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공부 신명기

2차 설교의 결론(신26장1-19)

nam씨 2015. 9. 11. 20:51

 

2차 설교의 결론(신261-19)

본문은 모세가 4장 이후에서부터 계속해왔던 두 번째 설교의 결론을 이루고 있는 부분이다. 이 장은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되어있다.

1) 가나안에 들어가서 토지의 첫 소산을 하나님께 봉헌할 것(1-11)-하나님 공경-

2) 3년마다 십일조를 이웃을 구제하는데 사용하라(12-15)-이웃 사랑-

3) 이 모든 규례와 법도를 지킬 것과 순종할 때의 축복(16-19)

 

 

  1. 토지의 첫 소산을 드리는 규례(1-11)

본문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첫 소산을 하나님께 드리는 아름다운 축제의 예식이 나타나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고있는 그 땅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이며, 또한 그 해에 추수한 소출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감사의 표시와, 이스라엘을 애굽의 학대와 압제로부터 구원해 주시고 아름다운 땅으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해 그 해에 처음 익은 열매를 하나님께 드렸다.

 

<하나님의 소유권에 대한 고백>(1-3)

이스라엘 사람들은 의미상 하나님의 소작인들이었다. 그 모든 땅과 그 산물들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땅의 사용을 허락 받은 사람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의 학대와 압제로부터 건져내 주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땅으로 인도해 들이셨으며, 그 땅을 기업으로 허락해 주셨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모세는 그 땅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셔서 그들의 기업이 되게 하신 땅이라는 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1,2).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재물의 주인이 하나님이신 것을 인정하게 하기 위해 그 땅에서 처음 익은 열매와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도록 지시하셨다. .

 

여기에서 '맏물'(레쉬트)이라고 한 것은 시간이나 장소, 서열 그 밖의 모든 분야에 있어서 '첫째' 또는 '시작'을 가리키는 말인데, 여기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수확한 최초의 첫 열매(first fruits),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을 의미한다(18:12). 그리고 이러한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님께 헌납한다는 것은 가나안 땅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 및 통치권과 토지 소산이 하나님의 힘에 의해 추수할 수 있게 된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고 광주리에 해당하는 '테네'는 본서에만 나오는 고대 광주리(4;28:5,17)로서, 버들과에 속하는 낙엽 관목을 꼬아 짠 듬성한 바구니를 가리킨다.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은 이스라엘의 유일 중앙 성소를 가리키는데(12:5),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한 곳을 지정하셔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 곳에서만 제사를 드리도록 규정하셨다. 이는 중앙 성소에서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으로 훈련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주신 종교와 규례와 법도를 준수케 하심으로써, 각 지방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이 이방의 우상을 섬기는 풍습에 물들지 않게 하고, 신앙 정신이 해이해 지거나, 개인주의적인 신앙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이러한 토지 소산의 맏물을 중앙성소로 가지고 가서, 그 날에 제사와 기타 직무를 맡아 수행하던 당직 제사장에게 드리도록 되어 있었다.(Keil, Pulpit). 그는 제사장에게 다음과 같이 고했다.

 

"내가 오늘날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고하나이다.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리라고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렀나이다"(3)

 

이 말은 앞에서 언급했던 것과 같이 그 땅의 소유권이 여호와께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하신 언약을 따라서 자신들이 이 땅에 있게 되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이 고백에는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한번 하신 언약은 반드시 이루시는 선하고 신실하신 분이심을 고백하는 것이며, 지금 자신들이 이 땅에 살게 된 것은 자신들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고 고백하는 자가 '나의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고, 당신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던 것은,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지 못하고, 반드시 중재자인 제사장을 통해서만 나아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첫 열매를 제사장에게로 가져가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 크신 은혜를 고백하였다.

 

< 예물을 단에 드림>(4-10())

이와 같이 고백하기를 마치게 되면, 당직 제사장은 바구니에 담아 가져온 첫 소산의 열매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서 취하여 여호와의 단 앞에 올려놓았다. 이는 하나님의 소작인으로서의 이스라엘 자손들의 소작료가 정당하게 하나님께 드려졌음을 나타내는 것이었으며,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또 다시 하나님께서 자신의 조상들을 연약한 가운데서 택해 주시고, 또한 애굽의 고통과 압제 아래서 자신들을 구원해 주셨음과, 그들을 현재의 아름다운 땅으로 인도하시고, 그 땅을 기업으로 주셨음을 인정하는 감사의 신앙 고백을 다음과 같이 하였다.

 

"내 조상은 유리 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소수의 사람을 거느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 거하여 필경은 거기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더니, 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게 하며 우리에게 중역을 시키므로,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하감하시고,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이 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 소산의 맏물을 가져 왔나이다."(5-10)

 

뒤이어 나오는 하반 절을 볼 때, 여기서 '내 조상'이란 이스라엘 12지파의 직접적인 조상인 야곱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그러나 아람(Aram)은 셈의 다섯 아들 중 한 사람(10:22)일 뿐, 야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야곱은 셈의 아들 중에서도 아르박삿의 후예이기 때문이다(11:10-26). 그런데도 야곱을 가리켜 '아람 사람'으로 부르고 있는 까닭은, 아마도 그가 아람 지방 곧 '밧단아람'에서 20년간이나 생활하였을 뿐 아니라, 그 곳에서 아람 사람 라반의 딸인 레아, 라헬과 결혼하여 자녀들을 낳아 가문을 형성했기 때문인 것 같다(28-31). 이밖에도 야곱의 어머니인 리브가 역시 밧단 아람 출신이란 점은 그 의미를 더해 준다(25:30).야곱의 집사람으로서 애굽에 이른 자는 모두 70명에 불과했었다(46:27). 그러나 그들이 모세의 인도 하에 애굽을 떠날 때에는 어린아이와 여자, 레위 지파를 빼고도 60만 명이 넘었다(12:37;1:46,47). 이스라엘이 애굽에 체류하는 400여 년 동안 유아 살해 등과 같은 각종 박해가 있었음을 감안한다면, 그 와중에서도 70명의 인구가 60만 명으로 불어났다는 것은 실로 큰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같은 열조들에게 약속한 자손 번성의 축복이 온전히 성취된 결과이다(12:2; 15:5; 22:17; 26:4; 28:14). 이처럼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수확한 첫 열매를 하나님께 바칠 때,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뼈저린 과거를 고백토록 한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인식시키기 위함이다.

 

그들은 애굽에서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받았다고 하였는데, 이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생활하는 동안 애굽인 들로부터 받은 갖가지 고난과 학대를 3중적으로 강조한 말이다. 그러나 이를 보다 세분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고통'에 해당하는 '오니'는 주로 정신적인 고통, 고뇌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영역본 KJV, RSV 등은 이를 'affliction'으로 번역하였다. 그리고 '신고'에 해당하는 '아말''심하게 일하다'는 말에서 파생된 단어로, 대개 혹독한 '육체적 노고'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압제'에 해당하는 '라하츠''누르다','강제하다'는 말에서 유래된 단어로, 인간의 자유로운 권리를 박탈하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이를 'oppression'으로 번역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돌아보셔서 애굽에서 건져내셨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 그리고 이적과 기사'로 그들을 구원해 내셨다. 그리고 '위엄'에 해당하는 '모라''두려운 것'또는 '공포'를 의미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렸던 10대 재앙을 의미한다. 이적과 기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연 법칙과 인간의 상식을 초월하시면서 까지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가리킨다(4:33,34).

 

가나안 땅의 토지 소산의 '맏물'을 여호와의 단에 바칠 때, 그 헌물과 더불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이 신앙고백(5-10, 내 조상은...가져왔나이다)을 하도록 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비록 그들이 허락하신 땅 가나안에서 기름진 열매를 풍성히 맛보며 평안하게 살아간다 할지라도, 결코 자신들의 과거 비참했던 처지와 또한 그 처지를 권고(眷顧)하여 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즉 출애굽의 감동을 생생히 재현시키며 계속 보존시켜 주기 위함이었다. 한편 이 신앙고백의 내용은

 

1) 과거 비참했던 애굽 생활에 대한 겸손한 회고(5-6),

2) 바로의 권세를 꺾으시고 이스라엘을 그 손에서 인도해 내신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한 찬양(7-8).

3)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9) 등이 담겨 있다.

 

우리도 이와같이 우리가 잘 될 때에 자만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옛적에 얼마나 보잘 것 없었는가를 기억하고, 그렇게 보잘 것 없던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신 것인가를 상기하며, 그것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는 일이 필요하다.

 

 

<하나님께 경배하고 가난한 자들과 함께 기뻐함>(10-11)

여기서 '여호와 앞'이란 구체적으로 제물을 놓는 제단 위를 가리킨다(4). 이러한 예물을 드리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주신 축복에 대한 감사의 고백을 마친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제 이러한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경배를 드렸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주신 축복을 인하여 그 소산물들을 가지고 당시에 기업이 없었던 레위인들과 또 그들 중에 거하며 가난하게 살아가는 이방인들을 함께 불러서 같이 잔치를 열어 그들과 함께 그 기쁨을 나누었다(11). 여기서 ''에 해당하는 '하토브'는 직역하면 '그 좋은 것들'(NIV,the good things)이란 뜻이다. 이는 구체적으로 기름진 땅 가나안에서 생산되는 오곡백과(五穀百果)를 가리킨다.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께 바쳐진 첫 열매들(4)은 레 2:1-3의 규정에 따라 소제물(素祭物)로 사용되지 않고, 레위인 및 객과 더불어 감사 잔치를 여는 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감사의 표시로 당신께 봉헌된 자기 백성의 소출이 모든 사람에게, 특히 가난한 이웃들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나눠 주는 용도로 사용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날 교회 헌금 역시 가난한 형제들을 위한 구제사업이나 복지사업에 중점적으로 사용되어야 마땅함을 교훈 받을 수 있다(Matthew Henry).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추수하였을 때에 하나님을 경배하며 또 이웃과 함께 나누게 하심으로서, 하늘로부터 오는 기쁨이 절정에 달하게 하셨다. 우리는 이러한 원리로부터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의 정신이 구체적으로 실천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적 용 >

1. 우리는 우리의 모든 소산과 수입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고백하며 청지기의 정신으로 살아가야 한다.

2. 우리는 우리가 잘 되었을 때에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은혜를 잊게되는 일이 없도록, 우리가 연약할 때에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돌아보고, 그 은혜를 하나님 앞에 고백하는 일이 필요하다.

3.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기 위하여 첫 열매와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린다.

4. 우리의 첫 예물로 하나님께 드려진 것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과 주위의 가난한 이웃들을 기쁘게 하는데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2. 제 삼 십일조 규례(12-15)

 

<3의 십일조 규례>-구제의 십일조-(12-)

이스라엘은 한 해 총수입 중, 1/10'1의 십일조'로 레위인들의 생활비를 위해 내야 했으며, 그 나머지 9/10에서 다시금 1/10'2의 십일조'로 구별하여 축제와 절기 때에 사용하였다. 그러나 안식년을 기준으로 하여 매 3년째인, 3년과 제 6년에는 '2의 십일조'를 중앙 성소로 보내지 않고, 자기의 성에 사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들에게 주도록 되어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3의 십일조'로 이스라엘의 예배 생활을 돕는 레위인들을 공궤(供饋)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왜냐하면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12지파 중 기업이나 분깃이 없는 자들로, 오직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내는 십일조(十一條,tithe)에 의지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객과 고아와 과부'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소외된 이른바 이스라엘의 3대 약자 계층으로서 하나님께서 객과 고아 과부 역시 돕도록 명령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게르)은 귀화한 이방인을 가리킨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스라엘의 일원으로 인정은 받았어도 떳떳하게 기업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곤궁하고 빈한한 자의 위치에 머물렀다. '고아와 과부'(야툼 웨 알마나)는 뒤에서 그들을 돌보아 주는 자들이 없는 약자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고아의 아버지로, 과부의 재판장으로 자처하시고 그들을 돌보신다(68:5).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그러한 불우 이웃들을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고후 9:8,9;1:27).

 

<정당한 십일조 이행에 대한 양심선언>(13-14)

이스라엘의 십일조는 문서에 적거나 고지서에 따라서 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자발적으로 드리는 것인 만큼,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이 드린 그 예물이 조금도 잘못됨이 없는 정당한 것임을 하나님 앞에서 먼저 고백해야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십일조를 거짓으로 드리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서 양심 선언을 하게 하셨으며,(13-14) 축복을 간구 하게 하셨다. 유대 랍비들에 의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할 때(5-10)에는 그분의 영광을 기리기 위하여 큰 소리로 고하여야 했지만, 자신의 떳떳함을 밝힐 때(13,14)에는 개인의 공덕이 강조되지 아니 하도록 낮은 음성으로 고하도록 했다고 한다(13). 여기서 '범하다'에 해당하는 '아바르'는 단순히 법률 따위를 '어기다'는 뜻 뿐 아니라, 정도를 넘어서서 '지나쳐 달리다'란 뜻도 있다. 이는 곧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과도하게 만용을 부리는 것도 역시 잘못임을 깨우쳐 준다.

 

그들은 먼저 그 십일조의 양식을 애곡 하는 날에 먹지 아니하였음을 고백하였는데, 이 말이스라엘 자손들은 이 고백을 한 뒤에 자신들이 드리는 십일조의 제물이 조금도 사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거나, 부정한 것이 아니며, 잘못 사용됨이 없이 '온전하게 드리는 십일조'임을 하나님 앞에서 고백해야 했다.은 십일조를 결코 사적(私的)인 일에 사용하지 않았음을 뜻한다. 여기서 '애곡 하는 날'이란 초상(初喪) 기간을 가리키는데, 히브리인들은 대개 7일 정도의 장례 기간을 가졌으며, 이 때에는 조문객들을 위해 많은 음식이 필요하였다. 따라서 이를 충당하기 위하여 행여 하나님께 구별해 놓은 십일조를 유용할 가능성이 있었는데, 이 고백은 이러한 때에도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는 건드리지 아니 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부정한 몸으로 십일조의 예물을 떼어두지 아니하였다는 것을 고백했는데, 이는 시체나 기타 이유로 의식상(儀式上) 몸이 부정해진 중에는 성물(聖物)을 하나님께 드리지 아니하였다는 뜻으로서(19:11-19), 그 까닭은 몸이 부정(不淨)한 상태에서 하나님께 바치는 성물에 가까이 하는 것은 율법으로 엄격히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22:3).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나 거룩한 목적을 위하여 구별된 예물들은 그 예물 자체가 성물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것을 드리는 사람은 가장 정결한 상태에서 예물을 드려야만 그 예물이 하나님께 '성물'로서 열납될 수 있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사적으로 유용 하는 것도 죄가 되지만, 그 마음에 죄악을 품고 드리는 것도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되는 것임을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드리는 예물도 거룩하고 온전해야 하며, 또한 그 예물을 드리는 사람의 마음과 인격이 먼저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세 번째로 그들은 자신들이 십일조를 죽은 자를 위하여 쓰지 아니하였다고 고백하였는데, 공동 번역은 "그것을 죽은 혼령에게 바친 일도 없습니다"로 번역하고 있다. 이는 곧 죽은 자(故人)의 기일(忌日)을 맞이하여 제사 음식을 장만하는 데 여호와께 구별된 십일조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고백을 통하여 예물을 드리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양심상 조금도 하나님 앞에서 거리낌이 없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명하신 대로 모든 것을 이행하였다는 것을 고백하였다. 만일 이러한 경우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거짓으로 고백할 경우도 생길 수 있었는데,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초대 교회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사단에게 유혹을 받아 성령을 속이며, 사도들을 속이다가 하나님께로부터 징계를 받아서 죽었던 것 같이 이러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판단해 주셨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예를 선지자 말라기의 글에서도 볼 수 있다. 선지자 말라기는 이러한 십일조와 관련하여 과부와 고아 및 나그네 등을 돌보지 않는 것은 곧 하나님의 소유를 도적질하는 행위라고 언급하고 있는데(3:5-10),이는 가난한 이웃에게 긍휼을 베푸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시는 십일조 정신이며(6:6), 형식적으로 바치는 십일조는 무의미함을 교훈해 준다.

 

<축복의 기원>(15-)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정당한 십일조 이행에 대하여 양심 선언을 한 후에,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모두 이행했으므로 이제 주님께서 거룩하신 처소인 하늘에서 그들을 보시고, 주의 백성인 이스라엘과 주께서 선택하여 주신 가나안 땅에 복을 주시기를 간구 하였다. 주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치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6:9)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다. 여기에서 사용된 '하감하다('솨카프')는 말은 7절의 '하감하다'(라아)와는 어감에 있어서 차이가 있는 말인데, '라아'는 의도적으로 '보다', '주시하다'는 뜻이지만, '솨카프'는 은밀하게 '지켜 보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계시사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은밀히 지켜보시고 그 행위대로 심판하실 분시다(6:3, 4).

 

< 적 용 >

1. 3 십일조 규례는 이웃 사랑의 원리를 구체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사례이다.

2. 하나님께서는 이웃의 구제를 위하여 구별한 예물도 '성물'로 간주하신다.

3.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적은 소자 하나에게 한 것을 자신에게 한 것처럼 간주하신다.

4. 부정하게 번 것은 구제에 사용될 수 없으며, 하나님의 것을 사적으로 횡령하면 안된다.

 

 

  3. 율법준수의 촉구(16-19)

이제 우리는 신명기의 핵심 내용이라고 할 수있는 모세의 두 번째 설교의 결론 부분에 이르렀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택하신 백성을 위하여 신적인 탁월한 법을 만들어 주셨으며, 이제 그것을 지켜 행하라고 명하고 계신다. 사람이 만든 법은 아무리 탁월하다고 해도 우리는 그에 대해 경의를 표하지 않는다. 그러나 창조주께서 친히 입안하신 율법은 귀중히 여겨져야 하며, 동시에 전심을 다해 지켜야 한다. 이 말씀을 지킴으로 이스라엘은 생명을 얻을 수 있으며,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본분을 지킬 수가 있다. 그러므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이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라고 명하였다. '마음과 성품을 다한다'는 것은 곧 인간의 전 인격과 모든 정성을 다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부분적인 헌신을 요구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우리의 전적인 헌신과 순종을 요구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고백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을 자신의 보배로운 백성이라고 부르셨다. '보배로운'에 해당하는 '세굴라''특별한 소유'를 의미한다(19:5). 오늘날 성도들도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특별히 구별해 놓으사, 그리스도의 피로 인()치신 특별한 소유이다(17:6-10).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규례와 법도와 명령을 지키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도 약속하신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든 민족들 위에 칭찬과 찬미 거리가 되게 하실 것이며, 높은 위치에 있게 해 주실 것이고, 그 영광을 아름답게 해 주실 것이다. 여기서 '칭찬'(테힐라)'찬미''찬송', '명예'()'높은 지위''명성'을 가리킨다. 그리고 '영광'(티프아라)'아름다움'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러한 어휘들은 본래 하나님께만 합당한 수식어이다. 그러나 만일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하기만 하면, 그분께서 이스라엘을 높이 드사 다른 어떤 나라보다 위대하게 만들고 찬송과 영광과 명예를 취하도록 허락하신다(13:11;33:9; 3:19,20). 그리고 성민(암 카도쉬), 즉 거룩한 백성은 '구별하다'(카도쉬)'백성'()이 합쳐진 말로서, '보배로운 백성'(18)과 같은 의미이다(19:5,6)

 

< 적 용 >

1.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언약으로 맺어진 관계였다. 그들은 여호와를 그들의 하나님이 되심을 고백하였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율법대로 살 것임을 맹세하였다. 하나님께서도 그들이 하나님의 보배로운 백성이며, 그 율법대로 살 수 있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약속대로 율법을 성실히 준수하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모든 민족 위에 높이 들어서 칭찬과, 명예와 영광을 얻게 하실 것이다.

 

2.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고백하였으며, 주님께서 주신 말씀대로 살 것을 고백하였다. 만일 우리도 주님께서 주신 말씀을 따라서 전심으로 주님을 따르기만 한다면 주님께서 우리를 성실히 대해 주시고 우리를 그분의 택하신 보배로운 왕 같은 제사장 백성이라고 부르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간구 하기만 하면 그 분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 수 있는 힘도 성령 안에서 공급해 주실 것이다.

 

 

 

1. 토지의 첫 소산을 드리는 규례(1-11)

<하나님의 소유권에 대한 고백>(1-3)

< 예물을 단에 드림>(4-10())

1) 과거 비참했던 애굽 생활에 대한 겸손한 회고(5-6),

2) 바로의 권세를 꺾으시고 이스라엘을 그 손에서 인도해 내신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한 찬양(7-8).

3)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9) 등이 담겨 있다.

<하나님께 경배하고 가난한 자들과 함께 기뻐함>(10-11)

 

2. 제 삼 십일조 규례(12-15)

3 십일조 규례는 이웃 사랑의 원리를 구체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사례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웃의 구제를 위하여 구별한 예물도 '성물'로 간주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적은 소자 하나에게 한 것을 자신에게 한 것처럼 간주하신다.

부정하게 번 것은 구제에 사용될 수 없으며, 하나님의 것을 사적으로 횡령하면 안된다.

3. 율법준수의 촉구(16-19)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언약으로 맺어진 관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