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공부 신명기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후 반드시 행해야 할 두 가지 의식 (27장)

nam씨 2015. 9. 18. 21:30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후 반드시 행해야 할 두 가지 의식 (27)

 

이 부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후 반드시 행해야 할 두 가지 의식 이 기록되어 있다. 첫째는 큰돌을 세우고 석회를 바른 후, 그 위에 율법을 기록하고, 그 곳에 하나님께 드릴 제단을 쌓을 것(1-8). 둘째는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 양편으로 갈라서서, 율법을 순종하는 자들에 대한 축복과, 율법을 불순종하는 자들에 대한 저주를 선포할 것(11-26). 모세가 이러한 의식을 시행토록 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백성들에게 율법에 대한 인상을 깊이 그리고 감동적으로 심어주어 그들로 하여금 율법을 영원토록 잊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며,

 

2) 율법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 여부가 삶과 죽음의 분기점이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고 율법만 그들의 삶의 기준으로 삼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1-1. 가나안 땅에서 먼저 할 일(1-8)

이스라엘 사회에서 장로 제도는 하나님의 뜻을 회중 전체에게 매우 신속하고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효과적인 통신 체계였다(12:21-28). 모세가 이 말을 할 때 이스라엘은 아직 모압 평지에 진을 치고 있었다(1:1, 5;34:1). 이스라엘이 출애굽 한 때는 B. C. 1446년 아빕월(종교력 제 1, 태양력 3-4)이다(13:4). 그리고 여호수아의 인도 하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너 최초로 가나안 땅에 들어간 때는 B. C. 1405년 아빕월(일명 니산월)이었다(4:19, 20). 따라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생활했던 기간은 약 40년 가량이라고 할 수 있다(14:33, 34). 한편 여기서 ''()'바로 그 날'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 '즈음', 연후'(2:4;3:1; 12:3) 등 보다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Keil, Pulpit Commentary).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돌들을 세우라고 하신 것은, 율법을 기록하기 위한 기념비를 세우라는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책이 없었던 고대 사회에서는 돌에다 기념비적인 사건이나 법을 기록하여 여러 지방에 세워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보게 하는 습관이 성행했었다(7:26; 8:29; 24:26,27; 삼상 7:12; 삼하 18:17). 그 대표적인 것으로 1902년 몰간(M.J. Morgan, 1857-1924, 프랑스 출신의 고고학자)이 수사(Susa)에서 발굴해 낸 함무라비 법전(Hammurabi's Code)이다. 팔레스틴에는 돌이 많았으므로, 그러한 돌 비를 세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석회를 바르는 것은 글자를 새기는 데 편리할 뿐 아니라, 새긴 글자가 선명하게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였다(Pulpit Commentary). 그러나 석회(시드)는 내구성(耐久性)이 강하지 못하므로 이것을 발라서 만든 돌 비는 후손을 위한 것이기보다, 당시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을 것으로 보인다(Keil, Lange). 본문에서 말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 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견해가 있다.

1) 15-26절에 언급된 축복과 저주의 말씀을 가리킨다(Josephus, Masius, Clericus).

2) 신명기 율법을 가리킨다(J. Gerhard, A. Osiander, Vater).

3) 모세 율법 전부를 가리킨다(Keil, W. L. lexader).

 

세 번째 견해를 주장하는 유대 랍비들은 모세 율법의 총 항목 수는 613개라고 하였는데, 그것을 많은 돌 비에 기록하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가나안 땅서 돌에다 석회를 바르고 하나님의 율법을 기록하는 의식은 가나안 땅에서도 하나님의 통치권이 임한다는 것을 포고하는 상징적 행위이다. 따라서 이 의식은 향후 가나안에서 펼쳐질 이스라엘의 역사는 율법 준수 여부에 따라 흥망 성쇠가 좌우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역할을 했다.

 

본문은 가나안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는 가나안 본토가 '풍요롭고 기름진 땅'이라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 표현이 단순한 수사학적 표현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여기 ''은 우유나 버터를 가리키는데, 이것은 소나 양 등 가축들에게서 실제로 많이 얻을 수 있는 것이었고, 또한 ''은 가나안의 토산품이 될 정도로 야산과 나무 그리고 꽃등에서 많이 채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14:8; 삼상 14:25; 대하 31:5). 그러나 이 말은 자연 적인 조건만 의미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은 일부 비옥한 지대를 제외하고는, 사실 물이 넉넉하지 못하고 기온 차가 심하며 곳곳에 불모지가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국 이 표현은 그 땅의 언약적 위치를 드러내는 말로서,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복스럽고 살기 좋은 땅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이 임하는 곳이야말로 진정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기 때문이다. 일찍이 B. C. 2,000년경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조상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셨다(12:7). 그런데 B. C. 1,400년경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완전 정복함으로써(12), 이 약속은 약 600년만에 그대로 성취되었다.

 

에발 산은 이스라엘이 저주를 선포하도록 되어 있는 산이었다(13). 율법을 기록할 돌 비와 하나님께 제사드릴 제단(5-6)을 에발 산에 세운 것은 아마도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으로 인하여 초래될 저주의 심각성을 일깨워 주며, 죄와 저주가 희생 제사로 말미암아 속함을 얻게 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Keil). 사마리아 사본(Samaritan Codex)은 여기 '에발 산''그리심 산'으로 대체시켜 놓고 있으나, 이는 사마리아인들이 자신들의 성산(聖山)'그리심 산'을 부각시킬 목적에서 자의로 변경시킨 것으로 보인다. 율법을 새긴 돌 비를 세우는 것을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인간을 찾아오시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면, 제단을 쌓는 것은 인간이 희생 제사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상징한다(Matthew Henry).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쌓으라'는 말은 외적인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기거나 신경을 쓰지 말고 '오직 신령과 진정으로' 온전한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철 연장은 사람의 피를 흘리는 데 사용될 수 있는 준()무기이다. 따라서 그 같은 부정한 도구로는 구원의 단이 될 여호와의 거룩한 제단을 만들 수 없다(20:25). 번제는 죄의 속죄 및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 유지와 그 분께 대한 온전한 헌신, 봉사를 상징하는 제사이다. 화목제는 하나님의 축복과 구원에 대하여 감사하며, 하나님과 인간 상호 화목과 친교를 간구 하는 제사이다. 광야 생활 동안 하나님께 범죄하고 불화 했던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입성한 후에 가장 먼저 번제로서 속죄와, 헌신, 봉사, 그리고 충성을 다짐했으며, 화목제를 통해 하나님과 불목 했던 관계가 회복되어 기쁨과 평화의 관계로 변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기쁨을 제사를 드려준 제사장들과 함께 같이 나누었다.

 

여기서 율법을 '명백히' 새기라고 했는데, 이는 '뚜렷하게 새기다'는 뜻의 '바아르''자세히'란 뜻의 '야타브'가 합쳐진 말로, '누구나 알아볼 수 있게 뚜렷하게 기록하라'는 강조적 의미가 들어 있다. 이처럼 율법을 기록하라는 말이 3절에 이어 재차 그리고 분명하게 언급되고 있는 것은 돌 비에 새겨진 율법을 백성들이 심비(心碑)에 새겨서 철저히 지켜야 할 의무가 있음을 말해준다(Hengstenbery). 이 명령은 후에 여호수아를 통해서 수행되었다(8: 30-31).

 

< 적 용 >

1.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중하게 생각하고 항상 지켜 행할 수 있도록 눈에 띄는 곳이나 가까운 곳에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말씀을 가까이 하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말해보자.

 

2.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 여부에 따라 성도들의 축복과 저주가 결정된다. 순종하여 축복을 받은 일과 불순종하여 징계를 받은 경험이 있으면 나누어 보자.

 

3. 하나님의 단은 외형적으로는 소박하고, 인공이 가미되지 않은 채로 만들어졌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있는 그대로 소박하게 드리기를 원하시며, 결코 인위적으로 꾸미거나, 화려하게 만든 외형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외형을 중요시 하는가? 아니면 중심을 중요시하는가?

 

 

1-2. 두 번째 할 일-축복과 저주의 선포-(9-26)

 

. 축복과 저주 선포의 규례(9-13)

1-8절까지의 지시는 '장로들'(9)이 이스라엘에게 전달하였으나, 이 지시는 '제사장들'이 맡았다. 왜냐하면 당시의 제사장들은 제사 의식을 집전할 뿐 아니라,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며 축복과 저주를 선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10:8; 21:5; 6:23-27). 그러므로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서 축복과 저주를 선포하는 일에는 제사장들이 동참하게 되었다. 그리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잠잠히 들으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잠잠히'에 해당하는 '사카트'는 특히 '주의를 기울이기 위하여 조용히 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스라엘은 새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겸손해지고, 그 말씀을 조용히 듣는 것이 필요했다. 우리도 새 일을 하기에 앞서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히 듣는 자세가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소유이자, 거룩한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행하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소유된 제사장 나라이므로 그 신분에 합당하게 생활해야 한다. 주님은 구원받은 자녀들이 주님의 백성답게 살기 원하신다. 여기에서 복종한다는 말(솨마)은 지식적으로 '알아듣다', '경청하다', '이해하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이다. 그러나 진정한 앎이란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므로, 그로부터 '순종하다'(30:2)란 뜻이 파생되었다. 진정한 믿음은 삶을 동반한다. '명령', '규례', '법도' 등과 같은 말은 두 단어 이상이 한 구절에 사용되어 뜻을 강조하고 있다(10:13; 26:5; 9:3; 대하 7:17; 7:10). 그러나 두 단어를 굳이 구분한다면, '명령'('차와')은 십계명과 같이 의무 이행이 강조되는 '핵심적인 지시 사항'을 의미하고(5:31), '규례'('호크')는 명령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정해 놓은 '법규'를 의미한다(4:1).

 

이 부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이른 후, 그곳 세겜 땅 북쪽에 있는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서 반드시 이행하여야 할 '축복과 저주의 의식'을 기록하고 있다. 이 의식은 이스라엘 12지파가 각기 6지파씩 양편 산에 갈라서서 축복과 저주를 각기 선포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8:30-35)에서 그대로 실행되었다.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요셉과 베냐민은 모두 야곱의 정부인(正婦人)인 레아와 라헬에게서 태어난 후손이다(29:31-30:24; 35:16-18). 그러나 그 중 레아의 막내 아들인 스불론의 지파와 서모(庶母) 빌하를 범하였던 장자 르우벤(35:22)의 지파는 여기서 제외되었다. 야곱의 정부인에게서 난 아들들이 이처럼 축복을 선포하는 일을 맡은 것에 대하여 카일(Keil)'적자(嫡子)가 서자(庶子)보다 신분이 높고, 축복이 저주보다 품격이 높은 만큼, 적자가 축복을 선포하는 일을 맡은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평하였다(Keil & Delitzsch, Vol. I-iii. p. 433). 그리심 산은 사마리아 성읍 부근에 위치한 오늘날의 '예벨 엣 투르'(Jebel et Tur)이다. 남북으로 에발 산과 마주보고 있는데, 특별히 그리심 산(Mt. Gerizim)이 축복을 선포하는 산으로 선택된 이유에 대하여서는 11:29 주석을 참조하라.

 

르우벤과 갓과 아셀과 스불론과 단과 납달리는 르우벤과 스불론 외에는 모두 야곱의 첩이었던 빌하와 실바의 후손이다(29:31-30:34). 르우벤과 스불론이 여기에 속하게 된 이유는 아마 르우벤은 서모 간통 사건으로 인한 장자권 박탈 때문이었을 것이고(35:22;49:4;대상 5:1), 스불론은 레아의 막내아들이었기 때문(35:23)이었을 것이다(Keil, Lange, Pulpit Commentary).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엄숙한 의식을 통해서 율법에 대한 규정을 그들의 동의에 의해 날인되도록 명령하고 있다. 여기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처럼 하나님 앞에 불러서 여기에 찬동하도록 하는 것은 나중에 쓸데없는 핑계를 전혀 내세우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과 율법 준수에 대한 새로운 각오와 다짐을 굳게 하시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 적 용 >

1.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른 일을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잠잠히 듣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한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

 

2. 하나님께서는 모든 백성이 참여하는 율법의 선포식을 통해 율법 준수에 대한 새로운 각오와 다짐을 하게 하셨으며, 말씀대로 사는 것만이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살길임을 깨닫게 하셨다.

 

3. 우리도 모든 일에 앞서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길만이 우리의 살길임을 인정하고, 생명을 다해 그 말씀을 준수할 것을 결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 축복과 저주 선포의 내용(14-26)

본문에는 모든 죄악의 목록들이 모두 등장하지 않으나, 이러한 11개의 목록들은 10계명 전체와 그리고 613조의 모든 율법들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15절은 하나님 경외에 대한 1-4 계명에 대한 언급이며, 16-25절의 말씀은 5-10계명에 대한 언급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계명을 언급한 후에 여기에서 언급하지 않은 다른 율법 조항도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함으로써, 모든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모독자들, 위증자들, 안식일 파기자들, 험담가들, 그리고 간통 자들 각각에 대한 특수한 저주가 따로 따로 나오지 않고 모두가 똑같이 한 저주로 선포되고 있는 것을 보아서 율법의 모든 계명 중에 하나라도 어기는 것은 같은 저주를 불러오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는 말하는 레위인은 레위 지파에 속한 모든 자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언약궤를 메고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의 중앙 부분에 서서 모세의 말을 전달받아 양편에 갈라 서 있는 백성들에게 큰소리로 외칠 '레위 제사장'을 가리킨다(Delitzsch, Lange, Alexander, Wycliffe) 혹자들은 에발 산과 그리심 산 사이에서 외치는 사람의 목소리가 양편 산 중턱에 운집해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잘 들릴 수 있었겠는가 라는 점에 의문을 표시한다. 그러나 성서 고고학자들에 의한 정밀 조사 결과, 양쪽 산의 음향 효과가 매우 훌륭하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또 여러 차례의 실험 결과, 여러 사람이 외칠 경우에 충분히 들려진다는 사실도 입증되었다.

 

장색은 각양 물건을 정교하게 만드는 기술자(craftsman)를 가리킨다. 당시 이들은 우상을 만들어 파는 일로 많은 이익을 보곤 하였다(19:24). 그리고 은밀히 세우는 자란 십계명 중 제 2계명(5:8-10;20:4-6)을 은밀히 범하는 자를 가리킨다. 그런데 여기서 '은밀히'에 해당하는 원어 '바사테르''은밀한 장소에'(KJV, in a secret place)로도 번역될 수 있는 단어이다. 그렇다면 '은밀한 장소'로 꼽을 만한 곳은 어디이겠는가? 물론 눈에 잘 안 띄는 골방이나 비밀 장소를 들 수도 있겠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은밀한 곳으로는 역시 사람의 마음속을 꼽아야 할 것이다. 실제로 그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보다 더 큰 비중으로 자기 마음속에 은밀하게 품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곧 우상 숭배이다. '아멘'(amen)이란 말은 본래 '확실하다', '신실하다'는 뜻의 '아만'에서 유래한 단어로 문장이나 대화의 끝에서 사용될 때' 과연 그렇습니다', '그렇게 이루어지기를 빕니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다음에 이어지는 것은 율법의 둘째 돌 판에 해당하는 것이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자기 부모에게 불효하는(impii)자들을 가리켜 저주받은 자들로 선언하고 있다. 경홀히 여긴다(칼라)는 말의 원 뜻은 '가볍다', 곧 상대방을 업신여기거나 비천히 여기는 것(12:9), 평가절하 하거나, 모독을 주는 것(16:14), 그리고 지독히 경멸하는 것 따위를 가리킨다. 그런데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부모를 이처럼 업신여기는 것은 곧 자신의 근본(根本)을 망각한 행동일 뿐 아니라, 급기야는 부모를 통해 그 생명을 부여하신 하나님을 경홀히 하는 행위이다(21:18).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6:1)고 권면하였다. 그리고 저주를 받을 것이라(아루르)는 말의 기본형은 '아라르''버림을 받다'란 뜻인데, 이는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서 범죄한다면, 버림을 받는 쪽은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 자신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Calvin).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는 일반적으로 사람의 눈을 피하는 도둑질과 간음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짐승, 장모, 계모, 또는 누이와 결합하는 죄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죄의 목록들은 인간들의 타락한 부패성으로 인하여 범하기 쉬운 것들이거나, 아니면 현재에 가나안에서 범해지고 있는 죄들로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특히 주의해야 할 것들이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모든 살인자를 다 열거하지 않고 뇌물을 받고 무고한 피를 흘린 자들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 청부 살인의 흉측한 맹약은 (인간의)법의 처벌을 받을 정도로 쉽게 발각되는 것이 아니며, 또한 반드시 처벌되어야만 하는 죄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지계표'란 땅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세운 돌이나 푯말을 뜻한다(31:51,52). 따라서 이러한 지계표를 마음대로 옮기거나 없애 버리는 것은 타인의 재산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 행위이다. 한편 성경 뿐 아니라, 고대 바빌로니아의 법도 지계표를 침해하는 행위를 큰 범법 행위로 규정하고 매우 엄격하게 다스렸다. 고대 근동에는 여러 가지 환경적 요인과 풍토(風土)로 인하여 의외로 소경이 많았다. 즉 고온 건조한 기후와 쉴 새 없이 이는 먼지, 그리고 비위생적인 생활 환경 및 가난으로 인한 영양 실조 등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쉽게 실명(失明)하였다. 그런데 예로부터 이러한 소경을 일부러 괴롭히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다. 따라서 본절이 의미하려는 바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아마도 이는 장애자의 약점을 이용하여 불의한 이()를 취하거나, 또는 그들을 괴롭히며 실족케 하는 일 따위를 엄격히 금하고 있는 조항임에는 틀림없다(19:14;15:1).

 

율법은 약자들의 약점을 악용하는 죄악에 대해서 혹독한 저주를 선언하고 있다(19:14). 객이나 고아나 과부는 가난하며 약한 자, 그리고 억눌리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을 대표하는 구약 시대의 3대 약자들이다(14:29;16:11, 14;24:21;26:12, 13). 송사를 억울케 하는 자는 저주를 받게될 것이 선포되었는데, 여기서 '억울케 하다'에 해당하는 '나타''비틀다', '굽게 하다', '벗어나게 하다'는 뜻으로, 정당한 판결을 내리지 아니하고 힘있는 자를 두호(斗護)하는 것을 가리킨다. 계모와 '구합하다'에 해당하는 '솨카브'는 성()관계를 갖기 위해 '잠자리를 같이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계모'에 해당하는 '에쉐트 아비''아버지의 여자'란 뜻이다. 따라서 비단 이는 계모 뿐 아니라 아버지의 첩과도 성행위를 하는 것을 포함한다. 아버지의 침소, 아버지의 여자를 넘보는 행위는 인간의 기본 윤리를 저버리는 패역(悖逆)이니, 저주를 면할 길 없다(22:30). 짐승과 교합하는 자는 동성애, 근친 상관 등과 더불어 변태적인 성행위 중의 하나인 수간(獸姦)을 행하는 자를 가리킨다. 수간자(獸姦者)는 근친 상간자 및 남색자(男色者)와 더불어 땅을 더럽히는 추악한 성범죄자로서, 이스라엘 사회에서 반드시 제거되어야 했다(22:19;20:15, 16). 누이는 자기와 동등한 위치에 있는 자이다. 따라서 그러한 누이를 범하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의 수치를 드러내는 짓이나 마찬가지 행위이므로 저주를 면할 길 없다. 성경은 자신의 장모와 성 관계를 갖는 파렴치한에 대하여서는 그들 모두를 반드시 화형(火刑)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과실치사(過失致死)가 아닌 한, 그 어떠한 살인 행위도 하나님 앞에 결코 정당화시킬 수 없다. 특히 암살(暗殺) 행위는 더욱 그러한데, 그 이유는 첫째로 상대방이 미처 방어 태세를 갖추기도 전에 기습하는 도발 행위이기 때문이며, 또한 죄를 은폐하려는 의도 하에서 저지르는 계획적 살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살인의 대가로 뇌물을 받는 행위는 곧 인간의 값어치를 추잡한 뇌물보다도 낮게 취급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비록 사람의 눈을 피해 그 같은 죄를 자행할 수 있을 지는 몰라도 결국 하나님의 공의의 눈은 피할 수 없기에 저주를 면할 길 없다.

 

누구든지 율법의 요구사항을 실천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게 될 것이다. 이 말은 여기에서 특별히 언급하지 아니한 다른 모든 율법의 조항들도 역시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모든 율법들은 하나님 앞에서 모두 귀중한 것들이며, 만일 이들 중에 어느 것 하나라도 버리거나 소홀히 여기는 자들은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라 일컬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이러한 원리 때문에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3:10). 제 아무리 완전한 사람이라도, 자신은 율법을 지키려고 백방으로 노력하겠지만, 이곳이나 저곳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자 가 된다"고 선언했다. 우리는 율법에 충실하여 그 계명을 지키려 할수록 더욱 더 자신의 나약함과 죄성을 느끼게 될 것이며, 결국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그들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총 없이는 구원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결국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 적 용 >

1.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계명들을 주의해서 지켜야 한다.

 

2. 범죄들 중에서 특히 우리의 환경에서 범하기 쉬운 죄들이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하여 특히 이러한 죄에 대하여 경계시키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동으로 지은 죄만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으로 지은 은밀한 범죄까지도 모두 찾아서 심판하신다.

 

3. 우리는 율법을 통해(행위)서가 아니라, 무조건적인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 선물을 받아들일 때에만 참 의와 자유를 누릴 수가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후 반드시 행해야 할 두 가지 의식 (27)

1. 가나안 땅에서 먼저 할 일(1-8)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돌들을 세우고 율법을 기록하라는 것이다.

2. 두 번째 할 일-축복과 저주의 선포-(9-26)

. 축복과 저주 선포의 규례(9-13)

1.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른 일을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잠잠히 듣기를 원하신다.

2. 하나님께서는 모든 백성이 참여하는 율법의 선포식을 통해 율법 준수에 대한 새로운 각오와 다짐을 하게 하셨으며, 말씀대로 사는 것만이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살길임을 깨닫게 하셨다.

 

. 축복과 저주 선포의 내용(14-26)

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계명들

2. 죄에 대하여 경계시키신다.

3. 우리는 율법을 통해(행위)서가 아니라, 무조건적인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 선물을 받아들일 때에만 참 의와 자유를 누릴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