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아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아 4:9-11)

nam씨 2015. 11. 21. 12:52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4:9-11)

= 영광 돌리는 삶 =

 

요 약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빼앗으려면 주님만이 내 마음에 선하여 세상에 마음 두지 않고, 주님의 마음을 이해하여 그를 마음 아프게 하지 않으며, 주님을 위해 희생하여 언제나 아낌없어야 하고, 성령의 열매로 단장하여 가장 아름다워야 하며, 언제나 예배하여 주님을 존경하고 사랑해야 하며, 우리의 삶 속에 예수가 나타나는 삶이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다 드리지 않고서 어찌 주님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겠는가?

 

설 명

 

1. 배 경

신랑의 호의적 사랑에 감복하여 고향 미련을 모두 버리고

신랑을 오누이 삼는 친밀한 관계 발전을 보여준다.

 

 

2. 적 용

(진단) 최선을 다 하는데 감사를 모르나요?

(해결) 지난 날 잘 해주신 부모의 추억을 아주 잊으십시오.

 

 

3. 주님의 마음을 빼앗으려면

 

 

1) 주님만이 보여야 한다.

9네 눈으로 한 번 보는 것과

세상에 살지만 주님만이 내 마음에 선해야 한다.

 

2) 주님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

9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1:10의 구슬꿰미는 복음을 깨닫는 사건이요

여기는 주님의 마음을 아는 것으로 그를 다시 슬프게 하지 않음이다.

 

3)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10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에 지나고

네 사랑은 복수형태, “포도주는 희생적인 사랑

주님께로 시집 왔으니 그의 신부로 변화되어 아낌없이 희생해야 한다.

 

4) 미덕인 성령의 열매로 단장해야 한다.

10네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보다 승하구나

기름은 성령을 상징하며, 각양 향품은 성령의 각양 열매들이다.

 

5) 언제나 예배하는 삶이어야 한다.

11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꿀 방울은 사랑의 말을(5:3), 혀 밑의 꿀은 위로의 말을,

혀 밑에 젖은 격려의 말을 암시한다(11:103, 19:10).

 

6) 예수가 나타나는 삶이어야 한다.

11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

의복은 행실이요(19:8, 22:14), 백향목은 그리스도의 인성이다.

 

 

 

아가 4:9-11

 

9 (솔로몬)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10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에 지나고 네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보다 승하구나

11 내 신부야 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

 

원 문

 

9 ינתבבל 립바브티니(너는 나를(내 마음을) 빼앗았도다) יתחא 아호티(내 누이여)

הלכ 칼라(신부여) יניתבבל 립바브티니(너는 나를(내 마음을) 빼앗았도다)

ךיניעמ דחאב 베아하드 메에나이크(네 눈이 나를 봄으로)

קנע דחאב 베에하드 아나크(목에 있는 구슬) ךינרוצמ 및차우로나이크(네 목걸이로)

10 ופי־המ 마 야푸(얼마나 아름다운지) ךידד 도다이크(네 사랑이)

יתחא 아호티(내 누이) הלכ 칼라(신부여) ובש־המ 마 토부(얼마나 아름다운지)

ךידד 도다이크(네 사랑이) ןיימ 미야인(포도주보다 더 하도다)

ךינמשׁ חירו 웨레하흐 쉐마나이크(그리고 네 기름의 향기는)

םימשׂב־לכמ 밐칼 베사밈(모든 향품보다 더 하도다)

11 הנפשת תפנ 노페트 틸토페나(꿀이 떨어지는도다)

ךיתותפשׂ 시프토타이크(네 입술이) הלכ 칼라(신부여)

בלחו שׁבד 데바쉬 웨할라브(꿀과 젖이 있도다)

ךנושׁל תחת 타하트 레쇼네크(네 혀 아래에는)

ךיתמלשׂ חירו 웨레아흐 살르모타이크(그리고 네 의복의 향기는)

ןונבל חירכ 케레아흐 레바논(레바논의 향기와 같도다)

 

스 토 리

 

신랑의 호의적인 사랑 앞에

두 사람은 이제 부부라기보다 차라리

한 집에서 낳고 자란 오누이와 같이 다정하였다.

이제 신부의 눈은 맑은 거울이 되어

아비 집은 간 곳 없고 신랑의 얼굴만이 들어 있었고

그녀의 목에는 전에 솔로몬의 마음을 빼앗고자 드리웠던 것처럼

신랑이 걸어준 목걸이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술람미인들 고향집과 뛰놀던 친구들이 어찌 그립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님의 사랑에 감복하여

포도주와 각양 향품처럼 자기를 희생할 수 있었고

이렇게 순복과 염치와 정절로 단장된 그녀의 인품은

레바논의 어떤 백향목보다 더 아름답고

도리어 신랑을 염려하는 위로와 격려의 말은

꿀 방울처럼 감동적인 것이었다.

 

 

이 시간에는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본문은 레바논 여행 후에 신랑이 신부를 크게 칭찬하는 내용입니다. 신부는 신랑의 호의적인 큰사랑 앞에 과거에 대한 미련과 고통을 모두 버리고 오직 신랑만을 사모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 두 사람은 부부라기보다 차라리 한 집에서 낳고 자란 오누이와 같이 친밀한 관계가 되고 나아가 도리어 신부가 신랑을 위로와 격려로서 감동시킨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시할 사항은 전에 즉 1:2-4에서 솔로몬의 사랑이 포도주와 각종 향품과 같은 사랑으로 나타났지만 이제는 반대로 신부의 사랑이 포도주와 같고 각양 향품과 같이 나타나 신랑의 마음을 빼앗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신랑이 신부로 인해 얼마나 마음을 빼앗겼든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란 말을 두 번이나 강조하고 있고, 내 마음이란 문구는 나를로 번역할 수 있는 용어이며, 빼앗았구나정신없게 하다’ ‘압박하다는 뜻으로 신부에 의해 신랑의 마음이 심히 압도당한 상태임을 나타냅니다. 그러니까 아주 신랑의 마음을 사로잡아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신부의 사랑은 그만큼 솔로몬이 사려 깊은 사랑을 주었음을 시사합니다. 그래서 엡5:28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제는 주님을 이렇게 사랑해 드리는 성숙한 신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성도들의 사랑으로 인해 마음을 빼앗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본문이 보여주는 교훈은 진실로 주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주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고(요일4:11), 그러한 사랑만이 주님을 감격하게 해드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주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음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럼 어떻게 신랑 되신 예수님의 마음을 빼앗을까요?

 

1. 주님의 마음에 합해야 합니다.

 

9절에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했고, 그리고 10절에도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그랬습니다.

여기 누이란 당시 아주 친근한 부부 사이일 때 썼던 호칭입니다. 남편을 오빠 같이 느껴짐은 남편에 대한 아내의 존경이며 아내가 누이처럼 느껴짐은 아내에 대한 남편의 너그러움을 시사합니다. 이 용어를 통해서 그들의 신혼여행이 얼마나 마음이 맞는 기회였는가를 시사합니다. 새 가정들이 결혼식까지는 좋았는데 신혼여행을 하고 갈등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혹시 여행을 함께 못하는 부부들은 이 말씀을 잘 들으셔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3:3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이상적인 솔로몬 가정을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언제나 아내는 남편을 오빠와 같이 존경하고 남편은 아내를 이해하여 서로 맞추어 살아야 합니다. 특히 개성 강한 부부들은 이것이 화근이니 자기 개성을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신랑 예수님의 마음을 빼앗으려면 자기 뜻과 주관과 개성을 내려놓고 주님의 마음에 맞추어야 합니다. 13:22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다윗을 기뻐하셨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맞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윗의 친구 요나단이 왜 다윗을 생명같이 사랑합니까? 그것을 심리적인 측면에서 보면 하나님과 동역할 줄 알 듯 두 사람의 신앙이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주님의 멍에를 매고 주님께 배워야 합니다(11:28). 한 멍에를 매었으니 주님과 하나되는 것이요 주님께 배우니 한 마음이 됩니다. 그러면 주님의 마음을 온전히 빼앗을 수 있습니다.

 

2. 주님만이 내 눈에 선해야 합니다.

 

9절에 네 눈으로 한 번 보는 것과그랬습니다.

원문에 네 눈이 나를 봄으로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한 번이라는 용어가 중요합니다. 이처럼 술람미는 고향에 대한 감상보다 남편에게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숫자적인 한 번을 뜻하는 말이 아니고 인격적인 한 번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처럼 한결같이 변함없이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눈을 감으나 뜨나 자나 일어나나 일하나 쉬나 길을 갈 때나 언제든지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이 눈에 선한 생활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앞의 8절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8절에서 신부는 레바논산 정상에서 세상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이 부분을 설명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즉 세속을 하나님과 나의 원수요 배설물과 같이 추하고 악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 때만이 주님을 변함없이 바라볼 눈이 됩니다. 그러니까 술람미의 눈에는 더 이상 고향이 들어있지 않았고 그 눈에는 신랑만이 들어있었습니다. 이처럼 더 이상 세상에 마음 빼앗기지 않고 주님만을 생각하고 사랑하고 바라볼 때 예수님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 내 마음을 다 드리지 않고서 어찌 주님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겠습니까?

 

3. 주님의 마음을 알고 행해야 합니다.

 

여기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했습니다.

여기 구슬 한 꿰미는 전에 1:10 목장에서 솔로몬의 마음을 빼앗아 약혼의 언약이 주어졌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여기 다시 나타나는 목걸이의 등장은 또 다시 신랑의 마음을 사로잡기를 원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니까 술람미는 남편의 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즉 속히 옛 고향을 잊고 남편만 바라보며 사는 것을 원함을 깨달은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술람미가 버리기 어려운 가치입니다. 솔로몬 역시 술람미의 마음까지 데려와야 함은 양보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양보할 수 없는 가치라고 여기는 것들을 양보했습니다. 그러자 술람미도 남편의 중심을 헤아리는 배려를 하게 됩니다. 이렇게 부부간에 마음이 잘 통해야 마음이 듭니다. 남녀라는 것은 10년을 살아도 그 마음을 잘 모를 만큼 차이가 크며 안다해도 그 차이를 인정함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려 합니다. 그러므로 이 격차를 줄일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하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다 아시고 이해하십니다. 그래서 히4:15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오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보답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마음을 알고 이해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자기의 마음을 아는 성도가 될 때 감탄하십니다. 그럼 주님의 마음에 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기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다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구슬은 성경의 보배로운 말씀을 뜻하며 그것을 꿰었다는 것은 그 말씀을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도 한 꿰미입니다. 이것은 성경 전체 즉 성경에는 하나님의 뜻이 들어 있으므로 주님의 의중을 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알아야 신령한 산 제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하나님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하면 주님이 마음을 소유하게 됩니다. 고전2:16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했습니다. 사람들도 환심을 사려고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가를 알고자 합니다. 우리도 성경과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가장 기뻐하시는 뜻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4. 주님을 위해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10절에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에 지나고했습니다.

여기 네 사랑은 복수로서 반복적인 그러니까 그 사랑의 극진함을 나타냅니다.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는 감탄문이요, “아름다운지는 밝게 비췬다는 의미로 그 행위가 이기적이지 않고 아주 선함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 칭찬과 동일하게 신부의 사랑을 포도주보다 나은 사랑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포도주의 사랑은 무엇일까요? 주님을 위해 희생하는 사랑을 뜻합니다. 포도주는 제조 과정과 색깔을 볼 때 희생의 산물입니다(고후2:15). 그래서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피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포도주는 마시는 이로 하여금 취하게 합니다. 이것은 자기의 형체를 깨뜨려 다른 물질로 자기를 변화시켜 희생하는 감동적인 사랑입니다. 이제 술람미는 수넴 여자가 아니라 이제는 마음까지도 완전히 솔로몬의 아내로 바뀌었습니다. 여기에는 포도주처럼 많은 포기와 희생이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세상에서 주님께로 시집을 왔으니 더 이상 세상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마음을 둔 신부로 변화되어 그리스도를 위해 아낌없이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 무엇이 아깝습니까? 우리가 세상에 마음 주다가 받은 온갖 고난을 기억하십시오. 더 이상 세상을 사랑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벧전4:3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했습니다. 북한 지하 교회 성도들은 예수를 위해서 일하다가 찬송을 부르는 중에 예수를 위해서 죽는 것이 소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기 10절에 아름답다는 의미를 찾아보면 좋다, 선하다, 아름답다, 즐겁다, 유쾌하다, 행복하다, 잘하다, 선을 행하다, 유쾌하게 하다, 유익하다등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리스도의 사랑만 취하려는 이기심을 버리고 주님을 행복하게 해드리는 희생적인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포도주로 말미암아 취하듯 주님께서 감동하실 수 있어야 합니다.

 

5. 희생적인 기도생활로서 미덕인 성령의 열매로 단장해야 합니다.

 

다시 10절에 네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보다 승하구나했습니다.

이 말씀 역시 1:3에서 솔로몬의 사랑의 특징이었는데 이제는 술람미의 사랑의 특징으로 나타납니다. 여기 기름1:3과 동일한 감람유로 성령을 상징합니다. 이처럼 술람미의 사랑도 남편의 사랑만큼 장성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름이나 향품들이 화장품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성령의 열매로 말미암는 아름다운 인품을 뜻합니다. 이처럼 성도들이 성령으로 말에나 행동이나 모든 인격이 성령으로 변화되어 미덕을 풍겨야 합니다. 이것이 순복과 염치와 정절로 단장된 그리스도의 신부의 모습입니다(딤전2:9, 벧전3:5). 우리 육신의 단장도 중요하지만 인격의 단장은 더욱 중요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 감람 기름을 각양 향품에 견준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기도 생활을 암시합니다. 이 희생적인 기도가 있어야 다른 향품 같은 열매도 맺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름을 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의 기도처럼 성령의 기름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해야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처럼 아버지의 뜻을 간구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런 간절한 기도를 할 때 주님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습니다.

 

6. 주님께 언제나 감사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11절에 내 신부야 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그랬습니다.

비둘기는 새끼에게 젖을 먹인다는 이야기 들어보셨어요? 비둘기의 어미는 부화된 새끼에게 깃털이 나기 시작하는 무렵까지 아주 특별한 먹이를 공급한다고 합니다. 어미에게 공급받은 먹이가 잘 보이는 무렵인 깃털이 나기전의 새끼비둘기의 모이주머니를 관찰하면 우윳빛의 액체먹이를 일정기간 볼 수 있는데, 이때 보이는 먹이를 피젼밀크(pigeons milk)라고 부릅니다. 색상이나 특성이 포유류의 젖과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조류이기 때문에 가슴에 젖이 있어 먹이진 못하고, 부리를 통해 공급합니다. 피젼밀크 (뇌하수체 호르몬인 프로락틴의 분비에 의해 수컷과 암컷 양쪽이 모두 생산)의 특징은 식물성으로 두유와 비슷하며 새끼비둘기의 성장발육에 필요한 특별한 영양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포유류의 젖은 암컷만 생산하지만 피젼밀크는 암수모두 생산하는 점이 다르며 일생동안 먹이활동패턴의 특징에서도 다른 조류와 크게 구분되는 특징으로 비둘기는 일생동안 식물성 씨앗류에서 영양을 공급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른 많은 종의 새들은 평시엔 곡물의 먹이를 주로 섭취하다가 새끼를 키울 땐 동물성 먹이인 곤충 등을 먹이는 것과 크게 구분되는 점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새들의 경우, 어미새가 어린새의 부리 안에 먹기 알맞은 크기로 애벌래류 혹은 반쯤 소화된 곡류를 토해서 먹이는 방식과 달리 비둘기는 어미새의 부리 안으로 새끼비둘기가 부리를 어미비둘기의 목까지 들이밀고 마치 빨대로 우유를 마시듯 피죤밀크를 받아 마시는 모습은 아주 독특한 모습입니다. 이 사실을 솔로몬이 이미 알고 노래했으니 성경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이 본문을 해석하면 이번 신혼여행에서 신랑의 격려와 위로를 받아야 할 신부 술람미는 도리어 자기를 염려하는 신랑을 위로와 격려의 말로 배려했습니다. 이 배려야말로 신랑에게 꿀 방울처럼 감동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두 종류의 꿀이 나오는데 입술의 꿀 방울은 사랑의 말을 의미하고(5:3), 혀 밑의 꿀은 건강과 치료를 주는 위로의 말을 의미합니다. 즉 솔로몬이 저술한 잠언서 5:3음녀의 입술에서는 꿀을 떨어뜨리고라는 말씀에서 비록 용도는 다르지만 사랑의 말을 입술의 꿀 방울로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떨어지다말하다, 예언하다’(21:2, 7, 2:6)는 의미로서 이 꿀방울이 다름 아닌 언어의 덕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란 신부의 귀한 격려의 말을 암시합니다(11:103, 19:10). 이것이 열왕의 공주 출신의 다른 왕후와 다른 점입니다. 그들은 자기 나라와 아비 집을 잊지 않고 슬퍼하며 살았습니다(45:9-10). 그러나 술람미는 달랐습니다. 어쩌면 술람미는 그 일을 하기 쉬웠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이방 나라가 아니라는 점과 부모와의 사별 및 오빠들의 박해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어떻든 도리어 술람미가 자기를 염려하는 솔로몬을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사람에게는 말 한 마디가 큰 힘을 줍니다. 특히 부부간에 인정과 격려의 말은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도 신부된 성도들에게 그런 말을 듣고 싶어하십니다. 주님께서도 우리가 인정해 드리고 감사하고 주님 참 잘하셨어요 찬양하면 아주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중심에서 주님을 늘 감사하고 찬송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마음에 근심을 드리지 않기 위해 합당치 않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을 효자라고 합니다. 이렇듯 주님의 마음을 생각하는 성도야말로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7. 주님은 성도와 성도의 삶에서 당신이 나타남을 기뻐하십니다.

 

11절에 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했습니다.

성경에서 의복은 행실인데(19:8, 22:14) 의복에 향기가 있다 함은 그녀의 행실이 심히 아름다움을 비유한 말입니다. 향기는 들리는 소리도 없고 보이지도 않으며 부피나 무게도 없는 것이지만 널리 퍼져서 맡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발하게 하며 모두들 그 향기가 어디서 나는지 그 소재 파악하려고 힘을 씁니다. 그런데 그 향기가 레바논의 향기 같다고 했습니다. 여기 레바논의 향기란 레바논의 대표적인 산물인 백향목과 잣나무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로서 그리스도의 흠 없는 인성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이 향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행실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심정이 나타나고 예수님의 인품이 나타나고 예수님의 뜻이 나타나고 예수님의 지혜가 나타나고 이렇게 우리에게서 예수님이 나타나면 주님은 아주 기뻐하십니다. 주님은 이런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다 빼앗기십니다.

 

<결론>

주님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는 아름다운 신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으로 행복하시게 해드립시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도 더욱 행복해 질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성령의 은혜로 더욱 주님의 사랑을 깨닫는 성도들이 되어야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