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빛이 되어 마5장13-16
세상의 빛이 되어 사60:1-7, 마5장13-16
미국의 정치가였던 벤자민 프랭클린은 자기가 사는 필라델피아 시민들에게 무언가 선한 일을 하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궁리 끝에 아름답고 좋은 등을 하나 준비해서 집 앞에 선반을 만들고 그 위에 올려 두었습니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은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등불은 집 안에 두어야 하는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집 밖에 두는 것은 낭비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한 주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자 사람들은 뭔가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집 밖에 등불을 두니까 밤에 지나가는 사람도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멀리서도 방향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좋게 생각한 사람들이 하나 둘씩 집 밖에 등불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길거리가 환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가로등의 시작이었습니다.
만약 길거리에 가로등이 없다면 어떻겠습니까? 얼마나 캄캄하고 어둡겠습니까? 얼마나 다니기에 불편하겠습니까? 세계적으로 가로등이 생기게 된 것은 벤자민 프랭클린이라는 한 사람이 주변 사람들을 위하여 집 밖에 등불을 둠으로써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한 사람의 남을 위한 배려와 선한 행동이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감동과 감화를 준 것입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세상의 빛이 되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주님은 성도를 향해 세상의 빛이라 했습니다.
신약 본문 마5:14-15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했습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빛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빛보다 어두움을 더 좋아했고, 어두운 죄악 가운데 살았던 어두움의 자식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어두움의 일을 벗어버리고 빛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엡5:8에서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했습니다. 롬 13:12에서는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고 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함으로 어두움의 일을 벗게 됩니다.
세계 3대 참회록은 '어거스틴의 참회록, 루소의 참회록, 톨스토이의 참회록' 입니다. 세 개의 참회록을 비교해 보면 상황이 다르고, 과거의 모습도 양상이 다르고, 변화되는 과정도 다릅니다. 그러나 공통된 점이 있습니다. 저들 모두 거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의 노력으로 된 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주님께서 자기를 찾아오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생각지 않게 여호와의 빛이 자기들의 삶 속에 비추었다고 고백합니다.
다음으로 자기들의 삶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무관한 삶을 살던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방탕한 삶을 살던 사람이 경건한 삶을 살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소망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생을 헛되게 살았는데 이제 인생을 의미 있게 살 수 있데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전에 는 어두움의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빛을 비춰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주님의 빛이 임하면 존재가 달라집니다. 빛의 자녀가 됩니다. 어두움의 자녀에서 빛의 자녀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위 이전에 빛 되신 예수님이 내 안에 내주하시기 때문에 더 이상 어둠이 아니고 빛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빛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 선한 일에 힘쓰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주님께서 우리에게 빛의 자녀라는 권세를 주셨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빛의 자녀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두움에서 불러 구원해 주심으로 빛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으로 가득 찬 곳입니다. 빛의 자녀가 되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라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세상에서 빛의 자녀로 살다가 하늘나라 영광에 참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빛은 소중한 역할을 합니다.
빛은 여러 가지로 소중한 역할을 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빛의 역할을 살펴보면
첫째, 빛에는 깨끗케 하는 역할이 있습니다.
요일 1:5-6에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빛이라고 말했습니다. 빛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라 하면서, 하나님과 교제 한다고 하면서 빛 가운데 사는 자가 아니고 어두운데 거하는 자라고 한다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 말은 거짓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행하지 아니하면 불행한 자가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야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빛의 아들, 딸이 되어 살면 그분의 빛이 내 안에 거하여 어두움이 물러가게 됩니다. 그래서 깨끗하고 성결하게 됩니다. 빛의 자녀에게는 깨끗함과 성결함이 있습니다.
둘째. 빛에는 사물의 정체를 밝히는 역할이 있습니다.
요 3:20에 보면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다 드러날까 함이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빛은 어두움 속에 있는 모든 정체를 밝힙니다. 어두움을 폭로 합니다. 빛 앞에서 모든 것이 탄로 납니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죄와 악이 드러나게 됩니다. 사람들은 빛이 비취면 두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어떤 이들은 빛이 어두움을 폭로하기 때문에 이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부터 피합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이 박해를 받으신 것과 빛의 자녀가 세상에서 미움과 박해를 받는 것은 바로 그러한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빛 앞에 폭로되는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인정합니다. 빛 되신 예수님께 나와 어두움의 죄를 회개하고 버리게 됩니다.
셋째, 빛은 길을 인도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합니다.
시 119:105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빛은 길을 인도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등대의 역할은 망망대해에서 고기잡이를 하고 돌아오는 어부들에게 항구로 돌아가는 뱃길을 알려주기 위해 등대 불이 비췸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그 등대 빛을 보고 뱃길을 바로 잡으며 원하고 바라는 곳으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빛의 자녀들은 세상에서 파수꾼이 되고, 등대와 같은 사명을 감당하는 자가 되어 많은 사람들을 진리의 길로, 믿음의 길로 인도하는 자가 됩니다. 단 12:3에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고 했습니다.
넷째, 빛에는 열매를 맺게 하는 역할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5:9에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했습니다. 사람도 빛을 받아야 육신의 건강을 잘 유지하게 되고 심령이 새로워져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곡식과 과일 등 모든 식물은 빛을 잘 받아야지만 잘 결실하는 것입니다. 여름에 과일들 중에서도 태양빛을 잘 받은 과일들은 잘 익어서 참외나 수박처럼 맛이 달콤하지만 장마철에 과일을 먹어보면 제 맛이 안 나고 싱겁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빛을 잘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성령의 빛을 받은 성도에게도 성령의 열매, 빛의 열매들을 맺게 됩니다.
끝으로, 빛에는 치료하는 역할이 있습니다.
말 4:2에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더 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고 했습니다. 빛은 치료하는 광선의 역할을 합니다. 방사선 치료, 적외선 치료, 빛 치료, 원적외선 치료 등, 빛을 통해서 하는 치료법입니다. 하나님의 빛이 복잡하고 연약한 신체의 어떤 부위에도 치료하는 역사로 나타나게 될 때 고침을 받고 건강을 회복하게 됩니다.
빛 되신 주님을 믿고 영접하게 되면 위와 같은 빛의 역할로 말미암아 성결케 되고, 아름답게 되고, 실족치 않게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게 되고, 영육 간에 치유되어 강건하고 복 된 존재가 됩니다. 또한 성도가 빛의 사람이 될 때 이처럼 귀한 빛의 역할을 감당하는 주님의 도구가 됩니다. 우리 모두 빛의 사람으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3.성도는 일어나 빛을 발해야 합니다.
구약 본문 사60:1에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두움 상태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빛을 비춰주셨습니다. 영적 죄악의 어두움 가운데서 건져내어 주셨습니다. 어두움 가운데서 신음하며 절망하던 저들을 구원해 내신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일어나 빛을 발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빛이십니다. 어둠에 갇혔던 심령들이 이 빛으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증거하며 어둠 속에서 헤매는 사람들을 구원해야 합니다. 우리가 비추는 구원의 빛을 보고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힘을 다해야 합니다. 이 빛을 받은 사람들에게 소망이 넘칩니다. 예수님은 소망의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빛 되신 주님을 내 마음에 모시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됩니다. 미움이 변하여 사랑이 됩니다. 절망이 변하여 소망이 됩니다. 원망이 변하여 감사가 됩니다. 두려운 마음이 변하여 담대한 마음이 됩니다. 불안한 마음이 변하여 평안한 마음이 됩니다.
이 구원의 주, 소망의 주님을 세계만방에 전하는 사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구원의 빛이 세상 끝까지 퍼져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구원의 빛을 비추는 사명을 힘써 감당해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 비전을 보면서 3-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라” 성도들에게 네 눈을 들어 사면을 보라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세상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 어둠 속에서 갈 바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라는 뜻입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떠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요4;35절에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노라라고 하셨습니다. 희어져 추수를 기다리는 영혼들을 향하여 복음의 빛을 비추라는 것입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 데 일꾼이 심히 적다고 하시는 주님이 추수할 일꾼으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가정, 우리친척, 우리 친구들이 과연 어떤 형편인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많은 시간을 자신만을 위하여 살아가기 쉽습니다. 자신의 복만을 바라보면 이웃의 아픔이나 고난을 보지 못하고 살게 됩니다.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애정과 관심을 외면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눈을 들어 사면을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해야 할 영혼들입니다. 무리가 몰려오는 환상을 보아야 합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빛의 자녀다운 모습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신약 본문 마5:16에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십니다. 빛의 자녀다운 착한 행실을 보여야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어느 집사님의 간증입니다. “17년 전, 나는 누구보다도 기독교를 싫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불교 집안에서 자랐기에 내가 기독교인들을 만날 수 없었지만, 내 기억 속에 기독교인들은 늘 안 좋은 모습이었습니다.
결혼 후 시작하게 된 피아노 레슨 일로 기독교인들의 가정을 방문할 기회가 많았고 기독교에 대한 나의 인상은 점점 더 나빠졌습니다. 교회 일을 한답시고 집안을 엉망으로 해놓고 다니는 주부들, 자식들 피아노 가르치는 일에만 욕심을 냈지, 정작 레슨비 내는 것에는 너무나 인색한 사람들, 그들이 전도를 하겠다며 하나님의 사랑을 말할 때, 나는 기독교인들 모두가 진실하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소현이라는 학생을 소개받았습니다. 그 집 또한 기독교 가정이라는 말을 듣고, 나는 아무런 기대도 없이 소현이네 집을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소현이네 집은 첫 인상부터 달랐습니다. 깔끔하게 정돈된 거실과 평온한 집안 분위기, 무엇보다도 소현이 어머니의 밝은 인상과 친절한 말씨는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편견을 조금씩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첫 아이 출산 때문에 한 달 동안 레슨을 쉰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소현이 어머니가 우리 집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일하지도 않은 한 달 레슨비와 선물을 주고 가셨습니다. 당시 내가 가르치는 학생은 20명도 넘었지만 이렇게 까지 걱정을 해 준 사람은 소현이 어머니 한 분 뿐이었습니다. 그날 소현이 어머니가 돌아가신 자리에는 예쁜 가죽 성경책과 찬송가가 노여 져 있었습니다. 그 후 나는 소현이 어머니가 소개해 준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교회의 집사로 열심히 교회 일에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있는 그곳에서 좀 양보하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빛 되신 주님을 본받아 사랑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 속에 주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나의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불신 영혼이 주께로 돌아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됩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정리/
1.주님은 성도를 향해 세상의 빛이라 했습니다.
2.빛은 소중한 역할을 합니다.
3.성도는 일어나 빛을 발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세상의 빛이 되어 일어나 빛을 발하는 성도로 삽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