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두 길 마7장13-14 렘17:5-8,
인생의 두 길 마7장13-14 렘17:5-8,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알리 카페드라는 농사꾼이 있었습니다. 목축과 농사를 지으며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이아몬드 광산 붐이 일어나 온 나라가 들뜨게 되었습니다. 농사꾼 알리는 갑자기 자신이 가난한다는 생각이 들어 다이아몬드를 찾아 부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한번 마음이 그렇게 들뜨자 걷잡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는 농장을 팔아 자금을 마련하여서는 다이아몬드 광산을 찾는 일에 나섰습니다. 나라 곳곳을 헤매었으나 다이아몬드를 찾는 데에 실패하였습니다. 집을 떠난 지 10년 후 절망 끝에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알리로부터 농장을 사들인 러셀이라는 이웃 농사꾼이 농장 냇가에서 검은 빛 나는 돌을 발견하고는 가정 방문을 온 목사께 보였습니다. 목사가 그 돌을 한참이나 살피다가는 깨뜨려 보았습니다. 갈라진 사이로 빛나는 다이아몬드가 나왔습니다. 그 돌을 주운 냇가로 가본 그들은 어느 곳이든 파기만 하여도 다이아몬드가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곳이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이름난 다이아몬드 광산으로 유명한 ‘골곤다’ 광산입니다. 이란의 전 팔레비 왕비가 쓴 왕관에 달린 국보 1호의 다이아몬드가 그 광산에서 나왔고 영국 왕실이 보유하고 있는 다이아몬드 역시 그 광산에서 나왔습니다. 보석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죽은 알리 카페드의 농장 뒤뜰에 있었듯이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교회를 세우시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교회로 불러내신 이유는 이곳이 바로 보석이 묻힌 광산이기에 이곳에 두셨습니다. 성도는 교회에서 믿음생활 하다 보면 세상에 어떤 보석 보다 더 귀하고 소중한 예수 그리스도라는 보화, 천국의 보화를 발견하는 은총과 기쁨을 맛보게 하시려고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성도들이 전도하고, 전도 초청 잔치를 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함께 누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인생의 두 길”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 한 길은 생명의 길이요, 다른 한 길은 멸망의 길입니다.
◎생명의 길이 있습니다.
1.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과 사랑의 길입니다.
구약 본문 렘17:7-8에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했습니다.
나무가 살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뿌리를 내리되 깊고 넓게 내려야 합니다. 뿌리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더위가 오고 가무는 해”에도 견디며 결실할 수 있기 위해서입니다. 즉, 환난과 시련, 고통의 시기를 견딜 뿐만 아니라, 그런 때에도 결실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가뭄의 때, 모든 자원이 부족하고 삶이 메말라버리는 때에는 모든 것이 흔들립니다. 정서적으로 메마르고, 친구나 건강을 잃고, 재정적인 어려움이 오는 때, 바로 그 때가 더위의 때이며 가뭄의 때입니다. 이러한 때에는 뿌리가 깊어야 견딜 수 있습니다. 사막에서 자라는 ‘사구아로’라는 선인장은 무려 130도나 되는 더운 날씨 속에서도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이 선인장은 사방으로 15-20M나 되는 뿌리를 뻗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우리의 신앙의 뿌리가 깊이 내릴 때 욥처럼 어떠한 시련이 와도 믿음으로, 주님의 도우시는 은혜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의 동욱이란 아이가 쓴 예수님께 보내는 편지의 내용이 마음에 감동이 되어 여러분에게 소개를 하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예수님, 안녕하세요? 저는 구로동에서 사는 동욱이에요. 구로 초등학교 3학년이고요 우리는 벌집에 삽니다. 예수님! 벌집이 무엇인지 아시지요? 한 울타리에 55가구가 사는데요, 방벽에 1, 2, 3, 4 ..... 이렇게 번호가 쓰여 있습니다. 우리 집은 32번이에요 화장실은 동네의 공중변소를 쓰는데요. 아침에는 줄을 길게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해요 줄을 설 때는 21번에 사는 순희 보기가 부끄러워서 참았다가 학교 화장실에 가기도 합니다.
우리 식구는 저, 할머니, 엄마, 동생 용숙이랑 네 식구 살아요. 우리 방은 할머님 말씀대로 라면박스 만해서 네 식구가 다 같이 잘 수 없어요. 그래서 구로2동 술집에 나가서 일하시는 엄마는 술집에서 주무시고 새벽에 오시지요 할머니는 한 달에 두 번 그것도 운이 좋아야 취로사업장에 가서 돈을 버시구요. 아빠는 청송 감호소에 계시는데 엄마는 우리보고 아빠가 죽었다고 말하라고 합니다.
예수님, 우리는 참 가난합니다. 그래서 동회에서 구호양식을 주는데도 도시락을 못 싸 가는 날이 더 많습니다. 엄마는 술을 많이 먹어서인지 간이 나쁘다는 데도 매일 술이 취해서 어린애 마냥 엉엉 우시길 잘하시고 그리고 "이 애물들아 왜 태어났니 같이 죽어 버리자" 고 하실 때가 많아요. 지난 4월 부활절 날 제가 엄마 생각을 하고 회개하고 우신 것 예수님은 아시지요? 저는 예수님이 제 죄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말을 정말로 이해하지 못했거든요. 즉 저는 죄가 통 없는 사람인줄 알았단 말이에요. 근데 그날은 제가 죄인인걸 알았거든요 친구들이 우리 엄마보고 "작부" 라고 하는 게 죽기보다 싫었고요 매일 술 먹고 술주정하면서 같이 죽자고 하는 엄마가 미운 적이 참 많았거든요. 부활절 날 엄마 미워한 것 용서해주세요 하고 예수님께 기도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면서 "동욱아, 내가 너를 용서한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 저는 그만 와락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어요. 그날 교회에서 찐 계란 두개를 부활절 선물로 주기에 집에 갖고 와서 할머니와 어머니께 드리면서 생전처음으로 전도를 했어요.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 다고요. 몸이 아파 누워 계시던 어머니가 화난 목소리로 흥! 구원만 받아서 사냐? 하시면서 집주인이 전세금 50만원에 월세 3만원을 올려 내라는데 9원만 말고 50만원 주면 예수를 믿지 말래도 믿겠다고 하셨어요. 저는 엄마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게 신바람이 나서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기도드린 것 예수님 아시지요? 학교 갔다 집에 올 때도 몰래 교회에 들어가서 기도했잖아요. 근데 마침 어린이날 기념 글짓기 대회가 덕수궁에서 있다면서 담임선생님께서 저를 뽑아 보내주셨어요.
저는 청송에 가 계시는 아버지와 서초동에서 꽃가게를 하면서 온 가족이 행복하게 살던 때를 그리워하면서 글을 썼어요. 청송에 계시는 아버지도 어린이날에는 그때를 분명히 생각하실 테니 그날만은 엄마가 술 취하지 말고 울지도 말고 그때만 생각해 주신다면 5월 달은 진짜 내 세상이 될 것 같다고 썼지요.
예수님, 제가 그때 일등상 타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아시지요? 5월 5일 엄마는 너무 아파서 술도 못 드시고 울지도 못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날 뜻밖에 손님이 찾아오셨어요. 글짓기 대회 날 심사위원장을 맡으셨던 동화작가 할아버지께서 물어, 물어 우리 집에 찾아오신 거예요 대접할게 없다고 할머니는 동네 구멍가게에 급히 내려가셔서 사이다 한 병을 사오셨지요. 동화작가 할아버지께서는 엄마에게 똑똑한 아들을 두셨으니 힘을 내라고 위로해 주셨어요. 엄마는 줄줄 눈물만 흘리시면서 엄마 일 나가시는 술집에 내려가 약주라도 한잔 대접하시겠다고 하셨어요. 동화작가 할아버지는 대접은 이다음에 받겠다고 하시면서 할아버지께서 지으신 동화책 5권을 놓고 가셨어요. 밤늦게까지 동화책을 재미있게 읽던 저는 그만 깜짝 놀랐어요. 동화책 갈피에서 흰 봉투가 하나 뚝 떨어지는 게 아니겠어요. 펴보니 저는 생전 처음 보는 수표였어요. 엄마에게 보여 드렸더니 엄마는 "세상에 이럴 수가" 하시면서 제 어깨를 꽉 잡으시면서 "고마우신 분이시다 세상에 아직도 이런 분이 계시는 구나" 하셨어요. 저는 마음속으로만 할아버지께서 가지고 오셨지만 "예수님이 주신 거예요." 하고 말했는데 엄마도 그런 내 마음을 알아 차리셨는지 "동욱아, 예수님이 구원만 주시는 것이 아니고 50만원도 주셨구나!" 하시면서 울음을 터트리셨어요. 할머니도 울고 저도 왠지 눈물이 났어요. 동생 용숙이도 괜히 따라 울면서 "오빠 그럼 우리 안 쫓겨나고 여기서 계속 사는 거야?" 했습니다.
예수님! 너무나 신기한 일이 주일날에 또 벌어졌지요. 엄마가 주일날 교회에 가시겠다고 화장을 엷게 하시고 나서신 것이에요 대 예배에 가셔서 얼마나 우셨는지 두 눈이 솔방울 만해 가지고 집에 오셨지요 저는 엄마가 우셨기에 또 같이 죽자고 하시는 게 아닐까 하고 덜컥 겁이 났는데 "동욱아, 얼른 그 할아버지한테 편지 써라 엄마가 안 죽고 살아서 전세금 꼭 갚아드리겠다고 응? 난 이제 못 죽는다. 예수님이 도와주실 것이거든" 하셨어요. 저는 너무 기뻐서 "야호!" 하고 소리를 지를 뻔 했어요. 고마우신 예수님! 참 좋으신 예수님 감사합니다. 동화작가 할아버지도 건강하게 오래 살아 계시도록 예수님께서 꼭 돌봐주세요 제가 어른이 되어서 그 돈을 갚아 드릴 때까지요 이것만은 꼭 약속해 주세요. 예수님! 좋으신 예수님, 이 세상 최고의 예수님을 동욱이가 찬양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동욱이 올림. 이 어린 동욱이는 순진하게 예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였기 때문에 주님께서 그의 믿음을 보고 역사를 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이 주님께 깊이 뿌리를 내리는 복 된 신앙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좁은 문, 좁은 길을 가는 의로운 길입니다.
신약 본문 마7:13-14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했습니다.
좁은 길은 주님 가신 길을 따라가는 길이기 때문에 고난이 동반됩니다. 생명의 길은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며 의에 주리고 목마르며 긍휼히 여기며 마음이 청결한 자가 갈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문으로 들어가기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진정으로 이 길을 사모하는 마음이 없이는 생명의 길을 걸어갈 수가 없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간 길은 좁은 길입니다. 찾는 사람이 적습니다. 생명과 축복을 향하여 달려가는 사람이 적습니다. 그 이유는 포기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옛사람의 성품과 옛날 좋아했던 것과 풍습도 다 포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속주의 세상 풍습에 따라가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많은 욕심꾸러미를 둘러맨 체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옳은 길을 가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길을 내가 갈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이며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하늘나라 가는 길은 좁고 험한 길입니다. 그러나 이 길은 기필코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렵고 힘들어도 반드시 꼭 가야 할 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날마다 좇아가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6장 24절에서 우리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좁은 길은 주님 가신 그 길을 따라가는 길입니다. 왜 우리가 주님 가신 길을 가야 할까요?
3.그 길은 영생에 이르는 복 된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길의 결국은 하나님 나라요, 영생입니다. 그러기에 힘들어도 반드시 가야 할 길입니다. 좁은 문, 좁은 길은 나그네로 잠깐 머무는 세상에서 고난의 길이지만 영원한 영광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이기에 믿음의 선배들은 수많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기쁨으로 걸어갔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주님이 주신 은총을 받았으면 그것으로 육의 욕망을 위해 살 것이 아니라 그 사랑, 그 은혜, 그 축복을 이웃과 함께 나누며 복의 근원으로 사는 사람이 참 복 있는 사람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산 마테오(San Mateo)란 작은 도시에 메리 세퍼드(Mary Shepherd)란 이름의 한 여인이 살았습니다. 그냥 평범한 가정주부였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1992년 12월 18일에 숨을 거두었을 때에 시 전체가 공휴일처럼 되었습니다. 장례식엔 구름떼 같은 인파가 모였습니다. 그 이유인즉 간단하였습니다. 그녀는 살아생전에 자기의 집에 이웃을 초청하여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는 초대되었던 사람들의 이름을 벽에 적어 두고는 날마다 한 사람 한 사람씩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그러기를 하루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한 가족 같은 연대감을 이루어 교제하였습니다. 그녀의 이런 삶이 시 전체에 향기를 발하게 되었습니다. 이웃에 대한 그녀의 따뜻한 마음씨와 끊이지 않는 관심이 자석처럼 사람들을 끌어들였습니다. 그녀와 함께 공동체를 이룬 사람들은 한결같이 사랑의 넉넉함을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메리 세퍼드 부인에게서 사람답게 사는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사람 사는 일에 값진 것은 무슨 세상을 놀라게 할 큰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까운 이웃과 더불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나눌 때부터 사람답게 사는 일이 시작됨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 모두도 그 길 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멸망의 길이 있습니다.
1.하나님을 떠나 사는 길입니다.
생명의 근원, 복의 근원, 사랑의 근원에서 떠난 자들은 꺾인 꽃과 같이 살아 있는 듯 보이지만 영적인 생명이 없는 자들입니다. 구약 본문 렘17:5-6에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건조한 곳 건건 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하였습니다. 이는 강한 자를 의지하고 하나님을 떠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 결과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이 초라한 인생, 쓸모없는 인생, 실패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하였습니다(고전 16:22). 바울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과 저주를 대비시켜 주님께 대한 사랑이 필수적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편 저주에 해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노여움 아래 맡겨진 것을 의미합니다. 본 절에서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가르치는 바는 주님께 대한 사랑도 없이 자기 생각과 행동을 고집하는 사람들에게 주의 공의로운 심판이 임할 것임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불신앙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무엇보다 큰 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 가지기를 거부하며 살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내 마음대로 육의 욕심을 따라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길은,
2.넓은 문, 넓은 길로 가는 악인의 길입니다.
넓은 문은 누구나 쉽게 들어 갈 수 있는 문입니다. 욕심껏 짐을 가지고 가도 아무 제약 없이 통과할 수 있는 문입니다. 그 문으로 들어가면 넓은 길이 나옵니다. 넓은 길을 가려고 하는 사람은 노력하지 아니하고 쉽게 살려는 사람입니다. 땀 흘리지 않고, 애 쓰지 않고, 노력도 없이 소득을 많이 얻으려하고, 수고와 희생 없이 인생을 쉽게 살려는 사람입니다. 편하게 살려고 하며 많은 사람이 추구하고 많은 사람이 가는 쉬운 길입니다.
그리고 넓은 길은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사는 방종의 길입니다. 목적도 표준도 없이 누구의 제재도 없이 자기의 무한 자유대로 사는 길이 넓은 길입니다. 굴레를 벗어버린 망아지처럼 마음대로 뛰며, 무책임하게 살아가는 생활입니다. 세상에 두려운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소리도 들리지 아니하고 양심의 소리도 아랑곳하지 아니하며 진리의 소리에는 귀를 막고 사는 사람입니다.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마구잡이로 가는 인생길입니다. 방종과 방탕의 길입니다.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며 술과 도박과 폭력과 마약의 넓은 길로 가고 있습니다. 연예인들도 가고 청소년들도 가고 젊은 여성들도 넓은 길로 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멋지고 재미있고 행복한 길 같이 보이지만 실상은 절망과 불행에 빠지는 길입니다. 사람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황패하게 합니다. 눅 15장의 아버지 곁을 떠난 탕자의 이야기를 아실 것입니다. 아버지에게 자기의 몫을 달라고 하여 집을 떠납니다. 그 길은 넓은 길이었습니다. 얼마나 자유롭게 살아갑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 것, 누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것, 자기 맘대로 다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말로는 무엇입니까? 비참한 모습일 뿐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우리들을 향해서 세상을 본받지 말라,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세상에서 돌아서라고 분부하십니다. 육체의 정욕에서 돌이키라고 분부하십니다. 넓은 길에서 돌라서서 좁은 길로 걸어가라고 분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3.그 길은 멸망으로 이르는 저주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넓은 문으로 들어가고, 넓은 길로 갈 때는 참 좋은 것 같았는데, 그의 결국은 비참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과거 역사 가운데서 그들의 결국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창세기 6장에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짐승처럼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살 때 인생 지으셨음을 한탄하시고 홍수로 멸하셨습니다. 성적으로 타락한 소돔과 고모라를 불로 심판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 떠나 자행자지하며 사는 자들의 결국에는 무서운 진노와 형벌이 따르게 됨을 성경은 수없이 경고하고 있습니다.
가족 중 무당만 다섯이었던 충북 보은 출신 김상호 장로는 산신을 섬기다가 아랫마을 교회의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게 된 후 1년 동안에 여섯 명의 자녀를 잃게 되는 큰 시험을 당하고 욥처럼 파란 만장한 고난을 받으면서 많은 신앙 체험을 했습니다. 지옥의 유황 불 속에서 아버지를 만나는 체험의 이야기,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난 여섯 자녀에 대한 이야기, 기둥만 박혀 있는 하늘나라 자기 집 이야기, 매일 기도를 10 시간 하는 이야기, 논을 팔아 교회당 건축을 한 이야기, 천사장 미가엘을 만난 체험담 등을 담은 그분의 저서 “깡통을 차고 빌어먹어도 지옥은 가지 마라”는 책을 보고 어떤 스님은 책을 읽은 다음 날 승복을 벋고 개종하게 되었고, 어떤 목사는 20번이나 그 책을 읽고 자신의 신앙을 점검했고, 한 중학생은 이 책을 읽고 그렇게 끊기 힘든 술과 담배를 끊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사람들은 영적으로 무지하여 앞으로 닥칠 일도 모르고 희희낙락하며 삽니다. 그러다가 일식 간에 삶을 마치고 멸망과 고통에 처한 다음에야 탄식하지만 이미 기회는 다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인생을 속아 살아 온 성철 스님, 법정 스님을 통해서까지 지옥의 세계가 얼마나 끔찍한 세계인가를 간증하게 하셨지만 돌이키는 자가 적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는 뒤 늦게 땅을 치고 탄식하는 자가 없기를 소망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 합니다. 우리 인생에는 두 길이 있습니다. 그 한 길은 생명의 길이요, 다른 한 길은 멸망의 길입니다.
◎생명의 길이 있습니다.
1.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과 사랑의 길입니다.
2.좁은 문, 좁은 길을 가는 의로운 길입니다.
3.그 길은 영생에 이르는 복 된 길입니다.
◎멸망의 길이 있습니다.
1.하나님을 떠나 사는 길입니다.
2.넓은 문, 넓은 길로 가는 악인의 길입니다.
3.그 길은 멸망으로 이르는 저주의 길입니다.
우리 모두 생명의 길로 가다가 영원한 영광에 이르는 성도가 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