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공부 여호수아

여리고 정복 (수6:1-27)

nam씨 2015. 12. 19. 13:29

여리고 정복 (수6:1-27)

 

1. 여리고 정복 방법에 대한 지시(1-5)

 

"이스라엘 자손들로 인하여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 없더라(1).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2), 너희 모든 군사는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3).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할 것이요, 제 칠 일에는 성을 일곱 번 돌며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4), 제사장들이 양각나팔을 길게 울려 불어서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5)."

 

이 때에 여리고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공격에 대비해서 성문을 굳게 닫고 있었다. 그러므로 아무도 여리고 성문으로 출입하는 사람이 없었다. 본문에 나오는 '여리고'는 오늘날 텔 에스 술탄(Tell es Sultan)이란 곳으로 판명되었다. 그 위치는 사해에서 북쪽으로 12km, 요단에서 서쪽으로 9km, 또 예루살렘에서 동북 방면으로 약 30km지점에 있다. 고고학적 발굴 결과 당시 여리고 성의 넓이는 대략 8에이커(1 에이커=4 평방 킬로미터)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이 크기는 므깃도가 14에이커(acre), 라기스가 18에이커, 하솔이 200에이커였던 점에 비하면, 작은 규모의 도시국가였다. 그러나 이 성은 여호수아 시대에 가나안 도시 중에서 평균 크기의 도시에 속했다. 여리고 성이 그렇게 크진 않았지만 이 성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여리고 지역은 좋은 샘들이 있는 '오아시스'(oasis) 지대였기 때문에 일찍부터 개발된 성읍이었다. 그리고 요단 평원의 서부에 위치하고 있는 여리고 성은 전략상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이 성은 가나안으로 가는 길을 방어하는 출발점으로서 군사 요충지였고, 가나안 중부로 들어가는 교통의 요지였다.

 

따라서 여호수아 군대가 가나안 도시 국가들의 남북 연합 작전을 미연에 차단하고 가나안 정복의 주요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여리고 성을 먼저 장악해야만 했다. 그러나 여리고 성은 직접적인 군사 작전으로는 거의 공격이 불가능한 천연적인 요새였다. 이 성은 매우 가파른 경사지 정상에 있었으며, 적들의 침입에 대비하여 성밖으로 3-4m 높이의 석조 장애물을 설치했다. 따라서 가파르고 미끄러운 경사지와 여러 방해물 때문에 벽을 무너뜨리려고 성에 접근하는 사람은 즉시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유일한 방법은 장기간의 포위 작전을 펴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하면 오랜 기간이 지체되어 나머지 가나안 족속들이 연합, 반격할 기회를 주게 되었기 때문에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여리고 성의 지휘자는 성문을 굳게 닫고 버티는 작전을 구사했다(Leon Wood, A Survey of Israel's History). 성문을 굳게 잠그는 것은 특별한 경계를 펴는 것을 말하며, 이는 여리고 사람들이 전투 태세에 들어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여리고 성이라도 흐르는 요단 강을 멈추게 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여리고의 왕과 용사들을 그의 손에 붙였다고 선언하셨다. 여기서 '손에 붙였다'는 말은 군사적 의미로는 '권력이나 통치권을 넘겨주다', '어떤 사람에게 승리를 허락한다'는 말이다(Westmann). 이러한 선언은 전쟁을 하기도 전에 이미 이스라엘의 승리가 확정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군대 장관은 여호수아에게 여리고 성을 점령하는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군대 장관은 여호수아에게 6일 동안 매일 성을 한 바퀴씩 돌으라고 했다. 그리고 성을 돌 때에 제사장 7명이 양각 나팔을 불면서 언약궤 앞에서 진행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하난이 군대 장관은 제 칠 일에는 그 성을 일곱 바퀴를 돌라고 했다. '일곱'(쉬브아)이라는 숫자가 4절에만 네 번, 그리고 6장 전체에 열 네번이 언급되고 있다. 성경에서 '일곱'(7)이란 숫자는 하나님께 속한 숫자로서 '완성', '완전', '극치', '성별'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7이란 숫자는 하나님의 신적 섭리나 사역과 관련되어 많이 나타난다(21:28, 30; 20:10, 11; 23:15; 25:37; 29:30; 왕하 5:10; 119:164; 1:20; 10:3). 따라서 이 숫자는 가나안 정복이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시는 성전(聖戰)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영각 나팔''수양의 뿔로 만든 나팔'로서 회중을 불러모으거나, 어떤 사람의 출현이나 각종 절기 때에 사용되었다.

 

하나님의 군대 장관은 7일 째에 성을 7바퀴 돈 후에 양각 나팔을 길게 울려 불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백성들이 그 소리를 듣게 되면 큰 소리를 외치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군대 장관은 그들이 이렇게 할 때에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본 후에 각기 여리고 성으로 올라가라고 하였다. 이처럼 침묵 속에서 길게 울려 퍼지는 나팔 소리는 여리고 사람에게는 공포심과 의구심을 불러 일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의 의미를 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소리를 듣고 확신과 격려를 받았을 것이다. '큰 소리'('테루아')는 함성을 지르는 것을 말하며, '외쳐 부른다'('루아')는 말은 '귀먹게 할 정도로 소리 지른다'. '개가를 올린다'는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르는 큰 소리는 이미 마음이 낙심이 된 가나안 사람들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전투 의지마저 빼앗을 것이다. 성벽이 무너져 내린다는 말은 '성벽이 편편하게 깔려질 것이다'란 의미이다. 이 마은 여리고 성의 성벽이 그 밑바닥 기초까지 철저히 무너져 내릴 것을 말한다. 이러한 가나안의 중요 거점인 여리고 성의 멸망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에 의해 멸망될 세상 나라의 심판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은 그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면 순식간에 멸망을 당하게 된다. 하나님은 성벽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좌우를 돌아보거나 머뭇거리지 말고, 힘차게 성안으로 공격해 들어가라고 하셨다.

 

2. 하나님을 앞세운 거룩한 행진(6-14)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연약궤를 메고 일곱 제사장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행하라 하고(6), 또 백성에게 이르되 나아가서 성을 돌되 무장한 자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 행할지니라(7).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기를 마치매 제사장 일곱이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여호와 앞에서 진행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언약궤는 그 뒤를 따르며(8), 무장한 자들은 나팔 부는 제사장들 앞에서 진행하며 후군은 궤 뒤에 행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하더라(9).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레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하고(10), 여호와의 궤로 성을 한 바퀴 돌게 하니라. 무리가 진에 돌아와서 진에서 자니라(11).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니라.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궤를 메고(12), 일곱 제사장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계속 진행하며 나팔을 불고 무장한 자들은 그 앞에 행하며 후군은 여호와의 궤 뒤에 행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하니라(13). 그 제 이 일에도 성을 한번 돌고 진에 돌아오니라 엿새 동안을 이같이 행하니라(14)."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의 작전 명령을 듣고 그대로 수행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 전투에서 오직 여호와의 명령대로만 움직였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통해서 가나안 정복 전쟁의 실제저인 지휘자가 하나님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호수아는 제사장들을 불러 언약 궤를 메게 하고, 그 앞에 일곱 제사장이 나팔을 불면서 진행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 제사장들 앞에는 무장한 군사들이 앞에 서서 진행하게 하였다. 그리고 나머지 군사들은 여호와의 언약궤 뒤를 따라 행진하게 하였다. 일부 학자들은 제일 앞에서 행진한 부장한 군인들이 요단 강 동편을 차지한 르우벤, ,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에서 선발된 군인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언약궤 뒤에서 행진한 후군'(마아세프)은 르우벤, ,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를 제외한 나머지 지파에서 선발된 군인들을 말한다(Kimchi, Rashi, Keil). 공동 번역은 '무장한 자들''정예 부대', '후군''후위 부대'로 번역하였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도는 동안에 외치거나 그들의 음성이 들리지 않게 하고 침묵을 지키라고 명령을 하였다. '들레다'(솨마)는 말은 '듣다'는 말로서, 이 구절은 '너희 음성을 들리지 않도록 하라'는 뜻이다. 여호수아가 성 주위를 도는 동안에 침묵을 지키도록 지시 한 것은 거룩한 나팔 소리를 보다 주의 깊게 듣고 따를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Matthew Henry).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침묵을 지키다가 마지막 날에 외치라고 할 때에 큰 소리로 외치라고 명령했다. 이 날은 제 7일째 되는 날로서, 하나님은 이 날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길게 울려 불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라고 지시하셨다. 여호수아는 침묵을 지킨 채로 이러한 여리고 행진을 똑같이 6일 동안 반복하였다.

 

 

3. 여리고 함락: 여호와 하나님의 입성(15-21)

 

"제 칠일 새벽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여전한 방식으로 성을 일곱 번 도니 성을 일곱 번 돌기는 그날뿐이었더라(15).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16). 이 성과 그 가운데 모든 물건은 여호와께 바치되 기생 라합과 무릇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살리라. 이는 그가 우리의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니라(17).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 너희가 그것을 바친 후에 그 바친 어느 것을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 화를 당케 할까 두려워하노라(18).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지니라(19).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취하고(20), 성중에 있는 것을 다 멸하되 남녀 노유와 우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21)."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같은 방법으로 제 칠 일에 여리고 성을 일곱 번 돌았다. 여전한 방식으로라는 말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라는 말이다.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지시대로 끝까지 순종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여호수아는 마지막 일곱 바퀴를 돌고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이렇게 말했다. "외치라 ! 여호와께서 이 성을 너희에게 주셨느니라" 여리고 성 함락 사건에는 일곱 이라는 숫자가 많이 등장한다. 성경에서 일곱은 하나님의 숫자와 완전을 나타낸다. 이러한 숫자는 여리고 성 함락 사건이 하나님의 계획 하에 진행되었으며, 그 결과 완전하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군사들에게 이 성과 그 가운데에 잇는 모든 물건을 여호와께 바치라고 지시하였다. 여기서 '바치다'는 말('하람')'사람이 어떤 물건을 사용하거나 오용하지 못하도록 구분해서 하나님께 넘겨주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 넘겨준다는 것은 1) 하나님을 섬기는 데 바치는 '봉헌'의 의미와, 2) 철저히 파멸시키고 저주하는 '진멸'의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이 말은 철저한 파멸의 뜻으로 여호수아의 군대가 진멸한 거의 모든 성읍들에 사용되었다(6:21, 여리고; 8:26, 아이;10:28, 막게다;11:11, 하솔). 그러나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살려준 기생 라합과 그 집에 있는 사람들은 살려두라고 하였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드려질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고 하였다. 이 말의 원래 의미는 '바쳐진 물건으로부터 너희 자신을 보호하라'는 말이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려진 물건을 취하게 되면, 그 물건으로 인해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 되어 화를 자초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이스라엘의 진영에 파멸을 몰아오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화를 당한다'('아카르')는 말은 '문제를 일으키다', '슬픔의 원인이 되다', '격노케 만들다'를 뜻하는 말이다. 여호수아는 은금과 동철 기구는 모두 다 하나님의 성전 곳간에 들여놓으라고 지시했다. 제사장이 나팔을 불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정말로 여리고 성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헤렘'의 규정에 따라 모든 여리고 거민과 가축들은 진멸의 대상이었으며(21), 성읍 안에 있던 재산도 소각되었다(24). 그러나 금은 동철 같은 금속은 예외적으로 '여호와의 곳간', '성막'에 보관되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성으로 들어가서 그 성을 취하엿다(20). 그리고 성중에 있는 것을 다 멸하되 남녀 노유와 우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였다(21)." 여리고 성 점령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에 의한 것인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것이었다.

 

한편, 성서 고고학적으로 파괴된 여리고 성읍에 대한 발굴 작업은 가스탕 교수(prof, John Garstang)팀의 발굴작업(1930-1936)과 캐넌 여사(Kathleen Kenyon) 팀의 발굴 작업(1952-1958)으로 큰 성과를 거두었다. 가스탕 교수가 파괴된 연대를 B. C. 1400년경으로 캐넌 여사가 B. C. 1500년경으로 달리 추정하고 있으나, 여호수아 시대를 즈음하여 파괴된 것으로 추정되는 여러 가지 집기류와, 무너진 건물 파편, 그리고 불에 타고 금이 간 수많은 벽돌들이 발굴되었다. 그리고 성의 몰락 원인도 지진과 같은 진동인 것으로 판명되었다(Garstang). 결국 이 모든 고고학적 발굴 결과는 성경의 사건들이 모두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라는 사실을 생생히 입증해 준다. 그런데 여리고 성의 정복에서는 거민 뿐 아니라 가축과 노략물까지 모조리 진멸하였는데, 그 이유는 여리고 성은 가나안의 첫 번째 성읍(가나안의 첫 열매)으로 하나님께 구별되어 드려졌기 때문이다(Calvin, Keil). 그리고 진멸할 때 칼날로 진멸한 것은 신 13:15의 규례에 의거한 것이다.

 

<참고: "가나안 족속의 멸절"에 대하여>

 

우리는 여호수아서에서 가나안 족속들을 멸하는 사건을 읽을 수 있다. 이 멸망의 대상에는 남녀 노소와 유아, 그리고 짐승까지도 포함된다. 일부 학자들은 이러한 일은 이스라엘이 원시적이고 반 야만적이며 종교적인 발전이 퇴보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일을 저질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 본문들은 분명히 이 일이 여호와 하나님의 지시를 따른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잔인해 보이는 일을 지시하신 몇 가지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첫째로 하나님께서 타락한 가나안 족속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사용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악이 극에 달한 가나안의 거민들을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이스라엘을 통해서 심판을 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그들을 살려둘 수 없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께서 심판을 명령한 가나안 주민들을 살려두었다면, 그것은 형 집행자가 임의로 사형수를 살려준 것과 같은 범죄를 한 것과 같은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들을 멸하라고 하신 이유는 그들이 너무나 타락하여 신정 국가를 세워야 하는 이스라엘을 오염시킬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등 그 당시에 가장 타락한 형태의 다신주의와 성적인 문란에 빠져 있었으며, 성전 매음 행위와 유앙를 제사로 드리는 일들을 자행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거룩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들과 함께 사는 일은 불가능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후에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이들을 살려두었다가 그들의 부패한 행위에 오염되어 스스로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게 되었다.

 

* 요약 및 적용 *

 

1. 가나안 점령의 역사는 여호와께서 친히 주도하셨다.

 

2. 칼을 든 여호와의 군대 장관은 이스라엘이나 가나안 주민의 편이 아니라, 여호와의 일을 수행하기 위해온 사자였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군대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면 여호와의 군대 장관은 이스라엘을 인도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법을 벗어나서 인간의 군대가 되면 여호와의 군대 장관은 그들의 점령 사역을 막게 될 것이다.

 

3. 여리고 성을 점령하기 위한 행진은 전쟁이라기 보다는 여호와의 임재를 기념하는 예배의식이었다. 이것은 시내산에 임한 하나님의 임재의 모습과도 같다. 여리고 성은 언약궤가 들어갈 때에 그 앞에서 무너져 버렸다. 여리고 성의 무너짐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수용이었다.

 

4. 여리고 성의 정복 사건은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께 바쳐진 "헤렘"에 대한 형벌을 수행한 것이었다.

 

5. 여리고 성의 점령 사건은 이후 모든 가나안 정복 사건의 전형이 되었다(9:3, 10:1, 10:28, 30 참조). 여리고 성은 가나안 정복 사역의 첫 열매로서 하나님께 드려졌다.

 

 

4. 기생 라합의 구원(6:22-27)

 

"여호수아가 그 땅을 정탐한 두 사람에게 이르되 그 기생의 집에 들어가서 너희가 그 여인에게 맹세한대로 그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내라 하매(22), 정탐한 소년들이 들어가서 라합과 그 부모와 그 형제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내고 또 그 친족도 다 이끌어내어 그들을 이스라엘 진밖에 두고(23), 무리가 불로 성읍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사르고 은 금과 동 철 기구는 여호와의 집 곳간에 두었더라(24).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 아비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탐지하려고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었더라(25).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로 무리를 경계하여 가로되 이 여리고 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잃으리라 하였더라(26).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니 여호수아의 명성이 그 온 땅에 퍼지니라(27)."

 

여호수아는 두 정탐꾼에게 빨리 가서 라합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을 구하라고 지시했다. 정탐꾼들은 여리고를 탐지할 때 라합에게 은혜를 입은 대가로 이스라엘 군대가 여리고를 정복할 때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을 살려주기로 약속했다. 정탐한 소년들은 그말대로 하여 라합과 그녀의 부모와 가족, 그리고 친족들과 재산을 끌어내어 이스라엘의 진밖에 두었다. 여기서 '소년'이란 말('나아르')'어린 남자 아이', '소년', '젊은이' 등을 발하지만, 본문에 나오는 소년은 어린아이이기보다는 분명 20세가 넘는 청년이었을 것이다. "진 밖'이라는 말('미후츠')'집이 없는 바깥 장소'를 가리킨다. 라합과 그 가족들은 이방인으로서의 모든 생활을 청산하고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기간 동안 '이스라엘 진()' 밖에 머물러야만 했다. 기생 라합이 언약 백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 사실은 후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서 이방의 세리와 창녀들이 교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질 것을 예고해 주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여리고 성읍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불로 사르고, 금 은 동 철과 같은 금속은 모아서 하나님의 성전에 있는 창고에 갖다두었다. 이렇게 해서 기생 라합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다. 라합과 그 가족은 얼마 후(7; 32:19) 이스라엘 백성의 일원이 되었다. 특히 라합은 후에 유다 족장이었던 살몬과 결혼하여 다윗의 조상 보아스를 낳게 된다. 이 성을 를 인해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이름이 오르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1:5)..

 

여호수아는 다시는 여리고 성을 세우지 못하도록 이 성을 저주하였다. 여호수아는 누구든지 일어나서 이 성을 다시 건축하려는 자에게 저주가 있을 것이라고 선포했다. 여호수아는 누구든지 이 성을 건축하면 성의 기초를 놓을 때에 장자를 일헤 되고, 문을 달 때에 계자를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호수아의 이러한 선포는 아합 왕 때에(B.C. 870년경) 벧엘 사람 히엘에게 일어났다. 히엘은 여리고를 견고한 성읍으로 재건하려고 여리고 성의 터를 쌓다가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으고, 성문을 세울 때에는 막내 아들 스굽을 잃었다'. 여기서 '계자(季子)'라는 말('차이르 )'가장 적은', '나이가 어린'이란 말이다. 성경상에서 '차이르'란 말은 (25:23)에서는 '어린 자', (48:14)에서는 '차자'로 번역하였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셨기 때문에 여호수아의 명성이 온 땅에 퍼지게 되었다. '여호수아와 함께 하심으로 그를 형통케 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1:5-7)이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하나님의 심판과 입성을 거부하는 자는 멸망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