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거룩한 회고 마25:31-41
아름답고 거룩한 회고 마25:31-41, 롬16:3-16
미국의 유명한 가수이자 방송인인 에디 카토는 성공을 위해 정신없이 질주하는 전형적인 미국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앞뒤를 가리지 않고 숨 가쁘게 달려가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보낸 짤막한 한 줄의 편지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인생관이 바뀌어 훨씬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편지는 이렇습니다. "내 아들 에디야, 너무 빨리 달리지 마라라. 그렇게 하면 주변의 좋은 경치를 하나도 못보고 그냥 지나친단다." 에디 카토는 어머니의 편지를 받고 자신의 수첩에 네 가지 질문을 적어 놓고 한평생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살았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과연 가치 있는 일인가?'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는가?' 인생의 참다운 보물을 추구하고 있는가? 이웃에게 어떤 공헌을 할 것인가? 그는 한평생 네 가지 질문을 하면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습니다. 어느 듯 한 해의 끝자락인 송년 주일을 맞았습니다. 언제인가는 세상에서 나의 인생의 끝 날이 있음을 기억하고 심판 주가 되시는 주님 앞에 섰을 때 어떤 평가를 받을지를 생각하면서 우리의 남은 인생을 살아야겠습니다. 오늘 복음서 본문은 주님이 마지막 심판 때 양과 염소를 오른편과 왼편으로 갈라놓고 하시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서신서 본문에는 바울 사도가 지난 날 자신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수고한 일꾼들을 회고하며 거룩한 입맞춤으로 문안 인사를 통해 격려하는 내용입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아름답고 거룩한 회고”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아름답고 거룩한 회고를 위해서는,
1.아름다운 족적을 남기는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을 본받아 사랑으로 섬기는 사람이 아름다운 족적을 남기는 사람이 됩니다. 본문 마25:35-40에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했습니다. 그들의 사랑의 섬김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을 섬기고 대접했던 것입니다. 히 13:2에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했습니다.
본문 마25:31절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했는데, 재림하여 심판할 때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초림은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가난한 목수의 가정에서 나셨고, 로마의 식민지요 가난한 동네인 갈릴리 나사렛에서 자라셨다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예루살렘에 살고 있던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대하면서 “갈릴리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는가!” 하고 말하며 주님을 믿고, 따르며, 대접하기는 고사하고 무시하고, 미워하고, 모함하고, 대적하며,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예수께서 행하시는 기적을 보고 가르침을 들으면서 주님을 믿고 영접하여 주님을 본받아 사랑으로 섬기며, 신실한 모습으로 주님의 복음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자들이야 말로 참으로 복이 있는 자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서신서 본문에서 그를 도와 귀한 사역을 위해 함께 수고한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열거하고 그들이 어떤 자이고, 그들이 한 일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롬15장을 보시면 끝 절인 33절에 바울 사도는 로마에 있는 교회의 성도들에게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들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이라고 하면서 이 서신을 마무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이 부분에서 대해서 많은 성경학자들은 바울은 여기서 이 로마서를 끝맺으려고 하였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만약에 그들의 주장이 옳다고 한다면 왜 바울은 다시 16장의 말씀을 기록하였을까요?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고 목적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자료를 종합해 보면 바울은 그의 사역을 위하여 묵묵히 동행하여 온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하면서 바울은 저들의 수고를 위로하고 격려하기도 하고 더 많은 신앙인들에게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과 그 일을 위하여 섬기는 동역자의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지를 알리고 도전을 주는 기회로 삼고자 하는 것이 본 장을 기록한 바울의 목적이고 의도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사람이라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주님이 보여준 믿음의 발자취를 따라 아름다운 족적을 남기는 삶이 얼마나 귀하고 가치 있는 일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어떤 선교사님의 간증을 기록한 책 가운데 미국에 거주하는 아름다운 한 권사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권사님은 연세가 80세가 넘으신 권사님이셨습니다. 그는 교회의 많은 성도들에게서는 정말 존경을 받는 권사님이시오, 하나님께는 온전한 헌신을 다하는 귀한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아프리카 선교를 하는 그 선교사님께 매달 선교 비를 보내드리는데 어떤 때는 $40, 또 어떤 때는 $80, 가끔은 또 $100 이렇게 선교 비를 들쑥날쑥 마음대로 보냈다고 합니다. 그 선교사님은 처음에 이 선교 비를 받으시고는 오해도 참 많이 하셨답니다.
선교 비를 이렇게 마음대로 보내시니 생활이 넉넉하지 않으신 분이신가? 아니면 생활에 계획성이 없어서 쓰다가 남으면 선교비로 보내시는가? 하면서 생각을 하였는데 멀지 않아서 곧 그 궁금함이 풀렸다고 합니다. 이 권사님은 미국 뉴욕에 사시는 분이신데 그 얼마의 선교 비를 보내시기 위해서 직접 길거리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깡통을 주워 그것을 팔아서 모은 돈으로 선교 비를 보냈다고 합니다. 그 자녀들이 아무리 선교도 좋지만 그렇게 구차하게 해서까지 선교할 것이 무엇이 있느냐? 고 말렸지만 그 권사님은 개의치 않고 그렇게 묵묵히 그 일을 하시면서 선교 비를 마련하여 매달, 매달 지구의 한편 모퉁이에서 힘을 다해 한 생명이라도 주님 앞으로 인도 하려고 몸부림을 치는 그 선교사님의 사역을 위해서 선교 비를 그렇게 보냈다고 합니다. 나중에 이 선교사님이 미국에 가서 너무나도 감동적인 선교 비를 보내 준 이 권사님을 찾았을 땐 이미 권사님은 하나님 나라로 가신 뒤였다고 하였습니다. 권사님의 영혼을 사랑하는 그 모습, 주님의 일에 동참하고자 깡통을 줍는 것을 부끄럽다거나 수고로 생각하지 않고, 묵묵히 그 일을 행한 권사님의 모습이 얼마나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모습일까요? 우리 모두 아름다운 믿음의 족적을 남기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2.거룩한 족적을 남기는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신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신령한 복을 받고, 하늘나라 후사가 되게 하기 위해서 부르셨습니다. 이 은혜를 받은 성도들은 이제 내 마음대로 이기적인 욕심을 위해 사는 자가 되지 않고,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함께 힘쓰는 자들로 살아야 마땅합니다. 바울 곁에서 많은 사람들이 협력했던 것처럼 함께 협력할 때 주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사역의 소중한 주인공들이 될 수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그림이 프랑스에 있습니다. 판데욘(Pantheon)이라는 그림입니다.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석하였던 전쟁의 영웅 6,000명의 얼굴을 일일이 다 그렸습니다. 그리고 그 전쟁에 참전하였던 나라 대통령 초상화 16명도 그려 넣은 대작입니다. 그런데 이 거대한 그림은 혼자 그린 그림이 아닙니다.
103명 화가가 동원되었습니다. 4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릴레이로 그렸습니다. 대단한 작품입니다. 걸 작품은 같이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위대한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는 요한과 함께 만들어진 걸작 품 인생입니다. 모세는 아론과 함께 만들어진 하나님의 위인입니다. 요한 웨슬레는 챨스 웨슬레와 함께 만들어진 감리교 거인입니다.
바울의 거룩하고 위대한 사역의 배후에는 오늘 본문에 열거한 동역 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몸으로, 물질로, 기도로 함께 수고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함께 매도 맞고, 옥에도 갇히고, 자지 못하고, 굶주리고, 추위에 떨며, 온갖 고난을 함께 당하면서 주님의 고난에 함께 동참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롬16:3-4에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같이 수고하는 동역 자들이 바울 뒤에 있었기에 그런 엄청난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원주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어느 날 이유 없이 목회가 힘들어졌습니다. 의욕이 사라지고 짜증이 났습니다. 기도의 영이 사라지고 설교가 힘들어졌습니다. 왜 그런지 자신도 몰랐습니다. 탈진상태가 되었습니다. 이 때 인천에서 노인 여자 권사님 댁이 이사 와서 등록을 하였습니다. 71세였습니다. 새벽기도에 한 번도 결석하지 않으시는 분이었습니다.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노 권사님은 100일 작정 철야기도를 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권사님은 영하 15도가 내려가는 추운 날씨 속에서도 100일 철야 기도를 결석하지 않고 꾸준히 기도에 임하셨습니다. 목사님은 권사님의 건강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조마조마 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드디어 100일이 끝났습니다. 목사님이 권사님에게 물었습니다. "권사님! 100일 철야기도 제목이 무엇이었습니까?"
권사님이 대답하셨습니다. "목사님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영적으로 목사님이 좌절되어 있기에 목사님의 영적 건강 회복이 100일 기도 제목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목사님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독수리 같은 충만함이 임함을 느꼈습니다. 다시 열심을 낸 목사님은 온 성도들과 함께 교회에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이렇게 같이 수고하는 동역 자들 덕분에 하나님의 귀한 사역을 이루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거룩한 사역에 동참 하다가 주님 앞에 설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3.주님의 인정과 칭찬이 따르는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이 진리라면, 그 후에 심판이 있다는 것도 진리입니다. 히9:27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했습니다. 주님은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마25:34에서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받으라.”했습니다. 주님의 인정을 받고 주께서 예비한 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는 마25:41에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했습니다. 또 46절에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했습니다.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주님의 큰 사랑을 받았으면, 사랑하며 살아야지, 사랑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큰 은혜를 입었으면, 은혜를 베풀며 살아야지, 은혜를 베풀며 살지 못하면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큰 섬김을 받았으면, 섬기며 살아야지, 섬기지 못하고 살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용서를 받았으면 용서하며 살아야지 용서하지 못하면 미워하며 사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게 주신 것을 허비하지 않고 주님 기쁘시게 하는 일에 사용하는 자가 주님 앞에 인정받는 지혜로운 자입니다. 존 맥스웰이 쓴「당신 안에 잠재된 리더십을 키워라」는 책에 보면 한 등대지기 이야기가 나옵니다. 암벽 해안에서 일하던 등대지기는 한 달에 한 번씩 기름을 받아 등댓불을 밝혔습니다. 등대가 마을에서 멀지 않다 보니 손님들이 자주 찾아 왔습니다. 하루는 어떤 여자가 난방에 필요하다며 기름을 구하러 왔습니다. 또 하루는 어느 남자가 등잔불을 켠다며 기름을 청했습니다. 모두 그럴듯한 요구인지라 이 등대지기는 달라는 대로 기름을 다 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등대의 불을 밝히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바람에 여러 척의 배가 암초에 부딪쳤습니다. 그래서 상부에서는 이 등대지기를 다음과 같이 질책했습니다. "당신에게 기름을 공급한 이유는 단 한 가지, 즉 등대를 밝히라는 것이었소."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신 것은 헌신하라고 주신 능력이요, 재능과 은사 주신 것도 봉사의 일을 하게 하심이요, 복을 주신 것도 주님의 일을 하라고 주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것들을 잘못된 일에 소모하게 되면 사명과 본분을 잃은 등대지기와 같이 되어 배를 파손하고, 사람을 죽게 하는 자가 됩니다. 결국 주님의 책망을 받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연말을 맞아 이제 잠깐 가던 길을 멈추고 서서 인생의 종말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세계가 어떻고, 경제가 어떻고, 정치가 어떻고 하기 전에 내 인생의 종말을 진지하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내 운명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를 살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바르게 가고 있다면 더욱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기는 일에 하나가 됩시다. 바르지 못한 길을 걸어 왔다면 더 늦기 전에 방향 전환을 하여 주님의 인정과 칭찬을 듣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제 정리 합니다.
아름답고 거룩한 회고를 위해서는,
1.아름다운 족적을 남기는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2.거룩한 족적을 남기는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3.주님의 인정과 칭찬이 따르는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