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공부 여호수아

가나안 북부 점령과 점령 지역(수11-12장)

nam씨 2016. 1. 23. 19:58

가나안 북부 점령과 점령 지역(수11-12)

 

2-1. 북부 연합군의 공격(1-4)

"1 하솔 왕 야빈이 이 소식을 듣고 마돈 왕 요밥과 시므론 왕과 악삽 왕과 2 및 북방 산지와 긴네롯 남편 아라바와 평지와 서방 돌의 높은 곳에 있는 왕들과 3 동서편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산지의 여부스 사람과 미스바 땅 헤르몬 산 아래 히위 사람들에게 사람을 보내매 4 그들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나왔으니 민중이 많아 해변의 수다한 모래 같고 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으며 5 이 왕들이 모여 나아와서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메롬 물가에 함께 진쳤더라."

 

하솔왕 야빈은 가나안 중부와 남부가 이스라엘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주변의 성읍에 사람을 보내서 원군을 요청했다. 하솔은 '' 또는 '요새'란 뜻으로, 당시 가나안 북부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성읍이었다. 고고학적 발굴 결과 이 성의 위치는 갈릴리 바다에서 북쪽으로 약 15km지점, 그리고 훌레(메롬) 호수에서 서쪽으로 약 7km 되는 곳에 있는 '텔엘-케다이'(Tell el-Qeday)로 추정된다(Y. Yadin). 이 성의 크기는 약 200에이커(1에이커=4km)로서, 라기스가 18에이커, 므깃도가 14에이커, 그리고 여리고가 8에이커인 것을 생각하면 매우 큰 성이었다(L. Wood). 이 성은 메롬 전투 패배 이후에 여호수아에 의해 불태워졌다(11). 후에 이 성은 납달리 지파에게 분배되었으나(19:36), 사사 시대에 다시 복구되어 수도가 되었다. 그러나 이 성은 다시 사사 드보라와 바락에 의해 정복당했다(4:2,17; 삼상 12:9). 이후 솔로몬이 중수하여 요새화 하였으나(왕상 9:15), 결국 앗수르의 디글랏빌레셀 1세에 의해 함락당하고 그 성 거민들은 앗수르의 포로가 되어 잡혀갔다(왕하 15:29). 야빈은 '지략가'라는 뜻으로서 당시 '하솔'(Hazor) 성을 통치하던 최고 군주에게 붙였던 일반적 명칭이었다(4:2). 당시 하솔이 북부 가나안에서 가장 큰 도시 국가였던 만큼, 하솔 왕 야빈(Jabin) 역시 당시 가나안 북부 지역의 최고 실권자로 큰 권세를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야빈은 여호수아 군대를 대적하기 위해 북부 가나안의 모든 왕들을 불러모아 북부 동맹군을 만드는 데 중추적 역할을 감당했다. 마돈은 디베랴 서북쪽에 있는 오늘날의 카른 하틴으로 추정되는데, 이곳은 성경에서 본문과 (12:19)에만 언급되어 있다. 시므론은 디베랴 남쪽 19km 지점에 있는 가나안 북부의 주요 성읍으로 후에 스불론 지파에게 분배되었다(19:10, 15). 악삽은 악고에서 동남쪽으로 11.2km 지점에 있는 성으로 현재의 텔 키산(Tell Kisan)으로 추정된다. 이 성은 후에 아셀 지파에게 분배되었다(19:25).

 

북방 산지는 납달리 지파의 경계를 형성하는 갈릴리 지역의 산악 지대로 된 북부지역을 가리킨다(19:32-39). 긴네롯 남편 아라바는 아라바(Arabah)는 갈릴리 바다로부터 남쪽으로 요단 골짜기와 사해를 포함하여 멀리 아카바 만까지 이어지는 저지대의 대 계곡을 가리킨다(3:16). '아라바'는 성경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평지는 지중 해안을 따라 멀리 욥바까지 이어지는 세펠라(Shephelah) 평원 지대를 가리킨다(9:1; 10:40). 그리고 돌은 가이샤랴에서 북쪽으로 약 12.8km정도 떨어진 지점에 있으며, 갈멜 산에서 남쪽으로 약 17km 지점에 위치해 있는 팔레스타인 해안의 요새화 된 성읍이다. 이곳은 해안을 따라 자주 빛 물감의 원료가 되는 조개가 많았기 때문에, 고대로부터 베니게 인들이 이곳에 정착해 살았다. 가나안 정복 후 이 성은 아셀 지파에게 분배되었다가 다시 므낫세 지파에게 주어졌다(17:11). 이 곳은 오늘날의 '탄투라'(Tantura)로 추정된다(Wilson, The Holy Land). 하솔 왕 야빈과 동맹한 가나안 여러 족속들은 북부 팔레스틴의 거의 모든 족속들을 총괄하고 있다. 요단 서편에는 '미스바'(Mizpah, '망대'란 뜻)라는 이름을 가진 지명이 세 곳 나온다. 본문과 8절에 기록된 미스바는 유다 지파의 미스바(15:38)나 베냐민 지파의 미스바(18:26)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한편 8절에는 여호수아가 북부 가나안 동맹군을 메롬 물가에서 쳐부수고 그들을 추격할 때에 '동편으로는 미스바 골짜기'까지 뒤쫓아갔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위치는 헤르몬 산 동남쪽 지역으로 추정될 뿐 정확히는 알 수가 없다. 헤르몬 산은 스닐 산이라고 불리어졌다(3:8; 27:5). 헤르몬 산은 여호수아가 정복한 가나안 지역의 북방 한계선이었다(11:17; 12:17). 당시에 히위 족속은 헤르몬 산 기슭에 거주하고 있었다.

 

이 동맹군들의 매우 많아서 마치 해변의 수다한 모래와 같았다. 이 표현은 '수효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또한 수많은 보병 뿐 아니라 북부 연합군들은 말과 병거도 심히 많이 가지고 있었다. 1세기의 유대 사가(史家) 요세푸스(Josephus)는 당시 그들에게 30만 명의 정예 보병, 1만 명의 기병대, 그리고 2만 명의 병거 부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메롬 물가는 일반적으로 갈릴리 바다 서북방 15km, 예벨 야르막(Jebel Jarmag) 기슭에 있는 메이룬(Meirun) 마을과 동일시되고 있다. 구약 사가 올브라이트(Albright)는 메이룬 근방 유적지 경사면에서 후기 청동기와 초기 철기 시대의 유물들을 발견한 후 메이룬과 메롬(Merom)을 동일시하였다. 이곳은 악고(Accho)로부터 갓(Gad)을 경유하여 갈릴리의 가데스(Kadesh)로 가는 주요 도로상에 위치해 있다. 아래 지도를 참조하라. 가나안 북부 연합군들이 함께 진을 쳐서 이스라엘에게 대항한 곳은 메롬(Merom) 물가였다. 이 메롬 물가의 전투는 대단히 중요한 전투로서, 지금까지 중부, 남부를 모두 이스라엘에게 정복당한 가나안 족속들로서는 이 전쟁만큼은 반드시 이겨야 했으므로 북부의 모든 잔존 세력들이 총 규합한 전투였다. 만일 가나안 북부 연합군이 전쟁에서 패배하게 되면, 가나안 땅 전체는 이제 이스라엘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었다. 반대로 이스라엘이 이 메롬 전투에서 패배하게 되면, 그 동안 다져놓은 모든 기반이 일시에 무너져 내리는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 일전(一戰)은 가나안 땅의 주인을 결정짓는 피할 수 없는 한판 승부였다.

 

 

2-2. 여호수아의 기습 공격(6-9)

 

"6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일 이맘때에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 붙여 몰살시키리니 너는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불로 그 병거를 사르라 7 이에 여호수아가 모든 군사와 함께 메롬 물가로 가서 졸지에 습격할 때에 8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신 고로 그들을 격파하고 큰 시돈과 미스르봇 마임까지 쫓고 동편에서는 미스바 골짜기까지 쫓아가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쳐죽이고 9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여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불로 그 병거를 살랐더라"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북부 대군과의 일전을 앞둔 여호수아에게 다시 한번 같은 용기를 주시고 승리를 약속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내일 이때쯤이면 그들이 몰살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셨다. 만일 이스라엘이 이러한 승리의 확신을 갖지 못했다면, 바다의 모래같이 많은 병거로 무장한 북부의 연합군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진치고 있던 '길갈'에서 '메롬'까지는 거리상으로 볼 때, 하루만에 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스라엘 군대는 이미 길갈에서 북진하여 하루만에 메롬에 당도할 수 있을 만한 곳에 진을 치고 있었을 것이다(Campbell). 하나님께서는 메롬 전투에서 승리한 후에 말의 뒷발 힘줄을 끊고 병거를 불사르라고 명하셨다. 왜냐하면 만일 이스라엘 기병대와 병거로 무장하게 되면 그들은 하나님 대신 기병대와 병거를 더 의지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세는 (17:16)에서는 이스라엘 왕에게 말과 병거를 많이 갖추지 말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세상의 말과 병거를 의지하기보다 여호와만을 의지해야 했으며, 그렇게 함으로 무적의 군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Calvin). 마침내 여호수아는 메롬 물가에 도착했으며, 그는 적들을 갑자기 습격했다. 당시 가나안 지역은 여러 작은 도시 국가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여러 국가들이 동맹했다고 해도 일사 분란 한 지휘 체계를 갖추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이 허점을 노려 가나안 북부 동맹군이 체제를 정비하기 전에 먼저 그들을 기습했다. 가나안 북부 동맹군들은 아직 이스라엘이 멀리 떨어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다가 갑자기 기습을 받고 말았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군사들은 가나안 북부 동맹군들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었다(Pulpit). 여기서 '졸지에'라고 전역된 말('피테옴')'눈을 깜빡이다'(wink)란 말('페타')에서 유래한 말로서, 상대방이 전혀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들이닥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메롬 전투'의 대승리는 1) 하나님의 도우심과, 2) 여호수아의 전술 전략, 그리고 3) 이스라엘 군대의 용기 있는 기습이 하나가 되어 빚어낸 혁혁한 전과였다.

 

시돈은 두로의 북쪽으로 약 30km,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165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시돈은 베니게에서 가장 유명한 대도시 중의 하나였으며, 두로와 더불어 해상을 통한 무역도시로 유명했다. 이 성은 B .C. 2000년경 함의 손자인 '시돈'에 의해 건설된 성이었다. 이 성은 가나안 정복 후에 아셀 지파에게 분배되었으나(19:28), 아셀 지파가 이곳 거민을 완전히 정복치 못하여 섞여 살게 되었다(1:31). 예루살렘 성전 건축시 솔로몬은 벌목을 위해 이곳 시돈 사람들을 고용했다(왕상 5:6). 그리고 이스라엘의 아합 왕이 시돈 출신의 이세벨과 결혼하여 이스라엘을 바알신의 숭배지로 만들기도 했다(왕상 16:31-33). 본문에서 시돈을 '큰 시돈'이라고 부른 것은 당시 베니게의 수도였던 시돈의 중요성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Keil, Lias). 미스르봇 마임은 '더운 물'이란 뜻으로, 시돈에서 멀지 않은 두로와 악고의 중간 지점에 있는 도시이다. 이름의 뜻을 보고 일부 학자들은 이곳을 '온천 지대' 또는 '염전 시대'로 보기도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오늘날의 위치는 '엘 나쿠라'(el Nakhura)로 추정되는데, 이 지역에는 많은 온천들이 널려 있다(Fay, Keil).

 

미스바는 갈릴리 북부 경계 지역에 위치해 있다는 것만 알 뿐 그 정확한 위치는 알 수가 없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북부 군사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여호와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불로 그 병거들을 살라버렸다. 평생을 군인으로 살아온 여호수아가 전쟁의 가장 큰 노획물인 말과 병거를 못쓰게 한 일은 신앙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2-3. 북부의 하솔과 산지 정복(10-15)

 

"10 하솔은 본래 그 모든 나라의 머리였더니 그 때에 여호수아가 돌아와서 하솔을 취하고 그 왕을 칼날로 쳐죽이고 11 그 가운데 모든 사람을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고 또 불로 하솔을 살랐으며 12 여호수아가 그 왕들의 모든 성읍과 그 모든 왕을 취하여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여호와의 종 모세의 명한 것과 같이 하였으되 13 여호수아가 하솔만 불살랐고 산 위에 건축된 성읍들은 이스라엘이 불사르지 아니하였으며 14 이 성읍들의 모든 재물과 가축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탈취하고 모든 사람은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15 여호와께서 그 종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명하였고 여호수아는 그대로 행하여 여호와께서 무릇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하나도 행치 아니한 것이 없었더라."

 

하솔은 당시 가나안의 군사, 정치적 중심지였기 때문에, 당시 가나안 북부 동맹군의 주동이 될 수 있었다(1). 마리(Mari)왕국의 문서 보관소에 기록된 것을 보면, 당시 하솔은 비옥한 반달 옥토 지대의 전초 지점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하솔이 중요시 되는 것은 그 전략적 위치 때문이다. 팔레스틴 남서쪽 해안가를 통과하는 비아 마리스 대로는 므깃도에까지 이어지고, 북쪽으로는 하나의 도로가 북쪽 해안선을 따라 악고와 두로에까지 이어지며, 또 다른 도로는 내륙으로 돌아 하솔로 이어지고, 계속 북쪽으로 나아가 '아벨 벳 마아가'(Abel-Beth -Maachach)와 이욘(Ijon)및 레바니스 베가(Lebanese Bega) 까지 계속된다. 그런데 하솔에서 이 남북 도로가 하나로 합쳐지며, 하솔 근처에 있는 훌레 호수 아래에는 요단 강을 건너 다메섹으로 가는 도로가 있었다. B. C. 855년경 벤하닷 I세와 B. C.733년경 디글랏 빌레섬 III세는 모두 이 도로를 통해 팔레스틴을 침입했다(왕상 15:20; 왕하 15:29). 하솔은 가나안 북부 동맹군의 주동 성읍으로서, 메롬 물가 전투의 선봉역할을 했기 때문에 여호수아는 가장 먼저 하솔을 정복했다. 진멸한다('하람')는 말은 '분리하다', '바치다', '구별한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기 위해 분리된 것, 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기로 바쳐진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하솔에서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죽였다. 그리고 그는 하솔을 불로 태워버렸다.

 

성서 고고학자 야딘(Y. Yadin) 팀에 의한 발굴 결과, 옛 하솔 유적지의 여러 지층에서 파괴되고 불에 탄 흔적을 발견하였다. 그중 지층 III의 도시가 13세기 이전의 것으로, 아마 여호수아에 의해 파괴되고 불살라진 도시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L. Wood,Survey of Israel's History). 그러나 여호수아는 산 위에 건축된 성읍들은 불사르지 않았다. 당시 가나안 북부 대부분의 성읍들이 산 위에 세워졌었다(Keil). 여호수아는 산 위의 성읍들의 실용적 가치 때문에 점령 후 에 일부러 불사르지 않았다. 아마도 여호수아는 이 성읍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주지로 사용했을 것이다(6:10). 여호수아는 가나안 족속의 호흡 있는 자는 하나도 예외 없이 모두 전멸시켰다. 그러나 여리고 성을 제외하고 다른 성읍의 재물과 가축은 전리품으로 취할 수 있었다(8:2). 하나님은 일찍이 모세에게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면 가나안 인들과 언약하지 말고, 그들의 신을 섬기지 말며, 그들과 혼인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여호수아에게 그대로 전달해 주었으며 여호수아는 이 명령을 받아 차질 없이 철저히 수행하였다. 여호수아는 비록 이스라엘 군대의 최고 지도자였지만, 자의대로 가나안 족속을 처리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가나안 정복 전쟁은 여호수아의 전쟁이 아니라, 바로 여호와의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명()을 좇아 그대로 실행해야만 했고, 또 그대로 실행했던 것이다.

 

* 적용 및 교훈 *

 

* 가나안 북부 거민은 이스라엘을 통한 하나님의 정복 사역을 거부했다. 그 결과 그들은 여리고 성과 같은 방법으로 처벌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장차 당하게 될 형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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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복 기사의 요약(11:16-12:24) (참고지도: 정복된 가나안 도시들")

 

3-1.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11:16-23)

 

"16 여호수아가 이같이 그 온 땅 곧 산지와 온 남방과 고센 온 땅과 평지와 아라바와 이스라엘의 산지와 그 평지를 취하였으니, 17 곧 세일로 올라가는 할락 산에서부터 헤르몬 산 아래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까지라. 그 모든 왕을 잡아 쳐죽였으며 18 여호수아가 그 모든 왕과 싸운 지는 여러 날이라. 19 기브온 거민 히위 사람 외에는 이스라엘 자손과 화친한 성읍이 하나도 없고 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쳐서 취한 바 되었으니, 20 그들의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온 것은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 그들로 저주받은 자 되게 하여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진멸 하려 하심이었더라. 21 그 때에 여호수아가 가서 산지와 헤브론과 드빌과 아납과 유다 온 산지와 이스라엘의 온 산지에서 아낙 사람을 멸절하고 그가 또 그 성읍들을 진멸하였으므로 22 이스라엘 자손의 땅 안에는 아낙 사람이 하나도 남음이 없고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만 약간 남았었더라. 23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대로 그 온 땅을 취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별을 따라 기업으로 주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16-23)은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기사를 요약해주고 있다. 16절에는 이스라엘이 정복한 가나안의 지역이 소개되고 있다. 마침내 이스라엘은 가나안 중부, 남부, 북부를 차례로 모두 점령함으로써 가나안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산지와 온 남방과 고센 온 땅과 평지는 '가나안 남부 지역'을 묘사하는 말이다. 그리고 아라바와 이스라엘의 산지와 그 평지는 '가나안 북부 지역'을 묘사하는 말이다. '세일'(Seir, '거칠고 험한 산지'란 뜻)은 에돔의 산악지대로서 사해 남쪽, 아라바 저지대 동쪽에 위치해 있다. 이름의 뜻 그대로 험준한 지형의 세일 산지는 에돔의 서쪽 경계를 이루는데, 본래는 호리 족속이 차지했던 곳이나, 후에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속에게 정복당했다(2:22). '할락 산'(Mt. Halak, '민둥산', '매끄러운 산'이란 뜻)은 여호수아가 정복한 가나안 땅의 남방 경계지역으로, 브엘세바 남방 42km 지점에 있다. 오늘날의 "예벨 할락'(Jebel Halaq)과 동일한 산으로 추정된다. '레바논 골짜기'는 베니게 해안에서 가까운 내륙에 있는 산악 지대이며, '바알 갓'은 레바논 산과 헤르몬 산 사이에 있는 성읍으로, 여호수아가 정복한 가나안 땅의 북방 한계선이다. 이곳은 신약 시대의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이다. 여호수아가 그 모든 왕과 싸운 지 여러 날이 흘렀다. 가나안 정복 전쟁의 기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갈렙(Caleb)의 나이로 추정이 가능하다. 갈렙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을 탐지했을 때의 나이가 40세였고(14:7), 가데스 바네아에서 요단 강을 건널 때까지 38년이 걸렸기 때문에, 그가 요단 강을 건넌 때는 78세였다. 그리고 전쟁이 다 끝나갈 무렵의 나이가 85세였으므로(14:10), 가나안 정복 전쟁 기간은 거의 7년이 걸린 셈이 된다.

 

기브온 거민들은 이스라엘에게 진멸 되지 않고 살아남은 유일한 족속이었다. 그들은 이스라엘과 화친조약을 맺는 것만이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거짓으로 이스라엘을 속여서 이스라엘과 조약을 맺었다. 그 결과 그들만이 유일하게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다른 가나안 족속들은 모두 전멸을 당했다. 그러나 기브온 족속을 제외한 다른 가나안 사람들은 마음을 강팍하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이스라엘을 대적했다. 일찍이 (15:16)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아모리 (가나안) 족속의 죄가 가득 찰 때까지 이스라엘이 400년 동안의 애굽 노예 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셨다. 그러므로 지금은 가나안 족속의 죄가 가득차고 그들의 마음이 강팍해져 있을 때였다. '강팍케 하다'는 말('하자크')은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완고한 저항을 표현하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말씀은 가나안 족속들을 하나도 남기지 말고 모두 죽이도록 명령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족속들의 마음이 강퍅함을 그대로 두셨기 때문에 그들은 끝까지 이스라엘을 대적하다가 결국 멸족하고 말았다. 여호수아는 남부와 중부, 그리고 북부에 있는 성들을 쳐서 그 성에 있던 아낙 사람을 전멸시켰다. 가나안 정복 전쟁의 종결 부분에서 특별히 아낙 사람(14:12; 15:13; 13:22, 28, 33)이 언급된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전에 모세의 명령을 받고 가나안을 정탐한 열두 명의 정탐꾼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아낙 사람을 힘세고 무서운 거인으로 묘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겁에 질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정복을 하지 않기로 하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되었다(13:33). 그러므로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이 두려워했던 아낙 자손을 하나님께서 전멸시켜주셨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록은 옛날 이스라엘 정탐꾼들이 아낙 사람에 대해 겁을 먹은 것이 믿음이 부족해서였음을 꾸짖고 있는 것이다.

 

아납은 헤브론 남서쪽 약 17km 지점에 있는 유다 산지의 성읍으로 드빌과 가까운 거리에 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 전쟁시 이곳에 거주하던 아낙 거민을 몰아내었다. 아낙 사람은 가나안 족속보다 훨씬 전에 그 땅에 거주했던 원주민들로, 헤브론을 중심으로 한 팔레스타인 여러 산지에 흩어져 살던 족속이다. 이 족속은 키가 크고 강했기 때문에, 그 소문이 이스라엘에게서 속담처럼 되어 '누가 아낙 자손을 능히 당하리요'(9:2)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13:22; 1:28; 9:2). 가사는 가나안 남서쪽 지중 해안에 위치한 블레셋의 성읍(가사, 아스돗, 아스글론, 에글론, 가드)중 하나였다. 가드는 블레셋의 성읍 중에 하나로 최북단에 있던 성읍이다. '가드'(Gath)는 다윗과 싸운 블레셋 장군 골리앗의 고향이며(삼상 17:4), 동시에 다윗의 충복이었던 잇대의 고향이다(삼하 15:18-22).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다닐 때 이곳에 두 번이나 피신하였으며(삼상 21:10; 27:2-7), 한때 언약궤가 이 곳에 머물기도 했다(삼상 5:8,9; 삼하 6:11). 후일 이곳은 다윗에 의해 정복당했고(삼하 21:20), 르호보암에 의해 요새화 되었다(대하 11:8). 아스돗은 ''()이란 뜻을 가진 성읍으로서 가사 북쪽에 위치한 중요한 교통의 관문이었다. 이곳은 '다곤' 우상 숭배의 본산지로서, 가나안 땅 분배시 유다 지파에게 할당되었으나 정복하지 못했다(15:47). 후일 웃시야 왕이 이 곳을 정복하여 견고히 요새화 했다(대하 26:1). 이곳은 신약 시대에는 '아소도'란 명칭으로 불리웠다(8:40).

 

위에 언급된 3성읍 곧 가사, 가드, 아스돗에 아낙 자손이 약간 남아 있었다는 사실은 여호수아가 가나안의 전지역을 골고루 완전히 정복한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사실 정복 전쟁은 내륙의 평지와 산악 지대를 중심으로 수행되기 때문에, 지중해 연안 해변 지역은 여호수아의 손길이 닿을 수 없었다. 그러나 가나안의 주요 거점들은 거의 대부분 이스라엘이 장악한 상태였기 때문에, 실상은 가나안을 이스라엘이 점령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남은 지역들은 그 지역을 분배받은 각 지파의 점령 대상지로 남겨졌다. 마침내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모두 정복함으로써, 더 이상 정복 전쟁은 필요 없게 되었다. 그러나 '온 땅을 취했다'는 말이 가나안 전 지역을 전부 정복했다는 말은 아니다. 이 말은 단지 가나안 거민들이 더 이상 이스라엘에 위협적인 존재가 되지 못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제 가나안에 대한 지배권은 이스라엘에게로 넘어오게 되었다. 완전한 가나안 정복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성취되었다. 그때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복하지 못한 가나안 족속들과 많은 지엽적인 전쟁을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제는 여호수아가 정복한 땅을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분배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 적용 및 교훈 *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 땅을 그의 후손에게 주셨다. 약속의 땅을 정복하는 일은 믿음의 사람인 여호수아에 의해 이루어졌다. 옛적에 10명의 정탐꾼은 아낙 사람을 쫓을 수 없다고 했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능하다고 했다.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대로 그들을 통해서 아낙 자손을 쫓아내고 정복 사업을 성취하신 것이다.

 

3-2. 모세와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정복한 31왕의 명단)(12:1-24)

모세와 여호수아의 정복 사역이 같이 언급된 것은 모세와 여호수아의 사역이 서로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이 기록은 요단 동편과 요단 서편의 이스라엘 민족이 한 민족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모세가 요단 동편에서 정복한 지역(1-6)

"1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저편 해 돋는 편 곧 아르논 골짜기에서 헤르몬 산까지의 동방 온 아라바를 점령하고 그 땅에서 쳐죽인 왕들은 이러하니라 2 헤스본에 거하던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이라 그 다스리던 땅은 아르논 골짜기 가에 있는 아로엘에서부터 골짜기 가운데 성읍과 길르앗 절반 곧 암몬 자손의 지경 얍복 강까지며 3 또 동방 아라바 긴네롯 바다까지며 또 동방 아라바의 바다 곧 염해의 벧여시못으로 통한 길까지와 남편으로 비스가 산록까지며 4 또 르바의 남은 족속으로서 아스다롯과 에드레이에 거하던 바산 왕 옥이라 5 그 치리하던 땅은 헤르몬 산과 살르가와 온 바산과 및 그술 사람과 마아가 사람의 지경까지의 길르앗 절반이니 헤스본 왕 시혼의 지경에 접한 것이라 6 여호와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치고 여호와의 종 모세가 그 땅을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더라"

 

(1-6)은 요단 동편 땅에서 과거에 모세가 전멸 시켰던 아모리 족속의 왕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요단 저편 해 돋는 편'은 요단 동편 땅을 가리키는 말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너기 전에 모세가 점령하여 르우벤, , 므낫세 반 지파에게 분배한 땅을 말한다(1:12-15). '아르논'('급류', '물살이 빠른 시내'란 뜻)은 지금은 바닥이 말라붙은 골짜기이지만, 구약 시대에는 북부 아라비아의 산지에서 사해로 흘러 들어가는 약 32km정도 되는 긴 강이었다. 가나안 땅 분배 후에 아르논은 르우벤 지파에게 분배된 영토의 남쪽 경계선이 되었다(3:12). '헤르몬 산'(Mt. Hermon)은 아모리 사람들에 의해 '스닐'(3:9; 대상 5:23; 25:5)이라고 불렸으며, 아모리 왕국의 북쪽 경계선(3:8; 4:48)을 이루었다. 이 산은 여호수아에게 의해 정복된 가나안 땅의 북방 한계선(11:17; 12:1; 13:5)으로 묘사되었고, 가나안 땅 분배 후에는 므낫세 영토의 북방 한계선이 되었다(3:8 참조). '동방 온 아라바'는 요단 동편의 남쪽 한계선인 아르논 골짜기에서 북쪽 한계선인 헤르몬까지 이르는 요단 계곡의 동편 지역을 가리킨다. 여기서 '아라바'(Arabah)는 일반적으로 갈릴리 바다로부터 남쪽으로 요단 골짜기와 사해를 포함하여 멀리 아카바 만까지 이어지는 저지대의 대 계곡을 말한다.

 

'헤스본'(Heshbon)은 요단 강 동쪽 약 29km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얍복 강과 아르논 강 사이에 있다. (민수기 21:25-30)에 따르면, 헤스본은 본래 모압 땅이었으나, 아모리 왕 시혼이 이 성읍을 모압인에게 빼앗아 수도로 삼았다. 그 이후 모세 휘하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으로 가던 도중에 시혼에게서 이 성읍을 탈취했다. 탈취 후 땅을 분배할 때 헤스본은 르우벤 지파에게 할당된 영토 내에 속해 있었지만, 사실상 르우벤과 갓 지파의 경계선 상에 위치해 있었다(32:37). 그런데 갓 자손은 가나안 정복 후에 이 성읍을 재건하였다(32:37). 그후 갓 지파가 이 땅을 소유하게 되었으며 이후 헤스본은 갓의 성읍으로 있다가, 후일 므라리 자손의 레위인들에게 할당되었다(21:39; 대상 6:81; 21:26). '아모리 사람'은 족장 시대 이전부터 요단 강 동,. 서편에 정착해 살던 가나안 원주민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 죄악으로 인해 멸망이 작정된 가나안 7족속 중 하나였다(3:10; 15:16, 19-21; 7:1). 그리고 '시혼은 모세 당시 아모리 사람들의 왕(21:21-30)으로, 모세는 그에게 사자를 보내어 이스라엘이 그의 영토를 통과하도록 허가를 얻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을 치다가 참패를 당하고 목숨을 잃고 말았다. 시혼을 격파한 후 이스라엘은 그의 땅을 최초의 정복지로 선포했다. 이러한 시혼의 수도는 헤스본이었으며, 남쪽 경계는 아르논이었고, 북쪽 경계는 얍복이었다(21:24). 그리고 시혼의 영토 내에는 많은 촌락과 성읍이 있었다(21:25). 결국 시혼의 영토는 이스라엘의 땅이 되어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 그리고 므낫세 자손 일부가 정착한 요단 건너편(Trans Jordan)의 일부가 되었다.

 

아로엘은 사해 동쪽 약 22km 지점인 아르논 강의 북쪽 강 언덕에 위치한 요단 강 동편의 고대 도시이다. 오늘날 아라이르(Arair)로 추정되는 '아로엘'(Aroer)은 당시 아모리 오아국의 남쪽 한계 지점을 가리켰으며, 모세 휘하의 이스라엘에게 점령되었다(12:2; 2:36; 3:12; 4:18). 그후 아로엘은 르우벤 지파에게 배당되었는데(13:7, 16; 11:26). 그전에 정복된 다른 성읍들과 더불어 갓의 아들들에 의해 수축되었다. 암몬 자손은 (19:38)에 따르면, 롯의 두 딸 가운데 작은딸이 그 아비와 동침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이름을 '벤 암미'(Ben-Ammi)라고 지었으며, 후일 이 아들이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되었다. 당시 암몬 족속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가는 도중의 트랜스 요단(요단 동편) 땅에 있었으나, 이스라엘은 친척 족속이므로 이들과는 싸우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2:19)을 좇아 멀리 돌아서 진행했다. 얍복 강은 요단 동편에 위치한 약 96km길이의 이 강은 야곱이 천사와 씨름한 곳으로 유명하다(32:24). 강 북쪽의 만곡선 부분은 당시 암몬 자손의 서쪽 경계를 형성하였으며(21:24), 그 유역 서쪽으로 멀리는 갓 지파가 정착했다. 그리고 강의 서쪽 부분은 길르앗 지역을 둘로 구분시키는 천연적인 정치적 경계가 되었고(3:12, 16), 한편으로는 아모리 족속의 두 왕국인 시혼 왕국과 옥 왕국을 구분지어 주는 강이기도 했다.

 

긴네롯 바다는 '갈릴리' 바다의 별칭으로 '긴네렛' 바다(3:17)로도 불리운다. 대략 남북이 22km, 동서가 14km 정도 되는 바다처럼 넓은 호수이다. 염해는 '사해(死海)'라고도 불리우며 본래는 싯딤 골짜기였다(14:3). 이 바다는 '아라바 해', '동해'라고도 불리운다(3:17) 벧여시못 은 모압 평지에 있는 헤스본 지역 성읍들 중의 하나로서, 나중에 르우벤 지파의 기업으로 할당된 곳이다.(13:20). 33:49에 따르면, 이곳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너기 전에 최후로 진을 쳤던 곳으로 나타나 있다. '비스가'(Pisgah)란 명칭은 '비스가 산꼭대기'(21:20; 23:14; 3:27; 34:1), '비스가 산록'(3:17; 4:49) 등의 결합 형태로 나타난다. 여기서 '산록'(山麓)이란 산의 구릉(丘陵)이 시작되는 산기슭을 뜻한다. 그리고 비스가 산정(山頂)에서는 모압 평지가 내려다 보이며, 서쪽으로는 사해도 보인다(3:17; 4:49). 후에 비스가 산록은 르우벤 지파의 영토 중 일부가 되었다(13:15-20). 한편 하나님께 서는 말년의 모세에게 이 비스가 산에 올라 멀리 언약의 땅 가나안을 바라보라고 하셨다(3:27). 르바는 '크다', '강하다'란 뜻의 아랍 어근에서 유래한 말로, 곧 거인 족속인 '르바임 족속'을 가리킨다(14:5; 15:20; 3:11; 삼하 21:16, 18). 아스다롯은 바산 왕 옥(Og)의 고향으로서(1:4; 3:10), 후에 므낫세 반 지파의 기업으로 할당되었다. 이 지방은 이스라엘 북왕국이 앗수르 제국에 의해 점령당한 후에는 '가르나임'이란 이름으로 알려졌다(1:4). 에드레이는 바산 왕 옥이 거주한 큰 성읍으로(1:4; 3:10), 동쪽 사막 근처 바산의 남쪽 경계를 따라 흐르는 야르묵 강의 한 남쪽 분기(分岐)가 내려다 보이는 절벽 위에 세워진 성읍이다. 요단 동쪽 정벌시, 모세는 에드레이 외곽에서 싸운 전투에서 옥을 쳐 부수고 그 성읍을 멸하였다(21:33-35; 3:1-6). 살르가는 바산의 동쪽 경계에 위치한 땅으로(3:19), 처음 므낫세 지파에게 배당되었지만, 후에 갓 지파 사람들이 거주하게 되었다(대상 5:11).

 

그술 지방은 북쪽 요단 강의 동부 지방으로서 마아가 족속의 땅과 함께 므낫세의 아들 야일에게 배당된 땅의 일부이다(3:14). 이 그술의 경계 지역은 본절에 다시 언급되는데, 이스라엘 자손이 이곳까지 취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리고 그술 족속(the Geshurites)이란 말은 13:11, 13에도 나오는데 거기에는 그때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쫓아내지 못한 족속 중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다윗과 그술왕 달매의 딸인 마아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삼하 3:3; 대상 3:2). '마아가'는 헤르몬 산의 동 남쪽에 위치한 조그만 나라로, 남쪽으로는 '그술'과 접경을 이루었고, 서쪽으로는 요단 강을 건너 '아벨 벳 마아가'에 이르렀다. 므낫세의 아들 야일은 이 땅을 정복했으며(3:14), 그 공로로 이 땅은 므낫세 반 지파에게 할당되었다. 3:14 주석 참조. 길르앗은 요단 동편의 산지로 구약 성경에 자주 등장한다. 또 넓게는 요단 강 동편의 전 지역을 가리키나(22:9 이하), 좁게는 요단 강 동편의 중앙부 지역만을 가리키기도 한다(왕하 10:33). 모세는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죽이고, 그들이 다스리던 땅을 정복하여 이스라엘의 두 지파 반(르우벤 지파, 갓 지파, 므낫세 반 지파)에게 분배하였다. 그 분배하게 된 관정과 분배 지역은 (32)에 잘 나타나 있다.

 

 

3-3. 여호수아가 요단 서편에서 정복한 지역(7-23)

 

"7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이편 곧 서편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에서부터 세일로 올라가는 곳 할락 산까지에서 쳐서 멸한 왕들은 이러하니 (그 땅을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구별을 따라 그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으니 8 곧 산지와 평지와 아라바와 경사지와 광야와 남방 곧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땅이라) 9 하나는 여리고 왕이요 하나는 벧엘 곁의 아이 왕이요 10 하나는 예루살렘 왕이요 하나는 헤브론 왕이요 하나는 야르뭇 왕이요 11 하나는 라기스 왕이요 12 하나는 에글론 왕이요 하나는 게셀 왕이요 13 하나는 드빌 왕이요 하나는 게델 왕이요 14 하나는 호르마 왕이요 하나는 아랏 왕이요 15 하나는 립나 왕이요 하나는 아둘람 왕이요 16 하나는 막게다 왕이요 하나는 벧엘 왕이요 17 하나는 답부아 왕이요 하나는 헤벨 왕이요 18 하나는 아벡 왕이요 하나는 랏사론 왕이요 19 하나는 마돈 왕이요 하나는 하솔 왕이요 20 하나는 시므론 므론 왕이요 하나는 악삽 왕이요 21 하나는 다아낙 왕이요 하나는 므깃도 왕이요 22 하나는 게데스 왕이요 하나는 갈멜의 욕느암 왕이요 23 하나는 돌의 높은 곳의 돌 왕이요 하나는 길갈의 고임 왕이요 24 하나는 디르사 왕이라 도합 삼십 일 왕이었더라."

 

(7-24)에는 여호수아가 요단 강 서쪽에서 정복한 31명의 왕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 에서부터 세일로 올라가는 곳 할락 산까지는 여호수아의 지휘하에 이스라엘이 정복한 요단 동편의 가나안 땅 전체를 가리킨다. 산지와 평지와 아라비아 경사지와 광야와 남방 은 요단 동편의 가나안 땅을 대략 지형적 특성에 따라 분류한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이미 (10:40, 11:16)에서 언급하였다. 이곳에는 '광야'란 말이 더 첨가되어 있는데, 여기서 '광야'는 남부의 '네게브'(Negeb)라기 보다는 아라바 지역과 네게브로부터 남쪽과 동쪽으로 쭉 이어져 있는 '유대 사막' 지역을 가리킨다. 여리고.....벧엘.....아이는 7:2, 예루살렘은 (10:1), 그리고 헤브론...야르뭇은 10:3을 참조하라. 그리고 라기스...에글론은 (10:3), 게셀과 드빌은 (10:33, 10:38)을 참조하라. '게델'(Geder)은 이곳에만 언급된 지명이지만, 구약 성경에서는 '그돌'(15:58), '그데라'(15:36), '그데롯'(15:41)등 유사한 지명들로 등장한다. 한편 이곳 주민이었던 그데라 사람 요사밧은 대상 12:4에 시글락(Ziglak)에서 다윗에게 모여들었던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언급되어 있다. 그들은 모두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세펠라(Shephelah)에 있는 유대 산지의 서쪽 비탈에 위치해 있었을 것이다. 학자들은 오늘날 이곳을 헤브론 산지의 '예둘'(Jedur)로 추정한다(Conder, Van de Velde, Keil, Robinson).

 

호르마는 에돔변경, 유대 남쪽 험준한 지방의 마을로 '스밧'(1:17)으로도 불리운다. 본절에는 게델과 아랏 사이에 있는 것으로, 15:30에는 그실과 시글락 사이에, 그리고 19:4에는 브둘과 시글락 사이에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 호르마(Hormah)는 민 14:45에 최초로 언급되어 있는데, 이 구절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가나안의 가데스를 성급하게 침략했을 때, 아말렉군과 가나안 군대가 그들을 물리치고 호르마까지 추격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후일 여호수아는 이 성읍을 점령하여 시므온 지파에게 분배하였다(19:4; 대상 4:30; 삼상 30:30). 오늘날 '아인 가데스' 북쪽 약 39km 지점에 위치한 '세바이타'(Sebeita)로 추정된다(Keil). 아랏 은 헤브론 남방 약 30km 지점에 있는 네게브 지방 동북부의 도시이다. 구약 성경에서 이 성읍은 4번 언급되어있는데(12:14; 21:1; 33:40; 1:16), 완만하고 넓은 경사지가 큰 평야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전략적 위치로 중요한 성읍이다.

 

립나에 대하서는 (10:29)을 참조하라. 아둘람은 북쪽 세펠라(Shephelah)에서 유대 산지로 들어 오는 지점에 위치해 있는 가나안 성읍 중 하나로, 38:1, 2에서 처음으로 언급되었는데, 곧 유다의 친구 히라의 고향으로 나타난다. 한편 아둘람(Adulam)은 성경에서 항상 동굴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다윗이 사울에게 추격당할 때 이곳에 피한 적이 있다(삼상 22:1). 이곳은 후일 르호보암에 의해 요새화 되었고(대하 11:7), 또한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귀환한 자들이 거주했던 곳이기도 하다(11:30). 카일(Keil)은 반 데 벨드와 로빈슨의 견해를 따라 이곳을 오늘날의 '데일 듀반'으로 추정하고 있다. 악게다는 (10:10)을 참조하라. 답부아는 유다지파의 성읍인지(15:34, 53), 므낫세 지파의 성읍인지(16:8; 17:7, 8)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아마도 유다 평지에 속한 유다 지파의 답부아(Tappuach)일 가능성이 많다(Keil). 헤벨은 아벡과 함께 북부의 샤론 평야에 위치한 도시로, 솔로몬의 12행정지구 중에 세 번째였다(왕상 4:10). 아벡은 샤론 평원에 위치한 중요한 도시들 가운데 하나로, 욥바의 정북동쪽인 야르곤 강의 상류에 위치한 '텔 라셀 아인'과 동일시된다. 이러한 '아벡'은 비아 마리스로 가는 중요한 거점이었기 때문에 전투에 자주 언급되었다. 또한 이곳은 언약궤를 압류하고 실로를 파멸시킨 블레셋을 원정하기 위한 출발점이었다(삼상 4:1). 랏사론은 구약 성경에서 이곳에만 언급되어 있는데, 그 위치는 확실히 알 수가 없다. 혹자는 이곳을 디베랴(갈릴리) 호수 근처의 '사루네'와 동일시하기도 한다(Knobel).

 

마돈...하솔...시므론 므론...악삽은 (11:1)을 참조하라. 한편, 여기서 '시므론 므론''시므론'과 동일한 곳이다. 다아낙은 이스르엘 계곡 남쪽에 있으며, 샤론에서 내륙을 이어주는 해안 길인 비아 마리스가 이곳에 있다. 삼림이 우거진 북쪽 에브라임 산지 계곡은 매복하기에는 최적지이다. 가나안 점령 후 다아낙(Taanach)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돌아갔으나(21:25), 므낫세 자손은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는 데 실패하였고 나중에 가서야 그들을 종으로 삼았다(사사 1:27, 28). 그리고 왕국 시대에는 다아낙이 레위인들의 여러 성읍 중 하나로 묘사되었고(대상 6), 솔로몬 치세 때에는 행정 구역상 주요한 이 곳은 므깃도 동남쪽 약 6km 지점에 위치해 있는 '델 타아낙'(Tell Taanak)으로 추정된다. 므깃도는 샤론 평야와 이스르엘 골짜기 사이에 있는 비아 마리스(Via Maris)의 주요 교통로에 위치해 있는 요충지이다. 따라서 이 곳은 애굽과 다메섹을 이어주는 주요 대상로였다. 가나안 정복 후 므깃도(Megiddo)는 므낫세 지파에게 할당되었지만, 므낫세 자손들은 므깃도나 이스르엘 평야 주변의 다른 요새 성읍들을 정복하지 못했다(17:11; 1:27). 그러나 후일 솔로몬 치세 시에 므깃도와 하솔 및 게셀은 모두 정복되어 솔로몬 왕의 군사 요새로 사용되었으며(왕상 9:15), 나중에 므깃도는 솔로몬의 다섯번째 행정지구에 편입되었다(왕상 4:12). 후일 이곳은 유대 왕 아하 시야가 예후에게 죽임을 당한 곳으로(왕하 9:27), 그리고 요시야 왕이 애굽의 바로 느고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당한 곳으로(왕하 23:29, 30; 대하 35:20, 25) 유명하다. 특히 최후의 '아마겟돈'('므깃도의 언덕'이란 뜻) 전쟁이 일어날 곳으로 예언된 장소이기도 한다(16:14, 16). 한편 로빈슨(Robinson)은 이곳을 오늘날의 '레윤'(Lejjun)으로 추정한다.

 

게데스는 '납달리 산지의 게데스'(19:35-38;20:7)라고도 불리우는데, 요단강 서편에 위치한 세 도피성 중에 하나이다(19:37;20:7;21:32). 또한 사사 바락의 출생지이기도 하다(4:6). 후일 이곳은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에게 정복당했다(왕하 15:29). 현재는 훌레(Huleh) 호수 북서쪽에 위치한 오늘날의 '텔 가데스'(Tell Kades)로 알려져 있다. 욕느암은 갈멜 산 근처, 스불론 지파의 서남쪽 국경에 있던 한 성읍(19:11)으로, 레위 지파의 므라리 자손에게 다시 분배되었다(21:34). 욕느암(Jokneam)은 오늘날의 '텔 쿠이문'(Tell Quimun)과 동일시 되는데, 이곳은 므깃도 북서쪽 약 11km에 위치한 작은 언덕이다. 돌은 (11:2)을 참조하라. '길갈'(Gilgal)은 성경에서 5개와 각기 다른 곳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여기서의 길갈은 팔레스틴 북방에 있는 갈릴리 지방의 길갈을 가리킨다. 이 길갈의 위치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이 명단에 나타나는 왕들이 주로 북쪽 지역의 왕들인 점으로 미루어, 이 길갈 역시 사마리아 북쪽 지중해와 갈릴리 사이에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학자에 따라서는, 이곳은 오늘날 북부 요단 평야에 있는 '일율리예'(Jiljulieh)로 보기도 한다(Van de Velde, Conder, Robinson). 그리고 '고임'은 히브리어로 '민족들', '족속들'을 뜻하는 말로, '길갈의 고임 왕'이란 길갈 족속들의 왕을 가리킨다. 디르사는 동쪽 아담의 시내쪽에서 요단 계곡으로 들어가는 와디 파라(Wadi Farah)의 내리막길에 위치해 있다. 이 주위는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며(6:4), 므낫세 반 지파에게 분배되었다(17:2, 3). '디르사'(Tirzah)는 오므리가 사마리아 성을 건축할 때까지 여로보암 1세로부터 바아사와 엘라와 시므리 때 까지 약 40년간 북쪽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였다(왕상 14:17; 16:8, 9). 이곳의 오늘날의 위치는 세겜에서 북으로 약 2시간 거리 떨어져 있는 '탈루자'(Talluza)로 추정된다(Robinson, Knobel, Van de Velde).

 

<참고: "텔 엘 아마르나의 편지">

 

우연히 아멘호텝 4세의 옛 수도였던 아케타톤(Akhetaton, 즉 텔--아마르나)에서 고대의 외교 서신 문서 한 묶음이 발견됨. 이것은 점토 비문에 바벨론 설형문자로 쓰여졌는데, 이 문자는 애굽 왕 제 18왕조 때에 국제적인 서신 왕래에 사용되던 언어였다. 이 서신에는 예루살렘 왕 아브디 헤파가 가나안 침공 자들이 그들 앞에 있는 모든 것을 점령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그리고 이 서신에는 "하비루"(Habiru)라는 이름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그리고 또한 가나안의 어린 군주가 모든 상황을 기록하여 시돈에 보내는 서신에서도 이라한 언급이 매우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이러한 기록이 그 당시 히브리인이 가나안을 침공한 것을 기록한 것이었다고 주장하였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지만, 이 서신의 내용과 그 당시의 여러 가지 다른 정황들을 살펴볼 때에, 이 서신에 나타나는 기록과 여호수아에 나타나는 정복 기록 사이에는 서로 연관시킬 만한 충분한 유사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적용 및 교훈 *

 

1. 여호수아의 저자는 이 곳에서 모세와 여호수아가 진멸한 왕들의 이름이 연대순, 정복 순으로 기록해주고 있다. 이러한 기록은 가나안의 왕들이 이스라엘에 의해 완전히 정복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2. 이 곳에 기록된 수많은 왕들은 한결 같이 개인, 또는 연합의 형태로 이스라엘을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거부하고 대적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이런 면에서 보면 이 정복 요약의 기록은 하나님의 주권의 승리를 목격한 이스라엘 백성의 찬송이라고 볼 수 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