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는 성도로 살면 (눅17장11-19 )
감사하는 성도로 살면 (눅17장11-19 시50:22-23,)
미국에 존 자웨트라는 의사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식사기도를 드리고 음식을 먹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을 연구한 결과 기도하지 않고 먹는 사람보다 세 가지 특이한 물질이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첫 번째 물질은 연구자 본인도 완전히 규명할 수 없는 일종의 “신비한 백신”인데 그것은 모든 질병을 예방해 주는 효능이 있고 면역기능을 향상 시킨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항독소”라는 물질인데 이는 각종질병의 진행을 억제하고 병균침입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셋째는 “안티셉터”라는 물질인데 방부제의 구실을 하는 물질로, 이는 위장에서 음식물이 발효하거나 부패하는 것을 방지하거나 소화흡수를 돕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 연구결과에 의하면 감사함으로 기도하고 먹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건강하게 산다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4:4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했습니다. 감사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감사하는 삶을 통해 질병이 치료되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감사는 자신뿐 아니라 주변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힘이 있고, 나아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하는 일입니다. 오늘 추수 감사절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감사하는 성도로 살면”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감사하는 성도로 살면,
1.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합니다.
신약 본문에 보면 10명의 나병환자들이 믿음으로 예수께 찾아와서 병 고치는 은혜를 구했습니다. 당시 나병환자로 판명이 되면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야 하고, 마을을 떠나 나병환자들만이 있는 곳으로 가서 어렵고 힘겹게 살 수박에 없는 불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 중에 다행히 고침을 받게 되면 제사장에게 보여 다시 마을과 가정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확인을 받아야 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너희 몸을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라고 하시자 그들이 제사장을 찾아 가는 도중에 나병이 낳아 깨끗해 진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마침내 그 흉한 병으로부터 고침을 받은 것입니다.
10명의 나병환자들이 모두 기적으로 깨끗함을 받았고 고침을 받았고 은혜를 입고 응답을 받았습니다. 여기에 누구든지 믿음으로 예수께 가기만 하면 다 고침을 받고, 문제가 해결 받는다는 메시지가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믿음으로 예수께 가기만 하면 다 응답받는다는 약속도 들어있습니다. 이 믿음이 중요합니다. 그 믿음을 가지는 순간부터 기적이 싹이 트이기 시작합니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믿음은 전적인 신뢰감을 말하고 전폭적인 의지를 의미합니다.
오늘 우리들이 밤잠을 설치며 걱정들이 앞을 가리는 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들에게 이 믿음이 없는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삶이 매사가 불확실한 것입니다. 그런 자에게는 주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 대신 근심과 염려가 마음에서 떠나지 않게 됩니다. 상대방이 불확실하면 전적 신뢰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반대로 전적 믿음은 나병환자들이 고침 받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믿음이 중요합니다. 성도가 믿음으로 살면 어려움 가운데서도 근심과 염려를 이기고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오래 전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한 부자 장로님이 목사님을 찾아가 권면했습니다. “목사님, 우리 교회 여 집사님 한 분이 혼자 살면서 어린아이 다섯을 키우느라 무척 어렵게 삽니다. 남의 집 빨래를 하는 등 고생이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분이 주일날이 되면 반드시 5센트의 헌금을 합니다. 큰 액수는 아니지만 그 여 집사님에게는 적지 않은 액수입니다.” 목사님께 말을 꺼낸 이 장로님은 부유하게 사는 분이 어서 그 여 집사님의 몫까지 자기가 대신할 것이니 그 집사님을 불러서 헌금하지 말라고 얘기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장로님의 그 권면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그 집사님을 불러 “장로님께서 집사님이 생활하는 것이 너무 어려운 줄 알고 매주 헌금하는 것을 대신 내주겠다고 하니 다음 주일부터는 헌금을 안 하셔도 괜찮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이게 웬일입입니까? 목사님의 그 말을 들은 여 집사님은 앉은 자리에서 목을 놓아 우는 것이었습니다. “왜 우십니까?” “제가 비록 남의 집 빨래를 해가며 고생스럽게 살지만 하나님께 5센트씩 바칠 때에는 더할 수 없이 기쁘답니다. 그런데 그 기쁨을 왜 빼앗으려고 하십니까?” 이 말을 듣고 장로님도, 목사님도 회개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친다고 할 때에 믿음으로 바치는 일 자체가 엄청난 기쁨입니다. 이것을 바침으로써 복을 받고 기적을 체험하게 되어서가 아닙니다. 믿음의 행위로 하는 예배나 봉사나 드림이나 헌신은 그 자체가 은혜요, 감사요, 기쁨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감사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합니다. 10명 중 주님께 다시 와 감사한 사람은 한 사람 박에는 없었습니다. 눅17:15-16에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했습니다.
예수님은 감사하는 그를 보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17:17-1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감사할 줄 모르는 아홉은 주님의 마음을 섭섭하게 했지만, 감사를 할 줄 아는 사마리아 사람은 주님을 기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시50:23에도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했습니다. 우리 모두 범사에 감사 하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하는 성도되시길 소망합니다.
2.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합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 곁에 있으면 마음이 우울해 집니다. 불평과 원망을 배우게 되고, 그 말을 듣는 자들이 시험에 들게 되고, 믿음이 사라지고, 같이 불행해 지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믿는 사람이라 해도 실상은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들입니다.
시50:22 에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렸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관심과 사랑과 믿음을 잊어버렸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다른 관심거리가 새로 생겼기 때문이며, 다른 사랑의 대상이 생겼기 때문이며 다른 신뢰의 대상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런 신자는 사실상 믿음의 사람이 아니라 우상 숭배자입니다.
시인이 말하는 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들은 하나님보다는 다른 것들에 관심을 빼앗겨 버린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다음과 같은 현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첫째, 영적 탈진 상태가 일어납니다. 영적으로 힘이 빠지고 쇠약 증세가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 보다 다른 것을 사랑하다보니 성경 말씀과 기도와 찬송이 멀어지고 교회도 점점 멀어지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둘째, 감사가 없어집니다. 대신 원망과 불평과 우울과 짜증스런 사람의 증상이 나타납니다.
셋째, 모든 것이 파괴됩니다.
시50:22 절 하반 절에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고 표현했습니다. 찢는다는 것은 분열과 파괴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인격도 정신도 영혼도 산산조각으로 찢어지는 분열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찢으면 건질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구제불능 상태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매사에 감사하는 사람 곁에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한 마음이 생깁니다. 다른 사람에게 용기를 주고 힘을 줍니다.
믿음의 사람 욥은 갑자기 큰 시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스바 사람들이 습격해 와서 종들을 죽이고 재산을 약탈해 갔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피해를 입기도 했습니다. 거기다 맏아들의 집에 모여 잔치하며 음식을 먹던 열 자녀가 강한 바람에 집이 무너져 죽게 되었다는 비보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욥1:21-22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의 이러한 신앙은 고난당하는 많은 성도들에게 큰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오직 하나님만 신뢰하고 의지하며 감사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욥은 환란의 터널을 빠져 나왔을 때 정금 같은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고,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이제는 눈으로 뵙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나병에서 고침을 받은 사실이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수십 년간 옥중 생활하다가 풀려난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병자들이 고침받자 마자 각자 집으로 고향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때로 중병을 앓은 것도 은혜일 수 있습니다. 그 중병에서 고침을 받으면 감사의 진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인생의 가치를 발견하고 가족과 이웃의 소중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중병을 앓고 있는 당시는 고난이고 아픔이 있었지만 그 후 고침 받게 되면 그 일로 진정한 감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인생의 깊이를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경험으로 고통당하는 사람의 심정을 이해하고 진정으로 위로해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고로 중병이나 고난은 믿음 안에서는 은혜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중에서도 감사하는 자들이 참 믿음의 사람입니다.
데이비스(Davis)는 루이지애나주의 카르빌에 위치한 국립나병원에 입원한 나환자이면서 흑인 설교자였습니다. 그는 다리를 절고 눈이 멀었으며 외모도 보기에 흉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쾌활했으며, 늘 감사할 줄 알았습니다. 늘 감사의 노래를 불러 동료 환자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하는 기도의 대부분은 감사의 기도였습니다. 그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은 구형 라디오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손을 쓸 수 없어서 입으로 켰다 껐다 하면서도 감사하였습니다.
찬송가 305장을 부릅니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잘나서 된 것도 우연도 아니요, 내 능력도 아니며 오직 주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믿는 사람은 항상 감사하며 살 수 있습니다. 감사는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발견하고 찾는 사람이 감사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 원망과 불평거리를 찾아 살면서 나와 남을 불행하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언제 어느 때나 감사할 이유를 발견하고 찾아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주고, 행복을 주는 믿음의 사람으로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3.자신에게 유익이 되고 복이 됩니다.
시50:23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했습니다. 감사의 행위를 옳게 한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본문에서 병 고침 받은 것에 대한 감사를 드리러 온 자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눅17: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감사하는 그 한사람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 선물은 그의 병도 고쳐주셨지만 구원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왜 이 한사람에게만 구원을 선물로 주셨는가 하면 이 사마리아 사람이 예수께서 메시야인줄 알고 찾아와 영광 돌리고 감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말로만 듣던 예수가 오늘 보니까 진정 당신은 메시야이군요.”하고 고백이 담긴 감사였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맛보게 되고, 두 눈으로 똑똑하게 하나님의 구원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의 강력한 손에서, 홍해에서, 강대국 앗수르와의 전투에서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로 구원의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은 죄와 사단과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 되어 하나님 나라의 영생에 참여하는 구원에 참예하는 자들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는 자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십니다.
아동문학가 방정환(方定煥)선생의 집에 강도가 들어와 돈을 내놓으라고 합니다. 그 때 선생은 순순히 390환을 내주면서 "여보시오. 돈을 가져가면 고맙다고 하고 가져가야 하지 않소?" 라고 말했습니다. 강도는 어이없어 하며 "그래, 고맙소!" 하고는 가버렸습니다. 얼마 안 되어 그 강도가 붙들려왔습니다. 경찰은 "이 사람이 방 선생님의 돈을 빼앗았다지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 때 방정환 선생은 오히려 깜짝 놀라며, "아니요. 나는 이 사람에게 돈을 뺏긴 일이 없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요? 이 사람은 당신에게 돈을 390환이나 빼앗았다고 하던데요?" 그러자 방 선생은 강도를 향하여, "아니 이 사람아! 내가 돈을 주니까 고맙다고 하지 않았소? 빼앗았다면 고맙다고 했을 리가 있겠소?" 라고 말했습니다. 경찰은 할 수없이 강도의 포박을 풀어주었습니다. 강도는 너무도 고맙고 감격하여 그 후 방정환 선생 댁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얼떨결에 시켜서 한 감사가 인생을 바꿔 놓는 큰 사건이 될 줄은 방 선생뿐만 아니라 강도 자신도 몰랐던 것입니다.
죄가 있는 곳에는 감사가 없습니다. 감사가 없는 곳에는 폭력과 착취, 불만과 원망이 있습니다. 감사하는 말을 하는 사람은 그 행위도 옳은 사람으로 변화가 됩니다. 감사는 사람과 환경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에 주님의 은혜가 더욱 풍성히 임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 합니다. 감사하는 성도로 살면,
1.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합니다.
2.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합니다.
3.자신에게 유익이 되고 복이 됩니다.
우리 모두 범사에 감사하는 믿음으로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