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 눅 4장16-19) 사 61:1-9,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 눅 4장16-19) 사 61:1-9,
인도 날라마람의 작은 교회에서 한 선교사가 예배를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매우 지저분한 옷을 입고 한 여인이 들어왔습니다. 그녀의 옷차림이 너무 지나치게 초라해서 선교사는 그녀에게 왜 그런 옷으로 예배에 참석하였는지를 물었습니다. “선교사님, 이것은 저에게 있는 것 중에서 제일 좋은 옷이랍니다.”
그녀는 선교사에게 자신이 과거에는 부자였는데, 마을의 깡패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다 빼앗겼다고 합니다. 깡패들은 그녀에게 그녀가 믿고 있는 예수만 버리면 재산을 돌려주겠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선교사님! 저는 비록 가난하게 살아도 나의 예수님을 모시고 살 수만 있다면 재산 같은 것 포기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바로 만나 주님이 주시는 은총을 받은 성도에게는 예수님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보배로 여기게 됩니다.
오늘은 주현절 세 번째 주일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의 한 연구팀이 동물의 지능한계를 알아보기 위해 15세 된 침팬지에게 수화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갖은 노력을 다해서 140여개의 단어를 가르치고 이 단어들을 자기 생각에 따라 결합할 수 있도록 해보았습니다.
이 침팬지가 수화를 통해서 어떤 의사를 표현하는지가 중요한 관심사였습니다. 그랬더니 이 침팬지가 맨 처음으로 표현한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Let me out."(렛 미 아웃) 나를 놔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제발 당신들 때문에 귀찮으니 나를 좀 자유롭게 해달라는 의사를 표현한 것입니다. 이처럼 자유란 짐승도 원한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놀라운 실험결과입니다.
하물며 우리 인간은 어떠하겠습니까? 패트릭 헨리의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는 말처럼 인간은 누구나 자유를 갈망하는 존재입니다. 오늘날까지 인류의 피나는 투쟁은 곧 자유를 향한 투쟁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가난과 질병과 고통과 불안 각종 정치적 사회적 물리적 억압에서의 자유를 쟁취하려는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 신약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성경을 펴 이사야의 말씀을 찾아 읽으신 말씀이 본문 눅4:18-19 말씀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바로 주님은 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주님은 포로 된 자를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단의 포로가 되고, 죄의 포로가 되고, 두려움의 포로가 되어 살았습니다. 사단은 사람들을 미혹하여 온갖 죄를 짓게 하고, 죄 가운데 살다가 멸망에 이르게 합니다. 요일3:8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도 수많은 귀신을 내어 쫓으셨는데 이는 우리에게 마귀에게서의 자유를 보여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을 내 안에 영접하여 주님 안에 거하여 살면 사단의 올무에서 해방이 되어 자유하게 됩니다.
주님 안에 거하여 사는 자들은 더 이상 죄의 종이 되어 살지 아니하고 죄를 철저히 회개 하여 버리고 성결하게 살기를 힘쓰게 됩니다. 주님은 요8:34-36에서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하셨습니다. 주님 안에서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받은 자들은 아무도 정죄 할 자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바울 사도는 롬8:33-34에서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했습니다.
그리고 두려움의 포로가 되어 살았던 우리를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세상에서 전쟁, 지진, 질병, 가난, 재난, 죽음 등 여러 종류의 두려움을 주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주님은 때로 그 두려움의 환경을 바꾸어 주시기도 하시고,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담대함을 주시기도 하시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도 하십니다. 그 두려움 가운데서 가장 크게 느끼는 두려움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런데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이 함께 하시므로 죽음의 두려움에서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히2:14-16에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이는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신앙인들이 죽음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하나님을 멀리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붙들어주시면 조금도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 안에서 참 자유 함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우리로 하나님 앞에 존귀한 자가 되게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영의 눈이 어두워져서 하나님도 안 보이고, 신령한 은혜의 세계를 보지 못하고, 천국과 지옥을 모르는 자가 되어 육신의 눈에 보이는 물질, 세상 명예, 권세, 쾌락 등이 가장 좋은 것인 줄 알고 그것을 위해 살면서 온갖 죄를 짓고 살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영원한 형벌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시편 53편 1절에서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들은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성도가 성령으로 거듭나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 영의 눈이 열려 하나님을 보게 되고, 신령한 은혜의 세계를 보게 되고, 장차 받게 될 하늘나라 기업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지를 알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존귀한 자로 세워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게 하십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선민이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은「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다」이렇게 선언하십니다. 사61:6에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했습니다. 제사장은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속죄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먼저 자기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 속죄제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죄를 사함 받고 다른 죄지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그 죄를 대신 속죄해 주는 일을 하는 것이 제사장의 일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레위자손, 그 중에 아론의 자손들을 제사장으로 구분하여서 그들로 하여금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께 백성들이 나오도록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에 와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속죄의 제사를 드린 후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 사함을 받은 사람들이 죄 사함의 은혜를 입고 제사장 같이 사역하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이웃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여 그들의 죄를 속죄하도록 도움으로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사람으로 살게 하십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벧전2장 9절에서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한 것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스런 도구로 쓰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한 죄수가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에 걸쳐서 40년간이나 교도소에서 복역했습니다. 40년을 교도소에 생활하면서 워낙 성격이 포악한데다가 말썽을 일으켜서 간수들의 채찍에 수없이 얻어맞고 독방에 들어가기도 하고 강한 훈련과 교육도 받았지만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피투성이가 되어도 변화 되지 안 습니다. 그래서 복역을 마치고 출소하면 또 죄 짓고 또 들어오고, 또 죄 짓고 또 들어오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출소를 했는데 갈 데 올 데가 없으니까 기독교 계통에서 하는 수용소에 잠시 하룻밤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곳에 들어가서 하룻밤 자면서 복음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한 성도에게 복음 전도를 듣고 꿇어앉아서 자청하여 기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받은 즉시로 그 마음이 뜨거워져 그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악한 기운, 사탄의 기운이 떠나가고 성령의 기운이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냥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데 40년 동안 그렇게 모진 매를 맞고 핍박을 받아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정도로 완악했던 그가 눈물을 펑펑 흘렸던 것입니다. 완전히 180도로 변화되어서 그때 이후로부터 시작해서 18년 동안 그는 열심히 그 교회를 섬겼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중생하면 즉시 새 사람이 되고 눈이 밝아 신령한 세계를 볼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봉사자라 일컬음을 받게 됩니다. 사61:6에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봉사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바로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내게 있는 것,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 그것으로 사람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 사람을 섬기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기쁨으로 하는 것입니다. 저는 많이 부족하지만 기회 있는 대로 사람들에게 대접하고 봉사하려고 노력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 하시면 은퇴 후에도 은퇴 목회자들을 돕고 섬기며 살고 싶은 소원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내게 없는 것을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그것으로 최선을 다해서 봉사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벧전 4:10-11에서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했습니다. 사람들은 영국 황실이나 청와대나 백악관에서 청소부를 해도 그 곳에서 근무 하는 자체만으로도 영광스럽게 생각하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 성전에 문지기로 봉사해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귀한 자들로 살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
3.우리로 하나님 앞에 대대로 복 받게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구약 본문 사61:9에 “그 자손을 열방 중에 그 후손을 만민 중에 알리리니 무릇 이를 보는 자가 그들은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 인정하리라”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큰 복을 받는 자들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제사장이고, 나는 하나님의 봉사자이고 하나님의 선한 도구가 되어 파괴 시키고 무너뜨리는 사람이 아니라 세우고 일으키는 사람이 됩니다. 본문 사61:4에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옛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께 복 받은 자들입니다. 자기가 복을 받고 자기 자손에게 복을 나누어주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의 복을 받습니다. 회복의 복을 받습니다. 낙원이 그에게 돌아오고, 영생의 즐거움을 누리고, 존귀의 복을 받고, 재물의 복을 받고, 평안한 삶의 복을 받습니다. 그래서 그 삶에 희락의 복을 받고, 심령의 즐거움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며 여호와를 찬양하며 복된 인생을 살아갑니다.
나아가서 자기만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손에게 복을 받게 하고, 다른 이웃에게 복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복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복을 받고 여러분이 이 믿음의 유산, 복의 유산을 여러분의 자손에게 남겨 주어서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의 자손을 보고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손이라 그렇게 증거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부모들이 믿음의 유산, 축복의 유산을 남겼으면 그런 부모님을 주신 것을 감사하면서 그것을 잘 받아 누리시고 그 믿음의 유산과 축복의 유산을 자녀 손들에게 물려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이제, 먼저 처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렸으면 여러분이 이 복을 잘 받아 누리면서 다시는 불신의 유산, 저주의 유산을 남기는 조상이 되지 말고 이 믿음의 유산, 축복의 유산을 후손들에게 잘 남기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가난과 질병의 저주에서 건져내어 복을 받는 백성으로 살게 하십니다. 서울시 송파구 문정동에 사는 정진숙 집사의 간증입니다.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6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나 어렸을 때는 친구를 따라서 교회에 나가기도 했으나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을 하면서 교회를 다니지 못하게 되었고 시댁은 대대로 우상을 섬기는 가정이었고 남편의 외할머니는 무당이셨는데 딸에게까지 대물림 하려고 하셨다 합니다. 시어머니는 신 내림을 받지 않으려고 많은 돈을 가져다주고 굿도 하면서 그 일은 피하였지만 가산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합니다.
남편은 결혼 후 날마다 술을 먹었고 점점 심해지면서 정신 분열 증세까지 보였는데 남편의 행패는 견디기 어려울 만큼 가혹했고, 괴로움에 지쳐 언니의 전도를 받고 남편 모르게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날마다 남편이 변화되기를 기도하던 어느 날, 남편에게 교회 다니는 것을 들키고 말았다고 합니다. 남편은 마구 때리면서 "너 왜 하나님을 믿는 거야! 나 죽으라고 교회 다니는 거야!" 하며 시누이에게 끌고 가 남편은 시누이와 여러 시집 식구들이 있는 앞에서 예수 믿지 않겠다고 선포하라고 했으나 끝까지 순교하는 정신으로 예수를 부인하지 않았다합니다. 남편은 더욱 화가 나서 그 때부터는 닥치는 대로 때리는데 매를 너무 많이 맞아서 온몸이 성한 곳이 없었고 너무 서러워서 하나님께 울부짖었다 합니다. "하나님 정말 살아 계십니까? 하나님 안 계신 것 아니에요. 정말 살아 계신다면 살아 계신 표적 좀 보여주세요."
그런데 하루는 남편이 자다가 일어나서 누군가에게 고함을 치는 데 "너 이놈! 우리 가정이 행복하게 살려고 하는데 왜 나를 괴롭히는 거야! 어서 나가! 나가!" 하더니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자세로 "하나님 아버지, 제가 미련해서 그랬습니다. 용서해 주시고 술, 담배 끊게 해 주세요." 하며 교회를 같이 가자고 하는데 너무나 놀라웠다고 합니다. 남편은 술과 정신 분열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도 했었으나 완치되지 않았었는데 그런 남편이 예수를 영접하자 그날로 교회 철야 예배에 가서 눈물로 회개를 하였고, 성령 충만을 받아 밤새도록 기도하고 새벽 기도까지 드리고 돌아와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여호와이십니다. 출 15:26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했습니다.
세상에 우리를 위해 오신 예수님의 사역이 바로 그런 사역입니다. 마 4:23에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난과 질고의 저주를 물리치시고 복 받는 하나님의 성민이 되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자손 대대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을 받게 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 자체가 보배요, 생명과 복의 근원이 되시기 때문에 주님과 함께 하는 성도는 주님 한 분 만으로도 자족하며 감사하며 살 수 있는 풍족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 모두 그런 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1.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2.우리로 하나님 앞에 존귀한 자가 되게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3.우리로 하나님 앞에 대대로 복 받게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는 성도, 하나님 앞에 존귀한 자로 쓰임을 받는 성도, 하나님 앞에 대대로 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