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10장: 앗수르에 대한 심판
이사야10장: 앗수르에 대한 심판
1-19절, 앗수르에 대한 심판
[1-4절] 불의한 법령을 발포하며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 빈핍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 내 백성의 가련한 자의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너희에게 벌하시는 날에와 멀리서 오는 환난 때에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 누구에게로 도망하여 도움을 구하겠으며 너희 영화(榮華)를 어느 곳에 두려느냐? . . . .
선지자는 이스라엘 사회가 매우 불법하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 “불의한 법령을 발포하며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 빈핍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 내 백성의 가련한 자의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백성을 위해 봉사하기커녕 옳지 않은 법령을 공포하였고 가난하고 빈핍한 자들을 불공정하게 판결하며 그들의 권리를 박탈하고 과부의 소유물이나 고아의 소유물을 강제로 빼앗았다. 그러니 그런 자들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진노가 선포되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율법은 공의와 선과 진실을 명한 법이었다. 출애굽기 23:6은 “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공평치 않게 하지 말며 거짓 일을 멀리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고 말했다. 레위기 19:15도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치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호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니라”고 말했다. 또 잠언 14:31은,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고 말한다.
불의와 악이 가득한 이스라엘 사회에 대해, 선지자는 징벌을 선포한다. “너희에게 벌하시는 날에와 멀리서 오는 환난 때에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 누구에게로 도망하여 도움을 구하겠으며 너희 영화(榮華)를 어느 곳에 두려느냐? 포로된 자의 아래에 구푸리며 죽임을 당한 자의 아래에 엎드러질 따름이니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그들은 재앙의 날에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러 도망칠 수 없고 다 포로로 잡혀가고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는 그 정도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5-6절] 화 있을진저, 앗수르 사람이여. 그는 나의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나의 분한(忿恨)이라. 내가 그를 보내어 한 나라를 치게 하며 내가 그에게 명하여 나의 노한 백성을 쳐서 탈취하며 노략하게 하며 또 그들을 가로상의 진흙같이 짓밟게 하려 하거늘.
하나님께서는 이방 나라를 그의 진노의 도구,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를 그 도구로 사용하셨다. 그래서 그는 앗수르를 ‘나의 진노의 막대기’라고 부르셨고, 또 “그 손의 몽둥이는 나의 분한(忿恨)이라”고 말씀하셨다. 또 그는 “내가 그를 보내어 한 나라[한 불경건한 나라]를 치게 하며 내가 그에게 명하여 나의 노한 백성을 쳐서 탈취하며 노략하게 하며 또 그들을 가로상의 진흙같이 짓밟게 하려 하였다”고 말씀하셨다. ‘한 나라’라는 원문(고이 카네프)은 ‘한 불경건한 나라’(BDB, NASB, NIV)라는 뜻이다. 그것은 이스라엘 나라를 가리켰다. 하나님께서는 불경건한 이스라엘 나라를, 앗수르 나라를 도구로 사용하여 치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세상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이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다스리시며 세상 나라들을 하나님의 섭리의 도구,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던 것은 그들이 의로웠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사람들의 악함에 대해서도 이제 진노를 선언하신다.
[7-11절] 그의 뜻은 이 같지 아니하며 그 마음의 생각도 이 같지 아니하고 오직 그 마음에 허다한 나라를 파괴하며 멸절하려 하여 이르기를 나의 방백들은 다 왕이 아니냐? 갈로는 갈그미스와 같지 아니하며 . . . .
앗수르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았었으나, 하나님의 보시기에 바르지 못했다. 앗수르는 하나님께서 뜻하신 이스라엘의 침공과 탈취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의 뜻과 마음의 생각은 하나님의 뜻과 생각과 달랐다. 그들은 여러 나라들을 파괴하며 멸절시키려 하였고 심지어 유다까지도 침공하려 하였다. 그들은 자랑하듯이 말하기를, “나의 방백들은 다 왕이 아니냐? 갈로는 갈그미스와 같지 아니하며 하맛은 아르밧과 같지 아니하며 사마리아는 다메섹과 같지 아니하냐? 내 손이 이미 신상을 섬기는 나라에 미쳤나니 그 조각한 신상이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의 신상보다 우승하였느니라. 내가 사마리아와 그 신상에게 행함같이 예루살렘과 그 신상에게 행치 못하겠느냐?”고 하였다.
[12-14절] 이러므로 주 내가 나의 일을 시온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한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리라. . . .
하나님께서는 여러 나라들을 침략하려는 앗수르 사람들의 그 욕심과 교만을 미워하셨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주 내가 나의 일을 시온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한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리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주’(아도나이)라고 표현하셨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온 세상의 소유자시요 통치자시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주님이시요 왕이시다. 그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시온산과 예루살렘, 즉 유다 나라에 대한 그의 일, 곧 유다를 징계하시는 일을 행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는 이제 그 일을 다 행하신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시겠다고 선언하신다.
‘완악한 마음’이라는 원어(고델 레밥)는 ‘거만한 마음’이라는 뜻이다(BDB, NASB, NIV). 앗수르는 마음이 교만했고 높은 눈으로 자랑하였다. 그들은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의 힘과 내 지혜로 이 일을 행하였으니 나는 총명한 자라. 열국의 경계를 옮겼고 그 재물을 약탈하였으며 또 용감한 자같이 위에 거한 자를 낮추었으며 나의 손으로 열국의 재물을 얻은 것은 새의 보금자리를 얻음 같고 온 세계를 얻은 것은 내어버린 알을 주움 같았으나 날개를 치거나 입을 벌리거나 지저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고 하였다. 교만은 큰 죄악이다.
[15-19절]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 . . .
선지자는 이제 앗수르에게 그들의 교만과 자랑이 합당치 않다고 말한다.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 하겠느냐? 이는 막대기가 자기를 드는 자를 움직이려 하며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려 함과 일반이로다.” 앗수르는 하나님의 손의 도끼나 톱과 몽둥이에 불과하였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앗수르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다.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찐 자로 파리하게 하시며 그 영화(榮華)의 아래에 불이 붙는 것같이 맹렬히 타게 하실 것이라. 이스라엘의 빛은 불이요 그 거룩한 자는 불꽃이라. 하루 사이에 그의 형극과 질려[가시와 엉겅퀴]가 소멸되며 그 삼림과 기름진 밭의 영광이 전부 소멸되리니 병자가 점점 쇠약하여 감 같을 것이라. 그 삼림에 남은 나무의 수가 희소(稀少)하여[적어서] 아이라도 능히 계산할 수 있으리라.”
본문의 교훈은 분명하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경외하며 의지하고 섬기며 순종하자. 그는 온 세상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며 주님이시다. 그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5-6, 12, 16절). 세상의 모든 사람이 경배하며 섬길 자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뿐이다. 이사야 45:5-7,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무리로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사도 요한은 그의 첫 번째 서신에서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라고 썼다(요일 2:13). 예수께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다(요 17:3). 우리는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더욱 알고 그를 믿고 섬기며 순종하자.
둘째로, 우리는 의롭고 선하게만 살자. 하나님께서는 모든 불의와 악을 미워하신다. 특히 그는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멸시하고 학대하는 것을 미워하시고, 또 그는 높은 마음, 교만한 마음, 자랑하는 마음을 미워하신다(1-2, 12절). 그는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교훈하셨고, 또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고 돌아보라고 교훈하셨다.
잠언 18:12는,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고 말했고, 잠언 14:31은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선을 행하자.
예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1:29). 또 그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말씀하셨다(요 13:34-35).
사도 바울은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라”고 교훈했고(엡 4:31-32), 또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했다(빌 2:2-3). 우리는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사랑과 선을 실천하자.
20-34절, 남은 자가 돌아올 것
본문은 본장 앞부분에 이어서 앗수르의 심판에 대해 말씀하면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돌아올 것을 예언하였다.
[20-23절]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뢰치 아니하고 . . . .
선지자는, ‘그 날’ 즉 하나님께서 앗수르 나라를 심판하시는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과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앗수르 같은 나라를 의뢰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여호와 하나님을 진실히 의뢰할 것이며, 남은 자들 곧 야곱의 남은 자들이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훼멸[멸망]이 작정되었음이라. 이미 작정되었은즉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고 말했다.
‘끝까지’라는 원어(칼라)는 ‘완전한 멸망’(BDB, NASB)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의 최종적 심판과 멸망을 작정하셨고 그것을 이루실 것이다. 그것은 공의의 심판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불의와 죄에 대해 매우 진노하시고 엄히 징벌하실 것이다. 이 세상은 마침내 완전히 멸망할 것이다.
본문은 ‘남은 자’에 대해 증거한다. ‘남은 자’라는 말이 본문에 4번이나 나온다(20, 21, 21, 22절).7)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에서 피하여 남은 자들, 곧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다. 그들은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 곧 앗수르를 멸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신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다. 그들은 다시 앗수르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진실히 의지할 것이다.
[24-27절]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시온에 거한 나의 백성들아 앗수르 사람이 애굽을 본받아 막대기로 너를 때리며 몽둥이를 들어 너를 칠지라도 그를 두려워 말라. 내가 불구에 네게는 분을 그치고 노를 옮겨 그들을 멸하리라 하시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채찍을 들어 그를 치시되 오렙 반석에서 미디안 사람을 쳐죽이신 것같이 하실 것이며 막대기를 드시되 바다를 향하여 애굽에 드신 것같이 하실 것이라. 그 날에 그의 무거운 짐이 네 어깨에서 떠나고 그의 멍에가 네 목에서 벗어지되 기름진 까닭에 멍에가 부러지리라.
하나님께서는 다시 앗수르에 대한 심판을 말씀하셨다.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시온에 거한 나의 백성들아, 앗수르 사람이 애굽을 본받아 막대기로 너를 때리며 몽둥이를 들어 너를 칠지라도 그를 두려워 말라. 내가 불구(不久)에[머잖아] 네게는 분을 그치고 노를 옮겨 그들을 멸하리라 하시도다.” 현재 유다 나라는 앗수르 나라의 침공을 당하고 있을지라도, 장차 하나님께서는 유다 나라를 침략하는 앗수르 나라를 징벌하시고 멸망시키실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 곧 무수히 많은 천사들을 거느리신 능력의 하나님께서는 채찍을 들어 앗수르 나라의 왕을 치실 것이다. 그는 옛날 사사 기드온 시대에 미디안 사람들을 오렙 반석에서 쳐죽이게 하신 것처럼(삿 7:25) 하실 것이며, 또 출애굽 시대에 애굽에서 모세가 바다를 향하여 지팡이를 든 것같이 하실 것이다(출 14:15-16). ‘그 날’ 곧 앗수르 나라가 심판을 받는 그 날에, 앗수르 나라의 무거운 짐이 이스라엘의 어깨에서 떠나고 앗수르 나라의 멍에가 이스라엘의 목에서 벗어질 것이다. 27절에 ‘기름진 까닭에’라는 원문(밉페네 솨멘)은 ‘기름부음 때문에’(KJV)라고 번역할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에 주신 기름부음, 특히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으실 메시아를 가리킨 것 같다(Poole, 박윤선). 앗수르 나라의 멸망과 이스라엘 나라의 구원은 메시아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것이다.
[28-32절] 앗수르 왕이 아얏에 이르러 미그론을 지나 믹마스에 치중을 머무르고 영을 넘어 게바에서 유숙하매 라마는 떨고 사울의 기브아 사람은 도망하도다. 딸 갈림아 큰 소리로 외칠지어다. . . .
앗수르 왕8)은 유다에 들어올 것이다. 그는 아얏에 이르러 미그론을 지나 믹마스에 치중을 머무르고 영을 넘어 게바에서 유숙할 것이다. 아얏, 미그론, 믹마스, 게바는 다 예루살렘 부근에 있는 유다 나라의 성들이다. ‘치중’이라는 한자어(輜重)는 ‘짐’이라는 뜻이다.
선지자는 계속 외친다. “그때 라마는 떨고 사울의 기브아 사람은 도망하도다. 딸 갈림아 큰 소리로 외칠지어다. 라이사야 자세히 들을지어다. 가련하다. 너 아나돗이여. 맛메나 사람은 피난하며 게빔 거민은 도망하도다. 이 날에 그가 놉에서 쉬고 딸 시온 산 곧 예루살렘 산을 향하여 그 손을 흔들리로다.” ‘손을 흔든다’는 표현은 적군이 그 성을 공격하는 모습을 묘사할 것이다.
[33-34절]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혁혁한 위력으로 그 가지를 꺾으시리니 그 장대한 자가 찍힐 것이요 높은 자가 낮아질 것이며 철로 그 빽빽한 삼림을 베시리니 레바논이 권능 있는 자에게 작벌을 당하리라.
선지자는 계속 말한다.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혁혁한 위력으로 그 가지를 꺾으시리니 그 장대한 자들이 찍힐 것이요 높은 자들이 낮아질 것이며 철로 그 빽빽한 삼림을 베시리니 레바논이 권능 있는 자에게 작벌을 당하리라.”
‘주 만군의 여호와’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주권적 섭리자이심을 강조한다. ‘혁혁한 위력으로’라는 원어(베마아라차)는 ‘와지끈하게’(with a terrible crash)(NASB)라는 뜻이다.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와지끈하게 꺾으실 ‘그 가지’는 앗수르 왕을 가리킬 것이며(박윤선, Poole, J. A. Alexander), 레바논도 앗수르를 가리킬 것이다(겔 31:3). 또 ‘그 장대한 자들’(원문)과 ‘높은 자들’(원문)도 앗수르의 장군들을 가리킬 것이다. ‘권능 있는 자’는 하나님 혹은 하나님의 천사(사 37:36)을 가리킬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세상에 임할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두려워하자. 22절, “넘치는 공의로 훼멸[멸망]이 작정되었음이라.”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우상숭배와 음란을 심판하실 것이며, 앗수르의 교만과 악함과 강포를 심판하실 것이다. 마지막 날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은 작정되어 있다. 로마서 2:5, 16,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그 심판은 참으로 두려운 사건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두려워하고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모든 죄를 미워하고 버리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며 사모하자. 이사야서는 ‘남은 자’에 대해 증거하며 강조한다. ‘남은 자’라는 표현이 본문에 4번이나 나온다. 남은 자들은, 그리고 오직 남은 자들만, 모든 우상숭배와 죄를 회개하고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며 하나님만 진실히 의지할 것이다. 그들은 경건하고 의롭고 선한 자들이 될 것이다. 세상에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남겨두신 자들이 있다. 엘리야 시대와 같은 배교의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바알에게 입을 맞추지 않은 자들 7천명을 남겨두셨다(왕상 19:18). 남은 자들은 돌아올 것이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히 믿고 순종하는 자들은 남은 자들이다. 우리는 과연 남은 자들의 표를 가지고 있는가?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남은 자들이라면, 우리는 모든 죄를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의 긍휼과 은혜만 사모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