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아가

너는 빨리 달리라 (아8:8-14)

nam씨 2016. 4. 1. 21:18

너는 빨리 달리라 (아8:8-14)
= 성숙과 천국과 재림 =

요 약

술람미가 고향에 간 이야기는 온전한 성숙자의 신앙 및 임종 후 천국에서의 기쁨을 교훈 한다. 여기서 오빠들에 대한 오해가 풀렸듯이 천국에서 비로소 연단의 은혜에 감사하며, 또 술람미가 화평을 누리듯 평안하며, 또 오빠들의 포도원 경작이 자기를 위한 것임을 알았듯 지상에서의 교회생활의 축복을 알게 되며, 오빠들이 왕과 회계하듯 천국에서 각인의 충성에 따라 상급이 주어질 것이다. 그리고 왕을 향한 열망처럼 성령의 현재적 임하심과 그리스도의 재림의 소망을 가지고 뜨겁게 기도해야 할 것이다.

설 명

1. 배 경
⇒ 술람미가 고향에서 모든 오해가 풀리고 감격하는 장면이다.


2. 적 용
(진단) 더 온전한 연합을 원하시나요?
(해결) 서로가 원하는 일들에까지 협력자가 되십시오.


3. 온전한 성도

1) 연단의 은혜에 감사
8절 “그가 청혼함을 받는 날에는 우리가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할꼬”
: 오라버니들이 술람미 동생을 염려하는 말이다.

2) 평안함을 누림
10절 “나는 그의 보기에 화평을 얻은 자 같구나”
: 오라버니들의 숨은 수고를 알고 상처가 치료됨이다.

3) 진리의 이치를 깨달음
11-12절 “솔로몬 너는 일 천을 얻겠고 - 이 백을 얻으려니와”
: 솔로몬의 포도원을 오라버니들이 관리하게 된 경위
역시 술람미를 위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4) 성령 부흥을 기도함
13절 “동무들이 네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나로 듣게 하려므나”
: 나만이 아닌 백성들에게도 그의 말씀으로 은혜 끼치기 원한다.

5) 재림을 갈망함
14절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들에서 노루와도 같고”
: 1) 왕에게 백성들을 돌아보면서 속히 오기를 사모함이다.


아가 8:8-14

8 (오빠들)우리에게 있는 작은 누이는 아직도 유방이 없구나
그가 청혼함을 받는 날에는 우리가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할꼬
9 그가 성벽일진대 우리는 은 망대를 그 위에 세울 것이요
그가 문일진대 우리는 백향목 판자로 두르리라
10 (술람미)나는 성벽이요 나의 유방은 망대 같으니
그러므로 나는 그의 보기에 화평을 얻은 자 같구나
11 솔로몬이 바알하몬에 포도원이 있어 지키는 자들에게
맡겨두고 그들로 각기 그 실과를 인하여서
은 일 천을 바치게 하였구나
12 솔로몬 너는 일 천을 얻겠고 실과 지키는 자도
이백을 얻으려니와 내게 속한 내 포도원은 내 앞에 있구나
13 (솔로몬)너 동산에 거한 자야 동무들이 네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나로 듣게 하려무나
14 (술람미)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들에서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여라


원 문

8 ונל תוחא 아호트 라누(우리에게 있는 누이는)
הנשק 케탄나(작은) םידשׁק 웨솨다임(가슴(유방)이) הל ןיא 엔 라흐(그에게 없도다)
השׂענ־המ 마 나아세(우리가 무엇을 할꼬) ונתחאל 라아호테누(우리 누이를 위하여)
םויב 바욤(오늘) הב־רבדישׁ 쉐에두발 바흐(그녀에게 말하는)
9 איה המוח־םא 임 호마 히(만약 그녀가 벽이라면)
הילע הנבנ 니베네 알레하(우리가 그 위에 세우리라) ףסכ תריש 티라트 카세프(은 흉장을)
היה תלד־םאו 웨임 델레트 히(또 만약 그녀가 문이라면)
הילע רוצנ 나추르 알레하(우리가 그 위에 묶으리라)
זרא חול 루아흐 아레즈(백향목의 판자로)
10 המוח ינא 아니 호마(나는 벽이며) ידשׁו 웨솨다이(내 가슴은)
תולדגמכ 캄미그달로트(망대와 같도다) יתייה זא 아즈 하이티(그러므로 나는 있도다)
ויניעב 베에나우(그의 눈에) םולשׁ תאצומכ 케모츠에트 솰롬(평안을 찾는 사람과 같이)
11 היה םרכ 케렘 하야(포도원이 있도다) המלשׁל 리쉴로모(솔로몬에게)
ןומה לעבב 베바알 하몬(바알하몬에) ןתנ 나탄(그가 맡겼다)
םרכה־תא 엩 핰케렘(포도원을) םירשנל 란노트림(지키는 자들에게)
אבי שׁיא 이쉬 야비(그 사람이 가져올 것이다) וירפב 베피르요(그것의 열매를 위해)
ףסכ פלא 엘레프 카세프(은 일천 개를)
12 ילשׁ ימרכ 카르미 쉘리(내게 속한 내 포도원이) ינפל 레파나이(내 앞에 있도다)
ךל ףלאה 하엘레프 레카(너를 위해 천 개를) המלשׁ 쉴로모(솔로몬)
םיתאמו 우마타임(그리고 이백을) םירשנל 레노트림(지키는 자들을 위해)
וירפ־תא 엩 피르요(그 열매를)
13 תבשׁויה 하요쉐베트(거하는 여인이여) םינגב 박간님(포도원에)
םירבח 하베림(동료들이) םיבישׁקמ 마크쉬빔(듣고 있도다) ךלוקל 레콜레크(네 목소리를)
יניעימשׁה 하쉬미이니(너는 내가 듣게 할지라)
14 ידוד חרב 베라흐 도디(내 사랑하는 자여, 서두르라)
ךל־המדו 우드메 레카(흡사하도다) יבצל 리츠비(가젤이나)
םיליאה רפעל וא 오 레오페르 하아얄림(어린 사슴과)
ירה לע 알 하레(산 위에 있는) םימשׂב 베사밈(향기로운)


스 토 리

술람미의 오빠들은 벌써부터
술람미의 동생들 즉 아직도 어리고
철없는 누이의 혼인을 염려하고 있었다.
이처럼 그들은 누이의 성숙과 순결을 위하여
가족으로서 헌신적인 사랑과 열성을 다 하고 있었다.
이것을 본 술람미는 그들의 그 모습이 전에 자기에게 함과 어쩌면 동일한지
그러함이 있었기에 자신의 순결이 성벽같이 보호된 것과
영광스런 솔로몬 왕의 아내가 되고 이제 솔로몬의 귀한 자손을
낳게 된 지극히 복된 여인이 된 원인을 깨달았다.
오빠들의 강압이 없었으면 순결이 어찌 보존될 수 있었겠으며
그들의 깐깐한 간섭이 없이 어떻게 아름답게 가꾸어졌겠는가?
술람미는 이복 오빠들의 학대로만 느껴졌던
지난날의 오해가 모두 풀려질 때 감격과 아울러
소견 좁은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더 놀라운 발견은 솔로몬의 소유인
바알하몬 포도원을 오빠들이 관리하게 된 경위였다.
그 포도원은 소득 가운데 일 천을 바치고 이 백을 취하는 이윤이 박한 것이었다.
그러나 술람미의 앞날을 위한 오빠들의 치밀한 계획
속에서 포도원의 관리를 자청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이젠 황후의 영광은 물론이고 소작인의 입장에서
주인의 입장으로 바꾸어졌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그 뿐만 아니라 그녀 소유의 포도원도 오빠들이 그녀를 위해
준비한 것이었고 지금까지 그녀의 소유로 관리하고 있었다.
이것을 깨달은 술람미는 오빠들에 대한 지난날의 오해가 씻는 듯이 사라지고
오빠들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심으로 가득 찼다.
술람미 부부는 고향에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옛 친구들이 모여와 정겨운 옛 이야기이며 왕궁 생활과
솔로몬과의 사랑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요청하였다.
참으로 아름다운 추억의 순간이었다.
술람미는 왕의 온전한 동역자가 되길 원하였다.
그리하여 솔로몬의 마차는 백성들을 위한 사랑을 가득히 싣고
남은 이스라엘의 동네를 향하여 향기로운 산과 들에서 신나게 달리는
노루와 어린 사슴과도 같이 빠르게 달려가고 있었다.


(강 해)
이 시간에는 “너는 빨리 달리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본문의 내용은 솔로몬 부부가 술람미의 고향 그러니까 솔로몬으로서는 처가 집에서 있던 일입니다. 이것은 성도들이 장차 저 하나님 나라에 가서 경험할 일에 대한 내용과 아울러 재림에 대한 갈망을 담고 있는 내용입니다. 또한 이 내용은 온전케 되어진 성도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 시간에는 두 가지는 생략하고 온전한 성도의 모습이란 무엇인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럼 온전한 성도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1. 혹독했던 연단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8절에 “우리에게 있는 작은 누이는 아직도 유방이 없구나 그가 청혼함을 받는 날에는 우리가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할꼬” 했습니다.
이 노래는 술람미 오빠들의 노래입니다. 오빠들은 지금 술람미의 동생 그러니까 그들의 누이들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누이 술람미에게 기억되기를 자기를 고통스럽게 한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놀랍게도 자기들의 누이 그러니까 술람미의 동생들을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즉 그 누이들은 아직 어리고 철이 없건만 그들은 벌써부터 누이들의 장래의 혼인을 염려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즉 어떻게 하면 술람미 같이 시집을 잘 보낼 수 있을까 하는 염려 말입니다. 아마 이런 오빠들도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술람미의 오빠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큰 발견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오빠들은 술람미에게 있어서 상처의 대상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술람미에게 느껴지는 그들은 참으로 힘겹고 고통스러운 대상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남자를 만나지 못하게 하지 않나 먹을 것 입을 것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 작은 행동 하나 하나까지 간섭하지를 않나 술람미에게 온전하기를 바라는 힘든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술람미가 출가한 후에 그 일을 계속하여 그 누이들에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술람미는 오빠들이 자기에게 그렇게 해야 했던 그 이유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오빠들은 자기 누이 그러니까 술람의 누이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9절에 “그가 성벽일진데 우리는 은 망대를 그 위에 세울 것이요 그가 문일진데 우리는 백향목 판자로 두르리라” 여기 성벽은 외부의 침입자들을 막아주는 곳입니다. 그런데 강한 침입을 받으면 이 성벽도 무너집니다. 그래서 망대를 세워 철저히 감사해야 합니다. 또 성문 역시 적이 침입할 뿐 아니라 내가 문을 열고 나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못 나가게 백향목 판자로 둘러 주겠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들은 성숙해 가는 누이의 순결을 위하여 가족으로서 헌신적인 사랑과 열성을 다 하겠다는 다짐입니다. 이것을 본 술람미는 이제야 깨닫게 됩니다. 즉 자신의 순결이 보호되고 그래서 영광스런 솔로몬의 아내가 되고 왕자까지 낳게 된 복된 여인이 된 원인이 다 오빠들의 수고 덕분이었다는 것입니다. 즉 오빠들의 이런 훈련과 통제가 없었다면 어떻게 그녀의 순결과 건강과 미모와 왕후에 합당할 만큼의 예절과 언어와 인품 등이 어떻게 형성되거나 보존될 수 있었겠습니까? 또 전에 강제적으로 술람미를 자기들의 포도원으로 내 몰지 않았다면 어떻게 왕을 만날 수 있었겠습니까? 오빠들은 포도원에 왕이 온다는 것을 알고 강제로 보냈지만 술람미는 그것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오빠들의 진정한 마음을 알고 그 동안 이복 오빠들의 학대로만 느껴졌던 지난날의 모든 오해를 풀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천국에 가면 지상에서 받은 온갖 시련의 이유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은혜인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지상의 성도도 영적으로 성숙하면 혹독한 고난도 나를 위한 축복임을 깨닫고 감사하게 됩니다. 전에는 말씀을 통해서 들었지만 진정 감사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온전히 감사하고 기쁘게 여겨집니다. 약1:2-4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축복입니까? 그러나 성숙하기 전에는 이 고난이 축복으로 생각되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늘 마음의 상처로 남게 됩니다. 그러나 성숙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주신 그 연단이 얼마나 귀한 것을 깨닫게 됩니다.

2. 온전한 성도는 어떤 가운데서도 평안함을 누립니다.

10절에 “나는 성벽이요 나의 유방은 망대 같으니 그러므로 나는 그의 보기에 화평을 얻은 자 같구나” 했습니다.
여기 성벽이란 오빠들의 그 수고가 있었기에 순결이 보존되어 타인이 아닌 솔로몬의 아내가 되었다는 뜻이요, 유방이 망대 같다란 젖을 먹이고 있는 현재의 상태를 이른 것을, 그리고 이렇게 자손까지 낳아 자기의 품에 안겨 젖까지 먹이게 되었으니 그 자손이 바로 남편이 자기에게 준 변치 않겠다는 증표와도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자손이 왕자인지 공주인지 모르나 보편적으로 왕자라고 볼 때 왕자를 품에 안고도 불신한다면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결혼과 자손이라는 이중적인 언약을 믿고 평안함을 누려야 마땅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하여 거듭난 생명을 풍성히 누리는 수준에 이르게 될 때 그것은 곧 택하심의 분명한 증거요 열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예정을 알 수 없지만 신자들에게서 나타난 그 열매를 보아서 택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살1:3-4에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했습니다. 이런 생명을 누리는 수준에 이를 때 성도는 진정한 마음의 화평을 누립니다. 그리고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환경대로 평가하여 주님을 의심하지 않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3. 영적으로 성숙하면 진리의 이치를 더욱 깨닫게 됩니다.

11-12절에 “솔로몬이 바알하몬에 포도원이 있어 지키는 자들에게 맡겨두고 그들로 각기 그 실과를 인하여서 은 일 천을 바치게 하였구나 솔로몬 너는 일 천을 얻겠고 실과 지키는 자도 이 백을 얻으려니와 내게 속한 내 포도원은 내 앞에 있구나” 했습니다.
즉 술람미의 또 다른 발견은 솔로몬의 소유인 바알하몬 포도원을 오빠들이 관리하게 된 경위였습니다. 그 포도원은 소득 가운데 일 천을 바치고 이 백을 취하는 이윤이 박한 것이었다. 누가 그토록 영농비용까지 들여 수고하고 이자조차 되지 않는 이윤을 위해 일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제 와서 술람미가 깨달은 사실은 바로 자기 앞날을 위해 이렇게 오빠들이 치밀한 계획 속에서 포도원의 관리를 자청하게 되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마치 모르드개가 삼촌의 딸 하닷사를 맡아 큰 꿈을 가지고 기르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젠 황후의 영광은 물론이고 소작인의 입장에서 주인의 입장으로 바꾸어졌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 뿐 아니라 전에 그녀의 포도원도 오빠들에 의해 그녀의 이름으로 잘 관리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은 술람미는 오빠들에 대한 지난날의 앙금은 씻는 듯이 사라지고 오빠들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입니까?

여기 포도원이 가르쳐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약 두 가지인데 먼저는 교회의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양육하사 온전케 하시기 위해서 지상에 교회를 두셨습니다. 성도들은 이 교회를 통해서 주님을 소개받고 주님의 위로를 받고 주님을 사랑하게 되며 그래서 결국 주님을 깊이 사랑하게 됩니다. 그런데 불신자가 자기를 기쁘게 하는 세속의 포도원을 두고 하나님의 포도원인 교회에 나온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환경의 온갖 시련과 연단을 통해서 두 손들고 교회로 나오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이란 교훈입니다.

또 다른 교훈은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에 이르면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행한 일로 상급을 받게 된다는 교훈입니다. 마25:20에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그런데 땅에 숨겨둔 종에게는 어떻게 했습니까? 26절에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자에게 주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계22:12에서 예수님께서는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하셨습니다.

솔로몬이 맡긴 포도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상징합니다. 우리가 이 교회에서 지체들에게 얼마나 충성했느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보실 것입니다. 그런데 은 솔로몬에게 바친 일 천은 무엇일까요? 은은 구속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일 천은 한정된 충만수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교회를 통해서 구원하시어 하나님께 봉헌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할 일은 전도하여 하나님께 택한 백성들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럼 그 대신 소작인들에게 준 이 백은 무엇입니까? 이 백은 구비수 10을 제곱한 수의 갑절로서 영육 간의 온전히 변화 받는 은총을 입게 될 것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술람미가 포도원의 주인의 아내가 되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상속해 주실 것입니다.

4. 성숙한 성도는 모두에게 은혜로운 존재입니다.

13절에 “너 동산에 거한 자야 동무들이 네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나로 듣게 하려므나” 했습니다.
이 구절은 솔로몬의 노래입니다. 원문을 참고하면 “포도원에 거하는 여인이여 동료들이 네 목소리를 듣고 있도다. 너는 내가 듣게 할지니라”입니다. 놀라운 것은 앞에서는 술람미가 동산이었는데 이제는 술람미가 솔로몬을 동산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술람미가 남편 안에서 완전한 만족을 누리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렇게 술람미는 모든 면에서 앞선 남편을 따라옵니다. 그래서 전과 같이 고통이 아니라 남편과 동일하게 즐길 수 있는 시점입니다. 이는 장차 천국에서 우리 성도들이 주께서 예비하신 은혜를 온전히 누릴 것을 시사합니다. 이처럼 술람미는 그가 번민하며 고향에서 남편의 사랑을 원했던 대로 고향에서 남편의 사랑을 그대로 받고 있으니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런데 여기 ‘동무들’(םירבה 하베림)은 술람미의 고향 사람들을(Lange, Delitzsch) 가리킵니다. 그리고 “나로 듣게 하려므나”한 솔로몬의 말을 참고할 때 이것은 다름 아닌 사랑하는 백성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는 행복한 순간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그들은 왕후 술람미의 말 듣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전에 술람미가 고향을 앞두고 번민하며 사람들 앞에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어 자기를 높이길 원했는데 그들이 술람미의 말을 듣기를 원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술람미가 바라던 것보다 더 아름답게 이루어졌음을 의미합니다. 이제 그의 가족과 고향 사람들 중에 그 누구도 술람미를 무시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도리어 술람미는 고향을 빛내준 영웅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교훈은 성숙한 성도가 되면 먼저 예수 안에서 자신이 참 만족을 누릴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도 은혜를 끼치는 사모의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주님의 동산에서 즐거움을 누리고 있음을 부러워합니다. 그리고 자신들도 그 동산에서 즐거워하기를 심히 사모합니다. 그런데 나로 듣게 해 달라는 남편의 요청과 같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물론 우리의 행복한 경험만 말해 주어도 큰 도전을 받을 것입니다.

5. 성숙한 성도는 재림을 갈망합니다.

14절에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들에서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여라” 했습니다.
여기 산들이란 어렵고 거친 백성들의 난관 등을 암시한다. 그런데 향기로운 산들임을 기억해야 한다. 즉 술람미는 왕으로 하여금 백성들이 비록 어려운 상황에 있을지라도 달려가서 기쁨과 즐거움으로 속히 도와주기를 갈망합니다. 이처럼 온전한 연합은 배우자의 관심이 내 관심이 되어 협력합니다. 참으로 최고의 후원자와 동역자는 자신의 배우자여야 합니다. 그 결과 전에는 왕이 국사로 인해 독수공방했던 술람미였지만 이제는 언제나 함께 합니다. 그래서 솔로몬의 마차는 두 사람의 사랑을 가득히 싣고 나라의 여러 동리를 다니면서 백성들에게 기쁨을 선사합니다. 술람미는 온 나라를 행복의 동산으로 만들기 위해 달리고 또 달려가기를 두 손 모아 갈망합니다. 이제는 솔로몬 왕의 완전한 후원자요 동역자가 된 것입니다.

이 말씀은 신령한 의미에서 구약에서는 그리스도의 초림을,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간구하는 대목입니다. 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부분을 재림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다시 오마 하셨고 요한에게도 내가 속히 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속히 오신다는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시간적인 속히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빠른 행보를 뜻합니다. 그럼 천국과 지상이 그렇게 멀다는 것입니까? 그런 뜻은 아닙니다. 이것은 바로 이 땅에 부흥을 주시며 구원할 자를 다 구원하시고 온전케 할 자를 다 온전케 하시면서 속히 오신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현재도 속히 오시고 계시는 재림의 현재적인 의미입니다. 그런데 술람미가 왕과 함께 온 동리를 향해 달려가듯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동역자로 삼으시고 죄인을 구원하시고 변화시키시면서 오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령 안에서 오시고 계시는 주님을 경험함이 곧 신부 단장이요, 오시고 계신 주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사 역사하심이 신령한 복음사역입니다. 이렇게 오시고 계신 주님께서는 장차 그 날에 온전히 오실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성도는 담대히 예수님이 오시기를 소망하고(계20:20) 또 주님의 동역자가 되어 온 누리에 복음의 나라가 임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러한 일군들에게 주님께서는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하시고 또한 온전히 만족하게 하실 것입니다(마28:20).

< 결론>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얼마나 신랑 되신 예수님을 사모하십니까? 아가서를 배운 우리들은 신랑 되신 예수님이 만족하실 수 있는 참 사랑의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담대히 주님의 재림을 간구하며 온 세상이 다 복음화 되도록 신랑 되신 예수님과 함께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십시다. 그 때 우리는 더욱 큰 사랑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술람미 왕후와 같은 예수님의 가장 아름다운 신부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