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아가

나의 동산에 불어라 (아 4장16-5:1)

nam씨 2015. 12. 5. 19:11

나의 동산에 불어라 (416-5:1)

= 배려하는 사랑 =

 

요 약

 

지속적이고 발전적인 영적 관계를 위해서는 주님께 대한 예절이 필요하다. 그 예절은 주님의 중심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데서 비롯된다. 주님의 중심에 가장 원하는 것이라면 고난도 기뻐하고 풍성함도 기뻐해야 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강제하지 않으실 지라도 우리는 주님의 중심을 헤아려 그 기뻐하시는 일을 자원하여 해야 한다. 이러한 성숙한 성도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만인에게 풍성한 은혜의 잔치를 베풀고 계신다.

 

설 명

 

1. 배 경

서로에 대한 배려와 풍성한 축하연이 나타나 있다.

 

 

2. 적 용

(진단) 부부 관계 시마다 이해 차이로 늘 다투지 않나요?

(해결) 서로를 배려하는 에티켓이 필요합니다.

 

 

3. 신혼부부의 사려 깊은 사랑

 

1) 신부의 배려

16북풍아 일어나라 - 그 아름다운 실과 먹기를 원하노라

: 초야의 고통의 상처에도 불구하고 신랑을 배려함이다.

이처럼 성도는 주님의 입장에 서서 살아야 한다.

 

2) 신랑의 배려

1절 상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 내 포도주와 내 젖을 마셨으니

: 신부를 아끼고 자기를 억제하는 신랑의 배려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진정 원하심을 알아야 한다.

 

3) 하객에 대한 예절

1절 하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 마시고 많이 마시라

: 어여쁜 신부를 얻은 기쁨을 잔치로서 표시함이다.

주를 위해 희생하는 성도를 통해 주님께서는

만인에게 은혜의 잔치를 베푸신다.

 

 

아가 4:16- 5:1

 

16 (술람미)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실과 먹기를 원하노라

5:1 (솔로몬)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 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젖을 마셨으니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마시고 많이 마시라

 

 

원 문

 

16 ןופצ ירוע 우리 차폰(깰지라 북풍이여)

ןמית יאובו 우보이 테만(오라 남풍이여)

ינג יחיפה 하피니 간니(내 정원으로 불어오라)

וימשׂב ולזי 잊젤루 베사마우(그것의 향기를 날리라)

ידוד אבי 야보 도디(내 사랑하는 자가 들어가서)

ונגל 레간노(그의 정원으로) לכאיו 웨요칼(먹으려 하는도다)

וידגמ ירפ 페리 메가다우(가장 좋은 열매를)

5:1 יתאב 바티(내가 들어갔노라) ינגל 레간니(내 동산에)

יתחא 아호티(내 누이) הלכ 칼라(신부여)

יתרא 아리티(내가 따서) ירומ 모리(내 몰약을)

ימשׂב־םע 임 베사미(내 향료와 함께) יתלכא 아칼티(먹었고)

ירעי 야리(내 벌집을) ישׁבד־םע (내 꿀이 있는)

יתיתשׁ 솨티티(마셨도다) יניי 예니(내 포도주를)

יבלח־םע 임 할라비(우유()와 같이)

םיער ולכא 이켈루 레임(오 친구들이여 너희도 먹고) ותשׁ 쉐투(마시라)

ורכשׁו 웨쉬케루(그리고 많이 마시라)

םידוד 도딤(내 사랑하는 자들이여)

 

 

스 토 리

 

잔치는 여러 날 계속되었다.

신부는 초야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신랑이 자기에게 들어와서

그녀의 모든 것을 만족하게 취하기를 배려하였다.

그러나 신랑은 신부를 아끼는 마음으로

이미 전 날의 초야에 만족했으니

염려 말라며 신부를 위로하고

어여쁜 신부를 얻게 된 것을 기뻐하여

하객들에게 계속하여 풍성하고 화려한 잔치를 베풀었다.

 

 

(강 해)

오늘은 나의 동산에 불어라란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하겠습니다. 본문의 노래자는 416절은 신부의 노래이고 51절은 솔로몬의 노래입니다. 본문의 배경은 혼인잔치가 계속되는 중간기로서 부부간의 예절과 이웃에 대한 예절이 잘 나타나있습니다. 부부일체라 해서 너무 가깝다 보니 가장 무시되기 쉬운 것이 예절입니다. 그러나 가까울수록 예절을 지키지 않으면 지속적이고 발전적인 관계가 이룩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지속적이고 발전적인 영적 생활을 위해서 주님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

 

그럼 주님에 대한 성도의 배려는 무엇입니까?

 

1. 주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것이라면 고난도 풍성도 희망해야 합니다.

 

16절에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실과 먹기를 원하노라했습니다.

이 노래는 신부의 노래입니다. 그 의미를 요약한다면 신부는 지금 신랑이 자기를 취해주기를 담대히 원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본문의 배경적인 상황은 혼인의 연속된 피로연의 중간에 해당합니다. 이스라엘의 혼인 잔치는 여러 날 계속되는 풍습입니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잔치가 무르익은 그 중간기에 해당합니다. 본문에 신랑이 자기를 취하기를 암시하는 부분이 여러 곳에 있습니다.

 

먼저는 북풍아 오라 남풍아 일어나라한 신부의 말입니다. 지금 혼인잔치 중간에 북풍은 뭐고 남풍은 무엇입니까? 그런데 원문을 참고하면 북풍아 일어나라”(ןופצ ירוע 우리 차폰)는 말은 깰지라 북풍이여이런 뜻으로 잠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북풍은 없다가 일어나는 찬바람이고 남풍은 불어오는 강하고 따뜻한 바람입니다. 그러니까 잠자리에 부는 바람치고는 이상한 바람입니다. 그럼 신혼부부의 잠자리에 불어오는 북풍과 남풍 즉 더운 바람과 찬바람은 무엇일까요? 기상학적으로 보아 찬 북풍과 더운 남풍이 동시에 불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신부를 취할 때 나타나는 신랑의 거친 들숨과 날숨의 거친 호흡을 암시하는 시문학적인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신부의 이 말은 신랑이 자기를 취해주기를 원하는 장면입니다. 이처럼 아가서는 외설적인 경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약 시대에 한 번도 경경의 목록에서 빠지거나 논란된 적이 없었던 것은 단순한 에로스의 수준을 넘어 이 속에 귀한 영적 진리가 함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에서 동산이란 아가서 여러 부분에서 그랬듯이(4:12, 15, 5:1, 6:2, 13) 술람미 자신(호크마 주석) 더 구체적으로는 자기의 안락한 품을 지칭한 말입니다. 그런데 향기를 날리는 것은 벌과 나비를 초청하는 뜻이 있습니다. 향기로운 동산에는 벌과 나비가 향기를 맡고 찾아와 꿀을 먹고 씨 맺는 작용을 합니다. 그리고 원문에 그것의 향기라는 정관사가 붙어 있어 자신의 육체적인 어떤 면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들어가서들어가다란 당시 아내를 취함에 대한 일반적인 묘사였고(30:3, 16, 삼하13:10) “아름다운 실과”(וידגמ ירפ 페리 메가다우)가장 좋은 열매라는 뜻으로 신부를 취함을 시사한 표현입니다. 그리고 먹기를 원하노라”(לכאיו 웨요칼)의 원문은 역시 먹다, 살다, 즐기다, 맛보다등의 뜻으로 부부생활의 기쁨을 묘사하는 은유입니다. 그러니까 본문에는 자기를 기뻐하는 신랑에게 자신을 온전히 취하기를 원하는 신부의 배려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구절은 신혼부부 세미나에 적합합니다. 아시는 대로 신부에게 있어서 신혼의 부부생활은 많은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에 사실 이와 같은 고백은 실재로는 대단히 어려운 고백입니다. 그리고 신랑 역시 젊음과 호기심 등 오랫동안 억제되어 왔던 육체적 현상으로 인해 무리한 요구를 할 때입니다. 즉 신부는 육체적인 고통이요 신랑은 억제에 대한 고통입니다. 여기서 부부의 갈등이 존재하게 되는데 화목한 부부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가 최대한 양보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즉 신랑은 신부의 육신적인 고통을 이해해야 하고 신부 역시 신랑의 인내하기 힘든 육신적 욕망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신랑과 신부가 서로 자기의 고통을 참고 이겨내는 사랑의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문을 볼 때 신부의 아름다운 마음씨를 봅니다. 즉 초야의 그 고통스런 상처를 불구하고 신랑으로 하여금 자신을 기쁨으로 허락하기를 원한다는 점입니다. 이제 우리들도 신혼부부를 앞에 두고 이런 것들을 가르치는 신세대 부모 신세대 목회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 이 본문이 의미하는 신령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일을 위하는 것이라면 고난이 있을지라도 자원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이라면 고난도 풍성도 희망해야 합니다. 그래서 빌1:29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했고, 벧전2:19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했습니다. 학자들도 신자의 향기를 띄우기 위해 성령이 선택해 쓰시는 각종 환경”(Watchman Nee) 혹은 시련과 박해를 통하여 신앙의 향기를 날리기를 원하는 마음(12:55)”(黑埼幸吉)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사실 성도가 예수를 위해 자기를 희생할 수 있을 때 그 고난은 주님을 가장 기쁘게 해드리는 최고의 것입니다. 어쩌면 목회란 지상의 많은 일 가운데서 가장 스트레스가 심한 일입니다. 젊은이들에게 이 길을 권하면 그럼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묻습니다. 이처럼 이 일은 시작부터 주님을 사랑하는 자기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14:26-27) 하셨습니다. 이 길을 가는 자는 무고한 어려움과 고통을 당해도 주님을 생각하며 참아야 합니다. 아주 사소한 문제로서 큰 어려움을 안겨다 줄 때 심적 고통은 큽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기에 주님이 앞서 가신 이 십자가의 길을 기쁨으로 가야 합니다. 가시채가 나를 찔러도 주님을 생각함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나아가 술람미처럼 고통스럽지만 더욱 적극적으로 주님을 위한 고난을 자처하고 원해야 합니다. 이 늘 듣는 말씀이지만 나에게 이 진리가 정착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며 눈물이 나오고 이렇게 순종하는 나를 주님은 늘 위로해 주시고 더욱 함께 하여 주십니다. 이것이 주님을 배려하는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신부인 것입니다.

 

2. 우리는 주님의 더 깊은 의중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1절 상반절에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젖을 마셨으니했습니다.

이 구절은 신랑이 신부에게 하는 말입니다. 신랑은 신부에게 전 날 신혼의 초야에 이미 만족히 취했으니 염려하지 말라는 위로의 말입니다. 그래서 마셨으니라는 과거형입니다. 이렇게 솔로몬은 신부를 배려하여 자기의 욕망을 억제하고 인내하는 신사다움이 여기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본 절에는 신부의 무엇을 암시하는 나의등의 소유격이 한글 개역 성경에는 7, 원문에는 9회가 나타나고 더불어 9가지 신랑의 소유물이 나타나면서 이 신부의 모든 것은 곧 이제 나의 것이라는 뜻으로 즉 언제든지 내 곁에 있으니 취하지 못할까 염려하지 말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또한 마셨으니라는 과거형으로 보아 전 날의 초야에 이미 만족하게 취했으니 염려하지 말라는 의미가 암시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면서 신랑은 신부를 여러 방면에서 만족히 취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 가지 즉 신부를 취하되 거두기도 하고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거둔 것은 몰약과 향 재료로서 이것이 피부에 바르는 화장품이라는 점에서 사랑의 애무를 가리키고(4:6), 먹은 것은 꿀 송이와 꿀로서 잠5:3이나 아4:11 등을 참고할 때 이는 입맞춤과 사랑의 대화를 가리키며, 그리고 마신 것은 포도주와 젖으로 포도주는 아7:2의 용례와 같이 여성의 성과 관계가 있고 젖은 유방과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부부생활을 암시합니다(7:2, 7:9, 9:21, 3:7, 삼하11:13, 7:37).

 

이 부분만 해석해도 만족하고 만족을 주는 부부생활의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먼저 아내 편에서 볼 때 남편을 위한 피부의 관리와 사랑의 대화와 포도주가 암시하듯 적극성을 가져야 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혹시 꿀 방울과 같은 사랑의 대화가 아니라 서로의 잔소리를 듣는 시간이라면 실패는 이미 정해진 것입니다. 그리고 남편의 편에서 볼 때 아내를 아끼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여기 흡족하도록 취하라는 신부의 권유에 신랑이 이미 넉넉하고 만족하게 취했다고 사양하는 것은 신부를 아끼는 신랑의 배려이지 육신의 갈망이 없음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만족히 취했음을 적나라하게 표현함은 신부에 대한 강한 배려를 암시합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신령한 교훈은 성숙한 자를 대하시는 주님의 모습은 다르다는 점입니다. 영적으로 어릴 때는 말씀 그대로 순종하도록 하십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성숙하면 말씀과 함께 하나님의 의도를 알아서 행하도록 하십니다. 마치 어른들을 섬길 때 어른들이 사양할지라도 그 사양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분들의 중심을 알아서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영적으로 장성했다는 것이 이런 부분에 나타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기록된 대로 오셨지만(40:7) 죄인들을 구원하시려는 아버지의 뜨거운 중심을 이해하시고 세상에 오셨다는 데 큰 뜻이 있습니다. 이 순종은 의무감에 의한 순종이 아니라 기쁨의 순종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가장 기뻐하셨습니다(3:17, 12:18, 17:5, 벧후1:17). 그 동안 얼마나 성경을 율법의 조항처럼 여기고 보았습니까? 그러므로 아무리 잘 지켜도 하나님과 아무런 인격적인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말씀을 통해 아버지의 중심을 헤아리고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이 비결을 깨달을 때 우리도 주님을 가장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여러 번에 걸친 소유격의 반복은 우리의 예배와 행실이 성령으로 드려진 것들만이 주님께서 기쁘게 받으신다는 교훈입니다. 즉 행함의 성격이 우리에게서 난 우리의 의, 우리의 열심, 우리의 계획, 우리의 속성이어서는 안됩니다. 대신 성령의 감동으로 되어진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한 기도 그러한 찬송 그러한 봉사 그러한 충성 그러한 말씀 등 성령으로 감동된 것이라야 주님께서 열납하시고 감동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름 준비해야 신랑 예수님 맞을 준비가 되듯 항상 성령 충만하여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영광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주님과 영적으로 바른 관계에 있을 때 그를 통하여 만인에게 은혜의 잔치를 베풀어주십니다.

 

1절 하 반절에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마시고 많이 마시라했습니다.

이것은 혼인예식에 계속되는 피로연을 암시한 말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을 신혼 초야를 지낸 신랑의 새 아침의 인사로 이해하는 학자들이 있지만 정확히 그 시기를 구분한다면 한 주간 동안 계속되는 혼인잔치의 중간쯤으로 이해함이 가장 합당합니다. 그런데 여기 신랑의 마시고 취함과 친구들에게 먹고 마실 것을 권함의 의미는 다릅니다. 전자는 신랑이 신부를 취하는 것이고 후자는 음식을 취하라는 것입니다. 신랑은 내가 신부를 마음껏 취했으니 너희들도 마음껏 음식을 먹고 마시라고 말합니다. 이는 그만큼 풍성한 잔치를 시사한 말씀입니다. 이러한 하객에 대한 후한 대접은 어여쁜 아내를 얻게 됨에 대한 자기의 만족감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축하객들을 나의 친구들 -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왕의 친구란 신하들이나(삼하15:17) 화친한 이웃 나라의 왕(왕상5:12, 왕상10:1-4)을 가리키지만 어진 왕은 백성들을 자기의 친구로 생각하였습니다(대하1:5, 대하1:1, 왕상4:25). 그러므로 이러한 중복적인 애정 어린 부름은 백성들에 대한 그의 깊은 배려와 애정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실제로 솔로몬이 가장 사랑하는 대상은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던 것도 오직 백성을 위한 것이었고(왕상3:9-12) 일반적인 의미에서 백성들이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었음도 그의 선정의 결과였습니다(왕상4:25). 그리고 그는 술람미와 결혼 즉 왕과 백성의 혼인을 통해 그 만큼 왕이 백성들을 존중하고 사랑함을 표시했습니다. 후대에 백성들은 세금을 많이 거두었다고 불평했지만 사실 백성들은 솔로몬 통치하에서 모두 귀족들처럼 복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후대 사람들의 악평은 마치 은혜 떨어지고 나면 지난날의 헌신과 충성을 힘겨웠던 멍에로 오해함과 같은 현상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의 식탁이란 얼마나 풍성한 것입니까? 곡식과 고기와 음료로 풍성한 식탁이었습니다(왕상4:22-23). 그래서 여기 마시라마시다’(רכשׁ 솨카르)가득히 유쾌하게 마시다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많이 마시라는 것은 이 잔치의 풍성함과 자유로움과 경사스러움 그리고 후한 인심과 하객들을 향한 예절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신령한 의미에서 이것은 영적으로 성숙한 성도들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많은 인생들에게 은혜의 풍성한 잔치를 베푸심입니다. 즉 주님께서는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을 통하여 은혜를 베푸십니다. 특히 주님의 진정한 의중을 알고 충성하는 성도들을 사용하사 역사하십니다. 이사야도 그 의중을 알았기에 하나님께서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리 우리를 위하여 갈꼬하실 때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할 수 있었고 그러한 이사야를 하나님께서는 역사에 남을 귀한 일군으로 쓰셨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으로 고난이 기다릴지라도 주님을 위한 것이라면 자원하실 성도가 됩시다. 그리고 주님의 의중을 깨달아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성도들이 됩시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영광을 받으시도록 주님을 사랑하십시다. 그래서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들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은혜의 잔치를 경험하게 되는 귀한 역사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