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로마서

성도가 구별하여 드려야 할 것. 롬12장1-2

nam씨 2015. 11. 21. 12:48

성도가 구별하여 드려야 할 것. 121-2 6:13-21,

 

예루살렘의 동쪽에 해발 800m의 곳에 위치한 감람산이 있습니다. 주님이 제자들과 자주 들리셨던 유명한 곳입니다. 그런데 감람나무가 가장 많이 서식하는 이곳에 바리케이드와 철조망을 쳐놓고 한국어로 한국인들은 들어가지 못함이라는 안내문을 걸어놓았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한국인 성지순례 객들이 그곳을 방문하면 닥치는 대로 감람나무 잎을 뜯어가서 감람나무들이 몸살을 앓고 또 어떤 나무들은 죽기까지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정이 이런 데도 왜 성지순례 객들이 감람나무 잎을 그렇게 닥치는 대로 뜯어 가는 것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뜯어온 감람나무 잎사귀를 코팅 처리해서 한국에 돌아와 선물을 해 주면 최고의 선물이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성도들이 성지순례 하는 것은 우리가 믿는 절대 진리요, 길이요,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공생애를 보내시면서 사역하셨던 현장들을 돌아보며 다시 한 번 예수님의 삶의 흔적에 감사하고, 감격하는 순례의 여정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모든 흔적들을 아끼고 보존하여 모든 세대들이 은혜와 감격을 누리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모습이 구별된 성도다운 모습 일 것입니다. 자그마한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행동은 성도답지 못한 모습이요, 주님 가신 발자취를 따르는 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두 본문은 성도의 구별됨을 강조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성도가 구별하여 드려야 할 것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성도는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오늘 구약 본문은 나실 인에 대한 말씀입니다. 나실 인이라는 말은 구별된 자라는 뜻입니다. 세상의 욕망을 끊어버리고 자신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서원한 사람을 가리켜서 나실인이라고 말합니다. 민수기 6장에 나실 인의 법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자기 몸을 구별하여무려 13 번이나 나옵니다. 이렇게 여러 번에 걸쳐서 기록하신 이유는 나실인의 핵심은 자기 몸을 구별하는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자기 몸을 구별하는 것에 대하여 강조하실까요? 그것은 몸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는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 마음을 보시는 분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말의 본뜻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중심을 보시는 분이라고 해서 행동이나 몸은 소홀히 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해입니다. 하나님이 중심을 보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남에게 보이려고 의도적으로 내보이는 외식적 행동보다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중심, 마음이 중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몸은 따라 하는데 마음이 다른 곳에 있으면 형식적인 행동이 됩니다. 또한 마음은 진정이지만 몸이 그 마음을 따라가지 못하면 마음으로 가졌던 생각도 헛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둘 다 온전치 못한 모습입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너희가 다 나를 버리고 도망칠 것을 예고하셨을 때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마26:35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 하니라.” 그들의 마음은 진실이었지만 그들의 몸으로 보여준 행동은 도망치고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게 되는 부끄러운 자들이 되었습니다.

 

신약 본문 롬12:1"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짐승을 잡아서 죽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제사장이 제사를 드릴 때 제물은 제사장에게 드려지고, 죽음을 당한 후에 제단에서 불에 태워졌습니다. 그래서 산제사로 드리라는 말은 부분적인 희생이나 부분적인 헌신은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헌신이란 온전히 드려 헌신하든지 혹은 헌신하지 않든지 하는 것이지 약간만 헌신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신약 시대에 와서는 우리의 몸을 산제사로 하나님께 드리면서 살아갑니다. 산제사란 우리의 삶을 통해서, 생활을 통해서 드리는 제사를 가리킵니다. 어떤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한 부부가 교회를 다니면서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러자 하루는 부모님이 아들 내외를 불러서 언짢은 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들아,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는다고 하더라. 그러니 너희들이 교회를 다닌다는 것은 곧 우리가 죽더라도 제사 밥을 올리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냐? 우리는 죽어서 굶기 싫다. 그러니 우리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너희들이 교회에 다닐 생각을 하지 마라."

 

아들 내외는 놀랐지만 그 순간에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아들은 아버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아버님이 말씀하시는 제사는 죽은 제사입니다. 저희들이 그것보다도 훨씬 더 좋은 산제사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그 후로부터 아들 내외는 더욱 정성을 다해서 부모님을 잘 모셨습니다. 끼니때마다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음식을 차려 드렸습니다. 철마다 보약도 지어서 드렸습니다. 용돈도 넉넉하게 드렸습니다. 얼마가지 않아서 부모님은 아들 내외를 다시 불러놓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너희들의 말이 맞다. 산제사가 죽은 제사보다 훨씬 더 낫구나. 걱정하지 말고 이제는 마음껏 교회에 다녀라. 이제 우리도 너희들을 따라서 교회 다녀야겠다." 그렇습니다. 산제사는 우리의 몸으로 실천하는 생활로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의미합니다. 구별 된 성도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하나님께 드리는 자들입니다. 그러한 산제사 드리는 사람이 사람들에게도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성도로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2.마음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신약 본문 롬12:2 상반 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했습니다. 사람은 무한한 변화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변화가 좋은 방향으로의 변화가 있고, 나뿐 방면으로 나아가는 변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나뿐 방향으로 변화되어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의 겉모양도 그렇습니다. 갓난아이의 피부가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 부드러운 것이 변해서 거칠어지고 여드름이 생기고 땀구멍이 커지고 그러다가는 주름살이 생기고 머리는 하얗게 되고 그것도 머리가 가늘어 지고 빠지기 시작해서 주변머리, 속 알 머리가 없어지고 한해가 더 지나가면 갈수록 점점 안 좋은 모습으로 변화되어가다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겉모양만 그런 것이 아니고 속마음도 안 좋은 방향으로 변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욱 거칠어지고, 난폭해지고, 이기적이 되어 가고, 고집스러운 사람으로 변화 됩니다. 이것이 죄인 된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구별하여 나실 인 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은 좋은 방향으로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거듭나 하나님의 새 성품을 받게 됩니다. 경건의 연습을 통해 믿음이 자라면서 죄와 멀어지고 나뿐 습관을 버리게 되고, 주님을 본받아 온유 겸손한 마음, 성결한 마음, 사랑의 마음, 은혜로운 마음, 관대한 마음, 섬기는 마음, 베푸는 마음, 화평을 도모하는 마음, 남을 배려하는 마음 등이 자꾸만 자라가는 아름다운 성도의 모습, 주님의 형상을 지니게 되는 성도가 됩니다. 어떤 분이 교회 카페에 유머로 이런 글을 올린 글을 보았습니다. 남편은 집에 두면 근심 덩어리, 데리고 나가면 짐 덩어리, 마주 앉으면 웬수 덩어리, 혼자 내 보내면 사고 덩어리, 며느리에게 맡기면 구박 덩어리^^ 그 글을 보고 제가 댓글을 달았습니다. 그런 남편도 은혜 받으면 집에 두면 감사 덩어리, 데리고 나가면 자랑 덩어리, 마주 앉아 있으면 사랑 덩어리, 혼자 내보내도 듬직한 신임 덩어리, 며느리 앞에서도 보배 덩어리가 됩네다.

 

구별 된 성도의 공통적인 모습을 보면 이 세대를 본받지 않은 성결한 삶을 살기를 힘씁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특징은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범죄하고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었습니다. 그 모습은 죄를 범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죄를 범한 인간이 하나님을 피하여 점점 멀리 떠난 모습입니다. 성도가 세상을 본 받게 되면 점점 세상에 동화 되고 주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세상에서 문화가 발달되고 사람의 두뇌가 발달하고 경제적인 수준이 높아 가면 갈수록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문화 수준이 높아가고 경제수준이 높아가서 살기가 좋아지면 하나님을 더 열심히 섬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세상의 속성은 그렇지 못합니다. 오히려 하나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그것이 세상의 특징입니다. 그런 세상을 본받지 않은 것이 아름다운 변화입니다. 하나님과 멀어져 가는 현실을 보면서 돌이켜 하나님께서 내게 이렇게 좋은 환경을 주셨고 이렇게 좋은 경제적인 수준을 높여 주셨고 이렇게 좋은 문화를 누리게 하신 은총을 주신 그 하나님께 내게 주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하며 오히려 더 주님을 가까이 하고, 감사하고, 찬양하고, 영광 돌리며 사는 마음이 구별 된 성도로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3,뜻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신약 본문 롬12:2 하반 부에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성도가 내 뜻을 앞세우고 믿음 생활 하다보면 요나처럼 되어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기 쉽고, 발람 선지자 꼴이 되어 나와 난을 망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언제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시기에 하나님의 뜻을 잘 구별하여 주님의 뜻에 나를 처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만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길이요, 복 된 길이요, 행복을 가져다주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의 여러 소원들 가운데서 단 한 가지를 이루어 주시겠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하나님께 무엇을 요구하시겠습니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그것을 하나님의 뜻에 맡겨버리겠습니다. 왜냐하면 내게 있어서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제일 좋은지 가장 잘 아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각이 부족합니다. 우리는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할 정도로 무지하고, 어리석기도 하고, 연약합니다.

 

그러기에 오늘날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도 나실 인 정신이 필요합니다. 에이 나실 인은 구약 시대에 있었던 것이지 오늘날 어떻게 그렇게 사느냐고 반문하실지 모르지만 안입니다. 오늘날에도 그 정신이 필요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아무 것이나 함부로 먹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먹을 것이 있고 먹지 말아야 할 것이 따로 있습니다. 구별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아무 곳이나 가지 말아야 합니다. 거룩하게 구별된 성도들이 가도 되는 장소가 있고, 가지 말아야 하는 장소가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아무 일이나 하지 말아야 합니다. 돈 버는 일이라고 자신에게 이익이 있다고 해서 아무 일이나 해서는 안 됩니다. 분별없이 마구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오래 전에 대서양을 최초로 횡단한 챨스 린드버그(Charles Augustus Lindbergh)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19275월에 25살의 나이로 뉴욕에서 파리까지 횡단했습니다. 그 후 그의 손자인 에릭 린드버그가 할아버지의 횡단 75주년을 기념해서 경비행기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했어요. 할아버지는 33시간 30분이 걸렸는데, 손자는 17시간 걸렸습니다. 이 챨스 린드버그가 세계 최초로 조그마한 비행기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했으니 이게 얼마나 대단합니까? 요즘이야 아무것도 아니지만, 당시에는 얼마나 대단했겠습니까? 하루아침에 유명한 스타가 됐습니다. 언론에서는 연일 보도가 나오고 전 세계가 난리였습니다. 그러다가 이 분이 얼마 뒤에 영국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영국 국민들도 가만히 있지를 않았습니다. 환호하느라 난리고 언론들도 먼저 취재하려고 야단이었습니다.

 

그 때에 어느 담배회사 사장이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린드버그가 담배 한 개피를 가지고 있는 것을 사진 찍으면 되겠다. 그렇게 되면 자기 회사의 담배가 전 세계에 선전되어서 사업이 잘 되겠구나. 그래서 린드버그에게 얘기를 했습니다. “당신이 영국에 도착할 때에 우리 회사의 담배를 손에 들고 있어도 좋고, 입에 물고 있어도 좋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담배 든 사진을 한 장만 찍으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5만 불을 주겠습니다.” 요즘 말로 CF가 되어 한 장 찍자는 거였습니다. 이런 횡재가 어디 있습니까? 조건이 얼마나 좋습니까? 손에 담배를 들고만 있어도 5만 불을 주겠다니 아주 파격적이잖아요. 요즘도 5만 불이면 많은 돈인데, 웬만한 사람 1년 연봉입니다. 1920년대 말의 5만 불은 엄청나게 큰돈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다 듣고 있던 린드버그가 말을 합니다. “사장님, 저를 그렇게까지 생각해 주셔서 감사하긴 합니다. 그런데 저는 세례교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서 담배를 선전하는 것은 하지 못하겠습니다.”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요즘은 미국 사회가 많이 달라졌지만, 당시만 해도 미국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굉장히 경건했습니다. 일체 술 담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린드버그가 5만 불을 준다고 해도 예수 믿는 이유 때문에 거절한 것입니다.

 

이러한 소식이 그 다음날 신문에 보도가 되었습니다. “린드버그가 예수 믿기 때문에 5만 불짜리 담배 광고를 하지 않았다.” 미국에 있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는 감동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모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미국 전역에서 교인들이 모금한 돈이 10만 불이 됐습니다. 그 돈을 린드버그에게 전달을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세상과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다운 모습으로 삽시다. 정리합니다.

 

성도가 구별하여 드려야 할 것은. .성도는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마음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뜻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우리 모두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나실 인 정신으로 성도의 표식을 가지고 구별된 모습으로 살기를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