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시작과 끝 히4장14-16
성도의 시작과 끝 히4장14-16
젊은 크리스천 여성이 백화점에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백화점에서 일하는 주위 동료들은 모두 불신자였고, 그녀는 세속적이고 비속한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경계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한동안 주위 동료들에게 물들거나 무의식중에 기독교인 티를 내는 말이 튀어 나올까봐 조마조마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은 그들의 방식을 따르고 싶은 마음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전과 변함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사실이 참으로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런 환경 속에 있으면서도 전혀 더럽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그녀는 자신보다 먼저 기독교인이 된 믿음의 선배를 찾아가서 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런 곳에 있으면서도 물들지 않은 생활을 하는 것이 참 이상합니다. 저에게는 이것만으로도 큰 기쁨입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선배는 그녀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를 알지? 이 비둘기는 지상의 오물 가운데에 있어도 단 한 번도 더렵혀지지 않아. 항상 자신의 빛깔인 순백을 잃지 않고 있어. 왜냐하면 비둘기의 날개 밑에서 계속 기름이 흘러나와 더러움을 깨끗하게 씻어 주기 때문이야." 성령님은 항상 우리 믿는 성도들 안에서 살아 역사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함께 있으시며, 죄를 지을 때도 함께 계십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의 회개기도를 할 때면 죄를 씻어 내시고 죄를 버리게 하십니다. 우리 믿음의 성도들도 비둘기처럼 끊임없이 성령의 기름에 의해 죄의 더러움을 씻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도들이 죄악 된 세상에 살면서도 죄에 물들지 않고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주현절 두 번째 주일을 맞아 본문을 중심으로 “성도의 시작과 끝”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성도는 예수님과 함께 시작해야 합니다.
복음서 막1:9에 “그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때가 되매 이제 30년 동안의 침묵과 기다림 끝에 공생애의 시작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먼저 하신 일은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 받는 일에 순종하셨습니다. 당시에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온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주었습니다. 요한은 회개의 메시지와 함께 세례를 주었습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요한이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러 자기에게 나아오자 성령의 감동을 통해 이미 세례요한이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세례요한이 자기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어쩔 수 없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푸십니다. 그러자 3가지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먼저 ‘하늘이 갈라짐’입니다. 하늘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다음에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는 현상’입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립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순종하여 세례를 받으심으로 하늘에서 공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이 증거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죄가 없어 죄 사함의 표로 받는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으신 온전하신 분이시지만 겸손하게 낮아져서 하나님의 질서에 순종하셨습니다. 이 세례는 자신을 위해 받는 세례가 아니라 바로 우리를 위해서 받으시는 세례인 것입니다.
성도의 신앙의 출발점은 주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죄 사함을 받는 세례와 함께 시작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세례는 주와 함께 옛 사람이 죽고 주와 함께 새 사람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전에는 예수님 없이 내 마음대로 자행자지 하며 살았지만 이제는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임을 고백하고 주님의 인도를 받으며 새로운 가치관을 가지고, 새로운 목표를 향하여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바라보며 가는 자들입니다.
우리나라 선교 초기인 1886년 겨울 서울 정동의 언더우드 선교사 집에 손님들이 황해도 솔래에서 서울까지 천릿길을 걸어 세례를 받겠다고 왔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언더우드 선교사가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누군지 알고 제가 세례를 주겠습니까?” 그러자 그 사람들이 두루마기를 벗더니 뒤로 돌아서서 등에 나무 십자가가 묶여 있는 것을 보여 주며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전도를 받고 세례받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선교사께서 솔래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기다렸으나 오지 않으셔서 우리가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서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십자가를 몸에 지고 다니는 것입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그 말에 그만 감동이 되어 그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1885년 내한한 미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는 1887년 가을에 송도, 소래, 평양을 거쳐 의주까지 왕복하면서 20여 명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조선 정부는 선교사들의 공공연한 전도를 규제하여 더 이상 세례를 베풀 수 없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찾아오는 세례신청자로 인하여 언더우드는 법을 위반하지 않기 위해서 그들을 데리고 압록강을 건너가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 때 세례 받은 사람들이 모두 33명이었고 후세 사가들은 이것을 한국판 요단강 세례라 불렀습니다. 이처럼 초기 선교사들은 세례를 주기 위해 압록강을 건널 만큼 세례를 귀히 여겼습니다. 예수님을 마음으로만 믿는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세례를 통해서 시인하고 삶에서 입으로 온전히 시인하실 수 있어야 합니다. 형식적인 세례가 아닌 그런 신앙을 지금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진정 예수님과 함께 새 삶을 시작한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과 함께 옛 사람이 죽고, 거듭난 새 사람으로 주님과 함께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성도는 계속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서신서 본문 히4:16에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것이 세 가지 있는데 첫째는 죽음이요, 둘째는 세금이요, 셋째는 인간 갈등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수명을 연장할 수 있을 것인가 온갖 수단을 다 써봅니다. 좋은 약을 먹기도 하고,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하기도 하고, 누군가가 오래 살았다고 하면 그 비법을 연구해보기도 하고 따라 하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는 세금을 어떻게든 적게 내려는 자들과 세금을 제대로 받으려는 자들의 숨기고 추적하여 찾아내는 양상들을 자주 봅니다. 그리고 갈등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어쩌면 갈등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나 자신을 이 땅의 모든 인간으로부터 격리시키는 방법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갈등이 없는 세계 속에서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를 단절하면서 사는 것은 곧 사람의 인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두 종류의 사람을 만납니다. 하나는 만나면 만날수록 더 만나고 싶은 사람입니다. 또 하나는 만나면 만날수록 이제는 그만 만나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쉽게 상처 받고, 쉽게 낙심하고, 쉽게 포기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의 말에 쉽게 상처받는 모습입니다. 죄의 유혹에 쉽게 빠지는 모습입니다. 쉽게 화를 내고 쉽게 분노하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위기를 당하게 되면 마음에 큰 상처를 받고 뒤로 넘어집니다. 그리고 상처를 쥐어짜면서 슬픔 속에 탄식합니다. 그리고 내 마음의 상처가 치유 받지 않은 채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 사람에게도 커다란 상처를 가져다줍니다. 그리고 남이 말하는 것 때문에 또다시 상처를 받습니다. 내 손바닥에 가시가 박혀있으면 그것을 빼야합니다. 그것을 그대로 두면 누군가 내게 다가와 악수를 청할 때 내게 박힌 가시가 나를 찌릅니다. 그러면 우리는 소리를 치면서 당신 때문에 아파 죽겠다고 말하곤 합니다. 이 문제의 본질은 어디에 있을까요? 내 속에 있는 아픈 상처의 가시를 빼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 없이 살아가면 이러한 악순환은 계속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주님의 은혜의 보좌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뒤따라가면 사랑과 은혜의 축복을 누립니다. 본문 히4:14에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본래 높은 하늘 보좌에 계셨지만 우리를 위해서 낮은 곳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낮아지심으로 남을 높이시는 분입니다. 자기가 고난을 당함으로 남이 치유받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자기가 친히 죽음의 길을 걸어감으로 다른 이를 살리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예수님을 믿고 은혜를 받게 되면 예수님께 가까이 가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내 속에서 사랑과 믿음과 생명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예수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내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곤고함과 상처, 연약함을 치유하시고 그것을 위로하시며 배려하고 격려해주시는 분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 어리석음에 동참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어리석음을 지혜롭게 하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오히려 강하게 해주십니다. 예수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내 절망이 변하여 소망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자존감을 주시고 나를 이끌어 높이 세우시고,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녀 된 특권을 허락해주신 분이 십니다. 이 주님의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게 되고, 도리어 그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되고, 축복하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주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 은혜 충만히 받기를 힘씁시다. 그래야 사람들로부터 상처 받고 넘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주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세례 받으신 후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사십일 금식하며 기도 하셨습니다. 사단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주님께 접근하여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시험했으나 주님은 말씀으로 사단의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기도하면 주님의 도우시는 은혜로 우리를 미혹하려고 오는 사단의 시험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무 좋은 분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과 가까이하기 위해 주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옵니다. 주님께 사랑을 고백합시다. 그리고 주님의 사랑으로 세상 사람들을 축복하십시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통해서 사람들이 복 받기를 원하십니다. 길을 가다가도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위해 복을 빌어주십시오. 내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을 향해서도 복을 빌어주십시오. 운전대를 잡았을 때에도 내 앞에 있는 분을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 내 뒤에 따라오는 분을 위해 축복을 빌어주십시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누리는 축복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예수님을 뒤따라가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믿음의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 주님 주시는 은혜로 승리하시기를 기원합니다.
3.성도의 끝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본문 히4:10-11에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했습니다. 성도의 믿음 생활의 끝은 하나님 나라 안식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4:1에는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영원한 하늘나라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세상에서 가졌던 우리의 믿음은 다 헛된 신기루와 같은 허상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맙니다.
미국 뉴욕의 어느 부유한 동네에 한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취미는 골동품 수집이었는데, 많은 돈을 들여 오랫동안 수많은 골동품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에게 고민이 생겼습니다. 6개월 동안 유럽을 여행하게 되었는데, 자기가 모아 둔 수많은 골동품을 도난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도둑이 들어오면 경고음을 내는 최신형 알람을 설치하고, 도둑이 들어오면 곧바로 짖어서 도둑을 도망치게 할 무서운 개도 구입해 놓았지만, 여전히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뉴욕 뒷골목에 있는 화방에 가서 수많은 그림들을 싼 가격에 구입하여, 집안 구석구석에 진열했습니다. 그리고 각 그림마다 10만 달러, 20만 달러, 30만 달러, 등 등 기분 내키는 대로 가격표를 붙였습니다. 그리고 그 어마어마한 가격표를 붙인 가짜 그림들을 자신이 아끼는 소중한 골동품 사이사이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6개월 예정의 유럽 여행을 떠났습니다. 이 사람이 6개월 동안의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보니, 아니나 다를까 집 안에 도둑이 들어왔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자신의 계획대로 진기한 골동품들은 그대로 남아 있고, 싸구려 그림들만 몽땅 없어진 것입니다. 도둑이 그 사람에게 속은 것입니다. 잘못된 가격표에 속아 아무 가치 없는 것을 가져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 보면, 가짜로 붙여놓은 가격표에 속아 싸구려 그림들만 가져갔던 이 도둑과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과 권력과 학력과 외모와 인기와 명예, 등에 값비싼 가격표를 붙여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많이 얻으면, 높은 자리에 오르면, 많이 가지면, 행복해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속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붙여놓은 가격표에 속아 바가지 쓰지 말아야 합니다. 돈이나 직장이나 명예나 학력이나 인기 등은 우리 인생의 수단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한 것들이 우리 인생의 참다운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기준에 따라 살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따라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복음이 성도들에게 기쁜 소식이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사하시고 천국에 거할 처소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애급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셨던 그 약속과도 동일합니다. 그러나 기성세대 사람들 가운데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 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약속의 성취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기적을 많이 체험하고 복음을 듣긴 들었으나 믿음으로 받지도, 순종하지도 않았습니다. 단순히 교회 생활을 하며, 복음을 들었다고 해서 구원 받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수시로 나는 정말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 사람인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허락하신 새 땅에 들어가려면 자기중심적인 생활을 버리고 온전히 주님만을 믿고, 의지하고 순종해야만 합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주님의 자비와 은혜 덕분인데 우리는 지나치게 이것을 가볍게 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지으시고 쉬셨다고 해서 이 땅의 성도마저 영적인 생활을 쉬며 방심하고 살아도 좋은 것은 아닙니다. 성도는 천국에 들어가기까지 성결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죄악을 대항하는 철저한 몸부림이 있어야 하고, 늘 깨어 기도 하면서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 나를 속이려는 사탄을 끝까지 경계해야 합니다.
거듭난 성도는 주님 앞에 가는 그 날까지 믿음 생활, 헌신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데 삶에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이 됩니다. 히브리서 본문 12-13절에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마귀의 시험을 말씀으로 물리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의 무기가 됩니다. 또한 말씀은 성도를 온전케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나의 마음의 문을 열고 말씀이 역사하도록 허락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그때부터 내 삶의 모든 부분에서 고쳐야 할 것들을 눈에 띄게 하십니다. 무엇보다도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시는 말씀으로 나를 변화시키려고 성경을 읽습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들을 때마다 오늘 하나님께서 내게 어떤 말씀을 하시는가, 그 말씀을 내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실천에 옮길 때 믿음에서 믿음으로 영광에서 영광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정리합니다.
1.성도는 예수님과 함께 시작해야 합니다.
2.성도는 계속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3.성도의 끝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과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날마다 은혜 받는 삶을 힘쓰다가 영원한 하늘나라 안식에 들어가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