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아가

고향을 앞에 두고 (아 8:1-4)

nam씨 2016. 3. 19. 14:43


고향을 앞에 두고 (8:1-4)

=지상 성도의 소원 =

 

요 약

 

이 지상을 사는 성도의 간절한 소원은 먼저 죄악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는 성령 안에서의 성화적 삶이요, 나아가 불신자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도하는 것이요, 이 험한 세상에서 늘 하나님의 특별은총이 나타나 그 영광 나타남과 도움 받기를 원함이요, 세상 사람들 앞에 하나님의 영광이 되도록 큰사랑과 축복을 받기를 원함이요, 그리고 내 주관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주권이 서도록 간절히 희망함이다. 지상을 사는 성도는 이 같은 소원으로 본향을 소망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설 명

 

1. 배 경

고향을 앞에 두고 번민하며 박해자였던 오빠들에게 뭔가를

보여주기를 원하는 술람미의 심리가 나타난다.

 

 

2. 적 용

(진단) 기도와 노력으로도 불화가 해결되지 않나요?

(해결) 나를 온전케 하시려는 뜻을 믿고 죽는 훈련을 하십시오.

 

 

3. 지상 성도의 소원

 

1)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는 성화적 삶

1오라비 같았었더면 - 입을 맞추어도

: 금의환향하여 남편과 공개적인 사랑을 보이기를 원함이다.

 

2. 예수 복음 전도

2내 어미의 집에 들이고 네게서 교훈을 받았으리라

: 학대했던 혈육에게 왕의 교훈을 들려주려 함이다.

 

3. 하나님의 특별은총

2나는 향기로운 술 곧 석류즙으로 네게 마시웠겠고

: 남편에게 흥분제를 마시게 하고자함이다.

 

4. 영광 위한 복

3왼손으론 내 머리에 베개하고 오른손으론 나를 안았었으리라

: 남편으로부터 공개적인 사랑을 받기 원함이다.

 

5. 내 주관적인 자아 처리

4나의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며

: 누구의 간섭조차 싫고 남편만이 이 번민을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아가 8:1-4

 

1 (술람미)네가 내 어미의 젖을 먹은 오라비 같았었더면

내가 밖에서 너를 만날 때에 입을 맞추어도

나를 업신여길 자가 없었을 것이라

2 내가 너를 이끌어 내 어미 집에 들이고 네게서 교훈을 받았으리라

나는 향기로운 술 곧 석류즙으로 네게 마시웠겠고

3 너는 왼손으론 내 머리에 베개하고

오른손으론 나를 안았었으리라

4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너희에게 부탁한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며 깨우지 말지니라

 

원 문

 

1 ךנתי ימ 미 잍테네카(네가 -와 같았더라면) יל האכ 케아흐 리(내게 형제와)

קנוי 요네크(젖을 빠는) ימא ידשׁ 쉬데 임미(내 어머니의 가슴에서)

ךאצמא 에므차아카(만약 내가 너를 만난다면) צחב 바후츠(밖에서)

ךקשׁא 엣솨케카(내가 너에게 입맞추리라)

יל וזובי־אל םג 감 로 야부주 이(그들이 나를 결코 업신여기지 못하리라)

2 ךגהנא 에느하가카(내가 너를 인도하여) ךאיבא 아비아카(너를 데리고 들어갈 것이다)

ימא תיב־לא 엘 베트 임미(내 어머니의 집으로)

ינדמלת 텔라므데니(그녀가 나를 가르칠 것이다)

ךקשׁא 아쉬케카(내가 너를 마시게 할 것이다)

הקרה ןיימ 미야인 하레카흐(향기로운 술을)

ינמר סיסעמ 메아시스 림모니(내 석류 쥬스를)

3 ולאמשׂ 세모로(그의 왼손을) ישׁאר תחת 타하르 로쉬(내 머리 아래 두고)

ונימיו 위미노(그의 오른손이) ינקבחת 테하브케니(나를 포옹하리라)

4 םכתא יתעבשׁה 히쉽바티 에테켐(내가 너에게 맹세한다)

םלשׁורי תונב 베노트 예루솰라임(예루살렘의 딸들아)

וריעת־המ 마 타이루(왜 너희가 흔들고)

וררעת־המו 우마 테오레루(왜 깨우는가) הבהאה־תא 엩 하아하바(() 사랑을)

צפחתשׁ דע 아드 쉐테흐파츠(그녀가 기뻐할 때까지)

 

스 토 리

 

두 사람의 사랑은 깊어져 갔고

어미 집에 돌아가 몸을 풀 날도 가까워졌다.

그러나 술람미는 지난날 자신을 학대했던 이복 오라버니들을

생각하며 어떻게 만나야 할지 쓸데없는 잡념에 사로잡혔다.

지난 날 자신을 강압적으로 포도원지기 삼았던 오빠들 앞에 어떤 방법으로든

시골 댁 같은 하나의 왕후가 아니라 많은 왕후 중에서도 솔로몬 왕의 총애를

당당하게 받는 자신임을 똑똑히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오빠가 아니라면 비난받을 풍습 위반이지만

남편인 왕에게 공개적인 입맞춤과

모여든 친족들에게 들려주는 심금을 울리는 솔로몬의 지혜로운 교훈을

함께 들으며 위신을 한껏 뽐내고 싶었다.

그리고 흥분을 유발하는 술로서 왕을 고조시켜

자기 없이는 살 수 없는 왕의 모습을 드러내어

그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왕후임을 보이고 싶었다.

술람미는 번민 중에 자기를 돕는 시녀들의

애정 어린 간섭조차도 귀찮게 여겨졌다.

그래서 남편이 원하기 전에는 깨우지 말라고

당부하며 번민하다 잠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녀를 깨울 수 있는 사람

즉 그녀의 소원을 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남편이었기 때문이었다.

 

 

(강 해)

오늘 고향을 앞에 두고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본문은 지난 시간에 계속하여 술람미의 노래입니다. 우리는 7장에서 남편을 만족시킨 성숙한 아내인 술람미에 대하여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은 깊어져 갔고 잉태하여 어미 집에 돌아가 몸을 풀 날도 가까워졌습니다. 그러나 술람미는 지난날 자신을 학대했던 이복 오라버니들을 생각하며 어떻게 만나야 할지 온갖 잡념에 사로잡혔습니다. 지난 날 자신을 강압적으로 포도원지기 삼았던 오빠들 앞에 어떤 방법으로든 시골 댁 같은 하나의 왕후가 아니라 쟁쟁한 많은 왕후 중에서 솔로몬 왕의 총애를 당당하게 받는 자기 모습을 똑똑히 보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오빠가 아니라면 비난받을 풍습 위반이지만 남편인 왕에게 공개적인 입맞춤과 환영하는 인파에 둘러싸여 왕의 곁에서 그의 교훈하는 연설을 함께 들으며 위신을 한껏 뽐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흥분을 유발하는 술로서 왕을 고조시켜 자기 없이는 살 수 없는 왕의 모습을 드러내어 그의 품에서 사랑 받는 자임을 보이고 싶었습니다. 이런 쓸데없는 번민에 사로잡힌 술람미는 자기를 돕는 시녀들의 애정 어린 간섭조차도 귀찮게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시녀들에게 남편이 원하기 전에는 깨우지 말 것을 당부하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를 깨울 수 있는 사람 즉 그녀의 소원을 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남편이었기 때문입니다.여기서 마음의 상처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과 고향을 앞 둔 술람미의 심적인 고통이 담긴 본문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객관적으로는 가슴 설레는 본향인 하나님 나라를 앞둔 성도의 임종 직전을, 주관적으로는 지상을 사는 성숙한 성도의 소망을 보여줍니다. 이 시간에는 전자는 잠시 유보하고 후자를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본문의 여러 가정법적인 문장을 통해 술람미가 원하기는 하지만 당시 사회적인 풍습상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신앙 생활하면서 주님을 진실로 사랑하지만 여러 한계에 부딪혀서 신음하는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님의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는 말씀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지상 성도들의 소원이 무엇이어야 함을 발견합니다.

 

1.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는 성화의 삶입니다.

 

1절에 네가 내 어미의 젖을 먹은 오라비 같았었더면 내가 밖에서 너를 만날 때에 입을 맞추어도 나를 업신여길 자가 없었을 것이라했습니다.

당시 사회적인 풍습은 혈육을 제외하고는 공개적인 장소의 애정표현이 몹시 멸시를 받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술람미가 고향에 남편과 함께 금의환향하여 밖에서 남편을 오라비에게 하듯 입을 맞추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나라를 통치하는 왕을 자기가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보이고 싶다는 우스꽝스러운 소원입니다. 물론 술람미의 마음의 생각일 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지만 여기에는 성장시절에 이복 오라버니들에게 학대받던 마음의 상처를 엿볼 수 있습니다. 조금의 부족도 용납치 않고 완전하기만을 바라며 책망하고 들볶던 오라버니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진정한 의도를 모른 어린 술람미에게는 그 모든 것이 심한 학대로만 여겨졌습니다. 마음의 상처란 왕후라는 출세를 통해서도 쉽게 치유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고향을 향해 가는 그 상황이므로 더욱 그러합니다. 그래서 자기를 학대하던 오라버니들에게 보란 듯이 나타나고 싶다는 것은 충분히 마음에서나마 존재할 수 있는 일입니다.

 

여기 오라버니는 연단의 환경 혹은 율법의 상징입니다. 율법은 우리들에게 완전하기만을 요구하여 날마다 트집을 잡고 소리치고 책망하며 상상치 못할 고통을 주던 악마와 같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이 가장 원하는 바는 우리가 예수님에게 시집가서 예수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수준에 이르기를 원함입니다. 이 수준에 우리가 이르렀다면 몽학 선생의 율법은 자기 할 일을 다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에게 시집 와서 사랑의 성숙을 통해(4:15) 최고의 사랑을 받고 큰 영적 권세까지 받았다면 율법의 요구와 소원이 이루어진 셈입니다. 8:4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했습니다. 마치 술람미가 오라버니들에게 자기가 솔로몬 왕을 사랑함을 똑똑히 보이려는 충동에 휩싸였듯이 성령으로 변화를 받은 성도들은 율법이 말씀하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그 표준 이상으로 살아지는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상 성도는 지나 깨나 성령 충만하여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이 점을 지상 성도에게 강조하는 이유는 아직 지상에서는 기도를 통한 강력한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언제든지 다시 율법 아래 떨어져 정죄 받을 염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는 원론적으로는 예수 안에서 새로 났으므로 영원히 율법 아래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지원을 받지 못하면 우리 마음이 약해져서 스스로 율법 아래 찾아들어 옵니다. 그래서 심한 참소를 받아 정죄 의식을 갖고 심판의 고통을 실감합니다. 그래서 갈5:18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용납하시고 받으신 아버지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대속의 복음에 설 뿐 아니라 늘 기도하여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이 때 성령께서 의로움의 확신을 강하게 심어 주시며 말씀대로 살아지게 하셔서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지상 성도의 소원은 자나깨나 성령 충만하여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는 성화적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2. 지상의 성도는 예수 복음 전도에 힘써야 합니다.

 

2절에 내가 너를 이끌어 내 어미의 집에 들이고 네게서 교훈을 받았으리라했습니다.

여기 내 어미의 집이란 친정입니다. 그러니까 혈족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술람미가 이 혈육의 가족들 앞에 당대의 전무후무한 지혜의 대왕 자기 남편의 최고의 장점인 솔로몬의 교훈을 듣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입니까? 여자들의 심리를 보면 자기 고향 친정 집에서만큼은 자기 남편이 무시 받지 않거나 혹은 남편을 자랑하고 싶은 것이 공통된 소망일 것입니다. 이것은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왕후들과 비빈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아무리 남편이어도 국사에 바쁜 왕이요 고귀한 신분상 왕이 한 왕후의 처가를 방문함은 쉽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나 만약 함께 온다면 그것은 왕이 총애의 대상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니 술람미로서 최고의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구나 심금을 울리는 전무후무한 지혜의 대왕의 지혜로운 교훈을 술람미가 자기 친족들 앞에 왕의 곁에 앉아서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술람미 자신도 한껏 자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이런 실현되기 어려운 희망을 술람미가 가졌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를 괴롭힌 친정 집의 사람들에게 뭔가를 보여주고자 하는 술람미의 번민을 시사합니다.

 

이처럼 우리 성도들의 친정 집이 어디입니까? 이 세상이 바로 우리의 친정 집입니다. 그러므로 이 친정 집에서만큼은 우리 예수님이 무시당하지 않게 예수님을 한껏 높이고 자랑할 강한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도나 영광이나 축복이나 구제나 행실이나 기적이나 그 무엇을 통해서라도 이 세상 친정에서만큼은 우리 신랑 예수님의 이름이 높아질 수 있도록 해드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친정에서 무시당한다면 얼마나 억울합니까? 그러면 전도가 되지 않을뿐더러 우리들도 무시당합니다. 그래서 맛 잃은 소금처럼 사람들의 발에 밟힐 뿐입니다. 16:31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언약에 의하여 여리고의 라합이 그랬던 것처럼 이 세상 친정집 사람들을 모두 전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솔로몬보다 더 귀한 예수님이 계십니다. 12:42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느니라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의 이름과 그 말씀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전파되기를 소원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지상을 사는 성도들의 한결같은 갈망이어야 합니다.

 

3. 지상의 성도는 하나님의 특별은총이 나타나 하나님의 영광이 크게 나타나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2절 후 반절에 나는 향기로운 술 곧 석류 즙으로 네게 마시웠겠고했습니다.

여기 석류 즙은 석류를 압착하여 만든 석류 주스인데 향기로운 술이라고 한 것은 석류 즙은 향기로울 뿐 아니라 취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본래 석류 열매는 여성호르몬이 많이 함유되어 월경 불순이나 최음제로서 써오던 과일입니다. 그리고 아가서에서 흔히 향기란 성적인 흥분을 시사하는 은유입니다. 그러니까 남편에게 흥분제를 먹이겠다는 엉뚱한 발상입니다. 이는 고향을 앞둔 술람미의 온갖 불가능한 번민이라는 점에서 그 마음의 상처가 어떠함을 더욱 느끼게 합니다. 더구나 석류는 기쁨과 행복 그리고 풍요와 번영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고향집에 가면 이 술로 남편을 최고조에 달하게 만들어 남편이 한 순간도 자기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자임을 친정 오라버니들에게 보여줌으로 왕의 총애를 받음을 나타내고자 궁리합니다. 우리는 오라버니들의 비범함을 보아 그들은 누이가 왕의 총애를 받음을 이미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피해의식으로 가득 찬 술람미의 생각에는 전에 오라버니들이 핍박했듯이 아마 지금도 미워하여 예루살렘 왕궁의 천덕꾸러기 노릇을 하는 자기로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의식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총애의 대상임을 비록 우스꽝스럽지만 석류의 즙을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신령한 의미에서 성도들이 세상을 살면서 사람들 보기에 실현 불가능한 일을 추구함인데 그것은 기적입니다. 이 기적을 특별은총이라고 달리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 특별은총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표현이요 자기 백성들을 통해서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심입니다. 사실 천국에는 온통 특별은총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지상에는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를 통해서만이 이 기적이 임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9:29)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열심히 기도했고 민간에 놀라운 표적이 나타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많은 영혼들이 주께로 돌아왔고 초대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랑 받는 백성임을 똑똑히 보여주셨습니다. 16:17-18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하셨고,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도에 충실해야 합니다.

 

4. 지상의 성도는 주님의 약속하신 복을 누리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3절에 너는 왼손으론 내 머리에 베개하고 오른손으론 나를 안았었으리라했습니다.

이와 같은 묘사가 2:6에도 나타나지만 그 때는 포도주의 집에서 솔로몬의 은밀한 사랑에 도취한 술람미의 체험적인 고백이라면, 본 절은 술람미의 석류 즙으로 나타난 사랑에 도취된 솔로몬에게 공개적으로 사랑을 받음을 가상한 술람미의 소원입니다. 남녀의 사랑 표현을 수줍어하던 그 시대에 이런 발상을 했다는 것은 그의 친정집에 대한 상처가 어떠했던가는 짐작하게 합니다. 아울러 포도주의 집의 사건을 재 언급함은 그 때의 사랑이 기억에 남는 대단한 사건이었음을 시사합니다.

 

이처럼 우리 성도들도 이 지상에서 주님의 특별하신 사랑을 받음을 세상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영혼과 육신이 강건하고 잘되는 복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우리의 영광된 신분과 영적인 그 축복을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보이는 복으로 성도를 사랑하심을 세상에 보이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목전에서 자기 백성들에게 상을 베푸십니다. 여기 상은 잔치를 시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조롱하시듯 놀라운 은혜와 복의 잔치를 베푸시길 원하십니다. 세상 사람들 앞에서 노아가 그랬고, 애굽 왕 앞에서 모세가 그랬고, 역시 애굽 왕 앞에서 아브라함이 그랬고, 블레셋 왕 앞에서 이삭이 그랬으며, 바리새인들 앞에서 초대교회가 그랬습니다. 우리가 육신의 욕심 때문에 이러한 복을 추구한다면 기복신앙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것을 원한다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이 특별하신 복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고 높이심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십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치 석류의 즙을 마시게 하려고 갈망한 것처럼 주님을 사랑하는 희생적인 사랑이 필요합니다. 기독교 황금율법은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7:12)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전후문맥을 볼 때 이 대접을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함이 더 강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공개적으로 받으려면 하나님을 높여드려야 합니다. 석류의 즙처럼 우리가 귀히 여기던 것들을 희생하며 충성해야 합니다. 이러한 행함의 지속적인 충성 없이 어떻게 육신이 잘되는 복을 누리겠습니까? 주를 위해서 산 성도는 반드시 육신으로도 심는 대로 거둡니다. 우리는 그 거둔 것을 또 다시 세상 사람들에게 나눌 때 사람들은 모두 감동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에게 냉정하다면 그것은 예수 향기를 나타내지 못한 우리의 잘못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뜻하시는 주의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이것이 지상을 살 때 우리 성도들이 날마다 갈망해야 할 귀한 제목입니다.

 

마지막. 지상의 성도는 늘 자기를 포기하고 죽어져야 합니다.

 

4절에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너희에게 부탁한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며 깨우지 말지니라했습니다.

이 용어는 2:73:5의 반복인데 본 절까지 세 곳을 설명한다면 2:7은 잔치 집에서 사랑에 도취된 술람미를 위해 시녀들에게 당부하는 솔로몬의 부탁이요, 3:5은 잃은 솔로몬을 다시 찾고 어미 집에서 시녀들에게 당부하는 술람미의 부탁이라면, 본 절은 고향을 앞에 두고 번민하는 술람미가 시녀들에게 당부하는 말입니다. 공통점은 마음에 각인될 만큼의 감정에 사로잡혀 있음입니다. 그러므로 깨우지 말라는 부탁에서 전에 자기를 학대하던 오빠들을 어떻게 만날 것인가 번민하며 뒤척거리는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자기를 깨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남편이라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자기가 희망한 이 사항이야말로 남편의 특별한 배려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가 5절입니다. 거기 보면 남편이 아내를 깨웁니다. 이처럼 술람미의 번민은 커서 자기를 돕는 애정 어린 시녀들조차도 간섭하기를 싫어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분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반대로 우리가 이것이 아니면 안돼 하고 생명 걸고 붙잡고 늘어지던 애지중지하던 그 무엇일지라도 꿈에서 깨라 하면 깨야 합니다. 이 구절이 시사하는 바는 내 주관적인 자아를 내려놓고 죽는 일에 힘쓰라는 교훈입니다. 이와 같이 포기하고 싶지 않는 어떤 꿈을 가졌더라도 주님이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반대로 아무리 싫은 일일지라도 주님이 원하신다면 기쁨으로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뜻에 살고 주님의 뜻에 죽는 그런 성도여야 합니다. 나아가 주님의 뜻에 가장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춤출 수 있어야합니다. 우리 성도들 예수 복음 다 믿습니다. 그러나 그냥 믿는 것과 확신하며 믿는 것과 더 나아가 기쁨으로 춤추어 믿는 그 가치와 결과는 다릅니다(2:6-7). 십자가 역시 마지못해서 짐과 의무로 짐과 기쁨으로 짐은 다릅니다. 그래서 만약 주님께서 야 너 그 꿈에서 깨라 하신다면 예 감사합니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뜻을 내 뜻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것을 최고의 기쁨으로 알아야 최고의 성도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가장 지혜로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이 가장 현명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그랬습니다. 여기에 대해 시편 시40:8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예언되어 있습니다. 야곱을 속이고 속이다가 나중에는 신고하지 않고 갔다는 하찮은 이유를 들어 야곱을 죽이고 모든 소유를 빼앗으려던 헛된 꿈을 가진 라반도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죽이지 말라 하실 때 그는 자기 꿈에서 깨야 했습니다. 또 야곱을 20년 동안이나 죽일 꿈을 가지고 칼을 갈던 에서에게 하나님께서 죽이지 말라 하시니 그 역시 그 헛된 꿈에서 깨야 했습니다. 그 뿐입니까? 엘리사는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열두 겨리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갈던 부농의 꿈을 버렸습니다. 갈릴리의 어부들도 배와 그물 다 버렸고 예수님의 좌우편의 세상 권력을 꿈꾸었지만 나중 그것마저 버렸습니다. 이처럼 성숙한 성도는 내 꿈에서 깨고 주님께서 주시는 꿈을 꾸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소원이 내 소원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지상의 성도는 날마다 자기를 내려놓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바을은 날마다 죽노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자기를 복종시켰습니다. 이것이 지상을 사는 성도의 힘쓸 겸손과 순종입니다.

 

<결론>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영적인 주소는 천상임이 틀림없으나 아울러 아직 지상에 속해 있음을 기억하십시다. 지상에서는 날마다 애쓰지 않으면 안 되는 특징 속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화의 삶, 전도의 삶, 기도의 삶, 충성의 삶, 자기를 내려놓는 겸손과 순종의 삶을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지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나타내고 축복과 안식의 아름다운 삶을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