면 도적이나 강도의 위험이 적고 협박받을 일도 없을 것이다. 가난한 자는 그런 위험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하다. 그러므로 가난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가난은 부요보다 장점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부요하든지 가난하든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자족하며 살자(딤전 6:7-8). 우리는 특히 우리 속에도 남아 있는 사치와 탐심과 허영의 성질들을 경계하자. 그것들은 신자를 실족케 하는 것들이다. 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한 목자이심을 믿고(23:1) 먹을 것이나 입을 것 등 내일 일들을 염려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만 구하며 믿음과 순종으로만 살자(6:31-33).

 

[9] 의인의 빛은 환하게 빛나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느니라.

 

본문은 의인의 빛은 환하게 빛나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느니라고 말한다. 성경에서 빛 혹은 등불은, 진리의 지식과 도덕성(, , 진실)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또한 기쁨, 평안, 형통 등 행복을 가리키기도 한다. 본문은 후자의 뜻에 적절해 보이지만, 전자의 뜻에도 맞다.

 

의인은 진리 지식과 도덕성에 있어서 환하게 빛난다. 의인은 돋는 해이신(1:78-79) 그리스도의 진리와 의를 받은 자이다. 하나님은 빛이시며 예수 믿고 구원받은 자들은 어두움에서 빛으로 나아온 자들이다(요일 1:5-7; 2:9-10). 에베소서 5:8-9,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그러나 악인은 어두움에 사는 자이며 자신이 가진 양심의 등불조차도 꺼지는 자이다.

 

의인은 또한 기쁨, 평안, 형통 등 행복에 있어서도 환하게 빛난다. 그러나 악인은 자신이 가진, 현재 누리는 기쁨, 평안, 형통 등의 행복조차도 조만간 잃게 될 것이다. 그는 슬픔과 불안과 낭패 등 불행을 당할 것이다. 잠언 4:18-19,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욥기 11:17, “네 생명의 날이 대낮보다 밝으리니 어두움이 있다 할지라도 아침과 같이 될 것이요.” 욥기 18:5-6, “악인의 빛은 꺼지고 그 불꽃은 빛나지 않을 것이요 그 장막 안의 빛은 어두워지고 그 위의 등불은 꺼질 것이요.” 잠언 20:20, “자기의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그 등불이 유암 중에 꺼짐을 당하리라.” 잠언 24:20,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 의인은 행복하고 악인은 불행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 지식과 도덕성 곧 의와 선과 진실을 가진 의인으로만 살자. 또 의인의 기쁨과 평안과 형통 등의 행복을 누리자.

 

[10]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본문은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고 말한다. 원문을 직역하면, “오직 교만으로 말미암아 다툼이 생긴다”(KJV)이다. ‘교만이라는 원어(자돈)오만함, 거만함, 건방짐이라는 뜻이다. 교만은 자신을 높이는 마음이며, 칭찬과 높임을 받으려는 일종의 욕심이다. 잠언 28:25, “마음이 탐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나.” ‘탐한다는 원어(레카브)교만하다는 뜻이다. 사람이 교만하고 명예에 대한 욕심이 있으면 다툼이 일어난다. 잠언 18:1, “무리에게서 스스로 나뉘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야고보서 4: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각종 욕심이 싸움의 원인이다.

 

겸손한 자는 자신의 부족을 알고 상대방의 부족도 이해하려 한다. 또 그는 자신의 명예에 대한 욕심, 즉 칭찬과 높임을 받으려는 욕심을 버리거나 매우 자제한다. 그런 자들과는 다툼이 없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교훈하였다(2:2-3).

 

본문은 “[그러나]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다고 말한다. 교만한 자는 옳은 권면, 경건하고 도덕적인 권면을 듣지 않지만, 겸손한 자는 옳은 권면을 듣는다. 권면을 듣는 자 곧 권면을 들어 무엇이든지 잘못된 점을 고치려는 자가 지혜가 있다. 만일 그 권면이 자신에게 해당하면 고치면 된다. 그러나 만일 그것이 자신에게 해당하지 않으면 앞으로 참고하면 될 것이며, 또 필요하고 기회가 된다면, 정중히, 겸손히 해명하면 될 것이다.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는 자이다.

 

우리는 자신을 높이는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겸손으로 자신을 단장하자. 또 옳은 권면 즉 경건하고 도덕적인 권면을 잘 듣는 자가 되자.

 

[11]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라.

 

본문은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간다고 말한다. ‘망령되이라는 원어(메헤벨)헛되이라는 뜻이다. 헛되이 얻은 재물이라는 말은 성실하게 수고하여 번 돈이 아니고 게으르게 혹은 부도덕하게 번 돈을 가리킬 것이다. 불법이나 사기나 강탈로 얻은 재물이 그런 돈이다. 복권 당첨 같은 투기성 소득이나, 쉽게 받은 유산도 좋지 않다.

 

그런 돈은 줄어간다. 왜 그런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돈은 그에게 복이 되지 못한다. 그런 소득은 예상치 못하는 지출이 많다. 그것은 사람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과 같다. 불의의 소득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된다고 말씀하셨고(1:6)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고 말씀하셨다(1:9). 또 쉽게 돈을 버는 자는 재물 귀한 줄 모르고 낭비하는 경우가 많다. 돈을 쉽게 버는 자는 돈을 쉽게 쓴다.

 

본문은 그러나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간다고 말한다. 돈은 수고하여 버는 것이 정상이다. 성실히 일하며 노동하며 수고하여 버는 돈이 바른 돈이며 복된 돈이다. 농사를 짓든지, 장사를 하든지, 사무실에서 일하든지, 이치는 똑같다. 잠언은 손이 부지런한 자가 부하게 되며 부지런한 자가 풍족함을 얻는다고 말했다(10:4; 13:4; 21:5).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간다. 왜 그런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수고하며 살며 또 조금씩 저축하여 여유를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복 주실 것이다. 또 그는 재물이 귀한 줄 알아 절약하며 살 것이다. 근검절약하는 자만 저축하며 살 수 있다.

 

우리는 쉽게 돈을 벌려는 생각을 버리고 게으르게 음식을 먹으려 하지 말자. 우리는 성실히 일하며 돈을 벌고 근검절약하며 저축도 하자.

 

[12] 소망이 더디 이루게 되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나니 소원이 이루는 것은 곧 생명 나무니라.

 

본문은 소망이 더디 이루게 되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무엇이 부족할 때 그것을 바라며 소원한다. 그러나 그것이 더디 이루게 되면 마음이 상한다. 청년들이 고시 준비나 취직 시험 준비를 하는 동안 마음이 힘들고 지친다. 한 여자를 사랑하고 결혼하기를 원하는 젊은이의 마음도 그러하다. 우리가 이런 저런 일들을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까지는 마음을 조린다. 시편 42편의 저자는,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라고 고백하였다(42:1-3).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마음도 비슷하다.

 

본문은 그러나 소원이 이루는 것은 곧 생명 나무니라고 말한다. 취직을 소원하는 자가 취직하면 살 것 같다고 말할 것이다. 결혼을 소원하는 자가 결혼하면 기뻐하고 행복해 할 것이다. 성도가 기도의 응답을 받으면 기쁨과 힘을 얻을 것이다. 우리가 고대하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이하면, 우리가 사모하던 천국에 들어가면, 우리는 큰 기쁨과 힘을 얻을 것이다. 성도의 소망은 결코 헛되지 않다. 로마서 5: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들을 반드시 다 이루어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치 말고 오직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고 하나님을 굳게 소망하자.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경건에 이르기를 훈련하라고 교훈하면서 자신의 믿음의 동료들도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둔다고 고백하였다(딤전 4:7-10). 하나님만 굳게 의지하자.

 

[13]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얻느니라.

 

본문은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패망을 이룬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말씀을 가리킨다. 말씀을 멸시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 자체가 불경건의 죄악이며 다른 죄악들의 뿌리가 된다.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성경을 읽지 않고 성경적 설교를 진지하게 듣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 대신에 자기 자신이나 세상과 세상의 것들을 더 사랑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패망을 이룬다. 죄의 값은 죽음이다. 그것은 실패와 불행과 멸망을 포함한다. 물을 떠난 고기가 죽듯이,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면, 하나님의 말씀, 의의 말씀, 곧 의()를 떠나면, 죄 가운데 살면, 멸망할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 백성은 선지자들을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다가 마침내 멸망하였다.

 

본문은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얻는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에게 주신 계명이다. 그 요점은 십계명이다. 그것은 인생의 삶의 지침이요 기준이다. 계명을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자신을 피조물로 인정하는 것이요 또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 지키는 것이 당연한 의무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계명을 두려워하는 증거는 성경 읽기와 설교 듣기를 중요하게 여기고 들은 말씀을 힘써 순종하는 것이다.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얻을 것이다. 잠언 16:20,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순종은 인간의 당연한 의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자를 더욱 사랑하시고 상을 주신다. 그는 평강, 건강, 물질적 여유, 존귀, 마침내 영생 등 모든 좋은 것을 상으로 주신다. 경건했던 요셉과 다니엘은 그런 상들을 받았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성경말씀을 멸시하지 말고 두려워하고 힘써 배우며 순종하자. 그것이 평강의 길, 복된 길, 영생의 길임을 알자.

 

[14] 지혜 있는 자의 교훈은 생명의 샘이라. 사람으로 사망의 그물을 벗어나게 하느니라.

 

본문은 지혜 있는 자의 교훈은 생명의 샘이라고 말한다. ‘지혜 있는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여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사는 자이다. ‘지혜 있는 자의 교훈곧 지혜 있는 자가 가진 바른 깨달음과 지혜와 지식에서 나온 교훈은 생명의 샘이라고 본문은 말한다. ‘생명의 샘이라는 말은 생명수를 길을 수 있는 샘, 곧 생명을 주는 샘이라는 뜻이다. 사람을 살리는 교훈이라는 뜻이다.

 

불경건하고 악하고 거짓된 말은 어리석은 말이며 사람을 죽이는 말이다. 에덴 동산에서 뱀의 말이 그러하였다. 그것은 하와로 하여금 하나님을 거역케 만들고 죽게 하였다. 그러나 지혜자의 교훈은 경건하고 의롭고 선한 교훈이며 그것은 듣는 자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고 죄를 버리며 의를 행케 함으로써 영생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의인은 지혜자의 교훈을 듣고 생명을 얻는다. 잠언 4:13, “훈계를 굳게 잡아 놓치지 말고 지키라. 이것이 네 생명이니라.” 잠언 4:20-22,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나의 이르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잠언 6:23,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생명은 평안과 건강을 포함한다.

 

본문은 지혜자의 교훈이 사람으로 사망의 그물을 벗어나게 한다고 말한다. 죄는 사망의 그물 곧 사람을 걸어 죽게 하는 그물이다. 죄를 짓는 자마다 사망의 그물에 걸린 자요 회개치 않으면 영원한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혜자의 교훈은 죄를 짓지 않게 하는 교훈이므로 그것이 사망의 그물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대로 의롭고 선하게 사는 지혜자가 되고, 어리석은 자의 조언을 듣지 말고 지혜자의 교훈만 받고, 또 자녀에게든지 교우에게든지 남을 지혜로 교훈하는 자가 되자.

 

[15] 선한 지혜는 은혜를 베푸나 궤사한 자의 길은 험하니라.

 

본문은 선한 지혜는 은혜를 베푼다고 말한다. ‘지혜라는 원어(세켈)명철혹은 깨달음’(understanding)(KJV, NASB, NIV)이라는 뜻이다. 선한 깨달음은 남을 이해하고 남을 유익케 하는 마음이다. 악한 지혜, 뱀과 같이 간교한 지혜는 남을 해치는 지혜이지만, 선한 지혜와 깨달음은 남에게 은혜와 호의와 사랑을 베푼다.

 

본문은 궤사한 자의 길은 험하다고 말한다. ‘궤사한 자라는 원어(보게딤)배반하는 자들, 속이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배반하는 자들은 남을 해치고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궤사한 자, 배반하는 자의 길은 험하다. 그의 길은 거칠고 평탄치 않고 형통치 않다. 의인에게도 고난은 있으나, 의인의 심령에는 평안이 있고 그의 길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좋은 결과가 있다. 그는 고난 중에도 인격 단련을 받고 겸손과 믿음, 의와 거룩이 배양된다. 그러나 악인들의 길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그 길에 여러 가지 어려움을 주실 것이다.

 

레위기 26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에게 폐병과 열병으로 치셔서 그들의 눈이 어둡고 생명이 쇠약하게 하시며, 곡식을 거두나 대적들이 와서 빼앗아 가 먹게 하시고 대적에게 패하게 하시고, 하늘로 철과 같게 하며 땅으로 놋과 같게 하셔서 흉년이 들게 하시며, 들짐승이 어린 자녀들을 움켜 가게 하시고, 칼 곧 전쟁을 보내시고 무서운 전염병을 보내시고 그들이 의지하는 양식을 끊으셔서 열 여인이 한 화덕에서 떡을 구워 저울에 달아 줄 것이며 먹어도 배부르지 않게 하실 것이며, 그들을 온 세계에 흩으시며 칼로 치셔서 그 땅을 황무케 하며 그 성읍들을 황폐케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26:16-17, 19, 22, 25-26, 33). 악인들의 길은 참으로 험할 것이다.

 

우리는 선한 지혜를 가져서 이웃에게 은혜와 유익을 끼치는 자가 되자. 우리는 결코 하나님과 참된 성도들을 배반하는 자가 되지 말자.

 

[16] 무릇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행하여도 미련한 자는 자기의 미련한 것을 나타내느니라.

 

본문은 무릇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행한다고 말한다. 지혜와 지식은 같이 간다. 지혜와 지식이 같은 말은 아니지만, 그 둘은 같이 간다. 모든 지혜 있는 자는 참 지식이 있고 그 지식을 사용한다. 잠언 12:1,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나니.” 잠언 22:17, “너는 귀를 기울여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들으며 내 지식에 마음을 둘지어다.” 지식이 무엇인가? 참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시작된다. 잠언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참된 지식의 시작이요 참 지식의 가장 중요한 내용이다. 또 참 지식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의 내용은 경건과 도덕성 즉 거룩과 선과 진실이다. 그것이 구원이며 구원의 열매이다.

 

사람이 그 지식을 가지고 행할 때 그것이 그에게 의가 되고 거기에 평안이 있다. 그것이 사람의 행복이며 생명의 길이다. 그것이 사람의 지혜이다. 모든 지혜 있는 자는 그 길, 즉 그 지식으로 행한다. 호세아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호세아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영생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17:3).

 

본문은 “[그러나] 미련한 자는 자기의 미련한 것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미련한 것이 무엇인가? 미련한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 혹은 무시하는 것,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중심적이고 세상 중심적이고 물질 중심적, 육체 중심적인 것이다. 그것은 무지와 불경건, 또 불결, , 거짓의 부도덕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오고 마침내 죽고 영원한 멸망에 던지우고 만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자신의 미련한 것을 말로나 행위로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는 지혜로운 자가 되기를 소원하자. 우리는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섬기며 하나님의 뜻대로 거룩하고 선하고 진실하게만 살자.

 

[17] 악한 사자는 재앙에 빠져도 충성된 사신은 양약이 되느니라.

 

본문은 악한 사자(使者)는 재앙에 빠진다고 말한다. ‘사자’(使者)임무를 받아 파송된 자이다. ‘악한 사자는 자기 임무를 저버리거나 그 임무에 불성실한 자이다. 그는 그를 보낸 자에게 악을 행하는 자이다. 선지자 엘리사의 수종자 게하시는 선지자 엘리사의 이름을 팔아 악을 행하였다(왕하 5:20-24).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이었던 가룟 유다는 사도의 본분을 저버리고 주님을 배신하였다(26:14-16).

 

그러나 악한 사자는 재앙에 빠질 것이다. 그를 파송한 주인은 그를 벌할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도 그의 악에 대해 재앙으로 보응하실 것이다. 게하시는 몸에 나병이 들었고(왕하 5:27), 가룟 유다는 스스로 목매었고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죽었다(27:3-5; 1:18).

 

본문은 그러나 충성된 사신(使臣)은 양약이 된다고 말한다. ‘충성된 사신은 자기 임무를 완수하는 자이다. 이삭의 아내를 구하기 위해 주인의 뜻을 따라 하란에 갔던 아브라함의 종은 충성된 사신이었다. 그는 긴 여행으로 인해 배도 고팠을 것이지만, “내가 내 일을 진술하기 전에는 먹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말했었다(24:33). 사도 바울도 충성된 사신이었다.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많은 고난도 견디었고 죽을 각오도 하였다(고전 4:9-13; 고후 6:4-10; 11:23-27). 사도행전 20:24에 보면, 그는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고백하였다.

 

충성된 사신은 양약이 된다고 본문은 말한다. 충성된 사신은 그를 보낸 자의 마음에 기쁨과 시원함과 위로를 줄 것이며, 또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칠 것이다. 또 그 자신도 또 칭찬과 상을 얻을 것이다.

 

우리는 악한 사자가 되지 말고 충성된 사신이 되자. 우리는 성도로서 언행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또 교회 직분자로서도 임무를 다하자.

 

[18] 훈계를 저버리는 자에게는 궁핍과 수욕이 이르거니와 경계를 지키는 자는 존영을 얻느니라.

 

본문은 훈계를 저버리는 자에게는 궁핍과 수욕이 이른다고 말한다. 훈계는 교훈과 징계를 가리킨다. 훈계는 의와 평안을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사람이 왜 훈계를 저버리는가? 그것은 무지와 죄성 때문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의()의 가치를 알지 못하므로 훈계를 저버리거나 또는 자신의 죄성과 세상의 악한 풍조와 마귀의 시험에 빠져 있기 때문에 훈계를 저버릴 것이다.

 

훈계를 저버리는 자에게는 궁핍과 수욕이 이를 것이다. 땅의 모든 풍부는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천지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이다(10:14; 24: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훈계를 저버리는 자에게 그 모든 좋은 것을 거두실 권리도 있고 그렇게 하실 것이다. 전쟁이 오고 가뭄이 오고 경기 침체가 올 때, 궁핍을 경험할 것이다. 또 그때 수욕도 경험할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복을 누릴 땐 존귀해 보이지만, 병에 걸렸거나 기근으로 굶주림이 심할 때나 전쟁이 나서 헐벗고 방황할 때에는, 넘치는 수욕을 경험하는 때가 될 것이다.

 

본문은 “[그러나] 경계를 지키는 자는 존영을 얻는다고 말한다. ‘경계는 책망과 징계를 뜻한다. ‘경계를 지킨다는 말은 징계를 주의한다는 뜻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교훈에 주의하고 징계를 달게 받으면, 회개에 이르고 의()에 이를 것이다. 그러면 그가 아무리 비천해졌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그의 존영을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볼 수 있는 바이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말씀하시기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고 하셨다(삼상 2:30).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하고 그 말씀을 존중하자. 우리는 성경을 사랑하고 이 책을 읽고 듣고 배우고 묵상하고 힘써 지키자. 또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를 존중하고 그 징계를 달게 받자. 그것이 지혜이다.

 

[19] 소원을 성취하면 마음에 달아도 미련한 자는 악에서 떠나기를 싫어하느니라.

 

본문은 소원을 성취하면 마음에 달다고 말한다. 소원의 성취 즉 기도 제목의 응답은 의인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신다. 시편 66:18,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잠언 28:9,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이사야 1: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의인의 기도는 들어주신다. 잠언 10:24, “악인에게는 그의 두려워하는 것이 임하거니와 의인은 그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느니라.” 시편 145:19, “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저희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요한일서 3: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가진 선한 소원이 이루어지면, 그의 마음은 기쁨이 넘칠 것이다. 잠언 13:12, “소원이 이루는 것은 곧 생명 나무니라.” 요한복음 16:23-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본문은 그러나 미련한 자는 악에서 떠나기를 싫어한다고 말한다. 미련한 자의 악행은 그의 기도의 응답을 가로막고 도리어 하나님의 미워하심과 진노와 재앙을 가져올 것이다. 그런데 미련한 자는 그 악에서 떠나기를 싫어하니 그것이 그의 미련함이다.

 

우리는 모든 불경건과 악한 마음과 언행을 버리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를 행하면서 하나님께 소원을 아뢰고 응답받는 즐거움을 누리자.

 

[20]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본문은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고 말한다. 교제에 있어서는 그 대상이 중요하다. 친구 관계도, 일생의 반려자를 취하는 결혼도, 또 교회 소속도 그러하다. 본문은 교제와 동행의 대상을 지혜자와 미련한 자로 구분한다. 잠언이 밝히 증거하는 대로, 지혜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대로 선하고 진실하게 사는 자이며, 미련한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그의 계명을 거슬러 우상숭배하고 악을 행하는 자이다.

 

본문은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는다고 말한다. 그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사람은 친구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사람은 그의 친구를 보면, 그의 인품을 대개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이다. 지혜는 경건과 도덕성이며 그 결과는 평안과 형통과 행복과 영생이다. 그러나 죄는 미련함이며 그 결과는 질병과 기근과 불행과 죽음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악한 교제를 경계한다. 고린도전서 15: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성도의 첫 번째 교제 대상은 하나님이시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에게 친근히 하라[꼭 붙드라]고 교훈한다(10:20). 옛날에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고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않았다(5:21-24).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한 의인이었다(6:9). 욥은 고난 중에서 이전에 하나님의 우정[친밀한 교제]이 그의 장막 위에 있었던 날들을 회상하였다(29:4). 누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는가?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정직한 자에게 그의 친밀한 교통이 있다고 말한다(25:14; 3:32).

 

우리는 하나님과, 또 경건하고 선한 지혜자들과 교제하고 동행하고, 악한 자들과는 교제하지 말자(고후 6:14-16; 살후 3:14; 3:10).

 

[21] 재앙은 죄인을 따르고 선한 보응은 의인에게 이르느니라.

 

본문은 재앙은 죄인을 따른다고 말한다. 그것은 모세의 율법에 레위기 26장과 신명기 28장에 증거된 바이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하는 사람들에게 각가지 재앙을 내리실 것이다. 그들은 폐병, 열병, 종기, 미침, 눈멂 등 각종 질병을 얻을 것이다. 그들은 극심한 흉년과 굶주림을 경험할 것이다. 들짐승들이 내려와 농작물을 해칠 것이다. 그들은 이웃 나라들의 침략을 당할 것이다. 오늘날 말로 하면, 그들은 무서운 질병들과, 육체적, 경제적 큰 해를 가져올 대형사고들과, 전쟁과 지진과 기근, 경제공황, 또 가정의 파탄 등의 재앙을 경험할 것이다.

 

노아 시대의 홍수심판은 그 대표적인 예이었다(6:17; 7:21-23). 소돔 고모라성의 유황불 심판도 그러하였다(19:24-25).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고 심히 음란했던 가나안 족속들은 하나도 남김 없이 다 멸망을 당해야 했다(7:1-2). 여호와께서는 악한 유다 왕 여호람을 치셔서 고칠 수 없는 병이 그 창자에 들게 하셨고 2년 만에 창자가 빠져나와 죽었다(대하 21:18-19). 또 교만했던 웃시야 왕은 성전에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다가 나병 환자가 되었고 죽는 날까지 쓸쓸히 별궁에 거하다가 죽었다(대하 26:19, 21).

 

본문은 그러나 선한 보응은 의인에게 이른다고 말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계명대로 순종하며 사는 자가 의인이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에게 선한 보응, 즉 평안과 형통의 복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 짓는 일을 가장 두려워한 요셉과 함께하셨고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고(39:23) 그의 가족을 구원케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경건했던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이기게 하셨고(삼하 8:6), 경건했던 히스기야와 함께하셔서 그가 어디를 가든지 형통케 하셨다(왕하 18:7).

 

우리는 죄를 버리고 의()에 길에만 서자.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성경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힘써 순종하자.

 

[22] 선인은 그 산업을 자자손손에게 끼쳐도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이느니라.

 

본문은 선인은 그 산업을 자자손손에게 끼친다고 말한다. 선인(善人) 곧 좋은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이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며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선과 의와 사랑으로 사는 자이다. 그는 이웃을 사랑하며 배려하는 자이다.

 

선인은 갑자기 재산을 모으지는 못해도 서서히 조금씩 정당하게 재산을 모을 것이다. 잠언 13:11,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라.” 성도는 주일을 거룩히 지키면서 돈을 벌고 하나님께 십일조 이상을 드리고 나라의 세금도 정당하게 내고 남는 것을 쓴다. 그것이 그의 정당하고 복된 수입이다. 성도의 사업에는 소위 이중장부(분식회계)나 비자금 같은 것이 없어야 한다. 성도가 이렇게 경건하고 의롭게 사업을 하면 탄탄한 기업을 이룰 것이다. 또 성도가 이렇게 번 돈과 가꾼 산업은 자자손손에게 끼칠 것이다.

 

본문은 그러나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인다고 말한다. 죄인은 하나님을 경외치 않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며 행하는 자이다. 그도 재물을 벌기는 하나 불의하고 불법한 방식으로, 이기적이게 벌 것이다. 그의 모든 소득은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닐 것이다. 그는 뇌물을 주고 받을 것이다. 그는 탈세도 할 것이다. 물론 그는 주일성수도, 십일조 생활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죄인의 이렇게 모은 재물은 자기에게나 자기의 자녀에게 복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의인을 위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의 집과 땅, 그의 회사와 공장이 어느 날 의인의 것이 될 것이라는 뜻일 것이다. 또는 그가 상속할 자녀가 없어서 다른 후계자를 둘 때, 그의 양심상 악인보다는 의인에게 자기 유산을 맡기게 된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에 순종하는 의인과 선인으로만 살자. 돈을 많이 벌려고만 하지 말고 적게 벌더라도 정직하게 벌자.

 

[23] 가난한 자는 밭을 경작하므로 양식이 많아지거늘 혹 불의로 인하여 가산을 탕패[탕진]하는 자가 있느니라.

 

다시 번역하면, “가난한 자들의 경작할 밭에서 많은 양식이 나오나 불의 때문에 그것을 빼앗기는 일이 있느니라.”

 

본문은 가난한 자들의 경작할 밭에서 많은 양식이 나온다고 말한다. 사람이 비록 가난할지라도 밭을 경작하면 많은 양식을 얻을 것이라는 뜻이다. 밭을 경작한다는 말은 오늘날 말로 자기의 직장과 사업에서 열심히, 부지런히 일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 부지런히 자기 일을 하면 소득이 늘어나고 물질적 여유를 얻을 것이다. 잠언 10:4,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잠언 13:4,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

 

본문은 “[그러나] 불의 때문에 그것을 빼앗기는 일이 있다고 말한다. 열심히 일하여 양식이 많아진다 할지라도, 사람이 불의하면 즉 죄를 지으면 모은 물질적 유여함을 다 잃어버리게 된다는 뜻이라고 본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그의 재물을 가져가 버리실 것이다. 의는 평강의 길이며 물질적 여유를 얻는 길이고, 죄는 불행의 길이며 물질적 여유를 잃어버리는 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부지런히,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번 돈을 잘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의는 물질적 여유를 유지하는 길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학개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존중하며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않고 자기 중심으로 살았기 때문에 그들이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며 또 그들이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그들이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하나님께서 불어 버리셨다고 말씀하셨다(1:4-6, 9).

 

우리는 비록 가난할지라도 손으로 수고하고 부지런함으로써 물질적 여유의 복을 누리자. 또 그것을 잘 유지하기 위해 항상 의를 행하자.

 

[24]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본문은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고 말한다. 어떤 부모는 매를 때리면 자식이 몸과 마음이 아프고 상할까봐 매를 때리지 못한다. 그들은 그것을 자식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본문은 그것은 자식을 미워하는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자녀의 잘못과 악행을 책망하고 징벌하지 않고 그의 인격의 결함과 부도덕함을 내버려두는 것은 장차 부모의 매보다 더 무서운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은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한다고 말한다. ‘근실히 징계한다는 원문(쉬카로 무사르)훈계 혹은 징계로 일찍이 그를 찾는다는 뜻이다. 진정한 자식 사랑은 단순히 그의 몸을 사랑함이 아니고 그의 영혼을 사랑함이어야 한다. 그의 영혼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영혼이 잘 되도록, 즉 그의 인격이 바른 인격, 경건하고 선한 인격이 되도록 교훈하고 책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식이 잘못을 행할 때 그 잘못을 지적하고 책망하고 적당한 벌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자녀를 징계하되 근실히, 부지런히, 때가 늦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자녀가 그 잘못을 회개하고 고쳐 좋은 인격자가 되면 그것이 자신에게 복이 되며 부모에게 기쁨이 될 것이다.

 

성경은,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고 말했고(22:15),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고 했다(23:13-14). 또 성경은,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고 말했다(29:15).

 

우리는 자녀를 매 없이 키우지 말고 근실히 징계하며 키우자. 그래야 그가 좋은 인격이 되며 복을 받을 것이다. 그것이 참된 자식 사랑이다.

 

[25] 의인은 포식하여도 악인의 배는 주리느니라.

 

본문은 의인은 포식하여도[즉 배부르게 먹어도] 악인의 배는 주린다고 말한다.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고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자이며 악인은 하나님을 경외치 않고 믿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을 거역하고 남에게 해를 끼치는 자이다. 본문에 배부르게 먹는 것과 주리는 것은 영육으로 다 해당할 것이다. 사람은 육적으로 양식이 필요하지만, 영적으로도 하나님의 말씀의 양식이 필요하다.

 

의인은 배부르게 먹을 것이다. 시편 34:9-10,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37:25,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창조자와 섭리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의인들에게 양식을 주실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양식을 주어 누리게도 하시고 그것을 거두기도 하신다. 잠언 10:3, “여호와께서 의인의 영혼은 주리지 않게 하시나 악인의 소욕은 물리치시느니라.” 그러므로 주 예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6:33). 또한 사람이 양식을 배부르게 먹으려면 하나님의 은혜로 음식 살 돈도 넉넉하고 음식도 풍부하며 몸도 건강해 식욕이 있고 소화기능도 좋아야 한다. 사람이 아프면 식욕도 떨어지고 소화기능도 약해져 양식이 풍부해도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인의 배는 주릴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것이다. 음식이 부족할 것이며 경제 여건이 매우 나쁠 것이다. 게다가, 몸에 병까지 주시고 식욕도 거두실 것이다.

 

우리는 의식주의 문제 등의 세상의 일들을 염려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믿음으로 또 선을 행하며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