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시편

기회를 붙잡는 신앙 시32:1-11, 눅16:19-31

nam씨 2025. 2. 21. 20:09

기회를 붙잡는 신앙 32:1-11, 16:19-31
미국의 기독실업으로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아더 미다스 장로는 한때 미국의 10대 재벌 중의 한 사람이었고, 한국의 대학생 선교단체에 50만 달러를 기증하고, 7억 달러를 들여 선교재단을 설립하는 등 남을 돕는 일에 물질을 사용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한 기자가 그에게 신앙과 인생에 성공비결이 있다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내게는 아주 간단한 다섯 가지의 신앙철학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첫째, 주일성수, 둘째, 온전한 십일조, 셋째, 하루의 첫 시간을 기도로 시작하는 것, 넷째, 내 가정의 주인을 예수님으로 모셔 들이는 것, 다섯째, 시간과 돈을 선한 사업에 사용하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기회를 잘 붙잡은 모범적인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준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기회를 붙잡는 신앙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회개할 기회를 붙잡는 신앙
구약 본문 1절에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했고, 5절에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했습니다. 사람들은 재물이 많거나, 지위가 높고, 몸이 건강하고, 장수하면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복은 육신에 속한 복이요, 일시적인 복에 불과합니다. 영적인 은혜의 세계를 알지 못하는 자들이 생각하는 복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진정한 복은 죄 사함을 받고 의인으로 인정받은 사람이 복 있는 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죄 사함을 받는 것이 복이라고 말씀하시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죄는 사람을 파멸로 몰고 가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죄를 미워하실 뿐 아니라 죄인은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범죄 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고 하셨고,(18:4;20)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6:23) 사람들은 죄로 인해 죽을 뿐 아니라 심판을 받아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됩니다.( 9:27) 죄는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담이 되고,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게 합니다. 죄인에게는 평강이 없습니다. 다윗은 구약 본문 3-4절에서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했습니다. 죄를 자복하고 회개할 때 죄책에서 해방되어 마음에 평안이 임합니다.
*다음에 죄는 인간 스스로는 없애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재물로도, 선행이나 공로로도, 율법을 지킴으로도, 수행이나 고행으로도, 물로 씻어도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5:26) 단 하나의 죄가 남아 있어서도 지옥에 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불행하게도 수없이 지은 죄를 다 기억할 수도 없고, 갚을 능력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주 여호와 내가 말하노라 네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수다한 비누를 쓸지라도 네 죄악이 오히려 내 앞에 그저 있으리니"( 2:22)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도,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죄의 대가를 치룰 수 없습니다. 이처럼 사람으로 또 세상 방법으로 죄 사함 받을 길이 없는데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께서 의롭다 인정함을 받게 되었으니 얼마나 큰 복입니까?
*하나님께서 죄 사함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예비 하셨기 때문입니다.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십자가를 통해 속죄와 죄 사함의 길을 열어 놓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16) 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1:7)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사단의 권세, 죄의 권세,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함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은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4:12)고 했습니다.
신약 본문에 나오는 부자는 세상에 사는 동안 회개할 기회를 놓친 자였습니다. 그는 뒤 늦게 음부의 고통 속에서 아브라함에게 다섯 형제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알릴 기회를 주시면 저들이 회개 할 것이라고 본문 30절에서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기회가 지나갔습니다. 부자는 세상에 사는 동안 연락에 빠져 죽음 후의 일을 생각지 않았습니다. 죽음 후에 심판이 있고,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 땅에 있을 때가 회개하고 구원받을 기회입니다. 이 기회를 잃어버리면 영영 소망이 없는데, 이 사실을 믿고 회개하여 죄 사함 받고 구원 받게 된 것이 얼마나 큰 복입니까? 우리 모두 회개할 기회를 붙잡는 믿음의 성도가 됩시다.


2.기도할 기회를 붙잡는 신앙
구약 본문 6절에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 하리이다.”했습니다. 경건에 이르는 방법은 기도 하는 일이요, 경건을 유지하는 방법 또한 기도요, 주님과 만나 교제하고 도움을 얻는 방법이 기도입니다. 흔히 기도를 호흡이라고 비유합니다. 육신이 살아 있는 동안 항상 호흡을 멈추지 않아야 하는 것처럼 영혼이 살아 있기 위해서도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호흡에 장애가 있으면 건강의 적신호가 되듯이 기도에 장애가 있다면 영혼의 적신호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천로 역정의 저자 존 번연 (John Bunyan)은 기도에 대해 말하기를 기도는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그만 짓도록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죄가 인간으로 하여금 기도를 그만 두도록 할 것이다. 왜냐하면 기도는 영혼의 방패요, 하나님께는 희생 제물이요, 사탄에게는 채찍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경건한 사람은 주께 기도할 것입니다. 참된 기도는 경건의 불가결한 표시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떤 것이라도 기도하는 일에서 멀어지게 한다면 그것이 악한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럴 듯 해 보이고 좋아 보여도 그것 때문에 기도하는 일에서 멀어지게 된다면 그것은 영혼에 해악을 끼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기도 시간을 정하여 기도하고, 순간순간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자를 하나님이 지키시고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홍수가 범람하듯 갑작스러운 재앙이 올지라도 죄를 자복하고 기도하는 경건한 자에게는 그 재앙이 미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환난 가운데서 기도하는 성도는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구원을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경건한 자에게 크신 응답을 베풀어 주십니다.
신약 본문에 나오는 부자는 기도하여 응답받을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죽은 뒤 늦게 부르짖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인간에게는 세 가지 죽음이 있습니다.
첫째는 육신적인 죽음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람이 죽었다고 표현하는 것으로 숨이 끊어져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육체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맞는 죽음입니다. 둘째는 영적인 죽음입니다. 꽃병의 꽃이 화려하게 향기를 내며 살아 있는 듯이 보이지만 이미 뿌리가 잘려 죽은 것처럼 생명의 뿌리와 같은 영원하신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살았다고 하지만 실상은 죽은 자들입니다. 셋째 영원한 죽음으로, 이것을 성경은 음부 혹은 지옥이라 부르는 영벌의 세계로 둘째 사망이라고 말합니다. 부자는 이곳에서 부르짖습니다. 본문 24절에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얼마나 다급하고 간절한 소원입니까? 그는 세상에 거할 때는 모든 것이 풍족하여 부족함을 모르고 살며 하나님께 기도다운 기도 한번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옥에서 그의 지위도 재산도 영화도 아무 쓸모가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세상의 복이 오히려 화가 된 것입니다.
슬기로운 성도는 기회를 잃기 전에 기도하는 자로 삽니다. 제너럴 모터스의 최고 엔지니어 찰스 케터링(Charles F. Kettering)의 일화입니다. 그는 빈틈없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기에 자동차업계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어느 날 모임에서 사회자가 그의 신화의 손을 높이 쳐들며 케터링씨, 이 손으로 한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이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사회자는 물론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자동차의 탄생이라는 말을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손으로 한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은 두 손을 잡고 기도한 일이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기도의 중요성을 안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기도의 중요성을 알고 기도할 기회를 붙잡는 신앙의 사람이 됩시다.


3.사명의 기회를 붙잡는 신앙
하나님께서 만물 특히 만물의 영장인 사람을 지으신 것은 그들을 통해 영광과 감사와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고, 기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것이 마땅한 본분입니다. 구약 본문 11절에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 할찌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찌어다.”했습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면서 그 분의 뜻에 순종하여 충성하는 자로 말씀을 통해 주께서 주신 사명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위로 하나님을 사랑 하고 아래로는 이웃을 사랑하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신약 본문에 나오는 부자는 물질로 가난한 자들을 돌아봐야할 사명을 망각하고 잔치하고 연락하는 데에 빠져 살았습니다. 불쌍히 여겨야 할 거지 나사로를 외면했습니다. 그는 뒤 늦게 전도의 중요성을 깨닫고 본문 27-29절에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했습니다. 부자는 음부에서 자기의 다섯 형제가 그 곳에 오지 않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죽은 나사로를 살려 보내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지상에 모세와 선지자 즉 주의 종들과 성도들이 있으니 그들이 전하는 말을 듣지 않는다면 나사로가 살아서 가도 듣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러 주었습니다. 한 마디로 그는 세상에서 주를 위해 충성할 사명, 전도의 사명과 그 기회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세상에 사는 동안 기회를 잃으면 더 이상 소망이 없습니다. 12:15-17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알고, 그 사명을 따라 사는 사람이 귀한 사람이요, 주님 앞에 바르게 사는 사람이요, 장차 주님의 인정과 칭찬과 상급을 받는 사람이 됩니다. 칼릴 지브란 (Kahlil Gibran)은 그의 시 인간 예수 에서 이렇게 전합니다. 구레네 시몬에게 너는 가서 다시 십자가를 지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라고 묻는 이에게 나는 얼마든지 십자가를 다시 지겠다.”라고 대답합니다. 이에 놀란 사람들이 어찌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운 십자가를 또 다시 질 수 있겠는가?” 물었더니 구레네 시몬은 대답합니다. “처음 십자가를 질 때 힘든 고통에 못 이겨 쓰러지려는 순간 뒤에 계신 예수께서 오른손으로 나의 어깨를 만져주셨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의 손이 닿는 순간부터 십자가가 더 이상 무겁지도 고통스럽지도 않게 느껴졌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경건한 신앙을 가지고 사명을 위해 힘쓰며 살아갈 때마다 주님이 함께 하셔서 그 어깨 위에 예수의 오른손이 얹어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세상의 무거운 짐을 맡아 주시고, 사명의 멍에를 메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를 때 은혜와 능력을 공급해 주십니다. 우리 모두 사명의 기회를 붙잡아 충성하는 자로 살다가 주님 앞에 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기회를 붙잡는 신앙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회개할 기회를 붙잡는 신앙
.기도할 기회를 붙잡는 신앙
.사명의 기회를 붙잡는 신앙 아멘.
<2025. 02. 06. 호현낙선>

 

출처: 성산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호현낙선