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계시록

일곱머리 열뿔짐승 5 (계 17:15-18)

nam씨 2025. 2. 21. 20:32
 

일곱머리 열뿔짐승 5 (계 17:15-18)

15.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 바 음녀가 앉아 있는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16. 네가 본 바 이 열 뿔과 짐승은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의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17. 이는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그들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그들의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라  18. 또 네가 본 그 여자는 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


이 시간에 계속하여 “일곱머리와 열뿔짐승”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과거에 교도소를 내 집처럼 드나들던 어느 전도사의 이야기입니다. 2년 형을 받고 나오던 날 가족들을 보는 순간 너무나 양심이 찔리고 괴로워 다시는 나쁜 짓 하지 않고 이런 곳에 오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자기의 눈 한쪽을 송곳으로 찔러버렸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다시 갇히는 신세가 됐습니다. 길을 걷고 있는 한 여자의 핸드백을 훔쳤던 것입니다. 그는 또 구속됐으며 그래서 전과 6범이라는 불명예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던 그 죄인이 마침내 새 사람이 됐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예배에 참석했다가 뜨거운 성령을 체험한 것입니다.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습니다.


그는 지금은 전도사가 되어 교도소를 찾아다니면서 간증을 하고 있는데 그는 말합니다. “인간의 몸에 붙은 악습관을 사람의 힘으로는 고칠 수 없어요. 성령의 은혜로만 고칠 수 있어요.” 그 말이 맞아요. 그리고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바가 그것입니다. 바로 성화의 진리입니다. 우리가 어떤 죄인일지라도 예수 믿고 성령 받으면 변하여 새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계속하여 자아란 무엇일까요?


8. 자아는 곧 세상의 거처입니다.


15절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 바 음녀가 앉아 있는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여기서 우리는 그 음녀가 앉은 그 물이 무엇인지 그 해석의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음녀가 앉아 있는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이것은 쓰임에 따라서 넓게는 전 세계 사람, 좁게는 우리 인격 전체, 그리고 오늘 말씀하고자 하는 자아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물만 쓰일 때는 세상 사랑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럼 성경에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 나타난 때가 언제입니까? 바벨탑을 쌓을 때입니다. 창11:7-8에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그 때 생겨난 것이 백성 무리 열국 방언들입니다. 그래서 서로 맞는 사람들 끼리 모여서 온 천하로 흩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타락한 백성이요, 하나님을 벗어나 자기 이름을 내려고 바벨탑을 쌓던 교만한 백성이요, 서로 생각이 다르고, 말이 다르고, 사상이 다른 주관과 개성, 분열과 다툼의 죄악된 우리 인간의 속성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그 물 위에 그 음녀가 앉았더라는 것은 세상은 바로 그런 자아를 그 거처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아가 없으면 세상도 없습니다. 말세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 타락했다는 것이지 물리적 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벨탑을 쌓던 그 교만한 마음을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나를 낮추면 세상도 더 이상 우리 속에 거하지 못합니다. 즉 교만한 자아 때문에 세상이 찾아오고, 죄악이 찾아오고, 절망이 찾아오고, 사탄이 찾아오고 기생합니다.


그래서 약4:6-10에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자아처리 잘하여 세상에게 거처를 제공하지 않는 성도 되시기 바랍니다.


9. 변화된 새 자아는 세속을 배척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16절 “네가 본 바 이 열 뿔과 짐승은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의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여기서부터 열 뿔과 짐승이 음녀를 배반하기 시작합니다. 더 이상 열 뿔 가진 짐승이 음녀를 등에 업지 않습니다.


그 뿐 아니라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며 자기의 뜻대로 할 마음을 받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여기 자기의 뜻은 하나님의 뜻대로 할 마음입니다. 즉 마음이 변화되면 더 이상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오히려 멀리하고 미워하고 부끄럽게 하고 말씀으로 되새기면서 성령의 불로 태우려고 한단 말입니다.


즉 벌거벗게 한다는 것은 수치를 뜻하고, 그 살을 먹음은 원수가 살을 먹으려고 달려들었다는 말씀처럼 극도의 원수지간을 나타나며, 불사름은 죄악의 잔재까지라도 청산하려는 의지입니다. 이것이 바로 변화된 자아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짐승 역시 영성을 입은 육신을 말합니다.


10. 자아를 내려놓으면 영과 육이 갈등하지 않습니다.


17절 “이는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그들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이렇게 자기의 뜻대로 할 마음을 주셨다는 것은 자아가 소원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고, 한 뜻을 이루게 하셨다는 것은 갈등이 없다는 것입니다.


영의 마음과 육신의 마음이 충돌한다면 아직 은혜를 크게 받지 못해서입니다. 그래서 갈5:17에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했습니다. 그래도 신자의 마음이기에 이런 전쟁터라도 됩니다. 그러나 은혜를 크게 받고 보면 영과 육이 하나 되어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마치 바벨론에 잡혀간 남북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의 은혜로 해방되어 서로 손을 잡고 본토로 돌아와 나라를 재건하고 땅을 다스림과 같이 성령으로 변화 받으면 갈등하지 않고 하나 되어 하나님께 순복합니다. 그러므로 더욱 더 말씀과 은혜의 광장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11. 자아를 다스릴 때 비로소 육체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다시 17절 “그들의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라.” 여기서 그들의 나라는  곧 그 짐승의 나라입니다. 그동안 우리를 다스렸던 자는 자아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범죄의 길로 끌고 갔습니다. 그러나 이제 새롭게 된 자아는 잘못된 길로가 아니라 우리 인격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순복하고 충성하도록 다스리더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롬12:1-2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살려고 하는 것이 변화된 새 자아입니다.

12. 자아처리가 완성되면 그것이 바로 성화입니다.


다시 17절 “그들의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라.”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기까지란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것이 성취할 때를 말합니다. 마치 요셉에게 꿈으로 약속하신 것이 온갖 연단을 통과한 후에 성취된 것과 같습니다.


시105:17-20에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석방함이여 뭇 백성의 통치자가 그를 자유롭게 하였도다.” 했습니다.


즉 우리에게 비전으로 보여주셨던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형상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과 연단을 통과하면서 자아처리가 이루어져 진정 내 뜻과 내 생각과 내 계획과 내 주관을 다 내려놓고 순복할 때 비로소 성취된다는 말입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다윗을 귀하게 쓰신 것은 자아처리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복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행13:22에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마음, 그것이 바로 자아처리요, 변화된 새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기까지란 궁극적으로는 재림이지만, 영적으로는 복음의 실재가 누려지는 은혜의 때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4) 했습니다. 그러므로 철저히 회개하고 순복함으로 은혜 받아 변화된 마음을 소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3. 그러나 어떤 일이 있어도 땅의 사람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18절 “또 네가 본 그 여자는 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 왜 불로 살랐다는 여자가 여기 또 나올까요? 그것은 먼저 경고의 의미입니다. 즉 바벨론 성과 같이 함락하기 어렵고 지배력이 강력한 세상이므로 언제 시험으로 다가올지 모르므로 자만하지 말고 근신하라는 경고입니다.


다음은 우리에게 승리의 힌트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즉 그 여자는 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지 하늘의 사람들을 다스리는 자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늘의 사람이 되면 더 이상 세상이 우리에게 다가올 수 없습니다. 즉 육신의 사람이 되지 말고 영의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이 땅의 왕들을 다스린다는 말에 담긴 의미가 이렇게 큽니다.


예수님께서는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막13:14) 역사 속에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에 대한 예언이지만 이 말씀은 지금도 우리에게 유효합니다. 우리 마음에 악이 주장하거든 내 자아가 살아서, 내가 교만해서, 내가 하나님을 멀리해서 그런 줄 알고 피할 곳은 우리 산성이신 하나님밖에는 없으니 하나님 앞에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과 육체와 자아가 아무리 강하고 괴물과 같아도 우리 하나님에게는 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다. 우리가 늘 말씀과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때 하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고 세상이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예수 잘 믿고 하나님 잘 경외하여 변화된 새 자아를 가지고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려드리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