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고전 6:19-20)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고전 6:19-20)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이 시간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저 유명한 프랑스의 나폴레옹 황제에 대한 이런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나폴레옹이 어느 날 막사를 순찰하는데 막사 안에서 한 병사가 나폴레옹 이름을 부르면서 마구 험담을 퍼붓고 있었습니다. 듣기가 하도 거북해서 나폴레옹이 그를 끌어 왔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왜 넌 나 안 보는 데서 나를 욕하느냐?” 그러자 그는 장군님을 욕한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내 귀로 분명히 나를 욕하는 소리를 들었다.” “아!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장군님을 욕한 것이 아니라 우리 친구 병사를 욕한 것입니다.” 나폴레옹이 말했습니다. “네 친구 중에 나폴레옹이란 자를 데려 오라.” 그를 데리고 오자 나폴레옹은 “네 이름을 바꾸든지 행실을 바꾸든지 둘 중에 하나를 하라. 내가 너 때문에 부끄러움을 당하고 있다.” 라고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때문에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고 계십니까?
주기도문에도 나와 있지만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는 것은 우리 모두의 소원이어야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제 1문에도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니라.” 했습니다. 고전10:31에도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삶의 목표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20절) 고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이와 같은 교훈이 주어진 배경이 있습니다. 헬라철학은 항상 육체를 천시했습니다. 그래서 썩어질 육체로 무슨 짓을 하든지 상관없다는 이원론 사상이 심지어 고린도 교회까지 팽배해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교인들 중에도 음행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그 때 사도 바울은 그들을 향하여 이원론 사상을 공격하면서 그러므로 몸으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일까요?
1.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부족함이 없어야 합니다.
고전6:19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했습니다. 우리가 거룩해야 할 이유는 우리 몸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셔요. 그러므로 방탕하게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그 육체를 심판하시게 됩니다.
요한복음 2장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요2:12-15)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지 않으면 채찍을 드실 수도 있습니다. 엎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골3:5-6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했습니다. 창 3장을 보면 범죄 이후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냈습니다. 하나님 멀리하면 우리의 한경과 우주까지도 변한단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 피공로를 믿음으로 용서 받을 뿐 아니라 늘 하나님 앞에 나아가 마음을 깨끗이 씻으시기 바랍니다.
교회사를 보면 안토니오라는 사람이 거룩하게 살기 위하여 가산을 모두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 주고 굴속에 들어가 은둔생활하며 기도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중심을 아시고 항상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하늘에서 "안토니오야, 네가 아무리 경건하게 살고자 하지만 알렉산드리아에서 헌 신을 고치는 노인만 못하구나"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안토니오는 알렉산드리아로 구둣방 노인을 방문했습니다. "노인께서 어떻게 믿음생활을 하십니까?" 그러자 노인은 “우리는 가난해 매일 신발을 수선하고 저녁에는 가정예배를 드리고 아이들에게 하나님 공경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하였습니다.
이처럼 그 정성 가지고 교회에서 정한 정한 예배 드리고 생활 속에서 정해놓고 하나님 경외하고 이웃 섬기며 살면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릅답습니다. 약1:27에 “참된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늘 하나님 경외함으로 더욱 거룩한 성전이 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면 내 뜻대로 살지 않는 것입니다.
고전6:19-20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 몸은 내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피로서 우리를 사셨으니 우리는 주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뜻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캄보디아가 공산화 될 때 거기 C.C.C. 대학생선교회 대표가 기회를 놓쳐 빠져 나오지 못했습니다. 이 대표는 마지막으로 "나는 여기서 주를 위해 충성을 다하겠다."고 전보를 쳤고 C.C.C.에서는 그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4년 만에 공산치하 캄보디아를 탈출을 했는데 한 가지 한 가지가 모두 기적이었습니다.
캄보디아에서는 안경 쓴 사람까지 다 죽이고, 대학 나온 사람 죽이고, 영어 하는 사람 죽이고, 부자 죽이고, 예수 믿는 사람 죽이고, 처가 집이 부자라고 죽이고, 이렇게 죽이고 저렇게 죽였는데 이 사람은 그 전체에 해당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공산당은 그렇게 4백만 명을 죽였답니다.
그가 있던 마을도 3백 명이었지만 굶어 죽고 맞아 죽고 병들어 죽고 30여 명밖엔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모로 저모로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이적보다 더 귀한 것은 그이 기도였습니다. 그는 거기서 "하나님 어떠한 경우든 거짓말을 말게 해주십시오." 라고 기도했습니다.
다윗이 위대한 것도 항상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고 매사에 하나님께 여쭙고 그 뜻대로 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것입니다.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는 것이 하나님을 존중하는 것이요, 그것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을 기뻐하십니다. 여쭙기만 해도 고마워하십니다. 사람도 그러하잖아요. 젊은이들이 묻기만 해도 고맙죠. 고마워서 모든 걸 다 해주고 싶지요. 하나님도 그러하십니다.
요삼1:3-4에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이보다 더 기쁜 일은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면 감사생활해야 합니다.
고후4:15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감사하면 은혜가 더하여 넘친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과 같이 감사할 때 은혜가 넘치고 넘칩니다. 큰 능력 큰 체험 큰 축복 받지 못하고 내 믿음 겨자씨보다 더 작을지라도 우리를 택하여 주셔서 예수 믿게 해주신 것만이라도 날마다 감사하고 감사하면 이 세상 누구보다 더 풍성한 은혜생활을 누릴 수 있습니다.
두 마을이 있었습니다. 한 마을은 감사촌이고 다른 한 마을은 불평촌이었습니다. 불평촌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불만이고 무엇이든지 근심이고 무슨 일이 생기면 매사에 탓을 하고 분노하고, 좋은 일이 일어나도 혹시 잘못되지 않을까 불안해하면서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감사촌에 사는 사람들은 항상 감사했습니다. 고생을 해도 감사하고 시련을 당해도 감사했습니다. 봄에는 꽃이 피는 것에 감사했고 여름에는 잎이 무성한 것에 감사했으며 가을에는 추수하는 것에 감사하고 겨울에는 나뭇가지는 앙상하지만 그 뿌리가 있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하루는 불평촌에 사는 사람이 감사촌에 놀러 왔다가 감사하는 소리에 놀랐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하루 종일 감사했습니다. 저녁이 되어 불평촌으로 돌아온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에이, 감사촌에 갔다가 얻어먹은 것도 없이 감사만 하고 왔네” 감사는 감사촌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감사촌에서만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존 헨리는 “감사는 최고의 항암제요 해독제요 방부제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감사절에 말씀 드렸지요. 청교도들이 아메리카에 건너와서 반절이 사망할 정도로 고통을 당할 때 기도해도 막막했는데 감사하기 시작했더니 모든 절망이 물러가고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초일류국가로 만들어주셨습니다. 감사하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감사 없는 기도는 불신앙에서 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빌4:6-7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감사하고 찬송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뿐 아니라 사실은 우리가 은혜를 받습니다. 우리가 복을 받습니다. 참으로 아버지 사랑과 예수 복음을 알면 감사가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소유이며,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받지 아니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자기를 드려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심 같이 우리들도 몸과 마음을 드려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살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위해 살아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세상에 드리지 말고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고 드려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크게 받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