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디모데후서 4장 6-8절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디모데후서 4장 6-8절
천국을 향해 순례의 길을 가는 크리스챤의 이야기를 묘사한 ‘천로역정’이라는 기독교 고전이 있습니다. 17세기 영국의 순례 전도자로 유명했던 존 번연이, 정부의 허락 없이 집회를 열었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갇혀 12년의 금고생활을 할 때 쓴 책입니다. ‘천로역정’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천국을 향해 믿음의 길을 가는 성도의 여정을 ‘역경의 길’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많은 고난과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는 길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천로역정에 등장하는 주인공 ‘크리스챤’은 천국 문에 도달하기까지, 보통 사람의 힘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많은 유혹과 위험들을 만나게 됩니다. 때로는 유혹에 넘어지고, 큰 위험에 빠져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 일어설 수 없는 순간을 만나지만, 그 때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무사히 순례의 길을 마치고 마침내 신앙적 승리를 맛보게 된다는 이야깁니다.
오늘 본문에도 지난한 순례의 길을 마치고 이제 하나님 앞에 서려고 하는 한 신앙인의 고백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다” 고백합니다.
디모데 후서는 옥중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혀 이제 사형이 집행 될 날짜를 기다리며 썼던 몇 편의 편지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디모데서’입니다. 이 땅에서의 모든 사역을 마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에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유언과 같은 글을 남긴 것이 바로 디모데서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사도 바울이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또는 믿음의 사람으로서 자신이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평가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라는 승리의 고백을 남기고 있습니다.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는 고백을 남긴 것처럼, 사도 바울도 ‘승리의 고백’을 남기고 자신의 생을 마감한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성도들의 죽음을 ‘소천’이라고 부릅니다. 하늘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지금은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지만, 언젠가 주님이 부르시면 떠나야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종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도 종말이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라고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종말이라고 표현하지만, 성경에서는 두 가지 종류의 종말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죽어서 주님께로 가는 ‘개인적인 종말’이 있고, 주님이 우리에게로 찾아오시는 역사적인 종말이 있습니다. 요즘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개인적인 종말보다 역사적인 종말이 더 빨리 찾아올 것이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히 9:27)하셨습니다. 개인적인 종말이던, 역사적인 종말이던 종말의 순간이 오면 우리 모두는 만물의 창조자요 또 심판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종말을 준비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만날 준비가 되셨습니까?
이 시간 우리가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이 자리에 나와 있는데, 어느 목사님은 주일성수를 ‘종말을 연습하는 시간’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바쁘고 할 일이 많아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가야 하는 겁니다. 평소 주일성수하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연습을 해 두어야, 마지막 날에 주님이 부르실 때도 망설임 없이 떠날 수 있다는 겁니다.
누구에게나 종말의 순간은 찾아옵니다. 개인적인 종말이던 역사적인 종말이던 종말의 순간은 반드시 찾아옵니다. 반드시 되어 질 일이기에 반드시 준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마지막 종말의 순간에 우리도 예수님처럼, 사도 바울처럼 승리의 고백을 남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주시는 몇 가지 신앙적 교훈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선한 싸움을 싸웠다”했습니다(7).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영적싸움이 시작되는 겁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을 빠져나온 뒤 곧바로 바로 왕은 군사들을 이끌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려오기 위해 저들을 쫓아갔습니다. 하나님의 개입으로 저들을 홍해바다에 수장시킨 뒤,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된 자유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애굽을 빠져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지만 저들이 가나안 땅까지 도착하는 과정에서 많은 대적들과 전쟁을 치루어야 했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가나안 일곱 족속을 몰아내기 위해 또 다시 전쟁을 치루어야 했습니다. 신앙생활 자체가 영적전쟁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는 겁니다. 특별히 사도 바울처럼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려는 일꾼들에게는 영적 전쟁이 필연적인 것입니다. 잘 싸워야 합니다. 기왕 시작된 전쟁이라면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 영적 전쟁을 특별히 ‘선한 싸움’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왜 선한 싸움입니까?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땅을 빼앗고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벌이는 탐욕스런 전쟁이 아니라,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사단 마귀와 치루는 전쟁이기에 선한 싸움인 것입니다.
또 방법이 선해야 하기 때문에 선한 싸움인 것입니다. 아무리 목적이 좋아도 방법이 선하지 못하면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선한 방법을 써야 합니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교회 성장학에서는 교회를 성장시키는데 도움이 된다면 어떤 세상적인 방법을 쓰는 것도 무방하다는 주장을 합니다. 그래서 여기에 영향을 받은 많은 목회자들이 각종 이벤트와 마케팅 기법을 교회성장에 이용해 왔습니다. 설교를 할 때도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만 전했습니다. 그 결과 ‘성장’이 아니라 ‘세속화’라는 심각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겁니다. 목적도 방법도 모두가 선해야 한다는 겁니다. 선한 싸움 싸워야 합니다.
두 번째, 사도 바울은 “달려갈 길을 마쳤다”라고 말합니다(7).
사도 바울은 신앙생활을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경주와 같은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믿음의 경주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우리가 달려가야 할 신앙의 목표가 있으니, 경주자는 이 목표를 잊어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모세의 인도로 애굽땅을 빠져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저들이 달려가야 할 신앙의 목적지가 있었습니다. 가나안땅입니다. 이 가나안 땅을 바라보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앞만 보고 전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신앙의 목적지인 가나안 땅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저들이 떠나 왔던 애굽땅을 뒤돌아보았습니다. 애굽에서 살던 때가 더 좋았다고 불평했습니다. 이렇듯 신앙의 목표를 잃어버리고 방황하던 저들은 결국 가나안 땅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이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내가 가야 할 신앙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분명히 깨닫고 앞을 향해 전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신앙의 여정을 끝내게 될 것입니다.
또 달려갈 길을 마쳤다 했습니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끝은 더 중요한 것입니다. 믿음의 경주를 시작했으면 끝까지 마쳐야 합니다. 믿음의 경주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과 같은 것입니다. 마라톤 경주는 다른 경주들과는 달리, 등 수에 상관없이 42.195 키로미터 전코스를 완주한 사람에게는 모두 상을 줍니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완주했다는 자체가 이미 큰일을 해 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경주를 시작했으면 완주해야 합니다. 믿음의 길을 걷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이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끝까지 완주합시다.
세 번째, “믿음을 지켰다”했습니다.
믿음을 지켰다는 말에도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경기하는 자가 규칙을 지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아무리 잘 달려도 규칙을 어긴 사람에게는 상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가끔 경기에서 메달을 딴 선수가 후일에 금지된 약물을 복용한 사실이 밝혀져 메달을 박탈당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경기에서 1등을 했어도 규칙을 어긴 자에겐 상이 주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도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무리 믿음생활을 열심히 해도 말씀에서 벗어난 믿음은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습니다.
또한 믿음을 지켰다는 말에는 ‘신의를 지켰다’는 뜻이 있습니다.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주인이 종을 불러 자신의 재산과 가족을 맡깁니다. 종은 주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그럴 때 여행에서 돌아온 주인이 종에게 ‘믿음을 지켰다’고 칭찬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미쁘게 여기시고 맡기신 직분과 사명이 있습니다. 각자에게 맡겨주신 달란트가 있습니다. 이 달란트에 충성한 종들만이 주인이 오실 때 상급과 칭찬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